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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모르는 이야기〉: 자아를 밝히세요

by indiespace_가람 2024. 5. 16.

〈모르는 이야기〉리뷰: 자아를 밝히세요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그럴듯한 생각은 그럴듯하게 우리를 벗어난다. 또 다른 공상을 잠깐 진입하게 두었더니 그 문을 타고 금세 사라지는 앞선 생각들. 그럴듯하게 벗어난 생각은 꼭 소유하고 있던 물건을 잃어버린 것만큼의 아쉬움으로 찾아와 생각의 단속을 만들어내고, 그럴듯한 생각들이 떠오른 그 순간 놓치거나 빼앗기지 않으려 어딘가 애쓰게 만든다. 간혹 엄청난 꿈을 꾸다 눈을 뜬 순간 휴대폰 메모장에 줄줄이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을 쓰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문장들은 방금 보고 겪은 것을 진술하듯 생생하고 분명하게 적힌 기록이 되는 것처럼. 〈모르는 이야기〉는 그 메모장에 적힌 누군가의 문장들이다.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분명히 생생한, 그 애써 붙잡아둔 기록의 이야기들은 기이하지만 모호하지 않고, 신비하지만 분명하다.

영화 〈모르는 이야기〉 스틸컷


 이 영화가 당혹스러울 만큼 기묘하지만, 어딘가 분명한 이유는 왜일까. 〈모르는 이야기〉의 도통 ‘모르겠는’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공간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고, 그 안에 놓이는 인물의 모습 또한 사뭇 달라진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공간의 이동과 인물의 모호한 모습은 기은(정하담)과 기언(김대건)의 실제는 아님을 지각한다. 그렇게 영화가 반복해서 그려내는 비일상적인 시퀀스를 ‘꿈’으로 치환하는 데 확신을 가지게 된다. 꿈의 시퀀스들 사이 등장하는 어둡고 무기력한 기은과 기언의 몸을 보고 나면 더욱 그렇다. 영화가 꿈의 반대편에 있는 현실을 그려내는 순간 사용하는 것은 응급실 소리, 불안한 시야, 고통스러운 몸짓, 진통제 알약, 힘들어하는 몸이다. 그 정보로 기은과 기언의 상황을 조심스레 추측하며 영화가 보고 있는 현실을 고통으로 읽어본다. 고통이자 아픔, 불안이자 무력한 몸, 그 몸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서 대비되는 색채, 인물의 표정, 움직이는 몸, 동적인 이미지는 꿈으로, 고통이 느껴지는 화면은 현실로. 인물의 모습을 통해 꿈과 현실을 구분해놓고 다시, 〈모르는 이야기〉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괜히 빠져나와 조금 멀리서 바라본다.

 

영화 〈모르는 이야기〉 스틸컷


 계속되는 모르는 이야기는 누구의 기록일까.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의 화자는 누구일까. 결국, 이 꿈은 누구의 꿈일까. 그 사람이 어서 현실에서 이 꿈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고대하지만, 현실의 기은과 기언은 주로 침대 위에서 몸을 굽히거나 웅크린 채로 고통스러운 몸짓만을 보여주다 다시 잠들 뿐, 〈모르는 이야기〉가 삽입하는 의식의 공간은 무의식보다도 갑갑하고 아득하다. 이들은 비로소 꿈의 공간에 다다라서야 신비하지만 분명한 발화, 몸짓, 대화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영화가 현실보다 꿈의 공간에 더 많은 힘을 들이고 있는 건 그저 신비로운 영화 만들기의 작업은 아닌 듯하다. 영화에서 꿈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정확히 서로를 교차하지 않고, 대등하지 않는 점이 그러하다. 모호한 세계를 연결하며 꿈을 간헐적으로 사용하는 영화들과 달리, 〈모르는 이야기〉는 내내 기이함을 유지하며 꿈의 세계를 기본으로 현실의 의식 공간을 때때로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꿈의 공간은 현실의 이미지보다도 훨씬 여러 번, 강렬하게 등장한다. 영화 〈모르는 이야기〉가 꿋꿋이 유지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규모는 그렇게 그 크기의 차이로 영화에 구현된다. 의식은 우리 눈에 보이고, 그 고통의 감각마저 전해지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무의식은 제대로 볼 수 없고 그 크기와 깊이도 가늠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영화는 그 빙산의 일각을 고통에 기반한 의식의 현실로 이미지화하고, 의식보다 훨씬 큰 무의식의 세계를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내내 흐르게 둔다.

영화 〈모르는 이야기〉 스틸컷


 영화가 그려놓은 무의식은 의미 없이 텅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기은이 만난 치과의사는 기은에게 자아를 밝히라고 말한다. 그의 호명에도 무의식의 공간에서 자아를 답할 수 없는 기은은 그 길을 되돌아가야만 한다. 무의식의 공간에서 품게 하는 자아에 대한 의문은 현실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무의식이 발현된 의식과 정성껏 매듭짓는다. 그렇게 꿈의 대화는 의식과 구분 지은 채 해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증명으로 존재한다. 〈모르는 이야기〉에 담긴 이러한 분명함이 영화의 기이함 속에서도 우리의 현재를 재해석하는 시도로 보이는 이유이다. 의식의 공간 속 여러 고통에도 그 고통이 일으키는 무의식의 공간은 정반대의 색채로 펼쳐지고, 그 속에서 누군가와 유연한 움직임을 하고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공간에 자아를 맡겨두고 순간의 공상에 빠져보다 〈모르는 이야기〉에 하나둘 각자가 가진 가장 기묘한 꿈의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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