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는 과거
〈이어지는 땅〉 (감독 조희영)
김지윤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종로5가, 필름카메라를 고치러 들린 상가에 분명 카메라의 첫 번째 주인은 아닌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 손에도 한 필름카메라가 들려 있다. 집 구석구석에서 캠코더를, 필름카메라를, 디지털카메라를 찾느라 바빴다. 저마다 어디선가 찾은 과거의 것은 아주 새로운 것이 되어 있다. 그 안에 담긴 구조로 세상을 다시 보는 건 어쩐지 내가 보지 못한 세계처럼 욕심 나는 일이다. 하루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캠코더와 함께 있던 6mm 캠코더 테이프들을 만났다. 그 안에는 내가 있다. 분명 나의 얼굴이다. 그리고 종종 등장하는 가족의 얼굴도 있다. 나는 겨우 걷고, 몸을 뒤집고, 울거나 잔다. 나를 돌보는 얼굴들은 오로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손으로 캠코더 속 영상을 디지털로 변환하고 있다가도 금세 낯섦을 느꼈다. 나는 나의 얼굴을 해석할 수 없고,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과 표정, 모든 역사를 알 수 없다. 직접 보고, 듣고 있음에도 그 모든 세계를 전부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고, 그 세계를 다시 회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모든 걸 다시 알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지나온 날은 우리의 발걸음을 지그시 이끈다.
〈이어지는 땅〉은 런던을 배회하던 호림이 캠코더를 발견하며 시작한다. 주인 없는 캠코더 안에는 한 여자의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은 낯설지만, 여기가 런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어로 들려오는 일상의 언어는 익숙하단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불균형의 감각을 가지고 호림은 걷고 또 걷다 동환과 재회한다. 한국에서 오래 만났다는 동환과의 재회는 캠코더 속에서 만난 여자, 이원과의 만남도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 자유롭고 원을 닮은 세계 안에서 가장 사적인 과거를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과거가 있음에 어딘가 향할 수 있고, 움직이기에 교차한다. 〈이어지는 땅〉의 움직임은 나로 하여금 과거에 대한 탐미를 탐구하게 한다.
과거는 우리를 데려간다
〈이어지는 땅〉은 유독 움직이는 영화다. 한국에서 런던으로 호림이 왔고, 동환은 베를린으로 떠나는 경서를 따라갈 예정이다. 이원은 런던에 살다 밀라노로 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런던에 왔다. 다시, 영화는 이원을 따라 밀라노로 간다. 호림의 이야기와 이원의 이야기로 나누어 진행되는 움직임의 동기는 아주 사적이고 동시에 불투명하다. 한 사람의 마음에 남은 과거라는 기억은 이미 지나온 땅에 묻어둔 채, 그중 손에 담을 수 있는 몇 가지만을 챙겨 왔을 게 분명하다. 한국에서 런던으로, 밀라노에서 다시 런던으로 오며 또 몇은 어느 길목에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여전히 내 손에 있는 나의 과거다. 내가 손에 쥐기로 선택한 나의 이야기는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이동이 시작되는 시점은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그 시작의 지점에서 끝을 불러낸다. 호림은 한국을 떠나 런던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 이원은 밀라노에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동환과 호림이 만나던 모습도, 런던에서 이원을 찍던 캠코더를 든 연인도, 우리는 볼 수 없다. 영화가 가져온 시작 앞에는 끝이 있었음을 종종 인물들의 만남과 대화로만 들려줄 뿐이다. "뭐가 그리운지 모르겠는데, 뭐가 계속 그리워.”라고 말하는 이원의 말은 몸에 남은 흔적에 대한 알 수 없는 의문을 남긴다.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과거를 정의 내리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이어지는 땅〉이 호명하는 과거는 캠코더를 통해 한 번, 호림과 이원의 몸을 통해 두 번 굴절되어 이들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도착하는 과거
영화가 호림과 이원, 두 사람의 궤적을 구분하면서도 이내 홀연히 겹쳐놓는 것은 두 사람의 움직임이 어떤 그리움을 향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호림과 이원은 과거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 앞에 도착하고, 과거를 마주한다. 특히, 호림의 도착은 영화의 1막을 이끌지만, 곧 과거와 만나자 그는 영화를 떠나고 없다.
