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은희들에게 〈벌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9월 8일(일) 오후 6시상영 후
참석 김보라 감독|배우 박지후, 김새벽, 박서윤, 박수연
진행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원 님의 글입니다.
세계 여러 영화제의 호평을 받은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벌새〉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를 중심으로, 당시를 살아갔던 여중생 은희의 성장을 담은 영화입니다.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시작했지만 왠지 모를 편안함이 녹아든 은희의 표정처럼, 영화는 평범한 14세 소녀가 마주한 거대한 세계를 차근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9월 8일 진행된 〈벌새〉의 인디토크에는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와 김보라 감독, 박지후 배우(은희 역), 김새벽 배우(영지 역), 박서윤 배우(지숙 역), 박수연 배우(수희 역)가 함께했습니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진행을 맡은 이은선입니다. 인디스페이스가 꽉 찬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제 몸으로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늘의 게스트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박서윤 배우(이하 박서윤): 안녕하세요. 〈벌새〉에서 은희 친구 지숙 역을 맡은 박서윤입니다. 일요일이 되게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소란스러운 날이기 때문에 〈벌새〉라는 영화가 잘 어울리는 날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일요일에 영화를 보셔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오늘 많은 걸 얻어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지후 배우(이하 박지후): 안녕하세요. 은희를 연기한 박지후입니다. 항상 〈벌새〉를 보고 나면 제가 오히려 따뜻한 힘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오늘 관객분들과 소통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 좋은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김새벽 배우(이하 김새벽): 안녕하세요. 영지를 연기한 김새벽입니다. 제가 인디스페이스에서 인디토크를 몇 번 해봤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관객분들을 만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재밌는 이야기 같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박수연 배우(이하 박수연): 안녕하세요. 저는 은희 언니 수희 역을 맡은 박수연입니다. 저는 영화 개봉 후 처음으로 같이 GV도 다니고 무대인사도 했는데요. 관객분들이 바라봐주시는 눈빛에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좋은 시간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보라 감독(이하 김보라): 안녕하세요. 저는 〈벌새〉 연출 김보라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인디스페이스가 꽉 찬 것을 보니 말로 하기 힘든 벅참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오늘은 배우분들이 많이 오셔서 너무 든든하고, 많은 영화들이 있는데 주말에 시간 내어 〈벌새〉를 보러 와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은선: 이 영화가 왜 이렇게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지, 어떤 의미인지, 각자 마음속에 영화에 대한 감상평들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벌새〉에 가장 많이 쏟아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하기도 한 말은 이것인 것 같아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서사로서 개인과 시대를 이야기하는 영화. 삶에는 나쁜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려주는 영화가 바로 〈벌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독님이나 배우님들도 〈벌새〉를 바라본 각자의 감상을 가지고 계실 텐데, 오늘은 새로운 분들의 감상평도 들으면 좋겠어요. 박서윤, 박수연 배우님께 마이크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서윤, 수연 배우님은 〈벌새〉가 어떻게 마음 안에 남아있나요?
박서윤: 지숙이라는 역할이 영화상 크게 영향을 주는 역할은 아니지만,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영화 속의 모든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사연이 있고 각기 다른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벌새〉는 지숙이라는 인물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을 기울였던 영화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지숙이가 약간 찌질해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웃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고, 〈벌새〉가 많은 분들께 울림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수연: 저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수희는 은희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언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을 제 나름대로 연기를 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저 또한 가족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후 영화를 보니 여러 가지 관계들이나 은희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고 소설을 하나 읽은 느낌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가족들을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제가 사랑하는 주변 관계들을 한 번 돌이켜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영화인 것 같아요.
이은선: 사실 세상에 좋은 이야기가 많죠. 그렇지만 우리는 ‘서사’ 앞에 ‘여성’이라는 말을 어쩔 수 없이 붙이게 되는 시기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벌새〉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세밀하게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여성서사라는 점에서도 사실 배우들에게 반가운 시나리오 작품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김새벽 배우님은 어떠셨는지 여쭤볼게요.
