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 한줄 관람평
김현준 | 귀엽고 사랑스런 키치가 무색할 정도로 냉철하고 대범한 주제의식
오윤주 |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남성들의 세계에 거대한 싱크홀 내기!
정성혜 | 온통 의심스러운 영화 같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단단한 믿음
송은지 | 한 시간 반 동안 변명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영화는 끝이 나고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다
김정은 |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구성하는 독창적인 감각으로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과 선택에 질문을 던지다
김윤정 | 의심과 불안을 뒤엎고 빠져나온 세계는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메기〉 리뷰: 〈메기〉의 퍼니게임; "그 누가 사진을 찍었을까?"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현준 님의 글입니다.
영화 〈메기〉는 마치 어린 아이가 다 큰 어른 관객들에게 건네는 짓궂은 농담을 연상시킨다.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처럼 아이는 외형과 달리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의 능구렁이 같은 속내가 공존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귀엽고 사랑스런 외피에 현혹당한 관객은 자신을 진퇴양난으로 몰고 올 게임 속으로 끌려가기 시작한다. 영화 〈메기〉는 얼핏 동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듯하면서도, 그 이면엔 냉소를 지으며 게임 한 판을 제안하는 작품이다.
‘윤영’(이주영)은 자신이 근무 중인 마리아사랑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윤영은 사진의 당사자가 본인과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이라고 단정지으며 사직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윤영은 사진의 당사자로 자신을 지목한 부원장 ‘경진’(문소리)의 의심에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품에 넣은 사직서를 꺼내지 않은 채 다음날 다시 병원에 출근한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물들의 믿음과 의심은 종국에 이르러 거대한 심연과 함께 관객의 마음 속에 커다란 물음표 하나를 던진다.
국가인권위원회의 14번째 영화 프로젝트이자,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영화 〈메기〉는 관객의 시선을 자극하는 키치의 향연들로 가득하지만, 그 이면엔 믿음과 의심을 동일선상에 내세운 대범한 주제의식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간 단편영화들을 통해서 엉뚱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상상력을 표출해온 이옥섭 감독은 이전과 같은 활력 넘치는 장면 연출을 고수하면서도 현실과 직결된 일련의 사회주제들을 극의 요소로 활용함으로써 가벼움과 진중함을 넘나드는 예측 불허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위 말해 ‘단짠’이 오가는 전개 방식은 대범하면서도 도발적인 주제의식과 결합하며 정체를 쉬이 확인 할 길이 없는 작품 하나를 탄생시킨다. 비유를 들자면, 영화 〈메기〉는 웨스 앤더슨의 외피를 가장한 채 미카엘 하네케의 냉철함을 상기시키며 예기치 못한 순간 관객에게 죽비 한 방을 날리는 작품이다.
영화의 미장센은 감독의 장기이자 트레이드 마크인 재기 넘치는 상상력을 실재화한 듯 하다. 실제로 도심지로부터 동떨어진 병원 내 분위기를 미장센에 녹여냈다는 이옥섭 감독의 이야기처럼, 영화는 2019년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품들을 대놓고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병원의 공간성을 차용한 해골부터, 요즘 시대에 마주하기 힘든 간호사 유니폼은 현실과 뒤떨어진 분위기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각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영화의 색감 또한 개성 넘치는 활력을 제공하는데 한몫한다. 자칫 잘못하면 유치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는 미장센은 시나리오와 시너지를 이루면서 진중하고 서글픈 감수성이 주를 이루는 한국영화계에서 쉽게 경험하기 힘든 독특한 감성을 자아낸다. 여기에 감독의 상상력을 의인화한 듯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관객을 매료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면서도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는 갈등구조를 형상화한다.
영화는 믿음과 의심을 대조하면서도 서로가 사실상 한 부모 자식이라는 대범한 주제의식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드러낸다. 믿음의 가치를 설파하는 윤영과 “믿을 놈만 믿는다”는 경진의 대립은 두 세계관을 상징한다. 허나 영화는 각자의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나란히 배열하며 믿음과 의심, 그 어떤 가치도 절대성을 내포하지 않는다는 현실론을 설파한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딱 자를 수 없는 개념의 본질을 건드리는 대목이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곧 다른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믿음과 의심을 검과 방패마냥 이용한다. 경진은 박복한 삶이 안겨준 삶의 공식을 지향점으로 내세우며 직원들을 의심한다. 성원은 자신의 커플링을 동료 직원이 절도했다는 자신의 음모론을 정립함으로써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민다. 그리고 윤영은 누군가의 증언을 믿기 시작하면서 1%의 의심이 99%의 믿음을 순식간에 잠식하는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믿음과 의심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마냥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국 하나로 포개지고 마는 일원론적인 것임을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한다. 영화가 툭 던진 사소한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 축적되면서 인물이 발 딛고 선 지상을 뒤흔들 만큼 거대한 파국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예측 불허한 사태를 주동한 어느 얄궂은 존재에 관해서 까맣게 잊고 만다.
