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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목소리들〉: 들려오는 침묵 너머로

by indiespace_가람 2025. 4. 16.

〈목소리들〉리뷰: 들려오는 침묵 너머로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그 온갖 소리가 응축된 침묵 앞에서, 우리가 쉬이 말하는안다는 말의 무게는 아마 너무도 가벼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어떤 무게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70여 년을 넘어 이제서야 우리에게 닿은 목소리들은 어떤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음을 일러준다. 스크린에 시선을 맞추어 가만히 앉아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침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겨우 텍스트 몇 줄로 쓰인 역사책 속의 문장들이 무색하기만 하다.

 

영화 〈목소리들〉 스틸컷

 

영화는 매년 150여 명이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족이라는 그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입을 열기 시작한다. 이렇듯 한 사람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과거의 비극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제주 4.3사건의 이 무참한 아픔을 점차 인정받게 되었음에도, 여성들이 겪은 수모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 〈목소리들〉은 여성 생존자의 목소리를 따라 흘러가며 침묵 속의 아픔을, 흙 속에 묻힌 슬픔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이를 듣다 보면 여러 세대가 중첩되어 입을 모아 고통을 말하는 목소리를 볼 수 있다. 살아남은 여성들의 침묵은 곧 그를 보고 자란 자손의 목소리로, 이것은 다시 제주 4.3사건 연구자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어떤 목소리와 침묵은 또 다른 소리로 연장된다. 영화의 배급이 관객 참여형 배급으로 이어진 것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에도 제주 4.3사건을 향한 목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목소리들〉 스틸컷

 

영화는 고통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그 고통에공감하게 만드는 쪽을 택한다. 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연출은 보다 더 그 아픔에 동조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과거 개인이 겪은 아픔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직접 재현하는 대신 추상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다. 이는 관객이 그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상상하여 메우게 하고, 그렇게 개인화된 이미지는 한 개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과거의 아픔이현재의 아픔이 되는 것이자그들의 목소리가우리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영화 〈목소리들〉 스틸컷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 삽입된 제주의 풍경은 괜히 미운 마음이 들 만큼 고요하고 아름답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개의 처’, ‘아무개의 딸로 대체되었던 이름들이 새겨진 바다의 모습도, 마지막 장면의 유채꽃도 모두 다 원망스러울 만큼 아름답다. 이 풍경들은 이 영화가 그저 아픔만을 그리기보다는 살아남은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음을 알게 한다. 그 모든 아픔을 겪고, 상처가 나을 새도 없이 삶을 견뎌야 했던 여성들. 그들이 슬픔을 흙에 직접 파묻었던 그 손으로 일군 밭은 폐허가 된 땅을 재건했다. 그들에게 제주는 아픔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이지만 그들의 손으로 다시금 세운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제주 바다에서 길어 올린 이 침묵은 영화가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단지 말하지 않음이 아닌, 살아남은 이들의 울음이자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침묵을 비추고 그 안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그저 꺼내 보여준다. 우리는 그 침묵 너머의 오랜 시간 묻혀있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그것은 더 이상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목소리이며 우리가 내어야 할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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