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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물비늘〉인디토크 기록: 위로 발견하기.

by indiespace_가람 2023. 12. 20.

 

위로 발견하기.

〈물비늘〉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9일(토) 오후 3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승현 감독, 김자영, 홍예서 배우

진행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기록입니다.

 

 

임승현 감독의 마지막 인사를 서두로 가져와 보고 싶다. “주변에 놓인 사람들, 동물, 혹은 식물, 아니면 내리는 눈처럼 많은 것들로부터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들 주변을 살피시면서 위로와 사랑을 발견하셨으면 좋겠다.” 〈물비늘〉에는 상실에 대한 슬픔으로 허우적거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떠나간 이의 환상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인물들은 자주 자신의 죄책감 속으로 침잠한다. 영화는 이들을 그 자리에 놓아두지 않고 서로 마주 보게 한다. 이제 이들은 떠나간 이와 동시에 서로를 떠올릴 수 있고,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삶과 애도를 함께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물비늘〉을 만든 이들과 관객이 마주한 시간을 여기에 남긴다. 잃은 이들을 함께 생각하는 우리 서로를 발견하기.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하 이화정): 작년에 감독님의 전작 〈홈리스〉(2020)가 개봉했다. 이어서 올해 〈물비늘〉을 선보이게 됐다. 개봉 이후로 관객분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계신다.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임승현 감독 (이하 임승현):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에 개봉을 맞이했다. 우리 영화의 포스터가 극장에 걸려있고,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러온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신기하다.

 

이화정: 〈홈리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청년 세대와 독거노인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짚어냈다. 이번에는 결이 달라진 것 같다. 구조의 문제를 다루기보단, 인물에게 오롯이 집중한 채,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무척 사실적으로 느껴졌기에,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녹아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어떻게 〈물비늘〉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임승현: 〈홈리스〉는 대학원 졸업작품이었다. 〈홈리스〉의 시나리오 이전에, 〈물비늘〉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원래는 ‘정선’이라는 제목이었고, 지금 완성된 영화와는 결이 다르긴 했다. 그때는 죄의식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물에 빠진 적이 있다. 나를 보트에 태웠던 부모님께서 그해 여름을 많은 죄책감 속에 보냈다. 항상 나의 기억의 일부분을 끄집어내어 시나리오를 쓰는 편이다. 다뤄보고 싶던 주제 의식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엮어서 집필하게 됐다.

 

이화정: 〈물비늘〉은 살아남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고, 그들의 책무에 대한 이야기다. 죽은 수정 주변으로 많은 인물이 존재하는데, 왜 하필 예분과 지윤이 주인공인 건지 궁금했다. 둘은 서로 피할 것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둘의 눈빛이 부딪힐 때, 둘의 감정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어떻게 이 둘을 마주하게 할 생각을 했나.

 

임승현: 시나리오 초고에서는 현경(김현정 분) 캐릭터도 적극적으로 드러났고, 예분이 상견례장에서 깽판을 치는 장면도 있었다. 옥임(정애화 분) 캐릭터에게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주어졌다. 각색을 거치며 예분과 지윤에 집중하게 됐다.

 

이화정: 주어진 인물을 찰떡같이 연기한 배우들을 보며 그들을 ‘건져냈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수많은 배우 중에서 어떻게 이들을 찾아냈는지 궁금하다. 김자영 배우님은 한국 독립영화계의 ‘고모’이지 않나. (웃음) 조금만 뭐라고 하면 바로 욕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고모를 많이 맡으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맡게 되었다.

 

김자영 배우 (이하 김자영): 먼저 나는 옛날로 따지면 할머니 나이가 맞다. 그래서 매번 그런 역할이 들어오는 건 이상하지 않다. 단편 영화로 영화 연기를 시작했고, 〈물비늘〉이 첫 장편 주연이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참 녹록지 않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염습사라는 직업과 알코올 중독, 익숙하지 않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예분’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보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이화정: 관객분들의 소감은 이따 들어보기로 하겠다. 옥임 역을 맡은 정애화 배우님이 할머니 연기에 대한 힌트를 좀 주셨나.

 

김자영: 아니요. 그냥 각자도생. (웃음) 물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이화정: 김자영 배우님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감독님께 김자영 배우님과 함께하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다.

