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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벽을 해킹하기] 섹션 2 '개구리들' 인디토크 기록: 개구리로 살아남기

by indiespace_가람 2024. 1. 4.

개구리로 살아남기

[벽을 해킹하기] 섹션 2 '개구리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17일(일) 오후 4시 30분 상영 후

참석 최이다, HWI, 멜트미러, 김한주(실리카겔)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기록입니다.

 

 

최이다 감독은 기획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수입원으로서의 영상을 만드느라 바쁜 노동자이자, 수입과는 상관없이 영상 만들기를 멈출 수 없는 창작자들. 이들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만들어 온 영상은 그동안 모니터, 전광판, 전시장 등지를 떠돌았으나 극장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이는 극장이 비상업적인 공간이며, 이들의 영상이 상업적이라는 의미일까?” 이날 우리는 그 모호한 경계에서 살기 위한 생존법과 살아남기 위한 호흡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생업과 영상업 사이에서 헤엄치는 이들이 공유하는 말들은 공교롭게도 각운을 이룬다. 최이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말미에 “극장은 굉장히 상업(Commercial)적인 공간”이라 말하며 끝을 맺었다. 개구리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최이다 감독(이하 최이다): 벽을 해킹하기 기획전을 준비한 최이다라고 한다. 일단 ‘개구리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청개구리 설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찾았었다. 개구리에게는 두 가지 호흡법이 있다. 개구리는 폐호흡만으로는 산소가 충분하지 않아서 피부도 같이 숨을 쉰다고 한다. 어떻게든 숨을 쉬어야 하는 신체적 구조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친구들이나 동료 작업자들, 그리고 나조차도 돈 벌고 자기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을 추구하고 실현해야만 숨을 좀 쉴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 일 안에서도 자기만의 것을 고수하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개구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거다. 오늘 오신 패널들은 서로의 작업 방식에 대해 연결고리가 많은 사람들이다. 일단 각자 작업의 출발점을 간단하게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다.

 

HWI: 음악을 만들고 영상작업도 하는 휘라고 한다. 개인 작업으로 〈into the basement〉(2019), 〈mígōng〉(2019) 두 작품과 팀으로 일하는 삼인조 콜렉티브 업체eobchae의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2022)을 상영하게 되었다. 개인 작업인 두 개의 영상은 [ExtraPlex](2019)라는 내 앨범에 수록된 두 개의 곡이다. 처음에 만들기 시작할 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서울을 많이 돌아다녔었다. 매일매일 어떤 일정이 끝나면 그 주변 어딘가를 돌아다니면서 시간 때우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다이소에 들어가서 별 의미도 없이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데 이런 패턴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도 쇼핑몰이나 백화점처럼 물건을 파는 공간들을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행위를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자각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은 거다. 그때 몰링(Malling)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나의 행위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단어 자체로 앨범을 하나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져서 맨 처음에 만든 작업이 「Malling with You」라는 곡이었다. 오늘 상영되기도 한 Into the Basementmígōng 딱 중간에 들어가는 작업이고, 쇼핑몰을 좀비처럼 떠도는 너와 나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into the basement〉는 그 이야기의 앞쪽에 해당해서 지하주차장을 통해 쇼핑몰에 들어가는 장면을 담았다. 〈mígōng〉이라는 제목은 ‘미궁’의 중국식 발음이다. 미궁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조금 세서 무게감이 덜한 제목으로 바꿔서 제목을 짓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다이소에 갔다가 나온 후 얼떨떨해진 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웃음)

 

멜트미러: 영상작업 하는 멜트미러라고 한다. 일 년에 한두 편 정도로만 작업하고 요즘은 게임 개발을 더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이번 섹션에서 실리카겔과 함께한 뮤직비디오 세 편, 그리고 현재 몸담은 팀 isvn의 작업 하나를 상영했다. 일곱 명의 다양한 작업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팀이다. 아르코 미술관에서 공개했던 〈[신규]생명안전지도〉(2019)는 어떤 좌표계와 사람들이 발 딛고 있는 땅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에는 한국 사회 이슈였던 것들이 지금은 또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삼 되게 외딴곳에 던져져 버린 것 같은 작업이라고 느껴졌다. 기획전 준비하며 다시 보니까 여러 수정 하고 싶은 방향들이 있어서 많은 부분을 손봤다. 한주 님이 만든 새로운 곡들도 포함되고 다양한 숨소리나 세세한 소리도 많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실리카겔과 함께한 작업은 〈NEO SOUL〉(2017), 〈Kyo181〉(2020), 〈Mercurial〉(2023) 세 편이다. 오늘 맨 앞에 앉아서 봤는데 스크린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내가 막 잡아먹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웃음)

 

최이다: 뮤직비디오 연출하는 데 있어서 실리카겔과 어떻게 논의하는지 궁금하다. 오늘 한주 님이 참석하셨는데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고 어떤 콘셉트가 들어갔는지 듣고 싶다.

