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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시간을 꿈꾸는 소녀〉 인디토크 기록 : 운명과의 줄다리기

by indiespace_한솔 2023. 1. 26.

 

운명과의 줄다리기

 〈시간을 꿈꾸는 소녀〉  인디토크 기록

 

 

일시 1월 11(수오후 7 상영 후

참석 박혁지 감독|주인공 권수진

진행 마이데일리 곽명동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자신의 운명과 겨루는 이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평범한 삶과 무당으로서의 운명 사이에서 자신의 시간을 고민하는 한 사람을 담는다. 비록 그 과정이 때로는 억울하고 슬프지만, 한 사람은 꿋꿋이 자신 앞의 미래를 열어낸다. 개봉과 함께 진행된 인디토크를 통해, 긍정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좋은 사람이 될 방법을 매 순간 고민하는 수진 보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과의 줄다리기가 결코 쉽지 않듯,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지만, 결국 서로를 향해 웃음 짓고 있는 수진 보살과 박혁지 감독의 모습을 보며 그럼에도 살아 볼 만한 삶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곽명동 기자(이하 곽명동): 오늘 진행을 맡은 곽명동입니다. 반갑습니다. 수진 보살님과 박혁지 감독님을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인공 권수진(이하 권수진): 안녕하세요.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서 소녀 역을 맡은 권수진입니다.

 

박혁지 감독(이하 박혁지): 안녕하세요. 감독 박혁지입니다. 오늘 자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곽명동: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7년간의 생활이 담겨 있어 다양한 마음이 드셨을 것 같은데요. 감상을 나눠주실수 있을까요?

 

권수진: 자기 모습을 큰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것이 굉장히 낯선 일이잖아요. 신기하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컸어요. 커다란 뻥튀기 봉지를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요. 너무 부끄러워서 감독님한테 제발 그 장면 좀 빼줄 수 없냐고 여쭤봤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무녀가 아닌 소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라며 절대 빼지 않으시더라고요. 제 기억에 남아있는 좋은 장면이 많은데,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다 보니 빠진 것이 많아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경험이었어요.

 

곽명동: 참고로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작년 11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분에 초청되었습니다. 감독님께서도 영화제에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외국 관객분들의 반응이 조금 궁금합니다.

 

박혁지: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소재가 매우 한국적이라고 생각했기에 걱정했어요. 일단 번역부터 쉽지 않았거든요.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았고, 무속이라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정말 많은 관객분들이 극장을 찾아주시고, 따뜻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행복하게 영화제를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곽명동: 그렇군요. 감독님의 전작 춘희막이의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 도중, 과거 TV를 통해 보았던 수진 씨의 이야기가 생각나 시간을 꿈꾸는 소녀작업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춘희막이는 본처와 후처로 함께 살게 된 두 명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시간을 꿈꾸는 소녀역시 본인의 의지 이전에 무녀로서의 삶을 살게 된 소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던 중, 무의식 속에서 수진 씨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처음 수진 씨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신 전후 과정이 궁금합니다.

 

박혁지: 저의 무의식을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그런 면도 없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네요. TV에서 처음 본 수진 씨를 매 순간 기억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TV에서 봤던 그 아이는 지금도 무당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참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인터넷에 검색해봤는데, 정보가 쉽게 나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수진 씨를 찾아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많은 것이 궁금하더라고요. 꿈을 통해 타인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곽명동: 먼발치에서 박혁지 감독이 터벅터벅 걸어올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또 방송쟁이가 찾아온 건가?’ 생각하셨나요?(웃음)

 

