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기억하고 추려낸 시간들
SIDOF 발견과 주목 <아들의 시간>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5년 10월 28일(수) 오후 7시 30분
참석: 원태웅 감독
진행: 변성찬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전작 <장 보러 가는 날>(2011)에 이어 원태웅 감독은 다시금 부모님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더불어 ‘명랑 피아노’, ‘전사’, ‘선산’이라는 이름 아래 세 개의 장을 구분하는 동시에 연결고리로 공백을 메우고자 한 감독의 시도가 눈에 띈다. 인디스페이스와 인디다큐페스티발이 함께하는 정기상영회 ‘SIDOF 발견과 주목’에서는 지난 수요일 원태웅 감독의 <아들의 시간>을 감상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변성찬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이하 변): 일단 영화 자체가 두 가지 계기로부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하나가 ‘선산’, 다른 하나가 ‘마을’ 이렇게 두 가지가 영화의 동기인 것 같아요. 제가 궁금한 부분은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라는 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가 결합됐는데, ‘마을’ 같은 경우는 감독님의 전작 <장 보러 가는 날> 후반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였고,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작업해야겠다고 구상을 구체화시키게 된 게 어느 시점인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감독(이하 원): 2010년부터 저희 동네를 찍어왔어요. 2008년 정도부터 저희 집 앞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거든요. 집은 허물어지고, 세입자들이 나가는 광경을 그 때 당시에는 눈 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관심이 가거나 포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이것들을 제가 결코 안 보고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매일매일 소음이 들리고, 자고 일어나면 옆집이 없어지고, 이런 일들이 반복됐죠. 제가 1,2년 살던 것도 아니고 30년 넘게 살던 곳인데 말이에요. 앞집이 없어지니 집 채광이 바뀌기도 하는 등 영향들을 받으면서 2010년부터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2011년쯤에 <장 보러 가는 날>의 편집을 마치고, 아버지께 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으로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2011년 겨울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지점이라고 한다면 이성적인 것보다 감성적인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무언가를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미 사라진 것들을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 공통적으로 공유되어서 이렇게 에피소드로 엮을 수 있었던 거고요.
변: 전작인 <장 보러 가는 날>과 이 작품을 스타일 측면에서 볼 때,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화되고 확대됐다고 할까요. 특히 제 나름대로 이 영화를 5부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나누어 이야기 해 본다면, 프롤로그의 후반부와 3부의 ‘선산’ 에피소드가 결합이 되면 일종의 단편이 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은 퍼포먼스 비디오로 이야기할 만한 성격의 작품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선산을 갈 때부터 어떠한 퍼포먼스를 하고 오겠다는 결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미술학도이기도 하셨으니까, 이 작업 전에 퍼포먼스 작업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감독님 영화의 전반적인 정조와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기도 했던 부분인데, 퍼포먼스의 바탕에 분노의 감정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원: 사실 옛날에는 다루는 매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퍼포먼스들을 해왔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글쓰기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영상도 찍고, 그림도 그리는 등 여러 가지를 번갈아가면서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 하나만 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사람마다 모두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으니까요. 퍼포먼스 같은 경우는 무용 쪽에서 잠깐 퍼포머로 공연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야기하신 분노에 대한 부분은, 이 이야기를 제가 들은 적이 또 있어요. 최근에 제가 화가 한 분을 촬영하고 있는데, 이 분께서 제 영상을 세 번 정도 보셨습니다. 아무래도 본인 역시 작업하시는 분이고, 저도 작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서로의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이 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분노가 있는데 그것을 깊이 묻어 놓고 조금씩 수면 위로 올리면서 스스로 절제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확실히 무언가 ‘화’같은 것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복합적이었던 것 같고요. 개인적인 것도 있고, 주변적인 것도 있는 거겠죠.
변: <장 보러 가는 날> 같은 경우는 혼자 채석장 앞을 바라보다가 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아들의 시간> 같은 경우는 오프닝에 대선 현장 관련 푸티지가 잠깐 나오고요. 굉장히 센 액팅의 퍼포먼스들이 등장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원: 군중을 담고 싶었어요. 저희 아버지의 역사 자체는 전체주의의 역사였고, 그 역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사람들 전체가 다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선 장면을 넣었던 것 역시 집단이 열광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변: 퍼포먼스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짧게 질문 하나 드릴게요. 3부 ‘선산’에 가서야 유골함에 뭐가 들었는지 플래시백 비슷한 방식으로 소개가 되는데요. 무언가 써놓으신 것 같은데 글자는 안 보이더라고요.
원: 아마 28살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떠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고, 당시 저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위하려고, 보셨던 것과 같은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런 것에 대한 내용들이 쓰여 있었고요. 뭔가 꽂혀서 만들고 몇 번 사용했던 거였어요. 그리고 나서는 뭔가 꺼림칙해서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실에 뒀던 거거든요. 그러던 중 이런 작업을 하면서 다시 쓰게 되었어요. 그 때 느낀 것은, 기억이라는 것이 완벽하게 소멸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의 시간>에서도 아들이 선산에 유골함을 묻어놓고 쿨하게 가면 좋을 텐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주는 일이 생기면, 그 후에 그 상처가 완벽히 지워지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 역시 이 인형을 활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객: 영화 중간 중간 나오는 도시의 풍경들을 인서트로 쓰신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촬영본들을 제작하고 편집하실 때 어떻게 분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 장면에 맞는 이미지를 선택했다기보다는 2011년 겨울부터 2013년 가을까지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찍었던 이미지나 소스가 축적되어서 거기서 적절히 추려 넣었던 것 같습니다.
