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후반부 줄거리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인터뷰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2년의 시간을 지나 영화 〈아워 바디〉가 개봉했다. 영화는 평범한 30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불안과 좌절을 마주하는지 담담히 추적한다. 달리기를 통해 삶이 전혀 다르게 바뀔 수는 없지만, 주인공 ‘자영’은 적어도 자기 몸만큼은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30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향한 깊은 탐구가 돋보이는 영화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을 만났다.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영화제에서 좋은 평을 받고 마침내 영화가 개봉하게 되었는데, 그 소감이 어떠신가요?
사실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제에 가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만들 때 많이 힘들기도 했고, 혼자 헤매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개봉 같은 건 정말 먼 일 같았거든요. 영화제에 가면서 스탭들에게도 좋은 소식을 줄 수 있어 기뻤어요. 2년이 지나 개봉을 하게 된 지금은 아직 실감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가벼운 질문인데, 왜 제목을 외국어인 〈아워 바디〉로 지으셨나요?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바디’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쓰잖아요. 뷰티에 관한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무슨 바디’ 이런 말이 많이 들어가고요. 몸을 가꾸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그냥 ‘몸’이라고 말했을 때와 ‘바디’라고 말했을 때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 영화는 자영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자영과 자영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들 모두가 각자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남녀노소 모두가 몸에 대한 고민에는 공감하기에 ‘아워 바디’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사회학을 전공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영화와는 좀 멀어 보이는 전공이에요. 어떻게 영화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시작하게 되셨나요?
확신은 아직도 없어요. 확신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20대 때는 영화감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자영이처럼 비정규직으로 오래 살면서 뚜렷하게 가진 것이 없다 보니 오히려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에 도전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잃을 게 없으니 실패해도 상관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냥 지금 닥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회학을 공부하신 만큼, 전작 〈장례난민〉(2017)이나 이번 〈아워 바디〉 모두 사회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단 〈장례난민〉 같은 경우는 모티브가 되었던 명확한 기사가 있었어요. 일본에서 화장터가 모자라서 유족들이 관을 가지고 며칠씩 있어야 한다는 기사를 보고 출발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저는 정작 〈장례난민〉은 가족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오히려 〈아워 바디〉가 사회적인 의미가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제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 이야기가 사회랑 연관이 되어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영화 속에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들었는데, 감독님도 자영처럼 오랫동안 취업 준비를 하며 고배를 마시거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시기가 있으셨나요?
그렇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방송국에 비정규직으로 20대 후반까지 있었어요. 방송국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고 비정규직 생활을 오래 했죠.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영화를 좋아했고, 시나리오 쓰는 법을 취미로 배웠는데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렇게 ‘여성의 몸’ 자체에 주목한 영화는 흔치 않아 더 반가운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는 여성의 몸에 어떠한 관심을 가지셨고, 왜 주목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운동을 해보니까 이게 정말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운동하는 여성들이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순간을 수없이 많이 이겨낸 거잖아요. 그들이 굉장히 강인해 보였고 동경의 마음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이야기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길에서 운동하면서 현주 같은 분들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영화로 나타내보고 싶었습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30대 여성에 주목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30대 여성을 다룸으로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자영과 비슷한 나이였어요. 그때는 서른에 접어들고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서른 한살이면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20대를 막 지나왔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쯤이면 지나온 시간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서른 한살이라는 나이가 객관적으로 많은 나이가 아니죠. 그런데 특히 여자들은 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느끼는 시점인 것 같아요. 20대가 다 끝났고, 서른 살까지는 그래도 아직 괜찮다고 할 수 있는데, 서른 한살 부터는 본격적인 30대니까 부담스럽고 전혀 다른 스테이지로 옮겨 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사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에요. 그 순간의 감각이 저한테는 중요했고, 그래서 자영 역시 그 또래의 나이였어요.
‘몸’이라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을 다루는 만큼 촬영할 때 신중하게 임하셨을 것 같은데, 촬영하면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 궁금해요.