권수진: 정확히 그 마음이었어요. 신당 창문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데, 딱 봐도 수상한 걸음걸이를 가진 아저씨가 걸어오더라고요. ‘그냥 손님 같지는 않고’, ‘분명히 의도가 있는 발걸음인데’, ‘어떻게 거절하지별별 생각을 다 했죠. 퉁명스럽게 누구시냐고 물어봤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셨어요. 중학교 3학년 이후로는 절대 매스컴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마지막 방송 때문에 너무 힘들었거든요. 사람도 많이 몰리고, 악플도 많았어요. 어린아이로서 상황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영화를 같이 만들어보면 어떻겠냐 물어보셔서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그런데 절대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서, 방송과는 다르게 요구하는 것도 없고, 계절에 한 번씩만 만나면 된다고 붙잡으시더라고요. 그 말에 넘어갔어요. 계절에 한 번 정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런데 1년에 네 번 빼고는 거의 매일 봤던 것 같네요. (웃음)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낚여서 시작한 영화예요. 중간에 제가 잠적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감독님이 꼴 보기 싫기도 했어요. 왜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는 건지 말이에요. 그래도 감독님이 저를 포기하지 않고, 저의 시간을 기록해주셔서 요즘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곽명동: 감독님의 삼고초려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지 않았나 싶네요. 저는 영화 초반, 수진 보살님이 떠난 이후 신당 문이 저절로 열리는 신비로운 순간이 기억납니다. 우연히 카메라에 담긴 것 같은 장면인데요. 그 장면을 보며 신당의 장군님이 수진 보살님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 장면을 찍게 되셨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혁지: 신당이라는 공간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수진 씨가 매일 정성스럽게 신들을 모시는데요. 그것이 이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공간을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의 시간을 담다 보니, 우연히 그런 순간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장면이나 공간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느낌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수진 씨가 어린 시절부터 시간을 보낸 공간, 할머니와의 시간, 손님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해주는 아이, 앞으로 전개될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곽명동: 저는 사실 철저한 무신론자입니다. 그런 분들이 저 말고도 여기 많으실 것 같은데요. 나이가 들면서, 어떤 샤머니즘이 실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GV 진행하기 전에 수진 보살님의 유튜브를 봤거든요.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신비로웠습니다. 관객분들과 이름에 대한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권수진: 흔히 도사라고 말하는 할아버지가 저의 이름을 지어주셨고, 원래는 남자아이 이름에 가까웠다고 해요. 아버지께서 예쁜 이름이 좋을 것 같다고 수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셨대요. 그런데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께서 수진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애가 무당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하셨대요. 아버지가 그 말을 안 믿은 거죠. 그래서 수진이가 됐는데결국 수진이는 무당이 된 거죠.

 

곽명동: 굉장히 신기합니다. 영화의 인터뷰에 대해서 감독님께 여쭤보고자 합니다. 수진 보살의 인터뷰가 총 네 번 등장하는데요. 뒤로 갈수록 수진 무당이 운명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의도로 인터뷰를 배치하신 건지 여쭤볼게요.

 

박혁지: 저희가 7년 동안 촬영을 했지만, 중간에 3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어요. 수진 보살이 저를 차버려서요. 비어버린 시간 속에 수진 보살님이 많은 심경의 변화와 결심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다큐멘터리라는 매체에서 인터뷰를 크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 부분의 이야기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제가 찍지 못한 시간 안에 있었던 마음의 흐름, 변화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해져야만 수진 보살의 결심이 정확하게 보일 것 같았습니다.

 

곽명동: 감독님을 왜 차셨어요.

 

권수진: 감독님이 저에게 너무 집착하셨어요.(웃음) 대학교 새내기잖아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신당과 대학 사이를 조율하는 일에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어요. 솔직히 괴로웠어요. 뜻하지 않은 여러 일들로 대학 생활이 조금 힘들었거든요. 저와의 신임이 아직 두텁지 않은 동기들에게 다큐멘터리 촬영을 협조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촬영을 그만하겠다고 하니 할머니를 찾아가시기도 하셨어요. 할머니는 수진이의 결정에 따른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매몰차게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곽명동: 그래도 감독님의 집요함이 결국 좋은 영화를 완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저는 감독님께서 편집을 무척 잘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와 신당에서의 시간을 교차하시는 방식에서 수진 보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할까요. 중국어 수업의 내용이나, 신당에서 점을 보는 내용이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염두하신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혁지: 촬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수업이 지루하더라고요.(웃음) 그 전에 할머니에게 혼나는 장면이 있잖아요. “학교와 신당 사이에서 선택해라”. 공부와 운명 사이에서 선택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상황에서 수진 보살이 신도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수진 보살이 인간 수진이에게 조언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흐름을 생각하며 편집했습니다.

 

곽명동: 보살님은 수업이 지루하셨나요?

