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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by indiespace_은 2017. 3. 18.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예술, 예술가 '진짜'로 거듭나기

이현재 |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박영농 | 블랙코미디 - (스릴러) - 멜로드라마

이지윤 | 허상과 본질 사이에서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최지원 | 더 이상 내가 아니게 설계된 예술 속 '나'와 그 속에서 버텨내는 진짜 '나'의 블랙코미디

김은정 | 고상한 예술가인 척 하기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리뷰: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젤’(류현경 분)의 첫 모습은 당황스럽다. 덴마크에서 귀국했다는 그는 행인에게 담배를 빌리며 들고 있는 아메리카노에 대해 비판한다. 아메리카노의 기원을 알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라고 권유한다. 행인은 본인의 담배를 다 피우자마자 그 자리를 떠난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택시기사의 수다와 음악취향에 ‘다른 걸로 틀어주실 수 있냐’고 불만을 보이던 그는 본인이 입을 열 기회가 주어지자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낸다. 오늘날의 미술계는 예술가가 멸종하고 사기꾼들만 넘쳐나는 오염된 곳이라 이를 정화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택시 또한 그가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에서 그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받은 미술대회 장려상 상장이다. 이후 어머니와 친구를 만난다. 이 만남들에서 그가 확인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젤의 첫 모습은 곤궁한 자신의 상황을 환상으로 합리화하려는 유아적인 에고이스트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입사하려던 회사로부터 거부의 제스처를 확인한 그는 (비록 환상 속이기는 하지만) 그 제스처에 답한다. “저는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전생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티스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첫 대답이다. 그의 대답은 ‘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한 가지 주장을 은연중에 형성하고 있다. 그는 앞서 본인이 제시한 주장을 몸소 증명해보이겠다는 듯, 미술계 인사들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 ‘박중식’(이순재 분)에게 귓속말로 “선생님 그림 되게 과대평가 받은 거 아세요? 쪽팔린 줄 아세요.”라고 면박을 준다. 그러자 박중식은 “그런가?”라고 답한다. 이 대답은 그의 말을 반박하진 않지만, 참/거짓의 문제를 그에게 되돌림으로서 주장을 닫아버리는 기능을 한다. 결국 참/거짓의 문제는 그 안에 머무르고 발화되지 않는다.


그의 진술은 왜 그 안에만 머무르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필자는 그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재범’(박정민 분)이 그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작품으로 인해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가인 지젤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작품들을 자신의 갤러리로 가져온다. 재범은 그를 미술계 인사들의 공적인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박중식 앞에서 그를 “그림은 좋은데, 작가가 좀 그래요.”라고 평가한다. 이에 박중식은 “작가가 중요한가? 그림만 좋으면 됐지.”라고 답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림을 산다. 이는 박중식이 지젤의 그림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재범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후배 양성”이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타자의 변화를 일으키는 목적을 가진 행위라 생각하고 박중식의 대답에 접근해보자. 그는 유일무이한 존재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양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



유일무이한 존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은 누구와도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누구도 이해할 의지가 없는 상태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유일무이한 존재는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발화는 혼잣말이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발휘되어야 할 그녀의 재능이 기능 부전되는 이유이며, 동시에 그녀의 말이 그녀 안에 머무는 이유이다. 박중식이 지젤의 그림을 산 정확한 이유는 재범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재범은 박중식에게 지젤의 그림을 소개하며 ‘갤러리 비지팅도 끝난 상태’라고 말한다. 박중식에게 지젤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 작가인 것이다. 박중식이 지젤에게 원했던 것은 본인의 고유성을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후배 양성’으로, ‘돈’울 주고 그림을 산 것이다. 박중식은 극중 지젤을 가장 정확히 이해한 인물이다. 그리고 돈은 그들의 언어이다.


그 이후는 지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를 견딜 수 없던 재범과 ‘제임스 곽’(문종원 분)는 ‘오인숙’을 죽이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표면적으로 작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그려지나 그들의 대화나 태도에서 경제적인 가치창출을 바라는 것 이상의 잉여가 보인다. 특히 이는 재범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가 지젤을 발굴한 첫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어릴 적, 진품인 줄 알았던 물건을 가품이라고 판단하는 감정사가 멋있게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제임스에게 하는 것과 같이 그의 욕망은 작품에 진릿값을 붙여서 고유성을 창출하는 데 있다. 그가 오인숙을 살해하려 한 이유는 그의 고유성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임스 곽은 극적으로 지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또한 벌어진 사태를 어찌할 바 몰라 지젤의 그림을 기증하는 결말에 이른다.



모두에게 욕망의 대상이었던 고유성. 지젤의 그림은 결국 공적인 장소인 길거리로 나온다. 이 때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는 누구의 시선인지 판별할 수 없다. 길거리 위 지젤의 그림은 사람들로부터 전과 같은 고유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외부의 자리에 어색하게 놓이고 고정된 자리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된다. 지젤의 그림은 어쩌면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지닌 고유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이고 모호한 욕망에 대한 우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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