김새벽: 처음에 시나리오 받았을 때 너무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보는 것 자체가 버거울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벌새〉 시나리오를 봤어요. 그리고 보자마자 해야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누군가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해.’ 라는 마음으로 만든 시나리오는 정말 귀하고 드물어요. 〈벌새〉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고요. 그리고 그 안에서 그려지는 모든 여성 인물들이 너무 좋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분량은 다를 수 있지만, 애정 없이 만든 캐릭터는 없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도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감독님이 모두 사랑으로 빚어낸 인물들이기 때문에 마냥 좋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은선: 박지후 배우님도 〈벌새〉가 참 반가웠을 것 같은 게, 여성 인물에 나이 조건이 붙으면 더 쉽게 스테레오 타입이 돼요. 심지어 이 영화의 은희는 중학생이고. 그러면 여자 중학생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그대로 캐릭터에 수용되는 경우가 많죠. 아마도 그런 시나리오를 그동안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벌새〉를 만났을 때 어땠나요?
박지후: 〈벌새〉에서 은희는 마냥 누구의 아역이 아니라 주도하는 면이 있잖아요.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먼저 지환이한테 키스하자고 말할 수 있는 당찬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끌렸던 것 같아요. 다른 캐릭터들도 각자 사연이 있고, 조연이 아니라 모두 다 주목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은선: 두 분이 이야기한 것처럼 〈벌새〉에는 한 명 한 명의 애정을 담은 캐릭터들이 등장을 하잖아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은희의 서사에 마음을 이입해서 이 영화를 따라가게 돼요. 그렇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에게 마음을 주게 된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랬어요. 은희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어떤 순간에는 나는 누굴 때린 적은 없지만 은희의 오빠 같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어떤 순간에는 지숙이 같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영지 선생님처럼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아직 무리인 것 같고.(웃음) 그래도 그런 사람이었던 적이 어쩌면 한 번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되고요. 이 정도의 애정으로 캐릭터들을 빚었으면 분명히 영화에는 등장하지 못한 다른 캐릭터들이 더 있었을 것 같아요.
김보라: 있었어요. 근데 빼기 잘한 캐릭터였어요. 은희를 조금 괴롭히는 그런 캐릭터들이었어요. 아주 초고에만 있었어요. 근데 제 친구가 초고를 보고 ‘보라야, 우리 은희를 지켜주자.’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말이 좋았고, 동의했고. 또 캐릭터들이 너무 많으니까 ‘대환장 파티’인 거예요.(웃음) 그래서 쳐낸 캐릭터들이 있었죠.
이은선: 사실 영화 속에서 가족이 식탁에 앉은 모습만 보여줘도 가족의 서열이 보여요. 이 장면만큼은 저도 기능적이라 부르고 싶은데, 가족의 분위기를 한 컷으로 모두 보여주는 게 식탁에 앉은 장면이거든요. 이 가족이 딱히 애틋하진 않잖아요. 그런데도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이 몇 번이나 등장하고, 기능적으로 밥 먹는 장면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식탁 장면을 실제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 싶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김보라: 여러 가지 기능이 좀 있었는데, 우선 가족을 다 모이게 하는 게 필요했어요. 따로따로 이들을 보여주기엔 너무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다섯 명의 다이나믹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식사시간이었어요. 그런 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다 같이 있는 걸 보여줌으로써 각각의 관계망이나 리액션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 느꼈어요. 은희를 표현하는 것도 은희의 대사나 행동만이 아니라 은희가 아빠나 엄마에게 어떻게 대우받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오빠나 언니가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은희라는 캐릭터를 더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이 영화에서는 식사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심리적인 허기와도 관련이 되어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은희가 원초적으로 무언가를 충족하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었어요. 영화가 너무 차갑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서 가족의 화목한 장면을 보여줄까 고민했어요. 그 시대 유행했던 부루마블 게임을 같이 한다던가.(웃음) 이건 좀 톤이 안 맞는 것 같으니 놀이공원을 같이 가는 모습도 상상을 해봤는데 현실적으로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밥 먹는 모습은 아무 말 없어도 어떤 허기를 채워주는 것 같아요. 아주 따뜻하게. 이 가족들이 말은 안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공동체성은 있다는 약간의 희망 같은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이은선: 김새벽 배우가 연기한 영지 선생님 이야기를 잠깐 해보고 싶어요. 이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영지 선생님은 딱히 친절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서 초월한 이미지들이 있는 것 같아요. 김새벽 배우가 말하는 영지 선생님에 대한 단어는 어떤 것들인가요?