 

임승현: 단편 영화를 정말 많이 본다. 영화제에 가면 항상 모든 단편 섹션을 보는 걸 좋아한다. 김자영 선배님을 볼 때마다, 정말 맡은 캐릭터 자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관심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청춘과부〉(주혜리, 2016)라는 굉장히 좋은 단편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에서는 굉장히 귀엽게 나오신다. 또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김소형, 2019)라는 영화에서는 일본인 손녀와 함께 하는 할머니로 나오시는데, 그 영화를 보고 할머니 역할을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프러포즈를 드렸다.

 

이화정: 홍예서 배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김자영 배우님과 함께 연기하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홍예서 배우 (이하 홍예서): 〈물비늘〉 이전에는 대선배님들과 연기할 수 있는 경험이 없었다. 영광이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호흡하고 연기를 주고받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장이 너무 좋았다. 촬영장에서 김자영 선생님 얼굴을 보면 정말 ‘예분’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지윤’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연기하고 계실 때도, 감독님 옆에 붙어서 화면을 계속 봤다.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촬영 내내 배워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화정: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도 계속 예분처럼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시던가.

 

홍예서: 완전히 캐릭터에서 벗어나 계시진 않으셨다. 자영 선생님과 인터뷰를 함께한 적이 있다. 그때 촬영에 들어가지 않고 있을 때도, 역할의 모습을 조금 가지고 있어야 연기하기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계셨던 것 같다. 그래도 완전히 그러셨던 건 아니고, 카메라 밖에서는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이화정: 두 캐릭터의 팽팽한 긴장감이 〈물비늘〉을 끌고 나가는 동력이다. 김자영 배우님이 가지고 있는 노련함과 홍예서 배우의 신선한 연기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홈리스〉에서 배우들을 발굴하셨던 것처럼, 〈물비늘〉에서 홍예서 배우라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구를 발견하신 것 같다. 캐스팅 과정을 듣고 싶다.

 

임승현: 200여 명의 아역 배우 리스트를 받았다. 그중에서 이미지에 맞는 분들을 선택해 1차 오디션을 진행했다. 2~3일에 걸쳐 많은 분들을 만나 뵀는데,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 순서가 홍예서 배우였다. 쪽대본을 드리며 오디션을 진행했다. 지윤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잘려있는 쪽대본이었다. 예서 배우는 그것만 읽었을 뿐인데, 거의 95% 정도의 싱크로율로 인물을 파악하더라. 그래서 많이 흥분했었다. 그때 큰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 3차 오디션까지 진행한 뒤 캐스팅하게 됐다.

 

이화정: 예서 배우님은 감독님이 흥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

 

홍예서: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는데, 회식 자리에서 조연출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화정: 현장에서 두 분께서 예분과 지윤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셨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자영: 촬영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았다. 극중 인물이 친한 관계는 아니지 않나. 각자도생했던 것 같다. 예서 배우가 워낙 면밀하게 잘한다. 내가 선배라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미리 말하지 않은 상태로 연기를 하고, 반대편에서도 받아치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감정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신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리 합을 맞추지 않는다.

 

이화정: 그런 과정에서 인물들 간의 팽팽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김자영: 알게 모르게 사람은 자신이 편한 쪽으로 상대를 주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상대 배역에게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를 지양하는 편이다. 가끔은 친한 관계 때문에 연기에서 손해를 보게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의논해야 할 것이 있으면 감독님을 찾아간다. 감독자의 이야기를 안 들으면 욕심을 내게 된다. 그러면 배우가 캐릭터보다 더 튀어 보이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기에, 다른 배우와 먼저 연기에 대해 협의하지는 않는다.

 

이화정: 예서 배우님도 첨언해주실 것이 있나.

 

