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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남매의 여름밤〉 : 환상의 콤비, 안온한 앙상블

by indiespace_한솔 2020. 9. 15.






 〈남매의 여름밤〉  리뷰: 환상의 콤비, 안온한 앙상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주혜 님의 글입니다




 

남매의 여름밤 보다 보면 유년의 여름방학이 떠오른다. 장면 속엔 낡은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약풍, 얇은 홑이불 질감, 가끔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있는 쨍한 매미 소리, 같이 둘러앉아 먹던 물기 많은 과일로부터 느낄 있는 무수한 공감각이 있다. 지금은 여름방학과 완전히 멀어진 성인이 됐다. 정오 넘어서까지 낮잠을 자고 방학 숙제로 EBS 교육 채널을 보는 일과의 전부였던 그때가 그리워도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글쎄. 아마도 돌아가지 않을 같다. 기쁘고 즐거운 뒤에 언제나 슬픈 , 치사해지는 , 초라한 일들이 함께 일어난다는 지금보다 견뎠기 때문이다. 

 

영화 옥주에게도 기쁘고, 즐겁고, 슬프고, 치사하고, 초라한 일들이 벌어지는 여름이다. 옥주와 남동생 동주, 아빠는 반지하를 떠나 이사를 간다. 이사 트럭이 아닌 다마스 뒤 칸에 식구의 짐을 싣고 도착한 곳은 오래된 2층짜리 양옥집이다. 옥주는 상황이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일이라는 안다. 옥주보다 어린 동주는 그런 일을 모른다. 얹혀산다는 단어가 가지는 뭉근한 부끄러움도 모르는 일이다. 옥주네 가족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뒤에 고모도 들어와 살기 시작한다. 남매는 설날도 추석도 아닌데 3대가 모여 있는 왁자지껄한 대가족 형태로 여름방학을 맞이한다. 

 




볕이 들어오는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면 영화의 얼굴이 나른하고 느슨한 인상처럼 다가온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험난한 일도 많다. 옥주는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밤중에 찾아와 대문을 쾅쾅 두드리는 남편을 쫓아낸 고모에게 소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동생을 깨워 장례식에 가던 것도 그해 여름의 일이다. 이런 날을 통과하는 옥주, 그애는 나중에 여름방학을 어떻게 기억할까. 

 

추측하건대 옥주의 여름은 빈자리를 실감하는 같다. 영화가 옥주의 시선을 가장 많이 보여주니 어쩌면 영화는 빈자리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장면에서 옥주는 이사 가기 전에 살던 반지하 집을 돌아본다. 짐을 죄다 빼서 텅텅 공간이다. 어느 날엔 대뜸 엄마가 등장하는 꿈을 꾼다. 미워서 보고 싶지 않을 알았던 엄마, 그래서 전엔 꿈에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엄마다. 장례로 고된 날을 보내고 돌아온 날에 옥주는 밥을 먹다 눈앞에 있는 소파를 마주한다. 정확히는 소파의 빈자리를 마주한다. 이렇듯 그 해 옥주는 부재의 중량을 체득한다. 그건 당연하게 거기 있을 줄로만 알았던 대상이 사라진 상태, 그대로 비어있는 자리를 실감하면서 밀려오는 일이다. 





옥주가 인분의 사람으로 성숙하는 계절을 겪는 동안 영화가 성장통에 침체되진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안전한 쉼표가 언제나 정확한 곳에 있다. 숨구멍은 동주의 역할이다. 동주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웃음이 나서 들숨과 날숨이 절로 작동한다. 동주는 어른들이 춰보라  빼지 않고 파격적인 개다리춤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누나인 옥주에게라고 부르며 가뿐히 대들거나 ‘누나도 철없다~’면서 애늙은이처럼 지나갈 피식 웃게 된다. 성이 옥주가 방문을 닫으려는 , 사이에 코끼리 인형이 껴서 형편없이 솜뭉치 찌그러지는 소리가 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귀엽고 기발한 장면인데, 코끼리가 동주의 애착 인형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영화의 완급을 조절하는 동주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인할 있다.  

 




옥주와 동주, 주자 돌림 남매는 이렇게나 다른 결처럼 보인다. 정반대의 남매지간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콤비 덕분에 영화는 적정한 리듬으로 유년이라는 평균대를 유려하게 걸어 나간다. 그래도 영화의 성취가 온전히 남매의 공로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 아빠와 고모의 관계 또한 남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은 남매인 옥주와 동주, 남매인 아빠와 고모, 할아버지 그리고 모두를 품는 낡은층집이 함께 영화가 가진 따뜻함평안함이라는 장점은 최대치를 달성한다. 그러니까남매의 여름밤 환상의 콤비에서 시작해 안온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같다. 이토록 따사롭게 데워진 가족 오케스트라라니, 당신에게도 청취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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