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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울산의 별〉: 공간과 정체성

by indiespace_가람 2024. 2. 5.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공간과 정체성

〈울산의 별〉〈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우리가 있는 공간은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 그 공간은 나를 구술하는 데 쓰이기도, 상대를 이해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공간은 계속해서 흘러가는 순리 또한 역시나 가지고 있어서 그에 따라 우리의 이야기 또한 그 형태를 달리한다. 우리는 그 달라지는 형태를 저마다 마음에 품고 함께 모여 식탁에 마주 앉기도,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 다시 새로이 ‘우리’를 엮어 내기도 한다. 공간에 남아 정체성을 지키려 하기도, 공간을 아예 떠나기도,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충돌하고 갈등을 겪으며 다시 저마다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인물들이 〈울산의 별〉에 있다.

 

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윤화(김금순)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윤화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한다. 원래는 남편의 자리였던 그곳이 윤화의 자리가 된 지도 오래인 듯 조선소 이름이 박힌 옷을 입은 윤화의 모습이 동네 곳곳에서 자연스럽다. 어쩔 수 없는 회사의 결정이라는 말과 함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은 윤화는 여러 의심의 실마리를 동료로서 함께 일해온 개인에게 더욱 집중하며 그 공간이 자신의 공간임을 온몸으로 증명해 내려 한다. 영화는 윤화의 의심의 시선에 함께 동하게 만들며 그 의심이 한 개인에게 증폭되게 일정 시간 내버려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 시선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는 사건을 통해 이유와 분노를 개인에게 물어온 그 시간이 모두 헛되었음에 윤화와 우리 모두 스스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조선소와는 저 멀리 동떨어진 이야기일지 모르는 컴퓨터와 휴대폰 앞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그래프를 두고 표정을 달리하는 세진(최우빈)은 윤화가 조선소를 나오는 시점부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소에 속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조선소라는 공간에 새로이 진입한 한 청년이 되는 세진, 그리고 그런 세진의 모습은 엄마 윤화를 닮아있다. 윤화가 그랬듯 집 대문 앞에 놓인 자전거를 끌고는 조선소로 아침마다 향하는 세진에게 윤화는 딸 경희(장민영)를 묻는다. 경희는 새벽, 엄마 윤화의 얼굴에 처음으로 화장을 해두고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며 울산이라는 공간을 떠나 서울로 가는 인물이다. 영화 속 두 번이나 등장하는 대왕오징어가 바다에서의 삶을 다 하고 사람이 물가에서 던진 낚싯줄을 힘없이 물어 그 큰 몸을 맡겨버리는 모습은 윤화이기도, 경희이기도, 세진이기도 하며 결국,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울산의 별〉은 개개인의 공간적 변화를 두고 인물 개인의 이야기로 남겨두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고, 때로는 소리도 질러보고, 화도 내보기를 원한다. 

영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스틸컷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은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와 실향민, 해외 입양인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팀의 시선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간을 빼앗기거나, 다시 공간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러 온 인물들은 카메라를 정면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카메라 뒤에는 다큐멘터리로 모인 인물들이 있다. 이들 또한 ‘카메라’라는 물리적 장치를 두고 카메라 앞에 있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위치에 놓인 채, 카메라 화면 속으로 인물들을 바라보지만, 그들의 태도와 마음에 있어서는 카메라로 갈라놓은 그어진 선 같은 건 이내 불필요해진다. 온전히 이야기를 들어내고, 때로는 당사자보다도 더 당사자처럼 화를 내기도, 소리치기도 하는 모습에서 〈울산의 별〉을 보며 취하고 싶어졌던 태도의 모양을 조금은 형상화해보기도 한다.

 동시에, 〈울산의 별〉 속 인물들을 함께 떠올려본다. 집단의 문제보다 한 개인의 문제로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 간편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공간을 빼앗기고, 나의 정체성을 다시 찾으려는 인물들이 두 영화에 있다. 타인의 이야기로 치부하기 쉬워지는 문제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그 카메라 뒤에서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어내는 인물들의 태도가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에 있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실향민 그리고 해외 입양인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귀 기울인 채 지었던 얼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얼굴을 나와 우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엿보고 싶다는 소망을 오늘 또 한 번 품어본다.

 

* 작품 보러 가기: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이인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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