 

멜트미러: 초기에는 한주 님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작업이다 보니 어떤 아이디어들을 내가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어갔었다. 최근에는 일차적으로 모두의 의견과 취향을 취합한 다음에 내가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사실 이게 굉장히 배려받는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다른 클라이언트 작업과 다르게 실리카겔은 항상 내 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있는 팀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다. 동시에 나도 내 작업이라는 관점은 절대 가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실리카겔이라는 팀의 작업으로 기본적인 성취는 꼭 있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생각보다 대중적인 마음으로 작업한다. (웃음) 절대로 제멋대로 하지 않는다. 피드백 오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반영한다.

 

김한주: 오늘 상영된 멜트미러 연출작 네 편의 작곡가 겸 그룹 isvn에서 같은 구성원으로서 작업하고 있는 김한주라고 한다. 호흡을 맞춘 초기에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시각적 세계가 있다 보니 계속 의견을 냈다.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쌓이다 보니 이제는 말을 많이 안 해도 잘 알아서 만들어주신다. 실라카겔 차기작도 지금 제작 중이다. 전에는 촬영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서로 교감이 많았다면 요즘 같은 경우는 현장의 플레이어로서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이다.

 

 

실리카겔  〈Mercurial〉 뮤직비디오 중

 

 

최이다: 개구리들을 준비하며 멜트미러를 되게 빨리 떠올렸던 이유가 있다. 아르코 미술관에서 영상을 봤었다. 그때는 내가 미술 쪽에 더 많은 활동 반경을 두고 있어서 다른 전시에서도 멜트미러의 영상을 봤었는데 실리카겔 뮤직비디오를 만드신 분과 동일 인물인지는 몰랐다. 나중에 어느 순간 알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놀랍지 않았던 건, 다른 종류의 영상인데도 불구하고 작업물에서 너무 비슷한 개성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대중성이 갖춰진 영상인데도 그 안에서 자기 색깔이 딱 드러나서 한 사람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게 한다는 게 놀라웠다. 개구리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나는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말하다 보면 이건 독립적이다, 혹은 아니다 할 수 있는데 이걸 참이라고 가정하면 단어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멜트미러나 다른 동료들, 내가 모르는 많은 작업자의 작업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상업적이라 일컬어지는 작업 속에서도 자기만의 실험을 나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그걸 소개하는 자리로 이번 섹션을 마련하기도 했다. 오늘 자리에 못 오셨지만, 개인적으로 〈너와 나〉(2022)에서 미술감독으로 만났던 김아름 작가(아리킴)의 〈릴릴〉(2022), 〈∑HËN φ ƒÅlıs〉(2023)도 상영되었는데 사실 〈Mercurial〉에도 미술감독으로 참여하셨다. 대신 조금 설명을 부탁드린다.

 

멜트미러: 뮤직비디오에서 세트 제작과 소품, 전반을 다 총괄해 주셨다. 그래서 사실 묘하게 이번 섹션에 있는 모든 분이 〈Mercurial〉에 나오시는 분들이고 곧 공개될 〈APEX〉(2023)에도 다 출연하신다. 아리킴 작가는 여기서도 역시 미술감독으로 참여해 주셨다.

