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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의미
〈여행자의 필요〉와 〈겨울밤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여행은 기존의 삶과의 단절을 동반한다. 여기를 떠나 저기로 갈 때 우리는 속박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마주하기도 한다. 〈여행자의 필요〉가 삶을 여행하듯이 사는 이리스를 통해 현재의 순간을 조명한다면, 〈겨울밤에〉는 한 부부가 과거 인연이 시작되었던 여행지를 찾으며 과거를 조우하고 현재의 상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리스(이자벨 위페르)는 프랑스에서 온 여자다. 근린공원에서 피리를 불다가 인국을 만나 그의 집에 산다. 인국의 권고로 두 명의 여자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여행자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돈과 지낼 곳이라는 흔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이리스에게 그 둘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원하는 건 막걸리, 그리고 때때로 흙을 밟으며 사는 것이다. 그는 질문을 통해 상대에게 불어 문장을 알려주는 수업을 한다. 하루 동안 이어진 두 번의 수업에서 두 여자를 만나 같은 구조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연주 중에 느낀 감정을 질문했을 때 두 여자는 행복감과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결국 충분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짜증을 털어놓는다. 이리스는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는 자는 누구냐는 질문을 던진다. 비석을 보며 두 여자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사랑했으나 충분히 아름답지 못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본인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두 번의 상황 속에서 이리스는 여자들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항상 자신으로서 현재의 아름다움에 충실하다. ‘살아있을 때 아름다웠으면 된 거 아니냐’는 그의 반문이 그가 가지는 가치관이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라는 인국 어머니의 조언은 이리스에게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마주치는 순간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그가 이 여행, 내지는 방랑하는 삶 속에서 가지는 태도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그가 자꾸만 마주치는 윤동주의 시 속 구절과도 닮았다.
반면 〈겨울밤에〉에서 여행은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이다. 춘천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은주(서영화)는 휴대폰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은주와 흥주(양흥주)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과거에 있었던 것이 지금은 없어졌음을 확인한다. 각자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그들은 한 쌍의 남녀와 교차한다. 과거의 그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커플은 부부에게 현재 상실된 것들을 지속해서 상기시킨다. 커플에게는 로맨스였던 얼음이 은주의 발아래에서 부서지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사라졌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이 풀릴 때까지 춘천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현재의 의미를 찾는 것, 또는 현재에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어떤 것이든 여행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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