 

권수진: 아니요. 지루해 보였나요? 저는 제 운명을 결정한 후에도 한 번도 공부에 대해 소홀함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곽명동: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수진 보살님이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감독님과 제가 가지고 있는 케이크의 상자는 똑같은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초코케이크고, 제가 생각하는 건 바닐라케이크인가 봐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지만, 그 안에 세부적인 내용에서 우리는 동상이몽인 것 같아요”. 감독님과 촬영하시면서 의견이 다를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권수진: 많았죠. 그래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감독님을 다시 만난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무녀의 삶을 가지기로 결심한 이후로, 이 영화를 잘 완성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는 감독님이 저를 밀어내시기 시작했어요. “내일 이런 행사가 있는데 오실래요?” 이야기하면, “수진아, 그건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그때 내가 다른 일이 있어서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주객이 전도된 거죠.(웃음) 그럴 때면 감독님과 내가 생각하는 영화가 참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둘의 중점이 어디일까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곽명동: 두 분의 관계성이 참 재미있네요. 수진 보살의 능력이 드러나는 장면이 일곱 번 정도 나옵니다. 더 많은 분을 카메라에 담으셨을 것 같은데, 일곱 분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박혁지: 질문에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한 번도 점집에 가본 적이 없어요. 수진 보살을 보면서 난생처음 점 보는 모습을 본 거죠. 정말 삶이 힘들 때 점을 보러 가잖아요. 수진 보살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진 양이 대단해보이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이 아이에게 쏟아지고, 그걸 받아들이면서도 뭔가를 더 말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집에 대해서는, 일곱 분의 이야기가 앞뒤의 내용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권수진: 이게 저희가 다른 지점이에요. 7년을 찍다 보니, 정말 많은 분의 상담을 담을 수 있었거든요. 생각보다 많은 분이 촬영을 수락해 주셨어요. 좀 웃긴 말이기도 한데, 정말 잘 맞았던 점괘들이 있었어요. 감독님도 저한테 수진아, 어떻게 그런 걸 알아?”라고 물어보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제 생각에 그런 순간도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점을 잘 본다는 느낌의 장면은 거의 없고, 그냥 인생 조언을 해주는 사람처럼 그려진 것 같아서요. 아쉽죠.(웃음)

 

 

곽명동: 사실 무당은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운명에 대해서 해석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 부담감이 엄청날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손님을 뵙는지 궁금합니다.

 

권수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오신 분들께 꼭 말씀드려요. 제 말은 절대 정답이 아니고, 제 말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요. 그런데 참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솔직히 저 사람의 미래가 보이거든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보일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내 말을 꼭 들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중간을 지키는 일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고집 있는 분들이 많아요.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께는 항상 최대한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곽명동: 그렇군요. 수진 보살님의 유튜브를 봤는데요.

 

권수진: 민망하네요.

 

곽명동: 거기서 하늘을 오랫동안 탓했지만, 지금은 중생들을 구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돌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언제부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권수진: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많이 울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 있는 것도 많은데 나는 그걸 다 포기하고 왜 여기에 앉아있어야 할까 생각했어요. 바람 피운 남편 이야기, 망한 주식 이야기, 팔리지 않는 부동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슬펐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이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나와 십 년을 함께 하고 나니 상황이 많이 나아진 사람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좋아질 수 있다면, 무당은 생각보다 괜찮은 직업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요즘 시국도 워낙 안 좋고 힘든 분들이 많은데, 저는 항상 함께 힘내자고 말씀드리거든요.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원동력이 됩니다.

 

곽명동: 답변 감사합니다. 영화의 음악이 정말 좋잖아요. 어떻게 음악에 대해 접근하셨는지 감독님께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박혁지: 무속이라는 소재에 묻어있는 신비로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수진 보살님과 할머님과 함께 있으면, 일상 안에서도 무속과 연결되어 신비로움이 생겨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경험한 신비로움을 관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인위적인 장면이나 이야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픽션 영화가 아니니까요. 날 것의 화면 속에서도 무속의 느낌을 표현할 방법으로 음악을 찾았습니다. 우연히 드라마 방법을 보게 되었고, 김동욱 음악감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면식은 없었지만 SNS를 통해 영화를 설명드리며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잘 맞는 음악이 만들어진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곽명동: 저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는 시간을 꿈꾸는 소녀를 한 소녀가 운명의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두 분께서 운명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편의 시를 경유해 여쭤보고자 합니다. 한강의 서시라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질문입니다.

