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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비닐하우스〉: 앙상하게 드러난 존재의 감각

by indiespace_가람 2023. 8. 10.

〈비닐하우스〉리뷰: 앙상하게 드러난 존재의 감각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자해인지도 몰랐어요.”

 

카메라의 시선은 제 머리를 쳐대는 문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천천히 줌아웃하며 비추는 풍경은 다름 아닌 비닐하우스, 문정의 집이다. 바스락거리는 천막 아래 우유 박스가 어지럽게 쌓여있다. 박스 위 깔린 장판은 도드라진 바닥 균열이 느껴질 정도로 얇아 보인다. 허름한 골조 위 단정하게 놓인 이불과 베개. 문정의 침대다. 깡마른 철골이 버티고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문정은 단잠에 든다.

 

 

영화 〈비닐하우스〉 스틸컷

 

 

문정은 돌봄 노동자다. 치매 환자 화옥과 시각 장애인 태강 부부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관객 눈에 그는 바보같이 순박해 보인다. 화옥이 문정의 얼굴에 침을 뱉을 때도 웃음   잃지 않은  화옥을 달랜다. 비닐하우스 대문을 틀어막고   일에 바쁜 타인을 바라볼 때도 문정은 싫은 소리   하지 않는다. 그러한 문정을 알아보기라도 하듯, 마음 모임에 나간 그에게 발달 장애인 순남은 원치 않는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순남이 부담스러워 모임을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문정은 길을 걷는 순남에게 차를 태워주고 집에 놀러 오라 한다. 하지만 호의와 상관 없이 세상은 문정을 거칠게 대한다. 화옥은 문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며 귀가 아프게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집에 들어가는 문정을 발견하자 타인은 대뜸 역정부터 낸다. 문정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남편과 이혼  소년원에 수감된 아들, 치매 환자로 요양 병원에 입소한 문정의 어머니까지. 숨이  막히게 쫓아오는 현실에도 문정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 마냥 희미한 미소만 짓는다. 자신을 짓누르고 침범하는 모든 것을 거절하지 못한 채, 느끼지 못한 자해 같은 나날이 계속된다.

 

문정의 변화는 아들의 전화  통으로부터 비롯된다. “나 삼촌  가기 싫어. 엄마랑 살고 싶어.” 하루걸러 하루를 보내던 문정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아들과   있는 보금자리를 트는 것. 문정의 결심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가 모성애 따위의 동인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정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움직인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감각, 그리고  순간을 지켜내기 위해 문정은 미래를 그리기 시작한다.  집으로 상징되는 행복의 도상을 쟁취하기 위해 형식적 웃음이 아닌 대답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행동의 결과가 나에게 필요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는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비닐하우스〉 스틸컷

 

 

이솔희 감독은 사회 여러 조각으로부터 날실을 뽑아 촘촘히 영화를 직조해 낸다. 수도권에 거주하지 않는 문정이 이혼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탈시설  실질적 자립에 실패한 발달장애 3급 순남, 시력을 잃고 삶의 주체성을 잃은  문정의 도움에 의지하는 태강까지. 영화는 노인, 돌봄 노동 여성, 장애인 같이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고 자신의 경계가 존재할 것이라 전제되지 않는 사람들의 열망을 조명한다. 그러나 영화는 차갑다. 뜨겁고, 처참해 보이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음에도 카메라는 냉정하다. 느긋하고 담담하게,  절정에 이르기  커트. 중요한 순간 전환돼 버리는 화면은 과잉될  있는 감정을 예방한다. 대신 관객이 비집고 들어갈 이야기의 틈을 제공한다. 감정이 아닌 맥락과 상황만 전달한  공감과 이입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물음표가 가득 찰 무렵,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문정의 투박한 숨이다. 조용하게 자신을 해하던 문정은 이제 부산스럽게 무언가에 몰두한다. 비닐하우스를 떠나 자신의 공간을 구획하면 문정은 다시 고요해질 수 있을까. 삶이 자해임을 눈치채버린 지금, 문정의 생기 있는 표정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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