 

최이다: 아리킴 작가에게 보낸 사전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 드리려고 한다. 작품의 출발점에 관해 “음악 만드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 보면 나도 영향을 받아서 자연스레 꽃이 피는 것 같다”고 표현해 주셨다. 오늘은 추상적이고 조금 평면적인 이미지 위주의 작품이 상영되었지만, 극영화답거나 다큐멘터리 같은 작업도 있다. 색깔이 다양한 작가다 보니 작업하며 얼마나 음악이 영향을 미치는지 여쭤봤는데, “공간 안에서 비디오랑 오디오가 만난다”라는 식으로 답변해 주셨다. 제 작업인 〈스위스 범죄〉(2018)도 개구리들 섹션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 작업이어서 지금 보면 약간 낯설다. 당시 업체eobchae에서 기획한 전시가 있었고 릴레이로 영상을 트는 방식이었는데 십오 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제작해 본 작업이다.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슬슬 영화 쪽으로 발을 들이던 시기였다. 그전까지는 시각예술로 개인 작업이 대부분이어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본 게 그때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다른 현장에 가서 연출자도 아닌 스태프로 계속 일했었는데 대부분 사람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응을 못했던 것 같다. 영상 현장은 한국 사회생활의 정수가 다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금처럼 대화할 때 대답도 “넵”이라고 해야 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굉장히 잘해야 하고, 다음에 할 일을 상시 생각해야 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서 물건을 갖다줘야 한다. 정신적, 체력적인 소모가 크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 영상에도 보면 ‘사회생활’이나 ‘사회성’ 이런 말이 많이 나온다. 이 방식대로라면 한국 영화계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사회생활을 못 하고, 아부나 빈말, 안 좋은 것을 좋다고 못하겠고, 비즈니스맨이 못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이 있었다. 내가 이 작업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작업 또한 나를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을 때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이런 외로움, 뻥뻥 뚫린 말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장하는 행위에 대해 많이 고찰했다. 극장에서 상영될 줄은 몰랐다. 러닝타임은 십오 분이지만 실제 전시 때는 구형 컴퓨터에 넣어서 루프 되도록 계속 돌아갔던 방식이었다. 아까 한주 님에게 개인적으로 패션 필름이나 뮤직비디오를 극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걸 떠나서 하나의 영상 작업으로 보고 싶다고 이야기해 드렸더니 “나는 되게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셨다. 그 ‘뮤직비디오’의 정의가 무엇일지 궁금증이 생겼다.

 

김한주: 깊은 뜻이 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사실 뮤직비디오라는 게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동료들 사이에서 멜트미러의 영상이 뮤직비디오스럽다는 이야기는 많이 했었다. 전부터 뮤직비디오가 표현할 수 있는 호흡과 리듬감에 있어 극한의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드린 것 같다. 작가님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멜트미러: 내가 생각하는 뮤직비디오는 말 자체에 있다시피 음악 뒤에 서 있는 비디오다. 근데 그게 숨어 있다는 느낌이 아니고 진짜로 음악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한다. 항상 그런 관점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상이 앞서 나가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뒤에서 잘 밀어주자는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 그 말이 통용되는 뉘앙스와 별개로 실리카겔과 함께하는 건 정말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한주: 뮤직비디오의 정의가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한다기보다는 뮤직비디오라는 표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드리게 된 것 같다.

 

 

아리킴  〈∑HËN φ ƒÅlıs〉 스틸컷

 

 

 

최이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상업과 비상업의 정의 내리기가 사실 중요하지는 않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섹션 준비하며 두 분의 〈NEO SOUL〉 관련 인터뷰를 조금 찾아봤다. 상업적인 다른 영상에서 느꼈던 불만이랄까. 그런 반작용으로 이런 영상에 추동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조금 유별나다고 기억했던 것은 인물들이었는데, 뮤직비디오에서 여성 인물이 어떻게 그려지는가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주셨다.

 

