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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을 딱 세 번만 울리면
〈한국이 싫어서〉와 〈국경의 왕〉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이불을 끌어안고 그 속에 가장 좋아하는 자세로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웅크린 몸 아래 맞닿아있는 땅을 생각한다. 그 위에 누워 밤새 잠을 청한다. 다시, 해가 뜨면 어제와 같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움직거린다. 땅을 통과하는 지하철 구석에서 땅속과 사람 사이를 동시에 통과하고, 다시 또 서로를 지나쳐 거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침에 같은 길을 걸어온 자신을 다시 모른 척 지나친다. 수많은 외면 사이에 다시 이불 속에서 만들어내는 웅크림은 하루 중 가장 큰 움직임이 되기도 한다. 그 미동과 함께 눈을 감고 그리는 세계는 오늘 하루 지나쳐온 세계와 얼마나 다르거나 같을까.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웅크리며 안았던 감정들이 만들어낸 계나(고아성)의 오늘을 따라간다.
〈한국이 싫어서〉가 계나의 오늘을 계나만의 오늘로 두고 싶지 않아 택하는 방식과 시간이 흥미롭다. 2시간의 출근길을 거쳐 다시 2시간의 퇴근길, 그 사이사이 회사, 대학, 부모, 집, 재건축, 7년의 연애와 결혼 같은 단어들이 계나의 오늘에 두터이 끼어있다. 영화는 계나가 택하거나 택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계나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위를 채우는 계나의 독백은 집에 돌아와 추위를 안고 이불 안에서 몸을 웅크리며 떠올렸을 감정마저 상상하게 만든다. 계나의 떨림이 몸을 ‘녹이는’ 것일지, ‘데우는’ 것일지를 생각함과 동시에 영화는 땅에 몸을 꼭 붙이고 누운 계나 위로 오클랜드의 계나를 데려온다. 자주 반복되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교차는 왜인지 대조나 비교보다도 계나를 둘러싼 두 세상 속 공통된 만남, 이별, 선택의 순간들을 보게끔 한다. 특히, 영화는 불안의 순간들이 드리우는 것을 숨기거나 가리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도, 한국에서도 계나가 어렴풋이 자각하는 불안은 스크린을 넘어 다가온다. 우연히 겨울의 서울 길거리에서 마주친 대학 동기 경윤(박승현)이 행복 멘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라던가, 유학원 원장의 남편(박성일)이 지진을 의심하고 불안한 눈으로 연신 다리를 떠는 장면에서는 계나보다도 더 일찍 불안을 지각하게 된다. 곧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왔던 불안은 장례식장과 뉴스 화면에서 계나와 함께 자리한다.
추위를 느낄 새는 없을지라도 만남과 이별은 존재하고, 불안과 걱정은 존재한다. 그렇게 싫었던 추위에 웅크리며 느끼던, 떠나오며 지나쳐왔다고 생각했던, 정착의 욕망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발현된다. 〈한국이 싫어서〉는 그 욕망과 노력, 안정과 불안정 사이의 경계를 나누거나 판단하지 않은 채, 국경을 넘나드는 계나의 움직임을 통해 그 경계를 흩트린다.
영화의 마지막, 계나는 다시 한번 떠난다. 계나의 얼굴이 달라 보인다. 뉴질랜드로 떠나던 공항에서 트렁크의 짐을 연신 빼내던 계나의 모습과 달리, 다시 한국을 떠나는 계나에게는 잘 얹어진 큰 백팩이 보인다. 그 아래로 계나의 손은 가벼워 보인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떠나는 계나의 뒷모습은 꼭 〈국경의 왕〉 속 유진의 모습을 닮아있다.
유진(김새벽)은 영화를 찍으려 유럽에 왔다. 유진이 말하는 유진의 영화에는 동철(조현철)이 나오고, 동철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다 죽는 내용이다. 유진이 설명하는 유진의 영화를 들으며 〈국경의 왕〉에서 앞서 지나온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 역시, 동철이 나오고, 동철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내용이었다. 또 하나, 유진의 영화에는 종이 있었다. 힘들 때 딱 세 번만 울리면, 대충 세 번만 흔들면 마음이 다 알아들을 거라는 말과 함께 동철의 손에 쥐어졌던 종이었다. 유진은 그 종을 스스로 흔들어본다. 세 번 울리자 자신을 유령이라 칭하는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떠나시면 됩니다. 다른 곳으로 멀리. 아주 새로운 곳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답은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시점, 이 종을 세 번 흔들었다면, 아마도 들었을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렇게 유진은 가방을 메고 카메라와 계속 멀어지며 저기 저 멀리, 익숙해진 공간에서 점점 더 먼 곳으로 걸어 사라진다. 동시에 다시 한번, 〈한국이 싫어서〉의 출국장 앞, 계나의 두 번째 인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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