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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땅에 쓰는 시〉 인디토크 기록: 과거를 지키고 미래를 그리다

by indiespace_가람 2024. 5. 30.

과거를 지키고 미래를 그리다

〈땅에 쓰는 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5월 21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주제 양방언과 함께 〈땅에 쓰는 시〉의 음악 속으로!

참석 정다운 감독, 양방언 음악가

진행 김종신 프로듀서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기록입니다.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한다’는 것은 ‘지상의 모든 인간과 사물의 성스러운 신비를 경험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찬국 교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의 한 구절이다. 정영선 조경가는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자연이라는 도화지에 쓰여 자연의 성스러운 신비를 전한다. 시를 쓸 때, 그녀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손을 거쳐 미래에 재현된다. 당신이 있어, 우리의 미래가 아름답다.

 

 

〈땅에 쓰는 시〉 인디토크 현장. (출처: 영화사 진진)

 


김종신 프로듀서(이하 김종신): 안녕하세요. 저는 〈땅에 쓰는 시〉 제작을 맡은, 프로듀서 김종신입니다. 오늘 특별히 양방언 선생님께서 자리해 주셨고 저희 음악 감독님께서도 와 계시는데요. 저희가 운이 좋게 김선 음악 감독님과 세 편째 같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양방언 선생님 같은 경우는 〈이타미 준의 바다〉에 선생님의 곡을 쓸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있었고, 그거를 계기로 오늘 모시게 되었습니다. 인사 부탁드립니다.

양방언 음악가(이하 양방언): 안녕하십니까. 양방언입니다.

정다운 감독(이하 정다운): 안녕하세요. 저는 〈땅에 쓰는 시〉 만든, 감독 정다운입니다.

김종신: 양방언 선생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오늘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양방언: 감독님과 〈이타미 준의 바다〉를 같이 작업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저한테 너무 감명 깊은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영화를 보며 ‘역시 정다운 감독님이구나! 이렇게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드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설득력이랄까, 영화의 내용이 하나하나 와닿는 느낌이 들어, 너무 잘 관람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해발 1000m 산에 작업실을 만들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20여 년간 만든 음악들은 다 그곳에서 만들었다고 보셔도 되는데요. 산에 살면서 자연의 은혜, 자연의 힘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에 보면, 정영선 조경가님께서 자연의 시간에 대해서 말씀하시잖아요. 자연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하루마다 다르고, 또 일 년마다 다르다고 하시는데, 정말 그래요. 처음 산에 들어갔을 때 저는 ‘아 예쁘다!’ ‘공기 좋다.’ 이 정도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식물의 표정이 달라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또, 일 년이 지난 뒤에, 작년과 같은 곳에서 같은 식물을 마주했을 때 오는 감동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정다운 감독님이 영화 안에 너무 잘 담아내셔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조경이라는 직업에 있어서도, 조경가라는 직업이 이렇게나 깊은 직업이고 조경이 일종의 학문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어요.

김종신: 네, 영화에 대한 칭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타미 준의 바다〉에서 양방언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희의 첫 만남에 대해 소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다운 감독님이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했을 때, 양방언 선생님께 음악을 맡기고 싶다고 하셨어요.

정다운: 양방언 감독님이 재일 한국인이시기도 하고, 제주도와 관련이 있으신 만큼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컷

 


김종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이라는 전시를 올리고 영상 작업을 마친 뒤에 선생님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드려보았어요. 이타미 준이 건축한 제주도 수풍석 뮤지엄의 이야기를 담은, 30초짜리 영상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답이 왔습니다. (웃음) 그렇게 선생님의 음악을 쓰게 되었어요. 그 당시,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양방언: 저는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이타미 준 선생님에 대해 잘 몰랐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까 너무 존경스럽더라고요. 저는 영상 음악을 많이 해봤지만, 의뢰가 들어오는 영상 음악을 하는 것과는 의미와 설득력이 다르더라고요. 재일 교포시니까, 저한테는 선배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제주도의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저는 이런 걸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운명의 힘으로 저희가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운명이 왔구나!’ ‘이분들과의 만남이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이타미 준의 바다〉 때는 운명이라는 생각에 바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웃음)

김종신: 영화 음악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화에서 호암 미술관 희원이 등장할 때, 해금 연주가 나오는데요. 이 부분의 음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양방언: 저는 영화를 보면서 동서양 음악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전통 악기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유의 시원하고 차가운 소리가 서양의 악기와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해금 소리가 영상과 함께 나올 때, ‘해금 소리가 이렇게도 들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상의 장면과 해금 소리를 연결하신 것을 보고,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웃음)

김종신: 좋은 이야기 너무 감사합니다. 잠깐 소개를 드리자면, 이 자리에 저희 영화의 음악을 담당해 주신 기타리스트 정중엽 선생님도 와 계시는데요. 여러분이 잘 아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시스트이시기도 합니다. 이어서 질문드리겠습니다. 저희가 클래식 음악도 많이 사용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음악이 있으실까요?