멜트미러: 〈NEO SOUL〉을 찍기 전에 누가 봐도 상업적인 작업을 하나 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완전 반대로 작업을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된 거였다. 이 작업이 내 영상 중에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스토리보드나 시나리오 없이 현장에서 모든 걸 판단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나름의 메시지가 정확하게 있다. 다른 뮤직비디오는 애초에 그런 의도를 담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NEO SOUL〉을 떠올릴 때마다 당시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할 것 같다. 조금 극한의 감정적인 상태로 제작했다 보니 유일하게 비상업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것 같다. 그 이외의 작업은 밸런스가 확실히 잡혀있다. 그리고 많이들 언급해 주신 부분이 맨 마지막의 긴 원형 키스 시퀀스다. 나는 여러 인물, 그러니까 성정체성에 대한 부분이나 말 그대로 보여지는 성별 같은 것들도 어느 정도 포용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시발점이 된 게 〈NEO SOUL〉이었던 것 같다. 〈NO PAIN〉(2022) 같은 경우에는 정확히 성비를 맞춰서 인물을 꾸렸다. 그 이후 작업도 모두가 어느 정도의 성비를 항상 고민하고 접근하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남성 창작자이기 때문에 사실 특정성별과 정체성을 이해한다거나 그런 건 조금 위선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로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을 솔직하게 담아내려고 고민하는 편이다. 그런 태도를 취하려고 보니 상식적인 선에서 접근하자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최이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영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 같다. HWI의 음악이나 영상 작업도 연결 지어서 말해보자면, 아까 몰에 관한 표현도 그렇고 마트에 갔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른 국가에 가도 몰은 다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비슷한 어떤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내 고향에 있는 이마트나 다이소와 비슷하구나! 하면서. 업체eobchae 한 분께서도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작업 당시에 비트코인을 엄청나게 공부해서 이야기를 쓰셨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투자를 안 했다고. (웃음) 그러니까 오늘 상영된 실라카겔+멜트미러, 업체eobchae, HWI의 뮤직비디오는 상업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데 본 목적으로 쓰지 않고 다른 데 돌려서 이용한달까. 그런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다. 상업적인 것을 얼마나 의식하는지.

 

HWI: 사실 표면상의 상업성에 관해서는 관심이 적었던 편이기는 하다. 상업성이라는 건 어쨌든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의 어떤 경향성인 거다. 더 많이 팔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근데 나는 그런 경향이 생겨나는 과정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부딪히는 모순은 나를 너무 괴롭게 하는 동시에 재미있는 소재다. 오히려 자본주의를 관찰하는 데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이 세계에서 우리도 잘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는데 요즘 조금씩 시작해 보고 있다.

 

최이다: 아무래도 영화랑 음악은 요즘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 자본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데다가 굉장히 긴말하게 연결되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 작업하는 데 있어 이런 물질적인, 혹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나도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느껴서 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겠다 싶을 만큼 의도와 다르게 자본이 쏠리고 왜곡될 때가 있다. 이런 걸 어떻게 감당하는지. 공유할 수 있는 정도라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면 좋겠다.

 

멜트미러: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실리카겔이다. (웃음) 정말 그런 고충이나 제약을 안 느끼는 편이다. 〈NEO SOUL〉하고 〈Kyo181〉까지 마무리하고 나서 이 년간 영상을 멈췄고,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는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그 이전 시기에는 분명 말씀하신 고충이 많았다. 그래서 당장 돈이 되는 일을 찾는 것은 완전히 배제해버렸고 내가 잘할 수 있고 결과물을 최고로 낼 수 있는 일만 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이런 점 때문에 일 년에 영상을 한두 개만 작업하는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사실 스트레스 제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한주: 나는 자본을 제공하는 입장에서 멜트미러가 만족할 만한 규모를 파악하는 게 항상 우선이었다. 자금원인 회사나 멜트미러 사이에서 조율하며 필요한 만큼의 현실적인 서포트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중요하게 생각했다. 당장 돈이 없으면 지원사업도 알아보고 이런 식으로 대안을 찾아왔었는데, 이제는 감사하게도 우리가 행사도 몇 개 뛰면 뮤직비디오 한 편 정도는 찍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줘서 큰 규모든 작은 규모든 하고 싶은 것을 큰 걱정 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조금 다른 말이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가속성과 가변성 자체가 너무 강하다 보니 때로는 돈이 많은 적든 긍정과 부정이 같이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지금 어느 흐름을 타고 있고, 당장 동시대에 필요한 작업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환경에 맞게 작업할 수만 있으면 그런 현실적인 고민은 덜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뭐, 백만 원만 갖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개구리로서의 의식만 크게 가지고 있으면 나는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이다: 이런 훌륭한 분들을 양서류에 비교해 버렸다. (웃음)

 

