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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다큐멘터리로 연대하기 <소성리> 박배일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한솔 2018. 8. 16.



다큐멘터리로 연대하기

 <소성리> 박배일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까맣게 탄 손목 위로 노란 팔찌과 파란 리본이 눈에 띈다. 어떤 사명감에서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얼 담아야할지 고민한다는 말 속에서 어떤사명감이 느껴졌다. 영화 개봉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오후, <소성리>의 배급을 진행하는 시네마달 사무실에서 박배일 감독을 만났다.



 




먼저, <소성리>는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요?


다른 영화 한 편을 진행하던 도중 미디어로 행동하라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어요. 일년에 한 번씩 45일 동안 현장에서 가서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인데, 소성리로 가기로 한 거고요. 사드와 관련된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간 것이고, 원래는 딱 그 프로젝트만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선 이후 현 정권 지지자들과 보수층이 성주의 투표결과를 보고 투표를 이런 식으로 했으니까 사드 안고 죽어버려라이런 댓글들을 많이 달더라고요. 그걸 보고 왜 성주의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굉장히 정제된 말로 하지만, 그때는 너무 화가 났어요. 성주에서 보수정권 득표율이 80% 정도라면, 저 같으면 20%밖에 안 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생각을 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욕하고 비난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노와 동시에 저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감독이니까 그 현장을 담아보자 해서 소성리에 가게 되었어요.

 


소성리라는 지역에 대해서 원래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고,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소성리의 모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새롭게 알게 된 모습이랄 게 없는 것이, 원래 전혀 알지 못했던 공간이었어요. 그냥 그 곳에 가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아간 거죠. 소성리라는 공간이 특별한 곳은 아니거든요. 다른 마을에 비해 굉장히 절경인 것도 아니고 작고 평범한 마을이에요. 근데 한국의 역사라는 것이 그렇더라고요. 이 영화에 담겨있듯 소성리는 전쟁과 같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이 배어있는 공간이에요. 제가 애초에 영화를 하겠다고 마을에 들어간 건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사드가 어떻게 들어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고요. 아무도 모르지만 영화에 주요하게 들어가 있는, 의미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중간중간의 인서트컷들은 다 학살 현장의 모습이에요. 성주에 있는 학살 현장을 찾아다니고 그것이 개인의 전쟁의 역사와 어떻게 닿아있는지 혹은 어긋나는지, 그런 걸 보고자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제목이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인 편인데, 제목을 짓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저의 영화 궤적 안에서 현재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공간에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배어있나거든요. 그걸 궁금해 하고 있어요. 제 전작들은 밀양이라는 특정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공간에 대한 것보다는 사건 자체와 사건의 의미, 혹은 투쟁의 의미를 더 고민했어요. 이번에는 당연히 투쟁의 의미와 현장의 목소리를 주요하게 담지만 그것과 함께 그 공간의 흔적 혹은 배어있는 역사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걸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게 주 관심사예요. 그래서 제목도 두 가지 방향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어떤 장소가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역사가 쌓여있고 배어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그런 공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명시하고 싶었어요. 두 번째로 소성리라는 공간 자체를 알리고 싶은 목적이 있었어요. 지금 소성리 내 사드가 배치된 지 1년도 안 지났어요. 그런데 소성리라는 공간은 잠시 회자되다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지워졌거든요.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지음으로써 소성리를 다시 알려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잘 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영화라는 게 기록으로 남게 되니까요. 그렇게 저의 영화적 관심사와 운동의 목적 두 가지 이유였습니다.

 


사드 문제에 대한 입장이 달랐던 어르신은 만난 적 없나요?


일단 저는 소성리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 분을 만나보진 못했어요. 그냥 비슷한 입장인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 혹은 투쟁 강도의 차이가 있었고요.

 


그렇다면 소성리의 많은 할머니들 중에서 도금연, 임순분, 김의선 할머니 세 분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첫 촬영이 작년 6월 말이었어요. 이 영화가 영화라는 도구로서 몫을 하려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정한 마감 일정은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일이었어요. 그래야 이 공간을 관객들에게 알릴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소성리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 세 분을 먼저 찍을 거예요. 가장 캐릭터도 강하고, 그 공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하고 계시고, 그리고 매력적인 분들이니까요. 임순분 할머니랑 도금연 할머니는 촬영 전 사전 조사에서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김의선 할머니는 집이 너무 깔끔하고 예뻤어요. 그 집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나 뵈니까 굉장히 까칠하고 빡빡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사람들 좋아해요.(웃음) 그래서 할머니한테 찍고 싶다고 우겼어요. 할머니가 한 번도 촬영 같은 걸 허락해준 적이 없대요.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저를 허락해주셔서 찍기 시작했고, 그러다 할머니의 사연도 듣게 되었죠.