홍예서: 사전에 자영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던 것 같고, 현장에서 감독님과 셋이 합을 맞췄던 것 같다. 함께 의견을 많이 냈었고, 다행스럽게도 감독님이 그리는 그림과 배우 각자가 그린 그림이 일치했었다. 그래서 굳이 무언가를 사전에 협의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잘 맞는 부분이 많았다. 어렵게 연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이화정: 앙상블상이 있다면 주고 싶을 정도의 연기였다. (웃음) 이제 감독님에게 다시 질문해 보겠다. 〈홈리스〉때부터, 영화의 결을 따라가면서도 장르적인 특징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상황을 공포스럽게 바라보게 만드는데 주특기가 있으시다고 생각했다. 죄책감과 죄책감이 맞부딪힌 순간을 내면의 층위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공포로 장면화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임승현: 나는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영화에서 느낄 때, 그걸 영화적 체험이라고 받아들인다. 장르적인 장치들이 자아내는 효과는 현실에서 쉽게 느끼지 못하는 부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영화를 찍거나 시나리오를 쓸 때, 미스터리나 서스펜스의 요소를 넣으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물비늘〉의 시나리오는 선형 구조였지만, 편집 과정에서 지금의 순서로 바꿨다. 촬영할 때도 점프 스케어를 넣어보자고 생각했고, 촬영 감독님과 함께 고민해서 지금의 수영장이나 장롱 장면이 나왔다.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부분이 걷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화정: 말씀하신 장롱 앞에서의 장면 같은 경우, 공포 영화의 관습들을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감독님의 역량으로는 여기서 더 나갈 수 있지만, 어떤 선에서 타협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임승현: 〈홈리스〉때는 시나리오를 쓰며 공포 영화의 장치를 많이 썼다가 하나씩 뺐었다. 이번에는 아예 드라마로 시나리오를 쓴 이후, 장치들을 추가한 케이스다. 훨씬 공포스럽고 요란하게 찍을 수 있는 장면들도 많았지만, 그러면 어떤 선을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게 들어가는 순간 영화의 진행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이화정: 예분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큰 인물이다. 수정의 마지막 순간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계속 강으로 나간다. 김자영 배우님은 어떤 마음으로 예분을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예분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 있다면, 배우님은 어떤 장면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김자영: 예분은 술을 마시고 손녀에게 상스러운 욕을 한다. 그날 수정은 사고를 당한다. 시신을 거두지도 못하고 실종된 상태가 지속된다. 예분은 강에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수정에게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심정이었지 않을까. 자학하는 심정일 텐데, 예분은 자학이라고 생각도 못할 것이다. 실종자의 가족의 입장으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너무 답답할 것 같다. 보통의 애도는 시신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나. 예분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데 그걸 할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을 것 같다.

 

이화정: 자기 몸을 학대하는 장면도 있지 않나. 지윤이 그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배우님이 예분을 바라 보았을 때 조금 극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연기를 하며 자기 몸을 해치는 예분의 마음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궁금하다.

 

김자영: 예분이라는 인물의 성격으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노출을 해야하는 것이기에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장면이 꼭 필요한 이유가 궁금했다. 지윤의 시점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

 

임승현: 예분이 본인을 자책하는 것은, 사실 예분만 아는 것이다. 그게 지윤의 눈을 통해서 보여지길 바랐다. 이 사람이 죄책감으로 본인을 탓하는 순간이 포착되기를 바랐다. 자영 선배님께 레퍼런스를 보여드렸다. 〈다빈치 코드〉(론 하워드, 2006)의 장면이었는데, 거기서는 타이트한 쇼트라 카메라가 인물 가까이에 붙어있다. 그렇게 촬영에 들어갔는데, 현장에서 플레이백을 보시고 자영 선배님이 가짜인 게 티 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바로 더 넓은 화각으로 촬영할 수 있게끔 준비해 주셨다. 감사했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이화정: 예분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런데 지윤을 옭아매는 죄책감은 조금 더 복잡한 것 같다. 어쩌면 자기가 수정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더 강한 죄책감이 있는 것 같다. 예분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본인을 알고 있음에도, 말할 수 없어 헤매는 사람이다.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홍예서: 지윤은 사고 이후 본인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고, 수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윤이 수영을 계속하는 이유도, 수정이 나가려고 준비했던 대회였기에 못다 한 수정의 꿈을 이뤄주려는 마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죄책감과 상실감을 잊지 못하고, 또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기에 어떻게서든 수정이를 위한 선택을 계속했을 것 같다. 지윤도 사고의 생존자이자 피해자이지 않나. 그런데 그것도 망각한 채로 오로지 수정이 죽음에 이르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지쳤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수정이에게 정신이 팔려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사람으로 지윤을 해석했다.

 

이화정: 지윤이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를 염습하러 왔을 때, 예분은 괴로운 마음이기에 염습 의뢰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지윤도 마찬가지로 괴로운 마음임에도 꼭 염습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둘 간의 다른 모습이 보이는 순간이 마음에 세게 다가왔다. 그 장면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셨는지.