HWI: 비슷하게 나도 그때그때 나를 찾아온 돈에 맞춰 작업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서울문화재단이나 이런 곳에서 운 좋게도 받는 지원금이 있거나 전시에 초대받아서 아티스트 피를 받아서 손에 주어진 돈에 맞춰 프로덕션 규모를 꾸린다. 그래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게 찾아온 적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고통을 잘 까먹는다.  〈into the basement〉 촬영 마지막쯤 차에 펑크가 났었다. 렌트카였는데 렉카차를 부르느라 예상치 못했던 돈이 깨졌었다. 근데 이런 돈을 낼 수 있는 여유자금만 통장에 있으면 어렵지 않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최이다: 아리킴 작가에게도 공통 질문으로 드렸는데 신기하게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되게 정신적인 것으로 답변해 주셨다. “스스로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자주적으로 창작해 나가는 것이 필연이라고 느껴지는데 불쑥 찾아오는 무기력과 공허함을 이겨내는 것이 가끔 너무도 무겁다. 그럴 때면 자고 싶은 만큼 자거나 여행을 간다.” 써주신 말씀에 공감하면서 답변을 들었다. 나는 영상을 시작하기 전에도 창작하는 데 있어서 계속 이게 소용없다는 생각과 오랫동안 싸웠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작업할 때마다 들리는 그 공허한 느낌을 이겨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티베이션을 갖는 게 나도 어려운 부분이다.

 

 

최이다  〈스위스 범죄〉 스틸컷

 

 

관객: 작업하는 방식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 평소 시각적인 작업을 할 때 레퍼런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내 작업물을 보면 그보다 모방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멜트미러 작가님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디깅을 정말 열심히 하시는 분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멜트미러 작가님의 작업은 모방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가져가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분 같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다. 모방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멜트미러: 사실 한국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상업적인 바운더리로 나가면 제일 고민되는 게 레퍼런스 이슈인 것 같다. 영상이든 무엇이든. 조금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돈이 많은 현장일수록 레퍼런스가 명확해지고, 좀 더 노골적으로는 아예 클라이언트가 레퍼런스와 똑같이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하면서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진짜 금방 생명이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yo181〉 작업을 하던 시점부터는 가능하면 레퍼런스는 동료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만 추려내는 편이고, 그 외에 스토리보드를 짜거나 이미지 만들 때는 아예 참고하지 않는 식으로 움직인다. 말씀하신 것처럼 수집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하다. 그건 정말 재밌어서. 요즘은 어딜 가든 좋은 이미지가 많아서 습관적으로 모으게 되는 것 같다. 근데 시각적으로 참고하려고 모은다기보다는 감각의 단서로 활용하기 위해서 모으는 편이다. 어떤 동작이나 이미지 레이어링 같은 것을 기억해 두고 감각을 간직하고 있다가 한 번 떠올릴 때 연쇄 고리로 만든다. 그래도 다급하거나 조금 임박할 때는 레퍼런스에 대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는 것 같다. 그럼 가져오되 한 번 더 고민하면 된다. 살짝 방치해 두었다가 업데이트시킬 여지가 있을 때 조금 더 내 거에 가깝게 변형시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사실 답은 없다. 본인이 어떤 시기를 지나면서 알게 되는 수밖에 없다고 느끼기는 한다.

 

관객: 업체eobchae의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은 일종의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단순히 가상 세계 자체인 건지, 특별히 어떤 은유로서 의도가 있다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다.

 

HWI: 이 작업을 처음에 구상했을 때가 코로나 터지고 주식이나 가상화폐 이런 유동적인 자산들의 가치가 막 뛰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코인에 투자하던 시기였다. 그런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호기심이 갔고, 우리가 그 전부터 관심 있었던 주제도 일종의 마이크로네이션 같은 것이었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서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새로운 기축통화를 만들어서 아예 다른 세계의 나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에서도 계속 정부와 국가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도망쳐서 도착한 곳이 영상에서 보셨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근데 사실 정말 허구적인 공간이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실제로 그들의 삶은 알 수 없지만, 정말 거부들은 남태평양의 섬 하나 사서 일종의 자기만의 국가를 만들어놓고 살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동떨어져 있는 어떤 지형을 이용해서 그곳에 자산을 은닉한다거나 이런 일들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현상과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고 완전히 가상 세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이다: 이건 좀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본인의 생각과 작업이 얼마만큼 가까운지 여쭤보고 싶다. 경계가 딱 그어지는 건 아니지만 심리적인 거리감이 궁금하다.

 

멜트미러: 나는 완전히 딱 붙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떤 경계를 나누는 걸 떠나서 나라는 사람이 하는 일 모두이기 때문에 굳이 구분을 짓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운이 좋게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많이 느낀다. 이런 점 때문에 평소에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김한주: 질문 자체가 막 스며들어지지 않는 느낌이 있다. 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을 너무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살면서 음악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느새 이게 내 생업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뿐이지, 그 외에 특별한 의식이 드는 게 없기는 하다.