많이 고민했죠. 근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대상화를 한다는 것은 영화적인 문맥에서 갈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맥락상 그 이미지가 쓰인 목적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 이미지가 대상화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는 그 지점에서 오는 것 같아요. 촬영 당시 촬영감독과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자영이 느끼는 생생한 감정이 드러날 수 있게 몸을 찍는 것이었어요. 현주의 몸, 혹은 자기 몸을 봤을 때 드는 감정들. 그런 감정이 느껴지도록 구체적으로 찍고 싶었어요. 몸의 근육, 피부의 질감 같은 것이 그대로, 세세히 보이도록, 자기 몸을 만질 때의 그 촉감이 느껴지도록. 그렇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아워 바디〉는 독특하게 달리기를 주된 소재로 하는 영화인데, 다른 운동과는 다른 달리기만의 특징이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제일 좋은 건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운동화만 있으면 돈이 들지도 않고, 집 앞에서 뛰어도 되고요. 시작하기에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사실 달리기는 어떻게 보면 되게 지루한 운동일 수 있거든요. 스스로가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쾌감을 맛보기가 어려운데, 한 단계를 넘어섰을 때는 굉장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직접 달리기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도심을 달리며 특별히 느낀 바가 있으셨나요? 영화 속 자영처럼 감독님에게도 달리기를 통한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20대에는 사실 운동을 잘 안했어요. 건강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20대 후반, 30대가 되면서는 체력도 떨어지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오더라구요. 그때까지는 운동을 전혀 안 해봤으니 운동의 즐거움 자체를 아예 몰랐죠.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운동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학창시절처럼 강제로 누군가가 시켜서 달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달리기를 한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운동이라는 것이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할 수 있는 행위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어요. 또 달리는 동안에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게 되어서 좋더라고요. 몸을 써서 운동한다는 게 되게 힘든 일이니까 그 순간에는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달리는 동안에는 내 몸에만 신경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감독님도 그럼 자영처럼 무작정 야외에서 뛰기 시작하셨던 건가요?
처음에는 헬스장 런닝머신 위에서 뛰었죠. 그러다 밖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초반에는 아예 달릴 줄 몰랐으니까 런닝머신 위에서 훈련을 했고, 런닝머신을 20분 정도 뛸 수 있게 되니까 그때 좀 자신감이 붙더라구요.
이 영화는 8년간 고시에 매달리지만 결국 실패하고 취업난을 겪는 자영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잖아요. 청년 세대의 사회적인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려 여성의 몸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선택이 꽤 흥미로운데, 감독님은 그 사이의 연결점을 어떻게 찾고 계시나요?
연결하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저도 심적으로 괴롭지 않았으면 달리기를 하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그때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했던 것 같아요. 뚜렷한 직업도 없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성취감이 없었거든요. 나도 뭔가 해낸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데 그걸 느낄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가 개인의 문제와 연결이 된 것 같습니다.
운동을 절박한 상황에 몰렸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일처럼 보신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동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지금은 운동 자체가 좋거든요. 근데 처음에 시작할 때는 운동이 주는 해방감이 좋았어요.
영화에서 자영이 처음에는 현주를 동경하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현주 그 자체가 되는 것 같았어요. 현주의 욕망을 자기가 대신 실현하려고 하고, 옷 입는 것도 비슷해지고요. 뒤로 가면서 저는 두 배우의 얼굴이 상당히 닮아 보이기도 했어요.
영화적으로 굳이 닮게 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현주가 겪었던 단계를 자영이 밟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주는 자영보다 먼저 자영이 지나가야 할 단계들을 거친 사람인 거죠. 자영도 똑같이 그런 일을 겪을 테지만, 현주와는 다르게 살 수 있으니까요.
현주의 사고는 자살과 타살 그 사이 어디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영의 시선에서 현주는 아주 강인하고 멋있게 보였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기도 해요.
현주는 죽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주는 자영보다 먼저 현실의 벽을 느낀 사람이잖아요. 작가가 되는 것도 어렵고, 운동을 통해 얻었던 성취감도 어느 순간 허무해지고, 그런 걸로 더 이상 만족할 수 없고요. 그렇다면 내가 원할 때 내 삶을 끝내는 것도 하나의 선택으로 여기는 사람인 거죠. 단순하게 건강해 보이는 겉모습만이 다가 아닌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현주가 자영에게 “내 소설 한번 읽어볼래?”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현주로서는 굉장히 절박한 질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차가 오는데도 자영을 빤히 응시하는 장면도 인상 깊어요. 그 순간 현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현주는 죽음까지도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래도 현주에게 자영은 자기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대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소설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현주가 죽음을 결심한 순간은 이 영화에 등장하기 이전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는 건 끝이 없구나.’ 이런 생각을 늘 해오던 사람일 것 같아요. 자영이 부르니까 현주가 멈춰서 돌아보긴 했지만, 의도를 해서 멈추었다기 보단 단순하게 뒤에서 불렀으니까 돌아본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의식적인 것일 수도 있고요. 마음 한 켠에는 자영에게 소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 순간에도 비슷한 마음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아워 바디〉는 단순히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자, 내 몸을 돌보자, 이런 메세지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현주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어요. 자영이 차근차근 변해간다면, 현주는 이미 자기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그렇게 공허하게 지냈다는 면에서 굉장히 미스터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물을 만들 때는 당연히 전사를 다 생각하지만, 현주가 미스테리하게 보이는 것은 영화가 자영의 시점에서만 전개되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영화가 자영 시점의 영화라고 생각해서 ‘자영이 아는 현주’에 대한 정보만 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자영은 그냥 건강해 보이는 현주의 외모만 보고 빠져든 것이지, 현주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현주의 캐릭터는 자영의 시선에서 알 수 있는 정보만 전달되었어요.