양방언: 저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 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소리가 특히 좋더라고요. 비올라 다 감바 소리에 해금과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어우러져 표현되는데, 하나에 국한한 음악이 아니라 좋았어요. 여러 악기가 사용되었고, 클래식과 국악을 오가며 표현되었잖아요.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시대를 넘어 통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가 아직도 클래식을 듣는 것처럼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영상과 어우러지는 음악이야말로 이 시대의 음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종신: 경주 한옥 장면에 쓰인 악기죠. 쳄발로와 함께 쓰인, 비올라 다 감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감독님께서 이어서 하실 말이 있으실까요?

 

정다운: 선생님께서 너무 감사한 말씀을 해주셨어요. 과거의 클래식, 그러니까 바로크 시대의 음악부터 우리의 해금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희 영화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영선 조경가님이 늘 말씀하는 것이기도 한데, 과거의 좋은 것,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경관을 어떻게 지금 세대에 맞게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하는가를 늘 말씀하세요. 저희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이와 굉장히 닮아 있어요. 저희는 ‘미래세대에게 바치는 연서’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시대의 좋은 것이 다음 세대에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음악도 클래식을 의도적으로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양방언 선생님께서 이 부분을 너무 잘 짚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어서, 경주 한옥 영상에 사용된 바흐의 곡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저희가 편집할 때, 템포를 맞추기 위해 기존의 곡을 가지고 작업을 해요. 그때 기준이 되었던 곡은 첼로 버전이었어요. 바흐의 원곡은 비올라 다 감바 곡이고, 악기 소리가 너무 좋은데, 연주자마다 속도감이나 느낌이 달라서, 저희가 기존에 작업해둔 편집 템포는 첼로 버전이 맞았어요. 녹음할 때 고민이 되었어요. 제가 고민을 하니 음악감독님께서 두 악기 버전 모두 녹음 작업을 해주셨고, 비올라 다 감바 버전을 듣고는 바로 결정을 내렸어요. 결정하고 나니, 김선 음악감독님께서 현장에서 녹음할 때, 비올라 다 감바의 아우라가 엄청났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또, 쳄발로도 나오는데요. 쳄발로는 엄청나게 큰 고악기라 레코딩을 위해 악기를 옮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엔지니어분들이 장비를 가져가서 녹음을 하신 거고, 연주자분께서 새벽까지 연주를 해주셔서 완성된 곡입니다. 이렇게 저희 영화 속 음악에는 한 곡 한 곡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김종신: ‘모두가 꽃이야’라는 엔딩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들으셨어요?

양방언: 오늘 처음 들은 음악이었어요. 어린아이가 노래하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정영선 선생님의 인생과 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저처럼 음악감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어떤 음악이 나올까’에 늘 집중하게 되는데요.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아, 됐다!’ ‘잘 마무리 지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음색이 가진 소박함이 좋았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컷

 

김종신: 이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관객: 저는 정다운 감독님의 다섯 작품을 모두 보았는데요. 개인적으로 〈땅에 쓰는 시〉가 가장 좋았습니다. 저에게는 반성과 교육의 영화처럼 느껴졌어요. 영화에서 나왔던 장소들이 많이 가 본 공간인데, 무심코 지나친 적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궁금한 점은, 정다운 감독님께서 장소와 건축에 대한 소재를 중심적으로 다루시는데,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또 정영선 선생님이 상을 받으시는 모습을 마지막 시퀀스로 선택한 이유와 크레딧이 올라갈 때, ‘모두가 꽃이야’라는 곡을 선택하신 이유도 여쭙고 싶습니다. 

정다운: 일단, 정말 영광입니다. 제 어린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저는 자연 속에서,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어요. 그러다,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도시에 와서 처음 아이들 앞에 섰던 장면이 잊히지가 않아요. 얼굴이 하얗고 예쁘게 옷을 입은, 저와는 너무 다른 아이들로 보였어요. 높은 빌딩숲 속 공간에 일종의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자연과 건축에 굉장히 예민한 아이로 컸고 또 영화를 사랑하는 아이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연결이었던 것 같아요. 

