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템포로 창작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디렉터스 컷>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7월 4일(토) 오후 3시
참석: 박준범 감독 | 배우 박정표, 한송희, 김하영, 태인호
진행: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의 글입니다.
7월 4일 토요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박준범 감독의 <디렉터스 컷>의 GV가 있었다. 독립영화 감독이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야기임에도 영화를 만드는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주인공의 내적인 갈등이 더 두드러지는 영화였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박준범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진행: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영화인데 이 작품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가? 또 배우들과의 인연은?
박준범 감독: 자연스럽게 찍게 되었다. 내가 가진 직업을 주인공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의 하소연이나 투정이 되지 않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영화 만들기를 다룬 영화가 많았지만 (영화 만들 때의) 고충보다는 창작자가 겪는 내면적인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는 한 창작자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의 많은 조건들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매체이다. 이상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포기해야 하는 창작자의 딜레마를 차별성으로 두고 찍었다. 박정표 배우와 태인호 배우는 내가 영화 공부할 때 대학에서 같이 작업했던 동기들이다. 그래서 편하게 알고 있었고,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캐스팅 리스트에 우선순위에 있었던 배우들이었다. 연기에 대한 마인드가 좋고, 좋은 배우들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되었다. 김하영, 한송희 배우는 부산 출신이다. 캐스팅 할 때 부산사투리로 찍어야겠다는 결심이 있었기에 사투리의 진맛을 잘 우려낼 수 있는 원조 부산 배우들을 찾았고, 그 중에 가장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을 섭외했다.
진행: 배우들은 연출자는 아니지만 창작자의 입장 혹은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가 새롭게 다가왔을 것 같다. 각각 어떠했는가?
박정표 배우: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인 부산에 가서 찍으니 의미가 깊었다. 부산에서 GV할 때 ‘영화 하는 사람들 성격이 다들 저런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해강’이 고집이 있는 성격이어서 그런 것 같다. 영화는 제정신으로 하기가 힘든 일인 것 같은데, 좋은 의미에서 다 미친 사람들이다. 그 미친 짓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다. 배우이지만 남 일 같지 않았다.
한송희 배우: 고집스러운 창작자를 애인으로 둔 ‘지민’은 ‘해강’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는 역할이다. 내 경우에는 ‘해강’에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김하영 배우: 부산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극단을 하다 보니 배우도 하고 기획 일도 하고 같이 하는데 공교롭게도 PD 역할이 (극단의) 기획이랑 비슷했다. 금전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일 등 역할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연기를 잘 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주환’이란 역할에 대해서 공감을 많이 했다.
진행: 전작들도 같이 했고, 오랜 기간 박준범 감독을 봤는데 어떠한가?
태인호 배우: 영화 출연은 거의 다 했었고, 계속 봐왔는데 이 영화는 오늘 처음 봤다. 사실 약간 지루한 친구이기는 하다. <디렉터스 컷>도 조금 느리긴 하지만 표현이나 구성이나 이런 것들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내서 좋았다.
진행: 실제 감독이 극중 역할 가운데 감독보다 오히려 PD와 닮았다는 생각도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박정표 배우: ‘해강’이 박준범 감독과 성격이 굉장히 다른데 고집은 못지않게 있는 것 같다. 작업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도 하지만 말은 안 해도 굉장히 고집이 있다. 배려가 깊은 점은 PD 모습이랑 닮은 것 같다.
관객: 마지막 장면 볼 때마다 너무 좋다. 궁금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해강’이 촬영감독인 친구에게 심장을 꺼내서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찍었는가? 두 번째는 ‘해강’이 마지막까지 포기 못한 장면처럼 감독도 이 영화에서 포기 못한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박준범 감독: 대답하기 전에 되묻고 싶다. 심장 굴리는 장면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관객: 영화 찍고 난 후였기에 힘을 다 썼고 모든 걸 다 끝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박준범 감독: ‘나의 진정성에는 가식이 없지?’ 라는 질문이었다. 심장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진심이나 진정성의 부분들을 대변할 수 있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질문의 제스처였다. 친구가 심장을 차버리는 건 ‘그건 온전히 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부분이지, 자신을 정당화시키거나 진실했는지에 대해서는 네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제스처였다. 그 갈등이 끝까지 가는 것이다. 내가 찍고 싶었던 장면들은 원하는 대로 거의 다 찍었다. 만족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호흡이 나왔기에 배우나 스텝에게 죄송하다. 이 부분은 항상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진행: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디렉터스 컷> 곳곳에 녹아있다. 이 영화 만들면서는 어떤 것이 어려웠는가? 배우들에게도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박준범 감독: 외적인 환경이 많이 힘들었다. 박정표 배우는 주말 공연이 있었다. 그래서 평일 촬영하고, 서울 올라가서 주말 공연하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꽉 차있던 게 보였고, 그 스트레스로 ‘해강’ 역할을 풀어낸 것 같다.(웃음)
진행: 박정표 배우의 답을 듣고 싶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촬영하기가 힘들지는 않았는가?