 

권수진: 아니요.(웃음) 마음에 들지 않았죠. 지금은 반반인 것 같아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운명도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한편으로는 왜 하필 나일까 생각해요. 애증의 관계죠. 반갑지 않지만 환영해야만 하는 것이 운명이지 않을까요.

 

곽명동: 감독님은 운명에게 뭐라고 답변하실 건가요.

 

박혁지: 저 역시도 좋다 싫다 단호하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결정된 운명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정말 이것만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인가체념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지를 어떤 색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죠?(웃음) 질문이 참 어렵네요.

 

 

곽명동:  주어진 시간이 전부 가버리기 전에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보고자 합니다.

 

관객: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타인의 시간을 꿈속에서 보는 무녀로서의 소녀를 의미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앞으로 만나게 될 자신의 시간을 떠올리는 소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움직이는 기차에서 졸고 있는 수진 보살의 모습을 담으셨는데,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박혁지: 영화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말씀해주신 의미들이 맞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는 소녀잖아요. 실제로 만나게 될 손님들의 미래를 꿈꾼다고 하니까요. 제가 집중한 것은 미래의 시간입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잖아요. 이 아이가 어떤 미래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마지막 장면은 무당이라는 운명에 잡아먹히지 않고 자신의 새로운 꿈을 꾸는 모습으로 영화를 맺고 싶었습니다.

 

곽명동: 보살님은 제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권수진: 저는 엄청 싫어했죠. 무슨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아니고……. 장난치시는 줄 알았어요. 멋있는 제목 많잖아요. 그해, 우리는이런 제목 아련하면서 멋있잖아요. 무슨 시간을 꿈꾸는 소녀예요. 저는 소녀가 아니거든요.(웃음) 별로라고 생각했는데요. 질문해주신 분께서도 제목 때문에 영화를 보셨다고 말씀해주시니까요. 요즘은 제목을 조금씩 좋아하고 있습니다.

 

관객: 저는 보살님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봤습니다. 4살 때부터 이런 일을 시작하셨잖아요. GV에서도 중학교 때까지 계속 울면서 점을 봤다고 말씀하셨고요. 영화 속 인터뷰에서도 항상 눈물이 맺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네 살이면 너무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신의 목소리라고 이해하셨는지 어린 시절 수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곽명동: 저도 그때를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4살 때 잠꼬대를 했다고 해요. 자면서 부처님이 생미를 올리면 버러지가 나니까, 공양을 지어서 올리래요라고 말했대요. 4살이면 공양이 뭔지, 생미가 뭔지 하나도 모를 텐데 그런 말을 뱉고 있으니 할머니가 놀라신 거죠. 기도 오시는 무녀분들께 물어보셨대요. 다들 수진이에게 신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해요. 손님이 오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으로 손님을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아픈 사람이 오면 누워 있고, 힘든 사람이 오면 계속 울고요. 바쁜 사람이 오면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뛰어다녔대요.

 

관객: 촬영을 그만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특정한 사건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권수진: 감독님과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대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오해가 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졸업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 저에게 희망이 있었어요. 서울에 가서 살게 되면, 어쩌면 무당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과 신당을 오고 가는 과정에서 오해들이 생겨서요. 희망을 잃었습니다. 학교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것 또한 신의 작전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를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한 작전이요. 지금은 학교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없고요. 무당이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더 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도 다시 참여하게 됐어요.

 

곽명동: 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의 마지막 인사를 들으며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권수진: 귀한 시간 내어주신 관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절대’, ‘무조건같은 단어에 여러분의 인생을 가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모든 분이 다양한 가능성을 넘나들며 많은 일들을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박혁지: 오늘이 개봉일이었습니다. 많은 관객분이 와주셔서 너무 행복합니다. 사실 독립영화는 홍보가 가장 힘들거든요. 지인분들께 영화가 좋다고, 꼭 극장 가서 보라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곽명동: 늦은 시간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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