김새벽: 제일 많이 생각했던 건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어요. 대사에도 나오지만, 함부로 동정하지 않고 은희를 그저 여자 중학생 아이로 보지 않고, 나와 동등한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대하려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저도 몇몇 분들이 영지를 초월적인 존재라고 하시는 것을 보았어요.(웃음) 저는 그게 의아했던 게, 저는 촬영하면서 영지도 은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 사람이 결국 자기의 경험을 빗대어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선생님도 자기가 싫어질 때가 있냐고 하면 아주 많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힘들 때 손가락을 보는 사람이고. 그런 대사들로 이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하면서 연기했어요.
이은선: 실제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컷들이나 영지선생님이 한 말을 실생활에 적용하게 되지 않나요? 손가락을 계속 움직여보게 되는 거나. 마치 심리상담가의 역할을 영화가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박지후 배우는 영지 선생님과 은희가 나눈 이야기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다가온 이야기는 어떤 것이에요?
박지후: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왜냐하면 〈벌새〉를 촬영하고 이렇게 관객분들과 만난다는 거 자체가 저한테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거든요. 그래서 진짜 저한테는 크게 다가왔어요.
이은선: 영화 안에서 박지후 배우와 박서윤 배우는 단짝을 연기하잖아요. 되게 어려울 것 같아요. 물론 배우로서 연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해야 생기는 디테일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두 배우는 촬영장에서 만나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요. 처음에 만났을 땐 어떠셨나요?
박지후: 박서윤 배우가 1살 언니거든요. 그래서 어색했는데 감독님도 그걸 느끼셨는지 저희 둘이 롯데월드도 보내주셨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대구 사람이라서 롯데월드를 별로 못 가봤는데 언니가 구경시켜주고 같이 코인 노래방도 가고 그러면서 친해진 것 같아요.
박서윤: 지후 말대로 처음 만났을 때 둘만 대본 리딩을 했었거든요. 어색한 공기를 참기 힘들더라고요. 근데 저랑 지후랑 둘이 하는 대화가 되게 친구처럼 툭툭 던지는 대화가 많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거리낌 없이 대하는 편이거든요. 어색한 게 싫어서 무조건 친하게 지내야하고. 그래서 반말 쓰라고 하면서 엄청 노력했어요. 그리고 지후가 원래 심성이 착하고(웃음) 제 말도 잘 들어주고 제가 가끔 장난을 심하게 쳐도 잘 받아줘서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이은선: 은희의 캐릭터는 우리가 볼 때 딱 이해가 되잖아요. 사랑을 받고 싶으니까 애쓰는 캐릭터. 근데 언니는 좀 다르죠. 수희는 영지 선생님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은희의 미래 버전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수연 배우가 생각한 수희라는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였어요?
박수연: 감독님께서 써준 수희 캐릭터에는 ‘순해보이지만 강하다.’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수희도 순해보이지만 안에는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캐릭터였어요. 은희에게 이야기하진 않지만 수희의 세상 또한 엄청나게 무궁무진할 것이며, 수희는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외로운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은희랑 같이 밤에 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는데, 수희는 은희에게 유대감을 느껴서 은희와 조금씩 소통을 하면서 집에서 버티고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은선: 은희가 ‘내가 자살한 다음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라고 하니까 지숙이 ‘다들 우리한테 미안해하긴 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대사가 살리기 되게 어려운 대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대사는 어땠어요? 입에 좀 붙는 대사였나요?
박서윤: 그래서 그 대사를 후시녹음으로 땄어요.(웃음) 감독님께서 많은 버전을 듣고 싶어 하셨어요. 되게 침울하게 하는 거랑,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두 가지 버전을 했는데 감독님은 후자를 좀 더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지숙이가 마냥 행복한 삶을 살았던 아이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죽는다는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여러 번 해봤던 아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이은선: 이 두 소녀는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캐릭터들이잖아요. 우리가 폭력에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져있다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어떤 장면들이 있는데, 저는 병원 장면이 너무 긴장되는 거예요. 병원에서 은희가 또 무슨 일을 당할까봐, 말하자면 혹에 관련된 무언가일수도 있고, 웃돈을 요구받을 수도 있고. 가장 최악의 경우 성추행을 당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장면이 수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안함으로 느껴지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른 식의 긴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약간의 긴장을 실제로 유도하신 부분이 있나요, 감독님?