영화를 본 누구나 한 번쯤은 제기할 법하면서도 그 누구도 미처 생각 못한 질문. “누가 과연 사진을 찍었는가?” 형형색색의 미장센에 현혹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주는 충격에 압도된 나머지 관객은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주범의 정체에 관해 관심을 뚝 끊고야 만다. 사실상 감독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이 흑막은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은 음지 한 켠에 숨어서 인물의 신념을 뒤흔들 작당을 모색한다. 믿거나 의심하거나. 결국 거기서 거기인 행위에 기반한 이 농간의 주동자는 의도치 않게 참여한 게임 참가자들을 출구 없는 미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나갈 길이 없는 미로 중심엔 그들이 미처 인지 못한 어떤 진실의 심연이 자리잡고 있다. 니체의 유명한 말처럼 심연은 바라보는 누군가를 역으로 바라보며 이분법적 구조로 나뉘어진 믿음과 의심체계를 하나로 엮으며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물론 심연을 향한 인물과 관객의 시선을 똑같이 맞받아치는 상대가 이 모든 사건을 주도한 그 누군가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추론이다.
이 모든 사태를 유발한 존재와 대척점에 놓인 또 다른 존재가 바로 영화의 제목인 ‘메기’다. 인물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견지한 메기는 화려한 외피에 가려진 황량한 세계관을 온기로 채워준다. 이는 믿음과 의심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와 함께 작품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대비이자 메기가 이 사건의 주동자에 맞서는 대등한 또 다른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보기만 해도 편해진다는 윤영의 말처럼 메기는 인간 외의 존재로서 인간을 향한 객관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시선을 시종 견지하고 폭 넓은 사유를 드러내며 눈앞에 들이닥친 문제로 어찌할 줄 모르는 인물들에게 꼭 필요한 혜안을 제시한다. 물론 메기의 말은 아무도 듣지 못한다. 메기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몸을 수면위로 상승시켜 다가올 재난을 예보하는 것이 전부다.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지 못한 이 무기력한 몸짓은 감독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농간으로부터 끝내 보호 받지 못할 인물들의 말로를 방증하며 영화의 서늘한 기운을 증폭시킨다. 영화 〈메기〉를 마냥 사랑스런 작품으로 바라볼 수 없음은 이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첨예하게 대립한 수많은 내적 갈등이 “과연 무엇을 위해서였는가?”라는 허무를 짙게 드러낸다. 윤영은 성원의 전 여자친구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간의 믿음을 뒤로한 선택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윤영의 음모론에 못을 박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기점으로 그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냉기와 그늘을 마음껏 뿜어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별을 고하는 그들. 허나 윤영은 자신이 구덩이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의심과 함께 성원과 재회한다. 경험이 담긴 성원의 사과(“너 혼자 착각하고 부풀리고 있다고 생각해”)에 심기가 누그러진 그녀는 묻는다. 지체 없이 그는 답한다. 그 순간 잠자코 있던 메기의 몸짓은 재앙과 파국의 현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인간의 무기력함을 대변한다. 그렇게 윤영을 지배한 모든 이성체계의 붕괴는 곧 현실로 실현된다. 눈앞에 도래한 파국의 현장 앞에서 망연자실한 윤영의 눈빛은 의지와 신념이 박살 날 수밖에 없는 잔혹한 게임의 피해자들의 눈빛 같다. 게임 한 판을 제안한 감독은 그렇게 농담이 현실로 이뤄지는 기이한 운명론을 완성시킨다.
만약 영화 〈메기〉가 잔혹우화라고 말할 수 있다면, 믿음과 의심에 기반한 행위의 결과가 양 측 모두에게 득 될게 없는 현실의 제로섬 게임을 상기시킨다는 점이 그러하다. 영화는 웃긴 구석이 없는 이 게임을 우화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며 삶의 쓰린 구석을 내세운다. 그리고 마치 인물이 바라보는 심연이 거꾸로 그 인물을 바라보듯, 영화는 신념의 주체라 생각했던 우리가 반대로 신념에 압도된 채 시종 휩쓸린 객체였음을 알게 된다. 자칫 황량하고 황망한 분위기로 일관될 수 있지만 영화는 이를 상충시키는 일련의 장치들을 통해 능수능란하게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다. 허나 영화적 장치에 매료된 채 숨겨진 게임의 법칙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아직까지도 영화의 짓궂은 농담에 정신을 못 차린 셈이다. 그런 관객들을 위해 친히 감독은 친히 경진의 입을 빌려 격언 하나를 머릿속에 새겨준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 나오는 일이다” 당신은 과연 빠져 나와야 할 사람인가? 한번 의심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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