호림의 길을 이끄는 것은 호림 자신이다. 배회하듯 걸었지만, 그의 앞에는 동환이 있다. 마치 길의 끝에 놓인 목표지점처럼 벤치에 앉아있는 동환에게 우연인 듯 인사를 건넨다. 호림은 비교적 쉽게 동환을 만난 듯 보인다. 하지만 경서와 이원이 내내 함께 있던 터라 호림과 동환만의 이야기는 좀처럼 시작하기 어렵다. 호림과 동환이 유일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시각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가장 사적이라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함께 있던 시간만큼 날이 흘러 빛이 없는 공간은 어둡고,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조차 한번 분리되는 발코니 안에는 두 사람만이 있다. 그 안에서 호림과 동환은 같은 선상을 벗어난다. 두 사람의 몸은 과거와 현재로 갈라져 보이기까지 한다. 동환에게 남은 자신의 흔적을 책으로나마 이야기하는 과거의 몸과 '지금'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야기하는 현재의 몸은 갈라진 채 엇갈린다. 동환은 호림에게 언제를 살고 있는 거냐며 소리치지만, 호림은 내가 여기에 왔다고 소리친다. 호림이 도착한 과거는 이미 그에게 사라지고 없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낯선 땅과 낯선 길목에서 과거를 만났지만, 내가 손에 들고 온 것은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주지도, 내가 다시 꼭 쥐지도 못한 채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와야만 하는 것이 되어 있다.
방향 없는 현재
〈이어지는 땅〉에서 '공원'은 혼자 있는 것 같다가도 우연한 만남으로 너와 내가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영화는 공원을 통해 유영하는 움직임과 헤매는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준다. 공원의 초입을 각자 다르게 생각해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고 헤매다가도, 결국 우리는 함께 모여 움직이 고, 또다시 혼자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공원의 입장과 퇴장은 누구에게나 자유롭다. 함께 모였지만 아무도 서로가 어떤 과거를 통해, 어느 곳을 입구 삼아 들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모두 자신만이 입구라 확신하는 곳으로 성큼 진입할 뿐이다. 그렇게 공원은 현재를 닮아있다. 명확한 방향 없이 우리 모두 함께 들어온 새로운 공간이자 금세 지나칠 공간. 언젠가 이 공원에서 있었던 일조차 스스로 정의 내리려 하고, 어떤 그리움으로 그 안을 헤맬지도 모른다. 공원 안에서 헤매는 인물들은 그렇게 과거에 도착한 채, 손에 쥔 기억을 그 자리에 놔두고 다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호림이 사라지고 이원의 몸으로 영화가 거니는 2막, 본격적으로 영화는 과거를 지나 밀라노에 있다. 이원 또한 알 수 없이 그리워하던 것을 런던에서 마주한 이후다. 호림이 캠코더에서 자신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원은 그 자리에 다시 찾아갔었다. 그 이야기를 이원은 카메라 앞에 자신의 언어로 전한다. 자기 자신에게 전하듯 말하는 이야기 사이로 퍼지는 모든 가정과 그리움, 생각은 너를 향한 말이기도, 나를 관통하는 지점을 정리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영화는 이원의 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가 걷는다.