변: 아까도 얼핏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영화의 2부 ‘전사’의 영어 타이틀을 보기 전에 저는 그것이 ‘Pre-history’의 뜻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Old Soldier’더라고요. 퇴역군인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으셨는데, 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어머니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조금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 보러 가는 날>과 연속성이 있는 것 같은데요. <장 보러 가는 날>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귀여운 장면이 마지막에 감독님이 어머니를 ‘엄마!’하고 부르는 장면인 것 같은데,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감정이 담겨 있는 감독님의 대사거든요. 그것과 2부 ‘전사’에서 아들의 카메라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분명 다른 느낌이 있는데 어떠신가요?
원: 제가 아버지와는 대화를 안 한다거나, 어머니랑만 친하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요. 아버지랑도 잘 지냅니다.(웃음) ‘전사’에서는 다른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멀찌감치 담으려고 했습니다. <장 보러 가는 날>에서 그랬으니, 아버지 역시 그냥 으레 또 찍나보다 하고 두셨던 것 같고요. 끝에 어머니를 부르는 부분을 넣은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비유를 들게요. 요새 인터넷 기사들을 보다보면 관련도 없는 배너들이 막 뜨잖아요. 제 영화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하나의 장면이 그런 것들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 부분을 넣었던 것 같습니다.
변: 영화에는 대개 고정되어 있거나, 움직이더라도 유연하게 움직이는 쇼트들이 사용됐는데요. 시작 부분에는 어머님을 쫓아가는 장면에서 굉장히 예외적으로 감독님답지 않게 거칠더라고요. 어떤 의도셨나요?
원: 사실 <아들의 시간>이라는 작품의 40분 버전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이 주가 되는 작품이었고요. 줄거리는 대강 회관에 영어를 공부하러 가는 어머니를 쫓아가던 중 마을 풍경을 바라보게 되는 할 일 없는 30대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만드는 중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몸이 안 좋아지셔서 두 분 모두 병원에 모시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그 때는 그 결과물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의 장면 중 하나가 옛날 캠을 활용해 찍었던 것이라서 손 떨림이 있죠. 일부러 한 건 아닙니다. 아무리 잘 잡으려 해도 좇아가면서 찍으려니까 흔들리더라고요. 후반 작업에서 그걸 보정을 하려다가, 이대로의 다급한 느낌이 맞는 것 같아서 그냥 뒀습니다.
변: 네. 급하게 엄마를 쫓아가는 꼬마의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또 눈에 튀는 쇼트가 옥상의 눈사람 잡은 쇼트인데, 어떻게 찍으셨나요?
원: 영화를 보시면 제 작업실이 등장하는데요. 거기서 기독교 방언 소리가 들려요. 저희 옆집 아저씨가 실제로 매일 오후에 하는 일이시거든요. 아저씨께서 사시는 집이 그 눈사람이 있는 집이에요. 때마침 제가 중고 시장에서 VHS 카메라를 샀고, 화면이 신기해서 찍었던 장면입니다.
변: 나름대로 개인 푸티지를 이용하신 거군요. 또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철거 장면 중에 포클레인 아저씨께서 갑자기 우시는 장면인데요. 연출된 게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연히 잡힌 건가요?
원: 네. 원래 그 장면이 40분 버전의 엔딩이었습니다. 저는 윤리적, 도덕적인 것들까지도 학습되는 게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도 본능 이전에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저씨가 갑자기 그러시는 걸 보고 저게 무슨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건 아저씨가 무지막지하게 다 부숴버리는데, 유독 거기서 그러시더라고요.
변: 프롤로그와 3부 ‘선산’ 같은 경우 퍼포먼스가 두드러진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사실 굉장히 제의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의식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서빈의 졸업식 장면과 참전 기념식 장면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례 장면을 롱테이크로 거의 끊지 않고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 마치 의도되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각각의 행사에서 가장 형식적인 부분임에도 카메라가 가장 오래 응시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생각이셨나요?
원: 일단 아이의 모습과 노인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전체주의의 시작점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고요. 이 영화가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결국 삼대가 걸쳐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잖아요. 기본적으로 한 가정이 역사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부터 성인, 노인까지 대한민국 땅 안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려고 한 것도 있었고요. 그리고 저도 초등학생 때 태권도 학원을 다니면서 국민의례는 꼭 했거든요. 그 때는 의미보다는 말로 먼저 배우다보니 국가관이 자연스럽게 확립이 된 건데, 어릴 때부터 충성을 맹세한다고 하니까 참 묘하더라고요. 전우회 어르신들의 모습까지 그것이 연결이 되니 냉소나 조소라기보다 슬픈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변: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원: 사실 2010년부터 5년 동안은 동네에 파묻혀 있으면서 가족들을 찍어왔는데 요즘은 그런 것에서 조금 벗어났어요. 다른 것들을 좀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충북 제천에 계신 화가 분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부터 3~4개월 동안은 대화만 나누다가, 5월부터는 카메라를 들고 정기적으로 다녀오고 있습니다. 아마 내년 12월까지는 계속 촬영을 할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완벽하게 아물지 않을 상처들. <아들의 시간>은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푸티지를 통해, 이러한 단상들이 결코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고집스레 상기시킨다. 때로는 특정 공간을 통해, 때로는 세대 간의 연결을 통해 드러나는 단상들은 다소 경건한 감상마저 들게 한다. 더불어 그만큼, 다음 작품에서는 감독이 또 어떤 정서를 보여줄지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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