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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모어〉: 아름다운 들개

by indiespace_한솔 2022. 7. 12.

 

 〈모어 리뷰: 아름다운 들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예본 님의 글입니다.

 

 

영화 모어의 오프닝을 보며 문득, ‘아름다운 들개라는 여섯 글자가 떠올랐다. 아무 이유 없는 떠오름이었다. 노래의 가사도 인물의 대사도 아닌 낯선 말의 등장은 나에게도 무척 갑작스러웠다. 아름다움이라는 표현과 들개란 단어가 함께 연상된 이유는 뭘까. 드랙쇼를 마치고 가슴팍에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는 지민의 모습? 예상보다 더욱 강렬했던 영화의 색채? 어쩌면 드랙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게 아름다우면서도 힘 있는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드랙(Drag)’의 사전적 정의는 이분법적인 젠더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운 자아를 표출하는 예술 행위, 현재는 젠더를 초월한 다양한 페르소나를 표출하는 의미를 갖는다. 드랙은 자기표현이자, 역사이자, 문화이자 예술임에 분명하지만 그 모든 영역의 교집합이기 때문에 친숙한 영역이 아님은 분명하다. 더불어 여성성을 강조하고 희화화한다는 비판적인 시선이 있어 드랙씬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경우도 발생한다하지만 국내 드랙아티스트 나나영롱킴은 답한다. ‘(드랙은) 내 몸을 이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걸 겉으로 표출해내는 행위이며, ‘결코 여성스러운 것만이 메인이 아니라 하나의 카테고리일 뿐이라고.

(인터뷰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g0-ILFyzcc&t=100s)

 

모어의 주인공이자 드랙아티스트인 모어는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를 꿈꾼 인물이다. 학창 시절에도 대학 진학 후에도 그의 꿈은 쉽게 좌절되는데 끝내 모어는 드랙을 통해 드랙아티스트로서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에 서며 토슈즈를 신는다.

원하던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우리는 완벽해진다. 춤과 노래로 무대 위에서 완전해지는 그들을 보면 나 역시 충족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모어를 보는 내내 완전했다. 어떤 색과 조명과 노래에도 모어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발산했다. ‘나는 끼순이니까라는 확고한 믿음만큼 모어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힘이 있었다. 드랙이 펼쳐지는 모든 순간과 그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갖가지 색의 에너지였다.

 

 

이쯤에서 다시, ‘아름다운 들개에 관해 생각해보자. 길지 않은 위의 글을 쓰는 내내 아름다움과 들개의 결합이 과연 어디에서 일어났을지, 들개와 아름다움의 상관관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 고민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들개의 이미지는 상당히 야생적이다. 그들의 곁에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인간이 없다. 주인에게서 버려졌을 수도, 본래부터 주인이 없었을 수도 있다. 정착할 곳이 어디일지는 들개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흥미로운 건 들개 역시 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겐 떠돌이 들개와 반려견으로서의 개가 동일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들개는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그래서 언제든지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우리의 급소를 물어뜯을 수 있는 동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야생성과 특별한 기운이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는 고유의 힘이 있다. 공동체가 있고 연대가 있다. 아름다운 몸짓과 용기와 언어가 있다. 모어는 강한 힘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크레딧이 올라가기까지 그 에너지를 생생하게 감각한 나는 나를 스치고 지나간 아름다운 들개의 심상에 의해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들개란 그런 것이었다.

 

 

사실 이토록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하는 중에도 마음에는 언제나 한 조각의 불안이 있다.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존재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조심스러워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어는 내가 필요로 했던 사랑과 내가 갈구했던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나 할까.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들개라는 말이 과도한 어조로, 조금은 그로테스크하게, 어쩌면 편협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섣부른 비교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부디 내가 전하려는 마음이 왜곡 없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읽는 이에게 상처가 되는 글이 아니기를. 문득 떠오른 영감을 펼쳐 보인 당찬 시도로 봐주시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바라본다.

 

 

항상 글을 쓰고 싶다는 갈증을 느껴왔다. 때때로는 써야 하는 것을 쓰느라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없었고, 가끔은 쓰고 싶었던 글 앞에서도 멈춰있었다. 그러나 모어를 통해 다시 쓸 용기 같은 것이 생겼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다시 기억났다. 언젠가 아름다운 들개에 관해 쓸 날이 왔을 때, 그땐 지금보다 훨씬 용기 있고 총명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 앞에 용감해지듯 그땐 더 많은 아티스트가 자기 자신이 되어’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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