이원은 런던의 공원에서처럼 길을 헤매지는 않는다. 밀라노는 때때로 그 익숙함을 저 먼발치에 다시 갖다 두도록 만들지만, 이원은 그곳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식물을 심으며 살고 있다. 낮에 만나 길을 물어온 화진에게는 낯선 땅에서 익숙한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에게는 저녁 약속이 있다 했지만, 이원은 해가 뉘엿해지는 시간까지 밀라노의 골목과 공원을 홀로 계속해서 배회한다. 닿아야 하는 지점 없이 길의 끝이 없는 것처럼 걷고 또 걷는다. 이윽고 다시 마주친 화진과 어두워진 거리를 발맞추어 걷고, 광장에 함께 앉아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한편, 라이터를 사러 간 화진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간 거리에서 이원은 다시 여러 갈래의 길에 혼자 있다. 익숙해진 거리를 떠도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원은 또다시 무언가를 놓치고 홀로 서 있는 모습이다. 불쑥 찾아오는 만남은 또다시 낯선 땅에 두 발을 딛기 어려운, 잊고 있던 방향 잃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과거에 어떻게든 스스로 도착한다. 하지만, 과거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호림은 동환과 같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백하고, 이원은 더 일찍 그 자리에 찾아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말한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 일어나며 깨지는 그 불균형한 감각은 과거와 현재가 다시 한번 몸을 통해 서로를 교차하는 순간이다. 깨달음과 후회로부터 과거는 현재로 뒤바뀌고, 정의하기 어려웠던 과거는 끝내 나의 언어로 발화되어 남는다.
영화가 과거를 탐미하는 이유
영화의 마지막, 이원은 폭포 앞에 서 있다. 길을 물어온 어느 사람이 이야기한 그 폭포다. 이어지는 장면에는 잠든 이원이 보인다. 더 이상 이원은 길을 걷지 않고, 배회하지 않는다. 꿈에서만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그 선언으로 내내 길을 묻고 답하길 반복하던 영화는 방향에 대한 물음을 끝낸다.
과거와 현재는 늘 서로를 궁금해한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 없이 두 지점은 서로를 궁금해하고, 알 수 없어 괴롭고, 그리워서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만나게 하는 과거와 현재는 알 수 없는 감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과거는 온전히 다시 만날 수 없어 알 수 없고, 현재는 내가 어느 땅에 서 있는지조차 모른 채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영화는 그 안의 몸을 빌려 더 알고 싶어 한다. 도착한 과거에는 길을 걸으며 떠올린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가득하고, 과거와의 완전한 조응은 그렇게 불발된다. 해독은 불가하고, 해석은 힘이 없다. 상상과의 조응이 어긋남에서 오는 차이는 우리가 과거를 탐미하는 이유가 된다. 아무리 길을 잃어도, 도착한 그곳에 엉뚱한 마음이 있더라도, 영화가 나를 헤집고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은 계속된다. 그 개인적인 여정에 함께 마음이 휘둘리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는 일 또한 영화와 함께 계속된다.
*
위 글은 비평전문지 『독립영화 54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소개글
『독립영화 54호』는 사단법인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가 기획 및 제작하였으며, 독립영화 소식, 정책 그리고 기획 ‘저작권을 둘러싼 운동들’ 및 독립영화비평상 수상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54호는 기획 ‘저작권을 둘러싼 운동들’에서 독립영화의 공정이용 문화 형성 및 저작권법과 창작 활동을 둘러싼 담론을 탐구하고, 여러 필자의 비평을 통해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를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그 외에도 독립영화 지원제도 상황을 포함해 2024년 독립영화계의 주요 소식을 다룬 글이 수록되어 있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 https://kifv.org/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독립영화 54호 비평] 나로부터 탈출하기: 〈여행자의 필요〉, 〈잠자리 구하기〉, 〈힘을 낼 시간〉의 과거와 기억 (1) | 2025.04.16 |
---|---|
[인디즈/독립영화 54호 비평] 타오르는 십칠 세의 초상: 〈그 여름날의 거짓말〉 (0) | 2025.04.16 |
[인디즈 Review] 〈목소리들〉: 들려오는 침묵 너머로 (0) | 2025.04.16 |
[인디즈 Review] 〈장흥1950: 마을로 간 전쟁〉: 시대가 남긴, 목소리가 담긴. (1) | 2025.04.15 |
[인디즈 Review]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닮은 꼴 찾기 (1) | 2025.04.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