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 소소대담] 메시지는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 님의 글입니다.
[리뷰] <환절기>: 몰랐던 얼굴과 계절을 마주할 때 (Click)
[인디토크 기록] <환절기>: 너와 내가 겪었을 환절기에 대해 (Click)
오채영: <환절기>라는 영화의 제목이 관객들에게 굉장히 다양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인디즈 분들은 제목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환절기의 온도차로 사람들이 감기를 앓는 모습을 떠올렸는데, 그걸 관계로 옮겨와서 사람 사이의 온도 변화로 마음을 앓게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영지: 영화에서 세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이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없었던 부분이 생기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건데 몰랐던 걸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계절로 말하자면 환절기는 아침이랑 밤이 다르고 어제랑 오늘이 다른, 그런 느낌 말이다.
오채영: 영화를 각자 어떻게 보셨는지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윤영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인물의 상황이 직접적으로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부분이 좀 감동을 줄어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픽노블인 원작도 보았는데, 만화에 맞는 만화적인 상황이 있는 것 같다. 침묵이 지나간다던지, 문어체의 대사들이 만화에서 텍스트로 존재할 때는 자연스럽고 감동을 주기도 하는데 영화로 넘어오면서 그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박마리솔: 영화를 보며 어떤 변주를 기대했는데 나오지는 않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서사로서 이 영화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수연: 전반적으로 안정된 연출과 서사였다. 그러나 영화가 미경, 용준, 그리고 수현 세 사람의 관계에 보다 집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 인물들과의 이야기가 소모적으로 계속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채영: 퀴어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우울하다거나 한 측면만을 다루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이 영화는 미경이라는 역할을 통해서 두 퀴어 주인공의 옆에 있는 중년 여성, 어머니의 모습을 들여다봤다는 것이 좋았다.
이수연: 저 또한 자칫 뻔하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에서 수현의 엄마인 미경이 서사의 중심에 들어가 있다는 지점이 색다른 시도로 보였다. 미경이 엄마이기 때문에 용준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 세 사람 간의 화해를 강요하지 않는 지점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또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지윤호 배우가 부른 도재명 씨의 <미완의 곡>이 흘러나올 때 느낌이 되게 좋았다.
박마리솔: 저 또한 엔딩이 주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임종우: 이 영화가 '환절기'라는 제목을 통해 드러내려고 하는 정서가 희망이라고 느꼈다. ‘어쨌든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어떤 위로에 가까운 것 같다. 연인 관계의 두 사람이 있고 그 외부의 것들은 모두 둘의 관계를 방해하고 억압하는 외적 요소로 작용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게 초창기 독립영화에서의 퀴어서사 전형이라면, 최근 시류의 전환은 그런 이분법을 좀 넘어서서 ‘어떻게 비성소수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근데 그 방법이 너무 좀 친절하더라. 성소수자를 순하고 외적으로 잘생기고 선한 그런 전형으로 다시금 묶어버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그런 불안도 조금 있었다. 어찌됐든 이 변화의 흐름들은 신중하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윤영지: 확실히 퀴어라는 소재를 다룰 수 있는 풀이 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인식 자체도 변해가는 것 같고.
임종우: 영화가 화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누가 누구에게 화해를 청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용준이 미경에게 화해를 청해야 할 일인가를 질문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용준이 화해를 시도해야 할 사람처럼 보여지고 있고, 용준은 그 화해를 건네기 위해서 성매매도 해야 하고, 자살 시도도 하는 등 수많은 고통을 보여줘야만 미경에게 마침내 이해받을 것이라는, 용준에게 놓여진 시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영화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재구성을 해 본 것이지만, 이러한 흐름 자체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 <바나나쏭의 기적>: 남은 날들을 바꾸는 순간의 경험에 대하여 (Click)
오채영: <바나나쏭의 기적>을 관람하기 전에는 이 영화가 빈민가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였던 점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자기 인생에 주체성을 가지게 되는 변화를 지켜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최대한: 예상치 못하게 재밌게 봤다. 영화를 보면서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인데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지 괜히 가슴이 뭉클해져서… 원래 절대 안 그러는데…(웃음) 표현의 방식이 그 사람이 태어난 곳이나 시대에 따라 다를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그들만의 특별한 연대가 느껴져서 좋았다.
박마리솔: 마지막에 합창단이 공연할 때 한국 외교관들이 등장하지 않나. 그 장면에서 왠지 ‘우리나라가 이렇게 까지 해준다’는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어쨌든 같이 노래를 한다는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 같다.
