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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진실을 마주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서산개척단>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6. 20.





진실을 마주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서산개척단>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6월 6일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이조훈 감독ㅣ류일용 PD (1박2일 PD)

진행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서산개척단 사건을 마주함으로 인해 느껴진 충격과 동시에, 이러한 사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지 모른다. 잠깐의 고요함이 지나가고 이조훈 감독, 류일용 '1박2일' PD가 참석하고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가 진행을 맡은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이하 진행) : 이제 개봉 2주차를 맞이하는데요, 심경이 어떤지요.

 

이조훈 감독 (이하 이조훈) : 현재까지 흥행성적이 좋지는 않은데요, 한국 사회가 서산개척단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후 관객 분들이 더 많이 보러 오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웃음)

 

진행 : 과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로 인해 오늘 GV가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혹시 류일용 PD가 이 영화의 GV에 참석하는 것이나 서산개척단 문제를 제보했다는 것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웃음) 혹시 주변에 동료들이 이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았나요?

 

류일용 PD (이하 류일용) : 사실 조금 걱정을 했는데요, 아직까지 서산개척단 문제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걱정하실 만한 일은 딱히 없더라고요.(웃음)

 




진행 : 류일용 PD님이 이조훈 감독님에게 서산개척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또 제작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문제를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조훈 감독님에게 전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류일용 :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 문제는 알게 되는 순간 언론인이라면 모두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능 프로그램을 맡고 있지만 언론인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산개척단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혹여나 문제의 심각성이 왜곡되지는 않을지, 예능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적합한지 등 여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이제 피해자 분들의 연세가 많다 보니 하루 빨리 대중에게 이 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조훈 감독님께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이조훈 감독님은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만나게 된 학교 선배인데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남들이 회피하는 어려운 문제를 똑바로 직면하는 사람이에요. 처음에 서산개척단 사건에 대해 술자리에서 정말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바로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더라고요. 4,5년 정도 이 사건의 취재에 끈질기게 매달렸고 그 결과 영화 <서산개척단>을 제작했는데, 이런 부분은 친한 선배이지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진행 : 이 질문의 연장선에서 이조훈 감독님의 작품관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 싶어요. 이조훈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취재로 몇 년간 매달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감독님을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조훈 :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작업실에 있던 선배가 99년에 시애틀에서 진행했던 제3차 WTO 각료회의가 무산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자막 작업을 요청했어요. 자막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다큐멘터리 푹 빠지게 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웃음)




 

관객 : <서산개척단>이라는 영화가 정치적으로 예민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불리해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이들 중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제작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누군가 제작을 방해하는 일이 있었나요?


이조훈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지만관련 내용을 취재하다 보면 박정희 정부까지 이야기가 확장될 수밖에 없어요. 특별한 위협이 존재하지는 않았어요다만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했고증언을 듣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있었어요.

 




관객 : 서산개척단 문제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인터뷰 응한 분들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적극적으로 임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인터뷰를 많은 곳에서 여러 차례 진행한 것 같은데 과정이 어땠는지, 어떻게 피해자 분들의 마음을 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조훈 쉽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유명인사도 아니니 그분들이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다행히 피해자분들이 류일용 PD는 알고 있었어요. 류일용 PD의 아버님이 서산에 오래 사시면서 문제의 농토를 구매한 2차 피해자였고, 그분들과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어요. 두 분의 도움을 통해 서산의 피해자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제일 먼저 구호반으로 활동한 이상범 선생님을 만났는데, 첫 인터뷰 때만 하더라도 본인 얼굴이 잘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뒷모습이 나오게끔 진행했어요. 구호반이라는 위치 때문에 다른 피해자분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분들이 공통적으로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었고 하고 싶은 말을 정말 열심히 하려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사건을 구상하다 보면 모순이나 허점이 생길 때가 있거든요. 실제 사실에 대해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에 직면해서 4-5번씩 진행한 인터뷰를 돌려보면서 진술의 일관성에 대해 검토를 했고, 이전에 이야기 해주지 않은 내용을 찾아내면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면서 디테일을 잡아갔어요.

5년 정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분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제가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등에 피해자 분들과 함께 방문하고 서산개척단 사건과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서 전달했거든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에게 마음을 열어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류일용 : 영화를 본 분들이 댓글을 남기시잖아요. 제가 최근에 댓글들을 모니터링 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못 믿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서산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는 서산개척단 사건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주민들도 모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고, 저는 개척단이라는 이름 자체도 단순히 땅을 개척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진행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이조훈 : 제작하는 데 약 5년 정도가 걸렸고,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어요이 사건은 피해자분들에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또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피해자분들이 스스로 호소문을 썼어요. 정영철 선생님의 경우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23년 만에 글씨를 쓴 겁니다. 또 청와대 앞에서 100분의 피해자들이 모여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어요. 이 모든 과정들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응시하고 잘못된 역사와 국가 폭력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산개척단>이 제시하는 방향이 단순히 피해자 보상으로 사건을 마무리시키는 것이 아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류일용 : 제가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새마을운동의 잔재들이 아직 남아있었어요. 대부분의 국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를 살린 사람,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충청도의 위인이라고 인식했죠. 그런데 최근에 만난 분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 사람은 살렸겠지. 하지만 죽인 사람은 한없이 죽였다.” 이 부분이 <서산개척단>이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근대화라는 과정에서 국가에게 희생을 당했는지 말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야기 해야겠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치적인 관점을 떠나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서산개척단>이라는 영화가 이러한 억울한 역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개척단원의 진심을 모은 이조훈 감독의 <서산개척단>은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것만 같다. <서산개척단>을 만들어낸 그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피해자들의 진심이 있었기에 이러한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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