양방언: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보자면, 저는 오늘 정영선 선생님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또 공감했습니다. 자연의 힘, 자연의 위대함을 자꾸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거의 모든 시간을 산속에서 보내는데, 작업실에서의 시간이 사실 고됩니다. 그때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이 순간의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자연을 보며, 풀리지 않던 문제가 순간, 해결된 적도 있고요. 자연이 음악인에게 주는 힘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정영선 조경가님도 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자연의 힘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시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김종신: 질문으로 돌아가, 정다운 감독님의 말씀에 덧붙이자면, 정다운 감독님은 영화를 공부하고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건축 대학원에도 진학하시면서 영화와 건축에 관한 작업을 계속해서 해오고 계십니다. 질문이 나온,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다운: 저희가 영화를 끝내야 하는, 멈추어야 하는 지점이 왔을 때, 선생님께서 조경계의 노벨상과 같은 상을 받으셨어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특징이기도 한데, 시간이 흐르며 예상하지 못한 일들도 생기고 저희는 다행히 그 순간을 담을 수 있었던 거죠. 그전에도 선생님이 계속 후보에 드셨는데, 저희가 영화를 마칠 때쯤 딱 상을 타시게 되었고, 이 장면은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고민은 많이 되었어요. 상을 타시는 장면을 에필로그로 꼭 넣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한국적 경관의 현대적 완성을 하신 선생님께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꼭 전달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경의 시제는 미래입니다. 선생님은 항상 미래를 보고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더 좋은 것을 전달해야 한다고 가르치세요. 조경의 매력 또한 한 계절, 적어도 일 년이 지나야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알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조경에서의 시간성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사계절의 구성과 흐름을 흩뜨리는 것은 아니겠다는 결론에 젤리코상 수상 장면은 에필로그로 넣었습니다. 더 멋지게 편집하기보다는 시간성의 흐름 구조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장면이 뒤에 들어간 이유는 ‘우드랜드 묘지공원’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드랜드를 꼭 넣고 싶었어요. 실제로 선생님께서 묘지 관련 작업을 많이 하시기도 했고요. 묘지공원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일한 곳이고, 선생님께서 평생에 걸쳐, 꼭 가고 싶어 하신 곳이었어요. 선생님이 언덕을 올라가시고 비석들을 보시며, 미소 지으시는 느낌이 자연스러운 엔딩으로 느껴졌어요. 

 

김종신: 사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서 감독님이 혼자 카메라를 들고 찍은 장면이기도 해요. 근데, 저는 선생님이 비석들을 둘러보시는 그 장면을, 그 누가 와도 감독님만큼 아름답게 담아낼 수는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묘지 장면은 제가 두고두고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선생님께서 상을 받는 장면 또한 담담하고 담백하게 잘 담아내셔서 좋은 엔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질문이 있으시면 받겠습니다.

관객: 영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저는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제가 찍은 장소가 영화에 많이 나와서 더 애정이 갔습니다. 감독님께서 영상으로 좋은 장소들을 많이 담아 주셨는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장소가 있다면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김종신: 아산병원 이야기하시는 분도 되게 많거든요. 양방언 감독님은 아산병원 장면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양방언: 저는 병원에 근무를 짧게나마 했을 때, 환자분들과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받는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느꼈어요. 그러한 영향을 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병원 앞에서 직접 본 적은 없었어요. 영화를 통해 그런 공간을 마주하였을 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컷

 

 

관객: 영화 제목을 〈땅에 쓰는 시〉라고 하셨는데, 타이틀의 워딩이 너무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정다운: 정영선 선생님의 철학이고, 처음부터 제목이었습니다. 저는 오프닝 시퀀스를 굉장히 공들여 찍는 편입니다. 〈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땅의 쓰는 시〉 모두 오프닝 시퀀스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는데요. 오프닝 시퀀스에 무엇에 대한 영화인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제목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집어넣고자 합니다. 나바호족의 노래부터 시작하는 이유도 자연과 삶에 대한 찬미에 대한 시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대동여지도가 나오는데요. 선생님께서 '땅에 쓰는 시'라는 당신의 철학을 설명하시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실 때, 처음에 대동여지도부터 시작하세요. 제주도에서부터 꽃이 피듯, 선생님의 작업이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선생님께서 “평생을 우리 국토를 쓰다듬으시는 마음으로 사셨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데 그것을 형상화한 시퀀스입니다. 

김종신: 아까, 양방언 선생님이 이 영화가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께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영화를 11번 관람하셨다는 분이 계셨는데, 간호사로 일하는 분이셨고 영화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양방언: 이 영화 자체가 주는 위로가 있을거라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정영선 조경가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 하나하나가 정말 영화 같더라고요.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무게가 있다고 느꼈어요. 자연 가까이에서 평생을 산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교육에 비유하자면,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자기의 현실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는 것이 자연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느꼈어요.

정다운: 저도 은유적인 생명력이 들어간 예술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읽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컷

 


관객: 프레임 안에 여러 가지 자연환경을 아름답게 담아주시고, 음악을 통해 프레임 밖의 환경들까지 전달해 주셔서 너무 잘 보았습니다. 혹시 프레임 안에 모두 담아내지 못해 아쉬운 공간이 있을까요?

김종신: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제가 대신 대답하자면, 사실 아쉬움이 남지 않는 곳이 없죠. 아름다운 경관을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담는 일은 감독에게 굉장히 큰 부담입니다. 오늘 질문을 통해 그 어려움을 읽어주셔서, 감독님이 감사하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양방언 감독님께 오늘 함께 한 소감을 물으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양방언: 앞에 말씀드렸듯, 너무 감명 깊게 본 영화였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를 연결하는 조경가의 역할을 알게 되었고, 인간이 자연에게 많은 위로를 얻는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였습니다. 요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자연에게 많은 것을 얻고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데요. 우리에게 자연의 가치를 전달하는 분이 계시다는 건 참 감사할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도 좋은 영화에 많은 응원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다운: 갈수록 이런 자리가 귀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문화 생태계가 변화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데요. 오늘 이 공간에 자리해 주시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성을 느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는 정말 큰 응원이에요. 만약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때가 온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존재했음을 끝까지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저희의 오늘보다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서로 마음을 모아, 열심히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종신: 오늘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늦게까지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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