박정표 배우: 공연할 땐 공연 생각하고 내려가선 열심히 찍었다. 찍을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 아닌가. 그럼에도 성질 내는 역할이기에 찍을 땐 성질이 났다. 마지막 장면이 힘들었다. 유리를 깨고 들어가야 하는데 영화의 전당 실제 유리를 깨면 안 되니까 설탕 유리를 1~2장 준비했더라.
박준범 감독: 첨언을 하자면 원래는 설탕으로 만든 유리창이었는데, 설탕 유리가 많이 비쌌다. 그래서 실제 유리를 두 장을 준비했다.
박정표 배우: 딱 두 장 했더라. 테스트 때 화분을 던져서 한 번에 못 맞췄는데, 벽에 흙이 낭자해서 스텝들이 닦았다. 그래서 연기고 뭐고 이걸 맞춰야 하는데, 라는 생각뿐이었다. 실제 촬영에서는 희한하게 맞더라. 투수를 할 걸 그랬나 생각했다. 덜 깨져서 한 번 더 던졌는데 정확하게 맞았다.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좁게 뚫려서 발로 차서 깨고, 보면 알겠지만 엉덩이도 추하게 나왔다. 한 번에 깨진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송희 배우: 감독님은 ‘지민’이라는 인물이 되게 지고지순한 느낌이기를 원했는데 내가 가진 원래 성격이나 말투가 그렇지 않기에 거기에 맞추는 게 어려웠다. ‘해강’과 싸우는 장면 찍을 때에도 리허설 때 치고 받는 에너지가 세서 줄여달라고 했다. 그래서 인물의 표현이 조금 어려웠다.
김하영 배우: 영화가 처음이어서 다 어려웠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니까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그런 제약들이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쉬운 게 ‘해강’과 다투고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이 첫 날 촬영이었던 거다. 현장에서 적응을 못하고 있었는데 ‘주한’에게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당황해서인지 굉장히 더웠다. ‘주한’이 입은 티셔츠가 하나 밖에 없는데 땀 때문에 색이 짙어졌다. 결국 중단하고 티셔츠를 선풍기에 말리고 다시 촬영했던 게 기억난다.
관객: 영화 내내 ‘해강’은 다 잘 되지 않는데 반성한다거나 양보를 한다거나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 박준범 감독의 영화를 바라보는 자세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 만들면서 양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는가?
박준범 감독: 사실 함께 작업하는 배우와 스태프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으려고 노력하는데, 상식의 영역에서 위배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독창적인 색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영화 속 내용에서 실제 경험담은 30% 정도밖에 안 된다. 영화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는데, 주인공 직업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하다 보니 나의 이야기로 알고 있더라. 실제 관객 중에서 내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까 배신감을 느꼈다는 식으로 반응한 분도 있었다. (웃음)
관객: 궁금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주인공한테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감독 캐릭터는 짜증이 나고 오히려 촬영감독과 PD가 호인이라서 공감이 되더라. PD 캐릭터는 음식점에서 일을 한다든지 하는 일상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에 반해서 주인공 캐릭터는 전사가 없다. 캐릭터의 설정이나 전사를 생각한 게 있는지 아님 배제하고 간 것인지 궁금하다. 또 하나는 중간에 오즈 야스지로의 클립과 전수일 감독 포스터가 나오더라. 오마주로 나온 건지 궁금했다.
