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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글로리데이> : 부끄러운 이 시대의 초상

by indiespace_은 2016. 3. 30.




 <글로리데이줄 관람평

김은혜 | 지금 나는 나의 의지대로 청춘을 보내고 있는 걸까

박정하 | '순수'가 '순진'으로, '약은 것'이 '똑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어른들의 세계

채소라 | 나약한 말썽쟁이들 직면한 너무나 작위적인 세상

김민형 | 무력한 청춘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잔인한 시선

위정연 | 부끄러운 이 시대의 초상

김수영 | 냉혹한 어른의 세계에서 빛을 잃어가는 청춘의 찬란한 나날




 <글로리데이리뷰: 부끄러운 이 시대의 초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어떤 단어는 존재만으로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다. 다른 것과는 대체 불가능하며 오롯이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게 빛이 난다. 나에게 ‘스무 살’이 그렇다. 막연히 어른을 동경했던 10대를 지나 스무 살을 맞이했을 땐 주변 모든 게 반짝였다. 매일 보던 풍경도 그 시절엔 다르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왜 항상 아름다운 것은 충분히 누리기에 너무나 짧은 걸까. 영원히 내 편일 줄 알았던 세상은 금세 본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더 힘들었던 건, 그런 세상과 차츰 타협해가는 내 자신이었다. <글로리데이>는 그와 같은 순간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네 명의 주인공을 따라 보여준다. 갈림길 사이에 선 주인공들과 한 방향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을 지독히도 현실적으로, 끈질기게 담아낸다. 



찬란히 일렁이는 바다 앞에 더 찬란하게 빛나는 네 명의 청춘이 있다. 용비(지수 분), 지공(류준열 분), 상우(김준면 분), 두만(김희찬 분)은 상우의 입대 전날 추억을 만들기 위해 포항 앞바다로 향한다. 영원할 것 같던 기쁨도 잠시, 그들은 한 남자에게 폭행당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정의가 구현되기는커녕, 여자의 거짓말로 네 명은 순식간에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진실’을 파헤치는 일보다 본인의 안위가 더 중요했던 어른들은 죄 없는 네 명을 범죄자로 만드는 데 기꺼이 동조한다. 하물며 부모들은 뺑소니를 당해 의식이 없는 상우한테 죄를 뒤집어씌울 것을 강요한다. 누구하나 제대로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는 어른들의 틈 속에서 청춘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계속되는 압박 끝에 결국 지공과 두만은 용비와 상우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어느새 그들은 그토록 싫어하던 어른들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네 명의 시점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는 거짓과 무책임이 가득한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한다고 암묵적으로 말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세상, 그곳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아무도 본인의 행동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 속에서, 어른들은 이상하리만치 당연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그저 하루빨리 이 ‘성가신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피해가 발생하든 상관없었다. ‘부끄러움’이 실종된 세상 속에서 ‘진실’은 쉽게 둔갑된다. 진실보다는 사실이 중요한 사회. 진심보다는 권력이 우선인 사회. 그것은 비단 영화 속 일만이 아닌, 쓸쓸한 우리네 자화상이다. 부끄러움이 사라져가는 곳에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 그곳에서 우리는 지금 버젓이 살아가고 있다. 현재 <글로리데이>가 ‘매우 현실적’이라는 평을 많이 듣고 있다는 건, 우리가 이미 그런 세상에 적응해버렸다는 반증이 아닐까.



영원히 빛날 줄만 알았던 그 날은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던 ‘용비’도, 마음이 흔들렸던 ‘지공’과 ‘두만’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10년 후 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성장한 어른의 모습일지 아니면 지금의 어른들과 같은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이들이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장의 편안함에 속아 진실을 애써 가리려는 어른의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진실과 진심에 무감각해지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 ‘희망’이란 찾기 힘들어질 수도 있기에, 그래서 더욱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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