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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_[미국의 바람과 불] 감독과의 대화(GV) 후기

by indiespace 2012. 8. 8.

[미국의 바람과 불]  감독과의 대화


2012.08.03 @인디스페이스


●  진행 : 유운성 평론가

  대담 : 김경만 감독


Q: 감독님이 과거의 영상물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며 미국과 한국 사이의 관계를 부각시켜보고자 한 계기는 무엇이며 영화가 미국병으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영화는 과거의 풍경들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기록필름들 중에 인상 깊게 봤던 것들이 누적되었던 부분이 있었고, 지금의 풍경 (한국이라는 공간)이 어떤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존재해야하는 생활의 공간이라는 것이 모조품으로 대체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한국전쟁 60주년 기념행사를 들어봐도 사람들의 진실적인 경험이나 감정이 생각되는 것이 아닌 일회적인 기념식으로 대체되어버리는 것이다. 덧붙여 생각하게 되면 한국이나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의 모습으로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서부터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종미주의, 숭미주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개인적인 입장에선 그런 것들은 일부분의 이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것만은 아니고 그것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이상한 측면들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었지 종미주의라는 것은 굉장히 빗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Q: 한국 사람들의 해방 후 의식, 행사, 세리모니 등을 조직하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한국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인가?

A: 사람들의 생각이나 자아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해답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보면 상당히 재밌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6.25기념행사의 독특한 부분 중 하나가 마네킹이 텔레비전을 들고 있는 조형물인데, 그것은 한국전쟁을 숭고한 것으로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것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A: 마네킹은 사실 지금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아주 해묵은 문제 아래에 있는 한국 모습의 사회, 또는 삼성전자의 LCD 모니터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삶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하는 의문이 든다.


Q: 영화는 과거의 홍보영화에서 발췌한 영상물과 최근 10여 년간 감독이 직접 기록한 두 가지의 영상물이 함께 등장하게 된다. 앞으로 작업의 방향은? 

A: 작업의 범위가 극영화나 라디오에 한정되었던 것은 현실적인 제약이 컸다. 사용 권한이나 편집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앞으로는 공보처 쪽에서 만든 극영화, 문화영화들을 더 잘 이용하여 작업해보고 싶다.


Q: 옛날의 선전이나 국정홍보를 목적으로 한 영상물들이 만들어졌던 때 그러한 기관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집단 관람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한다. 옛날의 그런 집단적 관람과 달리 현재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강압성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감독이 나중에 30, 40년이 지나 지금 2000년대의 지금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과거의 영상으로 만든다고 한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용할 수 있는 영상물들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A: 지금 사회에서 가용할 수 있는 영상물들은 굉장히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에는 16mm 필름들이 일정량 이상의 많은 아카이브를 이루었는데, 지금 시점에는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뉴스가 될 수 없을뿐더러, 지금의 뉴스는 답을 제시하는 기능에 너무 충실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 유용한 소스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작업 때문에 자료조사를 하며 현재의 뉴스도 조사를 해보았는데, 보여 지는 장면 자체가 영화에 들어갈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정도면 될 수도 있겠지만.


Q: 이 영화의 두 번째 종류의 영상인 직접 촬영한 영상들은 처음 찍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촬영 당시에 이런 식의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인지?

A: 처음 촬영한 것은 초반의 2003년 북한핵무기 관련 기도회 장면이다. 그 때는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을 찍을 때는 한 작품만을 염두에 두고 촬영하기보다, 작업을 하며 서서히 맞춰간다. 예외적으로 기도회 장면은 이 영화에 쓰고 싶어서 촬영한 것인데, 아닌 것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촬영된 분량은 2003년도의 장면 빼고는 모두 이 영화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촬영한 것이다.


Q: 많은 다큐들은 나레이션이 깔려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영화들은 스스로 해석하게 되더라. 처음 볼 때는 종미주의가 많이 보였는데 다시 보니 '거울의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폭탄투하 장면에선 오묘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불'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자면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가져다 준 것인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 영화는 미국에 대해 이해감정이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면 다른 느낌이 들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각양각색의 입장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지?

A: 사실 영화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활빈당같은 데서 온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뉴데일리에서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노골적인 반미 선동영화가 아니라 좋았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평가는 사실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교회에서 많이 와서 보시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Q: 작업과정이 얼마나 걸렸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걸쳐서 만들었는지? 