 

HWI: 나는 처음에 간극이 조금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많이 다른 일을 꾸준히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십 대 후반쯤에 ‘빨리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은 좀 간극을 좁혀놓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까 멜트미러 작가님이 말씀하신 레퍼런스와의 싸움이 생각난다. 나도 클라이언트가 레퍼런스를 딱 주면서 “이것처럼 해 주세요”하는 말을 왕왕 듣게 된다. 그럴 때 일단 그대로 해드리는 편이긴 한데, 이제 나의 작업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런 일이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웃음)

 

 

HWI  〈mígōng〉 스틸컷

 

 

 

최이다: 나는 아무래도 시각예술 쪽에서 영화로 넘어오다 보니 생계를 위한 일을 따로 할 수밖에 없다. 합치는 게 최선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구분이 되는 편이고 생업을 할 때는 다른 페르소나를 얻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게 내 작업을 보호하기 위한 거리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리킴 작가와 나눈 적이 있다. 이 섹션을 촉발한 아주아주 작은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너와 나〉촬영 때 한번 숙소를 같이 쓰게 된 적이 있다. 다들 한 번씩 “어떻게 다들 영화를...” 혹은 “어쩌다 이 구렁텅이에 들어오셨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순간이 있다. 작업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도 되게 다양한 분이 있고, 그뿐만 아니라 촬영감독이 작가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고충을 겪으며 둘 다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이 영상업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고, 신기하게도 아리킴 작가와 대화할 때 고민이 되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울해지지 않았다. 반대로 대화가 힘이 나서 신기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좀 연결되는 질문으로 클라이언트가 어떤 요구를 했는데 자기만의 주장을 고수할 때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들 이걸 지킬 거야! 하는 게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본인이 한계를 듣는 상한선 혹은 하한선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다.

 

HWI: 최근에는 진짜 없었던 것 같다. 약간 고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 사람도 이유가 있겠지’라고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사실 클라이언트가 부탁한 일에 내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나는 에너지 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네 마음대로 해줄게. 퀄리티는 책임 못 진다….’ 이런 마음으로 일단 해드린다. 근데 좋아하시더라.

 

김한주: 요즘은 내가 클라이언트인 경우가 좀 많아졌다. (웃음) 멜트미러와의 작업이 자유로운 스탠스인 것처럼, 클라이언트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에는 주 수입원이 영상 음악이었다. 멜트미러와 같이한 광고나 패션 필름이 되게 많았는데 당시에는 클라이언트 쪽에서 제시하는 음악의 레퍼런스를 일단 순종적으로 따랐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내 색깔을 넣고 싶은 구석이 있으면 확실하게 넣었고, 운이 좋게도 그런 부분을 용인해 주는 클라이언트를 많이 만나왔던 것 같다.

 

HWI: 여기서 잠깐 궁금한 게, 한주 님의 클라이언트가 이다 님이었던 적도 있지 않나. 그때도 이런 상황이었는지.

 

김한주: 재작년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HWI가 소개를 해줘서 우리가 작업하게 되었던 것 같다. 최이다 감독님의 〈굿〉(2022)이라는 영화의 완전 음악감독은 아니고 메인테마 격인 곡들을 좀 써서 드렸다. 그때는 감독만 클라이언트인 느낌이 아니라 내가 쓴 곡을 연주해야 하는 밴드 역할의 배우들도 클라이언트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 손에 맞는 연주나 잘 부를 수 있는 멜로디를 써 줘야 하다 보니 니즈를 충족해야 하는 대상이 좀 많았다. 감독님은 “60년대 활동했던 밴드처럼 해 주세요” 하셔서 그렇게 써서 갔더니, 배우님은 “이거 70년대 같은 데요…” (일동 웃음) “저희는 60년대가 아니라 70년대를 원하는데요.” 하셔서 또 10년 뒤로 미뤄야 하고, 그랬더니 이제 누구는 또 “나는 다르게 하고 싶은데...” 막 이러길래 그냥…. 내 말 들어달라고! 좀 밀어붙였던 것 같다. (웃음) 아주 살짝. 대놓고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때 작업이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다. 방금 이야기한 밴드 멤버 역할의 배우들도 굉장히 유쾌한 사람들이어서 다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최이다: 그때 한주 님에게 정말 죄송했다. 너무 바빴다. 한주 님도 프로젝트를 여럿 하고 계실 때여서 되게 바쁘셨다. 나도 한두 시간씩 자거나 아예 못 자는 상태에서 항상 미팅이 있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배우들이 클라이언트처럼 작용했던 이유가 내가 음악적인 지식이 없다 보니 아무래도 곡을 직접 연주할 사람이 들었을 때 내가 모르는 부분을 발견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사이에서 조율하는 지휘자 역할에 가깝지, 이들이 먼저 소통하는 게 맞을 것 같고 내가 필요한 순간에만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일정도 잡기 힘들어서 첫 데모를 줌 미팅으로 나누기도 했지 않나. 우여곡절 끝에 녹음하고. 그때 한주 님 보면서 음악가들은 이렇게 작업한다고 느꼈고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들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나도 진짜 재미있게 작업했다.

