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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달라졌던, 처음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와 〈은우〉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무엇이든 처음은 변화와 약간의 설렘, 그리고 두려움과 함께 찾아온다. 특히나 그게 첫사랑이라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세상이 불쑥 찾아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갑자기 세상은 이전보다 다정하고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곳이 된다. 누군가를 알기 전과 후의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 된다.
2000년대를 코앞에 둔 1999년, 고등학교 태권도부원 주영을 둘러싼 세상은 폭력적이다. 주영은 태권도 대회를 앞두고 증량을 위해 폭식을 하고, 태권도부 코치와 선배들에게 일상적으로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한다.
그런 주영에게 첫사랑의 예감은 경찰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태권도부 선배들에게 린치당하는 주영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장난감에서 나오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다. 선배들이 소리에 놀라 도망간 후에 주영 앞에 장난감 사이렌을 든 예지가 등장한다. 왜 지난번에 사은품 장난감을 받아 가지 않았느냐며.
이후 주영의 어머니가 일하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사회화 프로그램으로 예지가 주영의 집에 온다. 장난감 사이렌으로 자기를 구해준 구원자이자, 서류에 적힌 목표가 잘 죽는 것이라는 예지와 갑작스럽게 시작된 동거는 주영을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예지 역시 소년원 출신이라고 자신을 달리 대하지 않는 주영과의 동거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변화함을 느낀다.
‘나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라는, 잔뜩 움츠러든 주영의 사랑 고백에 답으로 돌아온 담배 맛이 나는 예지의 키스를 시작으로 둘의 관계가 견고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주영과 예지의 사랑은 둘만의 폐쇄적인 천국을 지어 그 안에 자신들을 가둬두지 않는다. 대신에 둘은 모두를 둘러싼 세상을 덜 폭력적이고 조금 더 다정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주영의 어머니부터 시작해서 태권도 코치까지, 어른들은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폭력으로 둘의 세상을 부수려 하지만, 주영은 첫사랑을 원동력으로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지구가 끝장나지 않은 채로 1999년도를 지나 2000년대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는 운석에 의한 순식간의 종말이 아니라 서서히 종말이 다가오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니까, 주영과 예지는 언제라도 약속한 횡단보도 앞에서 재회할지 모른다.
영화 〈은우〉의 주인공 은우도 자신의 세상을 흔들어놓는 첫 떨림을 마주하면서 변화한다. 화장에 전혀 관심 없던 여고생 은우는 급수대 근처에 떨어진 틴트를 주운 것을 계기로 그 틴트의 주인인 다른 반 태은과 가까워진다. 틴트를 시작으로 ‘화장’과 함께 태은이 은우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든다. 은우는 태은과 옷을 바꿔 입으며 도통 입지 않던 교복 치마를 입어보고, 묘한 설렘을 느끼며 태은에게 화장도 받아본다. 교복과 틴트를 매개로 찾아온 태은의 체취와 함께 세상은 미묘한 간지러움이 있는 곳이 된다.
은우의 변화에 친구들은 ‘남친’이 생겼을 거라며 속도 모르고 편견을 내비친다. 친구들의 반응에 변화가 두렵고 혼란스러운 은우는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화장을 지우려 애쓴다.
밤마다 동네 놀이터에서 태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은우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으며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태은은 활짝 웃으며 몰라도 괜찮다고 답한다.
확실한 것은 은우가 태은과 있을 때면 평소와는 다른 자기 모습을 편견 없이 안전하게 꺼내볼 수 있다는 것이고, 체육 시간에 환하게 웃고 있는 태은을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인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은우와 태은을 둘러싼 세상은 아직 서투르지만, 분명하게 서로를 향해 열리며 넓어지기 시작하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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