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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이어지는 땅〉: 끊어지지 않는 것

by indiespace_가람 2024. 1. 23.

〈이어지는 땅〉: 끊어지지 않는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글입니다.

 

 

런던에서 대학원 입학을 앞둔 호림(정회린)은 우연히 주운 캠코더 속에서 어떤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다. 이후 호림은 공원에서 자신의 옛 애인인 동환(감동환)과 마주치고 이어서 동환의 현재 애인인 경서(김서경)를 만난다. 그리고 호림은 경서의 친구이자 캠코더 속 여성인 이원(공민정)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처음 보는 인물들 사이의 조우가 잇따라 발생하는 서사의 흐름은 ‘이어지는 땅’이라는 영화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영화 〈이어지는 땅〉 스틸컷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1부는 호림과 동환의 이야기이다. 호림은 동환과의 재회를 위해 갖가지 애를 쓴다. 휴대 전화가 고장났다는 거짓말을 하며 동환에게 접근한 호림은 동환의 현재 애인인 경서를 만나며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경서에게 은근슬쩍 긴 머리 시절의 동환을 이야기하거나 자신과의 연애 기간과 경서와의 그것을 견주는 등, 조바심을 내며 과거의 인연을 현재에 다시 이어 붙이려 한다. 그러나 이는 거듭 실패한다. 이별 후 호림과 동환 각각이 쌓아온 감정의 퇴적물이 더는 서로 혼합될 수 없는 시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편 2부는 이원의 과거로 이루어진다. 조경 일을 하는 이원은 어느 날 화진(류세일)을 만난다. 해가 저문 무렵, 이원은 화진과 거리를 함께 걸으며 편안한 대화를 이어간다. 이원과 화진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믿음을 가진다는 기질을 공유한다. 어느 광장에 이른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려고 한다. 라이터를 구하기 위해 화진이 길을 나서고 화진을 기다리던 이원 역시 광장을 벗어나며 둘은 다시 재회하지 못하게 된다. 순탄할 줄만 알았던 인연이 의도치 않게 끊어지는 순간이다.  

 

 

영화 〈이어지는 땅〉 스틸컷

 

 

유적이 된 건물과 여전히 자라나는 식물. 과거가 담긴 캠코더와 현재를 비추는 카메라. 그림 속에서는 죽어 있으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비둘기. 헤어진 후 마주 앉은 옛 연인과 이별하지 않았지만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이어지는 땅〉 속 여러 요소들은 멀리 떨어진 채 점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만 같다. 상반된 의미를 품기에 단절된 듯한 이들은 사실 시간을 축으로 이어져 있기에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플라밍고에 대한 진실이 시간이 지나 거짓으로 밝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지는 땅〉은 우리가 끊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조각들 사이에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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