 

멜트미러: 나도 영상작업 초기에는 굉장히 반발심이 컸던 것 같다. 고집이랄까. 어쨌거나 내 작업을 우선시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 지금은 어차피 내가 하면 나 같다고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방향을 더 발전시키는 쪽으로 수용하며 작업하고 있다. 〈NO PAIN〉때 특히 그랬다. 최종마스터 본이 나오기 전에 데모 버전을 편집하는데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파트가 있었다. 그 부분이 원래는 조금 부드러운 상승 곡선을 타고 있었는데, 거의 파이널 때 엄청 파워가 다 상승해 버렸다. 편집의 흐름이랑 안 맞게 되어 버린 거다. 웅희 님도 그렇고 다 파워파워! 외치니까 그냥 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최대한 힘껏 밀어붙여 버렸다. 그 순간 절묘하게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밸런스가 딱 맞게 되는 걸 보면서, 일단 내가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고 최대한 거기서 해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걸 계기로 지금까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isvn 〈[신규]생명안전지도〉 스틸컷

 

 

최이다: 아리킴 작가님의 답변도 “고수하는 것 같다. 나는 약간 반항심이 있는 것 같다. 왜 반항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떨 때는 그냥 그걸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나도 고수하는 편인데 친구의 작업에 참여할 때도 그러는 것 같다.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고 하면 되게 꼼꼼히 봐주려고 노력한다. 고쳤으면 좋겠는 부분도 더 열심히 체크해 주는 것 같다. 이걸 싫어하는 친구도 많다. 술자리에서 나한테 왜 그랬냐고 우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이후에 고치려고 했지만…. 잘 안 고쳐진다. (웃음) 나는 어떻게든 친구를 도우려는 거였다. 고수를 안 할 때도 있다. 아까 생업 할 때 페르소나를 약간 놓는다고 말했는데 HWI와 비슷하다. 결과물의 책임은 못 지겠지만, 그게 마음이 편하시다면야 오케이! 되게 잘해드린다. 근데 만약 친구의 작업인데 내가 좀 동의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고 하면 정말 끝까지 싸운다. 나는 이게 소모적이기보다 오히려 건설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야기 안 하고 좋게 좋게 넘어갈 수 있겠지만 사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친구를 위한 게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쿠션어를 써가면서 잘 들어주고 그다음에 슬쩍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편이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먹고사니까. (웃음) 다음 질문으로 만약 생업과 창작업이 구분된다면 (혹은 구분되지 않더라도) 어떤 게 추동이 되어서 창작하는지 여쭤보고 싶다.

 

멜트미러: 솔직히 나는 작업을 계속 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 같다. 이게 현실적인 고충이나 생업에 관한 고민들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고 그냥 작업을 안 하면 좀 불안하다. 사실 뮤직비디오 작업을 끝내고 쉴 때는 또 다른 작업을 한다. 누가 시키거나 요청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매체 작업을 진행해야 쉬는 느낌이 난다. 물론 십 년 넘게 영상작업을 하고 다른 작업을 이어오기는 했지만, 그 근간에 존재하는 마음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특성을 담고 있는 하나의 덩어리를 키워오면서 필요한 것을 빼내며 작업했는데 그 덩어리의 모양이 내가 원하는 형태가 안 되면 불안해진다. 뮤직비디오 작업은 어떠한 측면에서 덩어리를 좀 키웠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른 부분들은 완전히 다른 매체 작업을 통해서 약간 비스듬하게 맞춰놓는다. 계속 그 원동력으로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김한주: 멜트미러와 이렇게 오랫동안 협업할 수 있었던 게 사실 나도 똑같아서다. 작업을 안 하면 거의 삶의 의미가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생계와 창작업에 대한 구분감도 없는 것 같다.

