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구하기〉리뷰: 사라지는 과거란 없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문충원 님의 글입니다.
텅 빈 상영관, 한 가운데 앉아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울었고 고인 물방울을 따라 장면은 볼록하게 흘러갔다. 한 인터뷰에서 홍다예 감독은 ‘이걸 안 찍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어쩌면 〈잠자리 구하기〉는 두 개의 렌즈로 찍은 영화인지도 몰랐다. 첫째는 당연히 카메라라는 렌즈, 둘째는 눈물이라는 렌즈. 사정없이 흔들리는 핸디캠에 개인적인 볼록렌즈까지 덧대니, 장면은 더 이상 선명하기 어려웠다. 그건 보는 것을 넘어 느끼는 것에 가까웠다. 감각도 대사도 어렴풋하지만 영화가 수놓은 풍경으로 감정만은 선명했다.
감정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잠자리 구하기〉는 한국의 입시에 관한 홍다예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이다. 무려 8년간 돌아간 카메라 롤은 고등학교 3학년에서 시작한다. 그때의 시간은 대개 거꾸로 흘러간다. 시계 속 디데이는 수능 날을 향해 줄어든다. 친구들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현재를 지탱한다. 대학 가면 알바만 해서 여행 갈래, 여행 가서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지 배우고 싶어, 술 먹고 생각 없이 청춘을 사는 거 대학 가서 해보고 싶어. 그러고는 다시 교실로 돌아가 디데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며 기꺼이 소멸된다. 다예도 같은 처지이지만, 다만 부단히 녹화 버튼을 눌러댄다.
카메라만이 앞으로 흐른다. 녹화된 영상만 감독의 손길에 따라 0초에서 어디쯤까지 명백히 전진한다. 카메라가 수능 따위 알 턱 없으므로 기계의 시간은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도 평등하게 흐른다. 디데이라는 극악무도한 흐름을 끊고 일부분을 선명히 토막 낸다. 베어낸 자리에는 감정이 피처럼 무겁게 묻어 있다. 교실의 질서에 잠자코 순응하다 탈출해 겨우 토해내는 마디마디에는 그 모든 의문과 괴로움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게 영상으로 저장된 감정은 소멸로부터 그들을 보존하는 단초를 마련한다.
입시는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대학을 가거나, 혹은 그저 부정당하거나.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들은 죽고 싶다는 말버릇으로 울분을 토한다. 수능 날이 지나서야 디데이는 빨아들인 숫자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수능이 끝나도 삶은 이어지고 목표가 없어도 날들은 하루하루 쌓여가니. 그러나 그게 곧장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오랜 말버릇은 단순 허밍에 그치지 않게 된다.
“수능 끝나도 살아있네? 시발.” 영화 속 누군가가 뱉은 말처럼 우리에게 ‘목표’라는 이름의 무언가는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젊은 나이에 입시라는, 누구나 거치지만 누구도 원한 적 없던 목표와 마주하고 만다. 무척이나 거대하고 갑작스러운 나머지, 입시란 차라리 시스템보다 산사태에 가깝다. 수능 날 하루를 향해 모든 시간들이 와락 쏟아지고 모두가 순식간에 파묻히는 재난. 우리의 것이 아닌 시간들을 우리의 전부로 삼았더니 정작 우리는 사라지고 없다.
산사태는 수능이 끝나도 멈추지 않는다. 입시는 8년의 시간에서 고작 한두 해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유예하며 살까. 행복은 언제까지 유보될까. 〈잠자리 구하기〉 역시 산사태에서 탈출할 방도를 제시하지 않고 러닝타임 끝까지 무너지고 깔리는 쪽을 택한다. 다만 사라지는 것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에 떨어지는 겨울과, 재수를 결정하고 준비하던 밤들, 마포대교에 갔던 이유와 그날을 회상하는 부모님의 뒷모습까지 전부. 달리 방도가 없을 때도 습관처럼 부여잡는 희망은 때때로 미신 같다. 괴로움을 물리치는 부적처럼 카메라는 감독의 곁에 딱 붙어 있다. 그렇게 축적한 8년간의 집요함은 감정을 이어내는 가장 진솔한 근거가 된다.
감독이 미리 겪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나 역시 그 크기는 다를 지라도 한순간도 편안해본 적 없다. 입시가 끝나면 취업이 즉시 바통을 이어받는 사회에서 불안은 미덕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평생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하나? 해답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간의 경험이 암시하는 바는 이렇다. 저절로 찾아오는 미래는 없다는 것. "우리는 언젠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면서, 우리의 존재를 번데기 치듯이 지워갔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나비처럼 완전변태 하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처럼 크기만 커지는 불완전변태를 해버렸다"는 감독의 말처럼.
대신 〈잠자리 구하기〉는 우리에게 넌지시 편지를 띄운다. 힘든 상황의 친구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직접 전할 자신이 없어 편지 내용을 내레이션 삼아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감독에게 이제 새로운 친구는 관객들이 아닐까. “아무리 모든 게 무섭고 새로워 보여도, 우리는 그때처럼 같이 버티고 위로해 주면서 살아가자. 우린 서로가 필요해. 그러니까 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어.”
우리에게 찾아오는 미래는 없지만,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과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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