김보라: 시나리오를 많은 분들께 모니터링 받았을 때 좀 밋밋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래서 서스펜스를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병원 신이 많이 들어갔어요. 제가 의도했던 긴장은 이 아이에게 뭔가 일이 닥칠 것 같다는 긴장, 그래서 걱정하게 되는 부분이었는데 나중에 다른 분들이 ‘성추행 당하지 않을까?’ 이런 우려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되게 많이 놀랐고,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안전하다는 느낌을 공기처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은선: 은희가 폭력적인 상황에 많이 노출이 되어 있지만, 그 폭력적인 상황 자체를 주목하기보단 그럼에도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 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감독님께서는 어떠세요?
김보라: 네, 말씀해 주신 것이 정확히 제 의도였어요. 해외에서 상영을 했을 때 영화 속 폭력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대부분은 어떤 한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여정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지만,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좀 디테일하게 물어보실 때엔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사실 폭력이라는 건 어느 나라에든 있잖아요. 유럽, 그러니까 우리가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라는 나라에도 얼굴을 달리한 폭력들이 있는데요. 저는 한국사회의 폭력을 다루자는 것이 주제가 아니었어요. 그 속에서, 그런 폭력들 사이에서 우리가 살았으니 그걸 투명하게 바라보자는 것, 그리고 폭력 안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생명력 있게 함께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말하고 싶었어요. 영지선생님과 은희의 관계가 화해나 희망의 무언가를 주면서, 우리가 억압이나 폭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서로 사랑하고 교류하고 또 무언가를 배워나가고 삶의 무늬를 만들어나가는지. 그런 것들을 말해보고 싶었어요.
이은선: 〈벌새〉의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 다리를 보여줄지 고민이 되셨을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결과가 있기까지 어떤 고민들이 있었나요?
김보라: 원래 무너진 다리를 오프닝에 살짝 보여줄까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저는 지금의 위치가 가장 맞는 위치라고 초고 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은희라는 친구가 삶에서 계속해서 균열을 만나고 그 균열들이 일상에서 공기처럼 퍼져가는데, 그것들이 점점 쌓이다가 폭발하듯이 성수대교 사건을 만나는 구조로 가고 싶었어요. 단순히 은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주변 가족이라던가, 학교라던가 여러 가지 관계나 기억들이 점점 쌓이다가 다 같이 붕괴하는 느낌을 주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위치가 가장 알맞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은선: 그 장면이 되게 인상적이잖아요.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뒷모습들이 되게 담담한 모습이죠.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연기한 박지후, 박수연 배우에게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끊어진 다리를 바라보았나요?
박지후: 일단 저는 ‘언니가 그 사고를 당했으면 하는 어쩌지’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수대교를 보면서 그 만약을 상상하면서 봤을 것 같고, 언니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기도하면서 봤을 것 같아요
박수연: 벌새의 시나리오집을 보시면 알 수 있는데, 제가 성수대교 무너진 날을 독백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요. ‘학교에 갔더니 다들 나한테 다행이라고 한다. 나는 내 친구들을 잃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어떻게 다행이지?’, 그리고 ‘아빠가 아침에 혼냈기 때문에 지각을 했다. 근데 아빠가 나를 살렸다고 한다. 아빠가 나를 혼냈던 그 순간은 죽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그런 사람 때문에 내가 살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예요. 성수대교를 보면서 내가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친구들이 죽었는데 모두가 다행이라고 하는 이상한 기분들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바라봤던 것 같아요.
이은선: 저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기묘한 장면을 꼽아보라면 사고 이후의 식사장면을 꼽을 것 같아요, 식탁에서 아버지가 ‘다행이다, 먹자.’ 이런 대사를 하고 오빠가 갑자기 울고 수희가 되게 멍한 표정으로 있어요. 은희는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것 같고. 이 장면의 분위기가 되게 기묘해요 그래서 보고나면 식탁의 잔상이 머리에 남아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현장의 분위기도 궁금하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궁금합니다.
박지후: 실제로도 촬영할 때는 되게 엄숙한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 상황을 생각하고 몰입하니 다들 장난을 치거나 그런 분위기는 못 만들었던 것 같고. 또 수희 언니가 자기 친구들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다른 가족들도, 배우분들도 다 조용히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박수연: 그 순간만큼은 수희가 가족들 눈치를 안보는 식사자리였다는 생각이 지금 딱 들었어요. 그 전까지는 수희가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나 어머지나 다른 가족들을 생각했다면, 그 식사 신 같은 경우는 저의 힘듦이 커서, 수희만 생각하고 앉아있었던 신이었어요.