 

홍예서: 죽은 아이에게 수정이가 투영된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마저도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그렇게 애원했던 것 같다.

 

이화정: 그 장면 이후로 수정이 떠나가는 환상이 나오지 않나. 〈물비늘〉은 적대하던 인물들을 마주 보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끝나는 영화다. 관객분들의 감상이 궁금하다.

 

관객: 영화에서는 예분에 의해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지윤이는 언젠가 예분에게 진실을 고백했을지 궁금하다.

 

홍예서: 지윤이가 그날의 진실을 말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아마도 본인이 입 밖으로 그날의 기억을 내뱉는다면, 정말 자신이 수정이를 죽인 것처럼 될 것 같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찍이 이야기할 다짐을 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지윤도 내적으로 성장한다면, 결국 예분과 현경에게 그날의 기억을 고백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화정: 그래도 예분은 지윤을 미워했을 것 같다.

 

김자영: 그렇겠다. (웃음) 그래도 지윤이는 고백할 것 같다. 예분은 처음에는 노여워하겠지만, 결국 지윤의 입장을 헤아려서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하다.

 

임승현: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는 것 같다. 지윤은 고백의 타이밍을 뺏긴 거다. 사실 지윤은 그날 저녁에 고백할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선수를 뺏긴 거라고 생각했다. 예분이 지윤을 몰아붙일 때는 당황스러움에 잡아떼기 시작한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날 저녁에 예분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지윤은 고백했을 것이다.

 

 

영화 〈물비늘〉 스틸컷

 

 

관객: 김자영 배우님께 질문드리고 싶다. 염습사의 업무를 어떻게 연습하셨는지 궁금하다.

 

김자영: 장례식장에서 염습하시는 분께 현장에서 순서를 배워 파악했다.

 

임승현: 촬영하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염습 과정에 대해 파악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의 무게를 가지고 염습을 흉내 내는 것은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PD님이 대신 수의를 입고 누워있었다. 직접 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장례식장 사장님께 도움을 받았다. 옆에서 코칭해주셔서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이화정: 어떻게 염습사라는 직업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임승현: 〈역귀〉(2016)라는 단편영화를 찍었다. 그때는 표면적으로만 다뤘던 것 같아서, 제대로 다룰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비늘〉의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니, 염습사라는 직업이 어울릴 것 같았다. 매주 몇 구의 망자를 보내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정작 자기 손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담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몇 번 겪지 못할 공간이 어떻게 관객들에게 전달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화정: 정말 잠깐 나오는 약국 약사분이 누군지 아시는 분 계시나. 옥임 역의 정애화 배우와 함께 〈갈매기〉(2020)를 만든 김미조 감독이다. 〈물비늘〉의 프로듀서로 참여하셨다. 어떻게 두 분이 함께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임승현: 김미조 감독과 대학원 동기다. 저희 둘 다 장르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친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에 〈물비늘〉의 시나리오를 출품할 생각인데 함께 기획자로 임해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고, 흔쾌히 함께해주었다. 지원사업 면접도 함께 봤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일도 함께했다. 김미조 감독의 차기작을 제가 함께하지는 않지만,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피드백을 나누기도 했다. 계속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화정: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지.

 

홍예서: 〈물비늘〉은 물론 마음 아픈 이야기이지만, 그렇기만 하지는 않은 영화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 들여다보면 무척 따뜻한 영화다. 관객분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또 좋은 기회로 관객 여러분들을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다.

 

김자영: 인생의 화두는 사랑, 그리고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을 잃는 일은, 어느 순간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비늘〉이 유쾌하고 재밌는 영화는 아니지만, 마음 안으로 침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영화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영화 봐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모두 행복하시길 바란다.

 

임승현: 물비늘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런데 속뜻은 ‘물 위에 비치는 햇살의 모양’이더라. 이 영화도 날카롭고 차가워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작은 위로를 전달하고픈 마음으로 만들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주변에 놓인 사람들, 동물, 혹은 식물, 아니면 내리는 눈처럼 많은 것들에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들 주변을 살피시면서 위로와 사랑을 발견하셨으면 좋겠다. 영화 봐주셔서 감사하다.

 

이화정: 따뜻한 말이었다. 오늘 영화가 좋으셨다면, 주변 많은 분께 〈물비늘〉을 전파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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