 

HWI: 나도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한다. (웃음) 근데 조금 다르다고 느낀 지점이 나는 작업 안 하면 편하다. 근데 이제 ‘너무 편하다…. 근데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면서 90살이 된 나를 생각한다. ‘너 지금부터 작업 하나도 안 하고, 아무렇게나 살아서 봐봐. 지금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놓여있는 시간이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작업하는 마음이 조금 있는 것 같다.

 

최이다: 나도 숨 쉬듯이 작업을 해야만 좀 덜 불안한 사람이다. 이게 다 소용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작업을 해야만 한다. 알 수 없지만, 못할 수가 없는 게 작업인 것 같다. 중간에 허무감이 좀 밀려들더라도 ‘그래, 다 소용없고 쓸데없는데 그래도 예쁘지 않니? 조금 더 반짝거리게 해볼까!’ 이렇게 스스로를 어떻게든 부팅을 시킨다. 이런 자문자답을 계속하면서 작업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향후에 활동 잡힌 게 있는지. 간단히 계획을 밝히면서 끝내보려 한다.

 

HWI: 내년에 솔로 앨범을 발매하려고 준비 중이다. 3월에 이것의 예고편쯤 되는 걸 전시회에서 선보이게 될 것 같다. 여기 많은 분이 모이셨으니까, 기운을 받아서 ‘내년에 앨범이 제때 나올 수 있게 파이팅해라’라고 속으로 한 번씩 생각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일동 박수)

 

김한주: 데모 몇 곡 들어봤는데 진짜 너무 좋아서 내가 어떻게든 참여할 수 없냐고 계속 조르고 있다.

 

HWI: 그래서 피처링을 한주 님으로 찜꽁해놓은 상태인데….

 

김한주: 드디어 여기서 허락을 받았다. (일동 웃음)

 

HWI: 무를 수 없다. (웃음)

 

김한주: 나도 사실 솔로 앨범 계획을 지금 짜고 있다. 여기서 처음 이야기하는 거다.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HWI를 보며) 그때 또 역으로 도움받을 수도 있고, (멜트미러를 보며) 내 솔로 프로젝트에도 같이해주시기로 했고. 지금부터. (웃음) 여러 가지 작업을 그동안 그려왔던 것처럼 계속 다양한 프로젝트와 트립들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며칠 안 남았는데 실리카겔 정규 2집이 곧 발매된다. 멜트미러가 연출하고 아리킴이 미술감독으로 참여했고, HWI가 출연한다. 〈APEX〉 뮤직비디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멜트미러: 일단 〈APEX〉 뮤직비디오 빨리 공개하고 싶다. 이게 나한테 제일 급선무다. 살짝 부연 설명을 하자면 오늘 보신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만든 모든 뮤직비디오가 다 같이 한 번 더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될 것 같다.

 

김한주: 실리카겔 최초의 멀티버스 비디오가 될 것 같다. (웃음)

 

멜트미러: 정말 역대 최고로 복잡한 마음과 최대치의 마음으로 작업했다 보니까 진짜 소진되어 버렸다. 좋은 의미에서. 당분간도 비디오 작업을 못 할 것 같다는 정도의 마음이 되어버린 거다. 그래서 일단 지금으로서는 빠르게 끝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향후 계획은 미뤄왔던 게임 개발을 빨리 진행해서 내년 초에는 isvn의 이름으로 조금 더 유의미하고 실제로 여러분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가치가 있는 작업을 내놓고 싶다.

 

최이다: 내년부터는 아직 잡힌 게 없다. 시각예술이든 영화든 가리지 않고 해왔던 것처럼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영화를 하면서 처음으로 권력욕이나 성취욕 같은 게 생겼다. 얼른 짱 세져서 (웃음) 선한 사람들한테 돈이 가고, 그런 영향력 있는 좋은 일자리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빨리 갑부가 되어서 좋은 클라이언트가 되고 싶다. 아무튼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극장은 굉장히 커머셜한 공간이다. 모두 자주 찾아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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