이은선: 〈리코더 시험〉(2011)이라는 단편에서부터 은희의 캐릭터가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는 좀 온전한 마무리라고 느끼세요?
김보라: 온전한 마무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벌새〉를 끝으로 은희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은희 얘기를 또 해달라는 요청들이 많이 와서 좀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은희 얘기를 여기까지 할 수 있어서 되게 기쁘다는 마음이 있어요. 〈리코더 시험〉도 물론 희망이 있긴 하지만 은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벌새〉 엔딩에서 저는 왠지 은희가 잘 살아갈 것 같거든요. 은희의 표정에서 그런 것이 느껴져요. 그래서 훨씬 희망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수희는 은희보다 먼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잖아요. 수희가 은희를 바라보았을 때 다른 가족들보다도 슬프거나 안타까운 감정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수희의 남자친구는 혹을 수술한 은희의 상처를 보는데 수희는 바라보지 못하잖아요. 그때의 심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영지 선생님이 떠나고 나서 새로운 선생님이 왔는데 혹시 그 배역을 감독님께서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김보라: 먼저 말씀드리자면 제가 맞습니다. 제가 〈벌새〉 준비하다가 너무 괴로워서 점집을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제 얼굴, 아니면 목소리라도 직접 출연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은 싫으니 목소리로 짧게 출연을 했어요.(웃음)
박수연: 영화에서는 안 보이는데, 수희는 팔 쪽에 큰 화상 흉터가 있어요. 촬영마다 분장도 매번 했었어요. 일찍이 상처 때문에 놀림 받은 과거가 있는 친구였는데, 그러다보니까 수희의 남자친구는 은희의 상처를 보면서 “아프겠다, 괜찮아?” 같은 말을 하지만 수희는 그걸 물어보는 것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있어주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왜 영화의 시대 설정을 1994년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 94년으로 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요. 제가 실제로 중학교를 다녔던 시대로 복귀를 해서 영화화해보고 싶었어요. 그 때가 선진국이 되고자하는 열망 속에서 다가올 미래를 알지 못한 채 달려가던 시기잖아요. 알 수 없는 불안과 희망 속에서 경주마처럼 달리던 시기였는데 지금 현재에서 그 과거를 좀 돌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 ‘성수대교 붕괴’라는 것이 은희와 은희를 둘러싼 모든 세계의 균열과 붕괴와 연결이 되어서 어떻게 개인의 삶과 정치적인, 사회적인 공기가 서로 살아 숨 쉬면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런 모습을 영화에서 그려내고 싶어서 94년으로 설정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각 인물들의 외로움과 소외감, 이런 감정들을 크게 느꼈습니다. 인물이 머물다가 가는 장면들을 비춰주는 것들도 그렇고요.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이, 은희가 혼자서 춤추며 짜증을 내는 부분이 있잖아요. 근데 그 장면에 의자 4개가 같이 나오는데 저는 그걸 보면서 가족에게 나 좀 봐달라고 소리치는 은희의 모습 같다고 느꼈거든요. 그 장면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지후: 그 장면이 지문엔 ‘오징어 춤’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당시에 은희는 지숙이한테 ‘너는 네 생각만 한다.’는 소리도 들었고, 유리랑도 멀어졌고, 지환이와도 헤어졌잖아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털어낸다는 마음으로 춤추는 장면을 연기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소외감, 쓸쓸함, 외로움도 들어가 있을 것 같고 약간의 분노도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복합적인 감정이었어요.
김보라: 제가 스토리보드를 짰을 때는 와이드샷으로 은희가 혼자 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촬영감독님이 식탁을 걸고 찍자고 하더라고요. 식탁이 나오게 찍어보니까 또 느낌이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식탁 다리만 찍은 것뿐인데도 묘한 스토리가 생기더라고요. 레이어가 더 생겨서 되게 좋았던 부분이었어요.
이은선: 〈벌새〉는 시나리오, 연기, 연출, 미술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영화이지만 특히 촬영의 공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죠.