 






현장에 머무르며 이런 촬영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도 한 명의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장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가가 특별한 직업은 아닌 것 같다는 표현으로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하는 직업인이고 특히 스스로를 독립영화인이라고 여겨요. 그런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이와 함께 누구를 기록해야하는가 질문한다면 저는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람, 세상이 좀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힘을 주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이 세상이 균형 있게 나아가고 있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래도 제가 담은 주인공들의 투쟁이 균형감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 곁에 있으려고 해요. 다큐멘터리가 직업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럴 거예요. 저는 사실 운동권도 아니고 원래 이런 투쟁에 크게 참여하지도 않았거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영화를 하며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여성들의 투쟁, 장애인들의 투쟁 그리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상을 좀 더 균형 있게 만든다, 내 카메라는 그들 곁에 있어야겠다, 그렇게요. 또 각자의 투쟁 상황과 그 사람들의 감각, 그리고 저의 감각에 조금 기대서 그것들을 버무리고 영화를 만들며 있을 것이라고요. 근데 그게 어떤 사명감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독립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하게 됐고, 독립영화를 할 때 내 카메라가 어디에 있어야할지를 고민하며 세상을 바라보니까 이곳에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게 저의 직업의식일 수도 있고요.

 


영화에 나오는팔부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저도 더 듣고 싶어요.(웃음) 팔부녀 만으로도 영화가 한 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성리>에선 영화의 결을 고려해서 팔부녀를 너무 강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순분 할머니도 원래 그렇게 투쟁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어떤 계기로 마을의 누군가가 추천을 해서 대구에 교육을 받으러 가셨대요. 거기서 노동 교육 혹은 페미니즘 교육 같은 걸 받으셨는데, 그곳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이 없고, 여성도 자기의 주장을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민주적이었던 거죠. ‘이런 곳도 있구나. 그렇다면 우리 마을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펼쳐나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셨나봐요. 이후에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을 어떻게 꾸며갈 것인지 고민하면서 팔부녀 활동을 하시게 된 거죠. 그 활동이 기반이 되어서 여성농민회장도 하신 거고.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게 된 것 같아요.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해 굉장히 많이 노력하셨고, 그 과정에서 아녀자가 나선다느니, 우리가 흔히 알법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그 힘이 동력이라는 걸 모두 인정하게 된 거고요. 사실 성주라는 곳이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이지만 그곳에서도 소성리는 진보적인 곳이에요. 팔부녀 활동 덕분에요.

 


자막을 표준어로 바꾸지 않고 사투리 그대로 실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예전 작품에서는 아예 자막을 안 쓰기도 했어요. 그때는 못된 심보가 있었어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말보다는 그 사람들이 노동하는 모양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말을 계속 하는 영화였는데 말이에요.(웃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서울말 다 알아듣는데 너희가 사투리 못 알아들으면 공부를 해라, 그런 마음도 있었고요. 그땐 못된 마음이었고요, 그래도 기본 전제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굳이 자막을 표준어로 바꿔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막을 아예 안 넣으면 저도 못 알아듣는 말이 있어서 사투리로 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뭐 역사적 의식이나 구술사적 의미, 이런 건 없고.(웃음)







카메라가 농사짓는 할머니들의 손에 자주 머무릅니다. 특정한 의도가 있는지요?


어디서는 제가 할머니 전문 감독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세월이 사람 몸에 쌓여서 드러나잖아요. 저도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게 그 사람의 주름인 것 같거든요. 제가 그걸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카메라의 위치에 대한 의도는 있었어요. 카메라가 낮은 위치를 유지하는데, 그건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렇게 바라본다고 생각해서예요. 이외에 주름이나 손에 클로즈업이 장면이 많은 건 찍다보니 담긴 제 취향이에요. 제가 보고 싶고 좋아하는 것.

 