박준범 감독: 캐릭터는 고민해서 구축했다. ‘해강’에 대한 직접적인 전사가 없는 이유는 사실 그 인물이 갖고 있는 전사가 두 명의 캐릭터에 의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강’이 영화를 위한 캐릭터라면 ‘지민’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에 있는 캐릭터이고 ‘주한’은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전수일 감독의 사무실을 빌려서 찍었다. 몸만 들어가서 촬영하면 됐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나 이창동 감독의 <시>는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적인 영화다. 일상적인 정서를 잔잔하게 채워주는 영화다. 이야기를 위해서 삶의 소재를 쓰는 게 아니라 삶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이다. 차안으로 생각한 영화가 <동경이야기>였고, 사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이반의 어린 시절>을 쓰고 싶었다.
관객: 태인호 배우의 팬이다. 박준범 감독과 같이 작품을 한 게 많던데 볼 수 있는 게 얼마 없어서 아쉽다.
박준범 감독: 4,5편 정도를 같이 했다. 같이 하고 싶다고 시나리오 보여주면 기분 좋게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 줬다. 내 시나리오를 좋아해줬다. 기분이 좋았고 사실은 (태인호 배우가) 잘 생긴 줄은 몰랐다.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아우라가 좋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스스로 감수하는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있어서 좋았다. 지나서 알고 보니 잘생겨서 인기도 많더라.
태인호 배우: 박준범 감독이 갖고 있는, 표현하기 서툴러하고 감정을 깊이 삭이는 느낌들이 통해서 작품을 같이하는 것 같다. <디렉터스 컷>은 느리고, 어떻게 보며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박준범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지 알겠다. 관객들이 조금 더 생각하면 숨겨진 감정들을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객: ‘해강’이 왜 영화에 집착하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에 돌을 던져서 들어가는데 그 장면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박준범 감독: 창작하는 사람에게 창작은 현실을 초월한 이상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진정 바랐던 영화를 상황을 쟁취해서 얻어내고 싶은 열망과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해강’의 입장을 대변해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정표 배우: 영화에 집착하거나 연기에 집착하거나 하는 것은 되게 집요하고 정말 정신병에 가깝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싶을 정도로 한다. 세상을 자기 혼자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술 먹으면 계속 그 이야기를 하고 연습실 가서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하는 집요함은 목적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면에 오히려 찌질하게 매달리는 이유가 유리를 깨고 편집해서 나만의 ‘디렉터스 컷’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객: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자존심에 상처 받는 일이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를 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박준범 감독: 살아가면서 인간성이 계속 무너진다. 세상에 배신과 상처를 받지만,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데 기여하는 영화를 찍으면 의미 있고 보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태인호 배우: 박준범 감독이 한 말에 동의한다. 일단 할 줄 아는 게 없다. 어릴 때부터 해왔기에 생각할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아서 하는 거지, 특별한 목표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김하영 배우: 연극을 오래 하면서 연극만이 순수 예술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박준범 감독을 만나면서 조금 달라졌던 것 같다. 만나면서 ‘이 사람 예술가 같다’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슬프더라. 많이 울었는데 그냥 다 멋있는 것 같다. 연극하는 이유가 좀 웃긴 말이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인데,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연극보다는 더 대중적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해보고 싶다.
한송희 배우: 영화는 나에게 제일 재미있는 것이다. 그게 제일 크다. 작업하면 되게 예민해지고 정말 많이 싸운다. 싸우고 고민하고 그런 시간이 되게 짜증나는데 그래도 힘이 생긴다. 독립영화도 어렵지만 사실 상업영화를 하든 드라마를 하든 어떤 작업을 한다는 건 다 어려운 것 같다.
박정표 배우: 쭉 들으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생각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도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안 해봤다. 80년생이라 지금 서른 여섯인데 예전에는 (내가) 잘 되려고 연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또박또박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니까 연기가 자신 있다는 건 죽을 때까지 안 될 것 같고, 정말 잘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행: 다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박준범 감독: 오늘 영화 보러 와주어서 감사하다. 다음 영화 준비 잘 하겠다.
인물과 장면의 의도를 묻는 관객들의 질문에 박준범 감독은 하나하나 자세하게 답했다. 창작자의 고민과 확신, 그리고 이에 대한 믿음을 연기한 배우들까지 <디렉터스 컷>이 가진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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