임종우: 되게 특이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도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의 타겟층이 누구인가’라고 생각해봤을 때, 일단 그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었다. 영화의 중간중간에 굉장히 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부모님들 몰래 화장실에서 기도를 드린다던지 하는 종교적인 내용이었다. 아까 언급했던 국위선양의 문제와 종교의 문제들이 영화의 서사에 난입하는데, 그게 감독이 스스로 드러낸 작가적인 선택인지, 혹은 투자 여건이나 자본의 선택인지 궁금하다. 전체적인 방향에는 동의를 하지만, 재현의 방향에 있어서는 공감이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되게 특이하게 다가왔던 영화였다.
최대한: 개인적으로 나는 주인공 김재창씨처럼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에 종교적 색채나 선전성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윤영지: 영화 언어로써 만들어진 영화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TV에 지금 당장 나와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임종우: (종교적인 장면을 담아낸) 그런 장면들이 그냥 그 장면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을 갑자기 마주했을 때 그 전에 있었던 이미지들의 의미까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장치가 되더라. 어쩌면 우연하게 담겼을 수도 있고, 치밀한 계획되었을 수도 있었을 장면들의 의도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슬픈 영화였다. 엔딩씬이 매우 전형적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결국 그러한 경험들이 현실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이 바로 현실이지 않은가. 삶에서도 종종 마주하는 비극을 영화관에서도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환절기’라는 제목과 ‘기적’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닮은 듯 하면서도 되게 다른 것 같다. <바나나쏭의 기적>은 굉장히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환절기>보다 더 절망적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포스터나 제작투자사만을 보고, 색안경을 쓴 채 영화를 보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리뷰] <소공녀>: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Click)
오채영: 마지막 영화는 <소공녀>다. 먼저 여성 감독이 만드는 여성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싶다. 이 영화는 가난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미디어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상한선을 두어 타인의 행복을 제한하려는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바나나쏭의 기적>도 그렇고, <소공녀>에서도 그렇고, ‘가난한 주인공들이 과연 정말로 영화 속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가 찾아가는 인물들 중에는 집이 없는 미소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수연: 대부분의 영화에서 가난을 드러내는 재현 방식에 있어 타인의 가난을 불쌍하고 동정하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들을 많이 배치시킨다. 하지만 <소공녀> 같은 경우는 가난을 우스갯거리로 만든다든지 쉽게 동정하게 만들지 않으려 하는 지점이 탁월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많이 울었다. 미소는 집을 포기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만, 미소가 만나는 사람들은 집과 안정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사실 우리는 미소보다는 미소 주변 사람들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영화는 판타지에 가깝다. 미소의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제 자신이 많이 보이고 가족들도 보이더라. 전반적으로 행복하고 미워하는 영화라기 보단 블랙코미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열심히 싸우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미소는 열심히 싸우면서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나간다. 그게 역설적으로 깊은 위로가 되더라.
윤영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떠올랐다. ‘인간이 소유할수록 소외가 되고, 진짜 나로 존재하는 게 행복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재밌고 쉽게 풀어내는 것 같아서 좋았다. 주인공은 완전히 '존재'만을 보고 달려나간다. 전고운 감독님 인터뷰에서 본건데, 담배 피우는 여자가 스크린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신다. 그런 점도 되게 좋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비약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 읽어 볼 만한 지점은 굉장히 많았다.
임종우: 개인적으로는 <소공녀>가 가진 외적인 맥락들이 굉장히 흥미롭더라. 제작사 ‘광화문시네마'가 그렇다. 독립영화계에서 제작사가 이름을 가지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족구왕>, <범죄의 여왕> 이후 차기작인 <소공녀>를 보며 광화문시네마라고 하는 제작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이 연장이 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떻게 보면 <소공녀>는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영화와 단절되어 있는 부분도 있고, 때로는 비판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광화문시네마라는 제작집단으로 연결되는 부분과 광화문시네마가 내놓은 첫 번째 여성 감독의 영화로써 달라지는 부분들을 집중해서 보고 싶다. 제작집단성은 중요한 개념이지만, 우리는 보통 감독에 대해 조명할 뿐 제작 집단에 대한 고민은 잘 하지 않는다. 광화문시네마가 이 시기에서 가장 활발한 독립영화 집단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고, 네 번째 작품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이전에 나왔던 작품들을 같이 바라보는 시도들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솜이라는 배우의 발견이었다. 이 배우가 앞으로 이 독립영화계 안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 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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