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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Choice] <파산의 기술記述> : 먼지 너머의 풍경

by indiespace_은 2016. 8. 11.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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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 기술記述> 리뷰: 먼지 너머의 풍경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먼지


“소름이 끼친다. 영화 속 먼지를 들이쉰 것만 같다. 콜록 콜록 헛기침을 해본다. 당연히 이미 들이마신 먼지가 나올 리 없다. - p386” 이강현 감독의 2006년 작 <파산의 기술>은 사회의 미세한 먼지를 포착하면서 그간 먼지처럼 취급되었던 존재를 다시 보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감독은 영화 도입부에 ‘미세먼지’를 언급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볼 수 없는 먼지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사람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은 또 있다. 바로 인간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든 두려움이다. 2006년 ‘고의적 자해에 의한 사망’, 즉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의 4위를 기록했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통계에 따르면 현재 10대~30대의 자살은 전체 사망원인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덧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가장 높고, 행복지수는 가장 낮은 불행한 땅이 되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삶이 공포로 다가오는 미세먼지를 매일 마시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0년 전은 어땠나? <파산의 기술>은 어떤 얼굴들을 마주하며 보이지 않은 사회의 공기를 포착한다.



첫 번째 얼굴 


“저는 누구입니다” 차례로 본인을 소개하게 한 뒤, 감독은 이들에게 현재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물론 감독의 목소리는 깔끔히 제거되어 들을 수 없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계약직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재계약 시기마다 직장을 옮겨온 이도, 그렇지 않고 한 직장에서 계약을 연장한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야근 근무를 하는 환경에서 일하기도 한다. 당연히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들의 다음 응답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불안하지 않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낙심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다른 곳에서 일하면 된다”, “실직하면 다른 자리가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있다”. 시종일관 이들은 감독의 질문을 놀리는 듯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 있게 답한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 정말 괜찮은가? 현재를 관통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회,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사회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지금의 관점에선 영화 속 이들이 터무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다. 나아가 10년 전에는 왜 이렇게 희망적이었지 하는 의아함이 생긴다. 이들만의 희망이었나? 아니면 당시 사회가 공유하는 묘한 정서였나? 



두 번째 얼굴


소개도 하지 않은 채 이들은 갑자기 등장한다. 얼굴 전체를 보여주지도 않고, 말하고 있는 입만 크게 확대해 얼굴을 조각내 비추고 있다. 사실 이들은 카드빚을 갚지 못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낼 수 없다. 계속해서 “카드를 잘 쓰지 못한 내 책임”이라며, “내가 쓴 돈을 끝까지 갚아나가겠다”고 이들은 다짐한다. 그런데 감독은 이와 다르게 가계대출을 주선하는 전문가의 인터뷰와 세계 경제 포럼 연회장의 풍경을 함께 보여준다. 이 상이한 풍경을 교차하면서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물음을 던진다. 왜 파산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는가? 파산하는 이들은 구조 안에 어떻게 위치하나? 결국, 큰 틀의 변화가 파산한 이들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특정한 시기에 국가가 가계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면서 ‘파산의 기술’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불만은 없다, 자기 노력에 따라 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라고 말한 파산한 이는 노력하지 않은 자기를 탓할 뿐이다. 지금은 어떤가? 10년 전과 다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는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보이지 않은 힘에 대해 직시하고 있다.



세 번째 얼굴


감독은 오래된 전단지가 겹겹이 붙여진 한 벽에 주목한다. 그 벽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전단지에 의해 계속 앞으로 자라고 있다. 앞에 붙여진 전단지는 볼 수 있지만, 뒤에 붙여진 전단지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채 결국 잊힌다. 이런 방식으로 과거에 살았던 얼굴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산업화의 주역’ 혹은 ‘3만 달러 달성의 주역’으로 이름 붙여 호명하면서 단순화하고 객체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래된 흑백 화면에서 보이는 많은 노동자의 얼굴을, 그들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있는가. 영화 후반부에 감독은 70년대의 푸티지를 여러 방식으로 교차하며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게 한다. 한편, 2006년 영화에 나오는 얼굴은 당시 앞에 있는 전단지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얼굴은 과거에 붙여진 전단지로 여겨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새로운 전단지가 벽에 붙여진다. 그렇다면 과거로 흘러가 버린 얼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미세먼지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2016년, 어쩌면 먼지 너머의 풍경을 과거의 얼굴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들어 가계 빚이 1200조 원을 넘어서며 역사상 정점을 찍었다. 지금까지 먼지는 걷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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