관객: 감독님이 실제로 영지 캐릭터를 쓰실 때 영감을 받았던 주변 지인이 있었나요? 어떻게 해서 이런 캐릭터를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 제가 은희처럼 중학교 때 한문학원을 다녔었는데. 그 학원에 영지처럼 멋있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머리도 짧고, 안경 쓰시고, 남방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시는데 진짜 좀 멋있으셨어요. 사회적으로 흔히 강요되는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분이셨어요. 과도한 친절이나 살가움도 없었는데, 학생들을 인간으로서 대하셨어요. 실제로 우롱차를 종종 끓여주셨는데 저는 그게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저한테 우롱차는 소울 푸드처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차가 됐거든요. 그런 짧은 만남이 저한테 되게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그 선생님 이후에도 제 삶에서 만났던 상징적인 영지 선생님들이 항상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어떤 면면들을 다 영지라는 멋진 캐릭터에 녹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관객: 마지막 장면에서 수학여행 가는 은희를 찍잖아요. 그 부분이 저는 되게 인상 깊었는데요. 은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대부분이 나쁜 일들이었지만 배경음악과 화면이 되게 희망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은희 같은 경우는 학교에 친구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자기 빼고 잘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친구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고, 동시에 김새벽 배우님의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은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건가 싶었어요. 그 부분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를 여쭙고 싶습니다.
김보라: 은희가 사랑을 통해서,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조금씩 성장하고 엔딩에서는 비로소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관찰하는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어요. 마치 세상 구경을 처음 하는 것처럼, 마치 사람들을 드디어 바라보게 된 것처럼요. 엄마가 은희를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다가 감자전을 먹을 때 갑자기 응시하는 것처럼, 비로소 은희도 자기 안에 함몰되어 있다가 외부로 나가면서 아이가 조금 더 자란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관객: 첫 번째 신에서 은희가 다른 집 문을 막 두드리잖아요. 왜 그런 장면으로 시작했을지 궁금증이 들었어요. 은희가 공원에서 계단 위의 엄마를 보고 계속 부르는 장면하고 오버랩되는 느낌이 있는데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 맞아요. 영화의 첫 장면은 엄마를 부르는 장면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요. 엄마와 관련해서 되게 중요했던 신이 오프닝에 문을 두드리면서 엄마를 부르는 장면, 공원에서 아무리 불러도 엄마가 듣지 못하는 장면, 그리고 엄마가 감자전을 해주는 장면 이렇게 3개가 하나의 축처럼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은선: 좋은 질문과 답변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신 것까지 포함해서 거의 4시간 동안 〈벌새〉와 함께하고 계신 셈이에요. 일요일의 귀중한 시간을 〈벌새〉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저도 수많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오신 관객분들께 끝인사 한 말씀씩 하면서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서윤: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집에 가서 수행평가 준비해야 되는데.(웃음) 내일 1교시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수행평가라서 밤새서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렇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서 수행평가에 대한 걱정을 잠시 덜어낸 것 같아요!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고 다음에도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지후: 저도 내일 오후 2시에 대구교육청 교육감님 만나야 되는데.(웃음)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관객분들과 대화를 하면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 좋은 느낌을 받고 가는 것 같아요. 제가 항상 마무리 인사를 할 때 ‘입소문 내주세요. n차 관람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리는데 오늘은 한마디로 하겠습니다. ‘벌새단’이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새벽: 긴 시간동안 함께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수연: 수희를 보며 마음 아파해주시고 이해해주셔서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요. 그게 다 공감이 되어서라고 생각해요. 은희에게도, 영지에게도 지숙에게도, 엄마에게도 공감해주시고, 그러다보니 은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이라고 모두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을 저희에게 주신 것만큼 리뷰로 남겨주시면 저희도 감사히 그 마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보라: 오늘 엄마 역의 승연 배우님이 레슨이 있어서 참석을 못하셨지만 지숙이랑 수희까지 함께 온 날이라서 이 자리가 저한테 되게 뜻 깊어요, 여러분들이 은희와 영지뿐만 아니라 엄마, 지숙이, 수희, 그리고 유리까지 이 영화의 모든 여성 캐릭터들을 사랑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모두 제가 사랑으로 썼고, 또 배우분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잘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하니 너무 흐뭇하고 기분이 좋고요.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들하고 작업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또 늦게까지 경청해주신 모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은선: 늦은 시간까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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