A: 보통 자기 생각이 정리 된 다음 자료를 찾는 것이 통상적인데, 나의 경우는 두 가지 과정이 반복되며 자료를 찾다가, 생각을 하다가 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전부터 계속 보던 자료를 통해 나온 생각도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몇 년이 걸렸는지 얘기하기는 어렵다.


Q: 장면들 중에 촉발시킨 장면은? 도입부의 이미지에 대한 확실한 컨셉이 있었는지?

A: 방아쇠처럼 촉발시킨 장면이라기보다는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영상들을 보며 대충 1945년부터 한국전쟁의 시기를 생각하며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미국 폭격기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들을 많이 사용하고 싶었다. 한국전쟁에서 큰 부분이기도 하고 남한에서 많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대해 자세히 안다거나 그러한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 미국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였기 때문이다. 1945년 일본군이 철수를 하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 깊은 장면들이었다.


Q: 혹시 기독교인지?

A: 어릴 때 교회는 다녔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Q: 영화를 보기 전 '바람과 불'에 대해 원시종교적인 입장으로 쓴 리뷰를 보게 되었다. 고대 인간들에게는 '바람과 불'이 숭배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보았다. 나는 바람이 불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바람이 새로운 불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확실히 미국이라는 큰 힘이 한국 사람들에게 작용하여 무엇인가가 송두리째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마치 무슨 블랙홀이 있는 것같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것 같다는 생각도 하였다. 한국 사람들의 생각 자체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또 영화에 영어가 많이 나오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개개인에게는 참혹한 경험이 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 제목에 대해 뜻을 풀이하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Q: 기록영상들을 많이 접해보았을 것 같은데, 만드는 입장과 나중에 보는 입장의 차이가 어떻게 다른지?

A: 중립적인 풍경들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굉장히 편향적인데, 흥미로운 것은 지금 시점에선 절대 그렇게 만들지 않았으리라는 장면들이 많은 것이다. 오래된 필름일수록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 현재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흥미 있게 발견될 수 있는 장면들이 적어지게 되더라. 오래된 장면일수록 개인적으로는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90년대에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해서 미래에 봤을 때 다르게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Q: 초기 이승만 시절부터 박정희 정부까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나오는 영상들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

A: 그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최근영상일 수록 쓰고 싶은 영상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Q: 김영삼 이후에 찍는 사람들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에 반해 그 전의 대통령들은 찍는 사람들마저 자유가 억압되었던 것이 사실일 것이다. 쓴 영상들도 완성본일텐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김대중대통령 영상은 확실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국정홍보TV에서나 나올 법한 영상이었다. 필름으로 기록되었던 것은 사람들에 보여주기 위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촬영필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다. 때로는 막 잘라서 쓰기도 했을 것이고 관리 보관이 힘들었을 것이다. 상상이지만 잘 보존되었기만 한다면 다양하게 사용해보고 싶다.


Q: 영화에서 실제로 찍은 영상들이 '중립적이다'라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닐 텐데. 개별 쇼트를 빼내면 그 기념행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영상에 들어가도 될 만한 영상이라고 생각되는데.

A: 촬영할 때 들었던 생각은 과거의 기록필름을 촬영했던 카메라를 생각해 보면, 심리적으로도 그 행사 안에 존재했던 카메라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나는 밖에서 그 행사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뉴스 카메라들은 훨씬 가까이 단상을 촬영한다. 나는 넓게 잡으려고 애를 썼고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싶었다. 그런 이상한 행사들에 전혀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찍으려고 다녔던 쇼트들이 결국 움직이지 않는 필름들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행사에서 벗어나서 밖에서 액자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찍으려고 노력했다.


Q: 내적인 미장센보다 사회적 미장센을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A: 월드컵 경기장은 일종의 우상숭배 같은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촬영한 것도 있다. 스크린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찍었었고, 광화문이나 시청에서 열린 행사를 찍을 때는 여러 프레임이 겹쳐져있는 것으로 보이게끔 찍었다. 옛날 중앙청 자리, 광화문, 활빈당 아저씨, 사진 찍는 사람들과 경찰들이 여러 층을 이루기를 바랬다. 시청 기도회 장면도 기도회를 하는 사람들이 쭉 있고 멀리 G20 광고물이 붙어있는 가림막 등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촬영했다.


Q: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 중인 작업과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본인의 포부나 계획은?

A: 다음 영화는 아마 지금과는 다른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될 것 같다. 구체적으로 다 말하긴 힘들 것 같다.



기록, 정리 : 인턴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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