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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곁의 어른, 선생님에 주목하며
〈비밀의 언덕〉과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이지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비밀의 언덕〉은 한 초등학생 아이의 인정욕구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분투를 다룬 만큼 성장영화라고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벌새〉와 〈우리들〉, 그리고 〈남매의 여름밤〉까지 성장영화의 계보를 쌓아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십 대 여성의 이야기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그 시절을 겪으며 어른이 된 현재의 우리들을 웃음 짓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며 이제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비밀의 언덕〉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여러 성장영화들의 계보에 대해서는 씨네21 속 소은성 평론가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학교와 가족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중요한 통로로 작동한다. 아이는 그 속에서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며 삶을 조금씩 배워간다. 재미있는 지점은 중심인물의 곁에 항상 존재하는 선생님이라는 어른 또한 아이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영화에서 아이와 교류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문승아)의 5학년 담임으로 등장하는 애란(임선우)은 첫 등장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다. 지각한 담임 선생님 대신 교장 선생님이 명은의 반에서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고 그 모습 뒤로 옷매무새를 고치며 운동장을 빠르게 가로질러 오는 애란이 있다. 애란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영화 내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매번 지각하는 것과 달리 애란의 옷차림은 허름하지 않다. 신경써서 화장을 하고 악세서리를 착용하고 등장하는 것이다. 학교에 갈 준비를 완벽하게 하느라 늦은 것인지 혹은 준비를 마치고도 집밖을 나서는 것을 머뭇거려서인지 영화에서 애란의 심중이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애란은 또한 명은이 반장이 되어 낸 아이디어를 자신이 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장 선생님의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는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느라 지각한 것이 아니냐며 농담식으로 말하는 교장 선생님의 칭찬을 수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상을 포기하려 하는 명은에게 이유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려다 결국 맞춤법을 고쳐준 게 누구냐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훌륭하거나 이상적인 선생님은 아니지만 글쓰기로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고 부모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혼란을 겪는 명은의 옆에서 애란은 명은의 비밀을 들어주며 존재한다. 우당탕탕과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관계지만 명은에게 있어 애란은 가족에게 말할 수 없는 일기장 같은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어른이고 결국 애란은 명은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런 애란의 모습에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는 교사의 고군분투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단지 교사를 아이를 성장하게 하기 위한 대상으로서만 비치지 않게 한다.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단순한 ‘일’일 뿐이라는 점을 짚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에게 많은 자유를 부여해준다. 학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지 않는 교사, 하지만 학생을 위한 열린 틈을 마련해두는 빈틈 많은 선생님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의 성장을 도우며 자신도 자라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늘 마주하며 가르치고 동시에 자신의 미래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앞날까지 걱정해야 하는 선생님이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에도 등장한다. 영화에서 아이의 시선에서 의지할 대상이거나 완벽하다고 보일 수 있는 선생님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하나의 존재로서의 자리를 획득한다. 성미산에 위치한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논두렁’은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자신이 붙인 별명으로서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불린다. 갖가지 개성 있는 별명을 지닌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은 학교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을 돌보는 돌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끊임없는 회의를 거치며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실제로 카메라가 가장 많이 비추는 장면도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모여앉아 의견을 내며 고뇌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협동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지도해야 하고 계량화되지 않는 방과후 아이들의 시간을 담당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바로 이들의 노동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물질적인 보상을 위해서만 마을 방과후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마을 방과후를 위해 쏟는 교사들에게 이들의 분투가 어떤 유형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더불어 이렇게 이들의 일이 정확한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마을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도 위기를 가져다준다. 교사라는 직업을 과도하게 신성화하지 않으면서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이 주어진다면 어쩌면 코로나 이후 더욱 커져버린 돌봄 공백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비밀의 언덕〉과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에서의 교사들의 면모는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아이인 명은의 시선에서, 혹은 교사들이 직접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비로소 발견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현장에서의 고민과 딜레마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요즘, 두 영화에 조명된 교사들의 얼굴들을 떠올려보며 우리 모두가 직면한 성장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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