할머니들에겐 카메라가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데 어떻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기자님이 소성리에 들어가도 내밀한 이야기를 해주실 거예요. 기본적으로 그 이 되면 자기의 구술을 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단련이 되어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역사를 구술로 이야기한 경험이 더 많으니까요. 당연히 어떤 신뢰가 쌓여야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겠지만 그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부분이거든요. 그 이후에 할머니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건 크게 어렵진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건방진 것 같은데.(웃음) 밀양송전탑투쟁 때는 일 년 정도 관계를 맺은 뒤 인터뷰를 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여느 기자와는 다른 모양새로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셨죠. 그 사안에 대해 저도 굉장히 잘 알고 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이분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는 어떤 것을 물어야하는지 잘 알았지만 소성리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분들이 내밀한 이야기를 해주신 건 미디어로 행동하라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거고요, 기본적으로는 그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잘하시는 분들이기도 해요. 그래도 중요한 건 미디어로 행동하라팀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소성리>가 왜 '할매'들의 이야기인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일단 할아버지가 많지 않아요. 시골에 원래도 할배들이 많진 않지만 특히 소성리에는 더 적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물음들이 계속 있었거든요. 밀양에 있으면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두 편 다 할머니에 대한 것이었어요. 할아버지도 많은데 왜 이야기에는 할머니만 있는가, 그에 대해 밀양 때는 사실 답변하기가 정말 편했어요. 말그대로 할머니들이 투쟁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소성리는 그와는 조금 달라서 남성인 이장님의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장님도 이 투쟁에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고, 이장님과 순분 회장님이 고리가 되어서 이 현장을 이끌어 가거든요. 그래서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이장님을 인터뷰했는데, 이장님이 말하는 결과 할머니들의 이야기 결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할머니들에게 인생사를 물어보면 딱 눈에 그려지듯 이야기해줘요. 그런데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보면 인생사를 이야기하다가 금세 어떻게 이 마을의 사드와 연관되어있는지 말씀하시느라 그 당시를 회상하게끔 이야기를 못해주시더라고요.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구체적인 쪽으로 끌어가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습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하지만 이장님은 참외 따는 뒷모습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는 의미가 있지만 영화가 만들어 놓은 톤과 너무 달라서 결국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 할머니가 6.25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의 꿈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이때 화면이 다양한 색으로 계속 바뀌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체적인 인터뷰의 내용 중 하나가 전쟁과 관련된자기 삶 안에서 전쟁같은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6.25 때도 있고남편을 잃었을 때도 있고요그런 이야기들이 공간에 어떻게 쌓여있으며, 어떻게 흔적이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해요특히 자기 내면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꿈으로 발현된다고 생각하는데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꿈이나 망상에 대한 부분이요영화에 나온 꿈의 경우엔할머니가 사드가 올 때 즈음 되어서 꿈을 꾸셨대요산으로 올라가는 꿈이었는데, 세 명이 올라갔대요. 올라가보니 우리밖에 없었다고 하시는데, 그게 굉장히 상징적이에요왜냐하면 사드에 배치될 후보군이 세 곳이 있었는데세 곳 모두 막기 위해 사드 반대운동을 하셨거든요그렇게 세 명이 같이 올라간 거예요근데 같이 올라가보니까 아무도 없고 할머니 혼자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신 거죠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되었으니까요사실 꿈을 꾸셨을 수도 있고 꿈을 꿨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그렇지만 그게 좀 이상하게 보이게끔말그대로 꿈처럼 보이게끔 했던 것 같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장면인가요?


사실 그게 동영상을 찍기 위해 촬영을 하자고 해서 찍은 건 아니었고 할매들, 여기 서보세요. 사진 한 장 찍어봅시다.”하면서 찍게 되었어요. 할머니들이 사진 같은 걸 잘 안 찍으시거든요. 그날은 어쩐지 한번 찍어봤는데, 찍는 김에 영상으로 찍어서 캡쳐해서 드리려고 한 거죠. 할머니들이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얘기하다가 대한민국 만세퍼포먼스를 하시더라고요. 뒤에는 무궁화가 있고요. 그 장면을 마지막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굉장히 아이러니하잖아요. 서북청년단의 말에 의하면 빨갱이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니까. 할머니들은 대한민국을 나의 민족, 나의 나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인 거죠. 현재 권력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 장면을 꼭 쓰고 싶은데 다른 위치에 넣으면 영화가 이상해지기도 하고요.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궁금합니다.


, 촬영 중간에 저희 조연출이 절벽에서 떨어졌어요. 그런 큰 사고는 작업을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거든요. 그 순간이 굉장히 아프게 기억이 남아요. 얼마 전에 조연출이랑 술을 먹다가 만약에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으면 우리는 영화 못했을 거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가 조금만 잘못 됐어도 거의 죽을 뻔했거든요. 정말 기적적으로 큰 수술 안 하고도 몇 개월 만에 나았어요. 그게 작년 일이에요. 사고 당시엔 이제 <소성리>도 안 찍는다.’ 그런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마지막에 구조헬기 타고 올라가면서 <소성리>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해서 힘을 내서 소성리를 만들었던 거거든요. <소성리>를 완성하지 못하면 그 친구가 자기 때문에 영화가 나오지 못했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요. 저는 여태 영화하면서 큰 사고도 없었고 주인공들과 별다른 갈등도 없었어요. 다큐멘터리하면 그런 일도 꽤 많거든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그런 사고를 겪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지금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서 울컥하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정말 축복받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금연 할머니가 우산 쓰고 산 근처의 다리를 지나가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이 소성리와 이 영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이 분들의 속도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쁘기도 하고.



인디스페이스 관객분들에게 마지막인사 부탁드립니다.


제 다음 작품이 극장에 대한 이야기인데,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독립영화가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장에 있는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문제제기, 새로운 질문을 담는 영화가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가치가 사라질 위기를 마주하기 전에 영화도 보고 극장을 자주 찾아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소성리>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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