자영의 동생인 화영도 되게 재미있는 인물이에요. 동생에게는 자영이 어떤 존재일지가 궁금해요. 자영이 현주를 동경했던 것처럼 동생도 언니를 동경했을까요?
동생 입장에서는 언니가 운동을 하면서 달라지는 것이 아주 신기했을 것 같아요. 자기가 알던 언니는 게으르고, 매일 늦은 시간까지 자고 있고, 엄마의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달라지잖아요. 화영이는 아직 어리니까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했을 것 같아요. 언니를 다시 봤을 것 같고요. 아무래도 자매 지간이니까 화영에게 자극이 됐을 수도 있고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아무런 꿈도 욕망도 없이 살아가던 자영이 현주를 만나고 어느 순간 현주를 쫓아가다가 마지막에는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을 멈추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돼요. 그리고 이전에 자영이 꿈꿨듯 남자와 함께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아니에요. 현주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암시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고 만드셨는지,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결말을 쓰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떻게 하는 게 좋고, 어떻게 하는 건 나쁘다는 식으로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회적인 시선에 맞춰서 자기 몸을 가꾸는 게 나쁘다고 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게 나쁘다고 말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었어요. 다만 우리 사회에 그런 시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자영이 어떤 선택을 하면서 끝나야 영화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자영의 삶이 엄청나게 바뀌지는 않았어도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여태까진 자신을 방치하고 남들이 하라는 것, 고시에 붙는다든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다든지, 그런 부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았다면, 적어도 지금은 자기 몸을 자기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람이 되었잖아요. 그게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했거든요. 누군가 옆에 있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자영이 주체성을 회복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달리기’에는 운동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사회를 비유하는 데에도 많이 쓰여요. 우리 사회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야만 하는 사회잖아요. 자영이 인턴에 붙었다고 엄마도 계속해서 다음 스텝을 권하는데요. 남들보다 더 빨리, 쉬지 않고 계속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달리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무언가를 선택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20대 때는 내가 무언가를 시도할 때 ‘이게 안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방송국에 못 들어가면 어떡하지? 4대 보험이 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면 어떡하지? 결혼을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니까, 이제 와서 보니 그런 것들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영의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고시를 패스한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모든 선택은 좋은 면도 있고 안 좋은 면도 있는 거잖아요. 그 때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스펙’에만 목숨을 걸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감독님의 계획이 궁금해요. 무엇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나봐요. 사실 〈아워 바디〉를 찍은 지 2년이 지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아쉬운 점들이 보여요. 운동이나 몸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요. 제가 요즘 수영을 하는데, 반 농담으로 다음에는 수영 영화를 하면 어떨까 묻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웃더라고요.(웃음) 철인 3종 경기 시리즈냐, 시리즈의 마지막은 자전거 영화냐, 하면서요.
저도 요즘 수영을 배워요.(웃음) 그럼 수영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수영은 진짜 매력적인 운동이에요. 달리기는 밖에서 땀을 흘리면서 하는 운동인데 수영은 물속에서 하는 거잖아요. 제게는 수영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몸을 쓰다 보면, 내가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들을 몸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돼요. 그래서 다른 일들도 이렇게 연습한 대로 되는 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가 수영을 못할 때엔 이걸 잘하게 될 거라는 상상조차 안 갔는데, 어느 날 안 되던 게 풀리는 느낌이 되게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잘 쓰게 되나 싶어요.(웃음)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아워 바디〉의 시놉시스를 보고 관객 분들께서 기대하시는 그림이 있을 것 같아요. 달리기를 통해 삶이 변화되고, 모든 게 확 해소될 것 같은 그런 기대요. 하지만 관객 분들이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영화예요. 그것에 대해서 너무 불편해하시지 않고 보아주신다면 좋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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