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전선에서 분투하는 이들에게 〈졸업〉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1월 9일(토) 오후 4시 상영 후
참석 박주환 감독
진행 강상우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상지대학교 사학 비리에 대한 10년간의 투쟁의 기록을 담은 〈졸업〉이 개봉했고, 인디토크와 함께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목격자이자 화자, 참여자이자 항쟁 주체가 되어 완성한 영화와 지난하면서도 위태로운 투쟁을 함께했기에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친구들, 그리고 여전히 고민하고 부딪혀야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는 사회에 대한 감독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주환 감독이 참석하였고, 올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김군〉의 강상우 감독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강상우 감독(이하 강상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강상우라고 하고요. 영화의 초반 2분 동안 감독님이 2009년에 촬영한 영상이 나오는데요, 곧바로 10년 뒤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나와요. 싸이월드 시절의 느낌이 나는 사진들도 나오고요.(웃음)
박주환 감독(이하 박주환): 맞아요, 싸이월드 시절예요.(웃음) 과거 사진을 찾을 수가 없어서 2주 동안 겨우 찾았어요.
강상우: 그래서 일종의 〈보이 후드〉가 아닌가 싶었어요. 이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는 2007년도의 법과 사회의 여러 가지 변화들, 대법원의 판결 등의 이유로 김문기 전 이사장과 비리 재단이 다시 돌아온 상황에 맞서서 상지대학교 학생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담았는데요. 사실 저는 이 사건을 뉴스 단신으로만 보거나 TV에 나오는 극단적인 대치 순간만 접해서 사학 재단에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학생들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어요.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납작하게만 알고 있었던 상지대학교 투쟁 속 인물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면서 많이 울컥하기도 했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인터뷰에서도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촬영을 시작하셨던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여쭤보겠습니다.
박주환: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영화 관련 학과를 다닌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2009년에 전국적으로 미디어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원주에도 미디어센터가 생겼어요. 당시 제가 결혼식장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편집을 배워오면 알바비를 더 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편집을 배울 만한 곳을 찾다가 우연히 미디어센터를 가서 수업의 일환으로 짧은 영상물을 찍게 되었고, 강사님께서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이야기를 풀어가기 쉬울 거라고 하시기에 학교 이야기를 찍기 시작했어요. 저희 학교의 그런 모습들은 저에게도 사실 익숙한 이미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내가 다니는 학교니까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투쟁 현장의 학생들이 촬영을 못 하게 해서 그냥 한 달 동안 현장에서 잤어요. 모르는 학생이 찾아와서 카메라 들고 찍고 싶다고 하는데 누가 허락을 해주나요? 그래서 그냥 그곳에서 같이 살았죠. 그러다가 점점 서로 친해지면서 영상도 찍게 되고, 7분가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그 작품이 지역 방송국에 나갔어요. 사실 그 때 저는 학교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휴학해서 놀러다니고, 국토대장정을 하던 중에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대치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는 스마트폰도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같이 걷던 동료가 ‘이거 너네 학교 아니야?’하면서 영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제가 직접 그 영상을 찾아서 본 거라면 조금 달랐을 텐데, 다른 친구를 통해서 보게 되니까 되게 부끄럽더라고요. 분노보다는 미안하고 창피한 감정이 드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2011년에 학교를 복학했는데 제가 만들었던 영상물이 방송국에 나왔다는 걸 알고 학생회에서 활동을 기록할 사람이 필요한데 해 줄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저는 사회복지공무원을 준비하려고 했고, 거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승현이형이 저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할 때 도저히 거절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는, 2011년에 함께 연대 투쟁했던 세종대학교 전상진 감독님이라고 계세요. 감독님과 함께 투쟁을 하고 각자 촬영을 하면서 친해졌어요. 전상진 감독님이 세종대학교 비리 투쟁을 담은 〈주님의 학교〉(2013)라는 영화를 만들고 나서 저에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찍었는데 되더라. 너도 할 수 있을 거다.’라고 힘을 많이 주셨어요.(웃음) 2017년, 2018년에 편집하면서 힘들 때 밥도 사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고, 감독님 외에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배급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상우 감독님께서도 흔쾌히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상우: 이런 덕담까지는 안 하셔도 괜찮고요.(웃음) 그럼 지금의 형태의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건 전상진 감독님을 알게 된 2013년도인거죠?
박주환: 네. 제가 상진이 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걸 영화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촬영했던 영상들은 재판에서 증거 영상으로 쓰거나 페이스북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니 영상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시작했거든요.
강상우: 2013년도면 여전히 비리 재단과 김문기 씨가 물러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을 텐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지금의 형태와 많이 다른 영화였을 것 같아요.
박주환: 제가 2014년도에 가편집본을 만들었는데, 그땐 정말 인물은 없고 사건의 나열이었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님에게 가편본을 보여드리니까 ‘이게 뭐야? 이게 영화야?’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되게 충격 받았거든요. 왜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니, 저는 어떻게 찍는 지도 모르고 그냥 찍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뒤로 인물 위주로 촬영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명식이 같은 친구들은 엄청 가까이서 찍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강상우: 그때는 아무래도 외부에 이 사건을 알려야 한다는 시급함이 더 컸기 때문에 인물에게 시간을 줄 여유가 없었을 것 같아요.
박주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014년은 김문기 씨가 총장이 되고, 명식이가 뺨을 맞고 학생들이 징계를 당하던 시기였어요. 상황이 정말 심각했고요. 그때 분위기 상 당시 정권의 집권이 연장될 줄 알았고, 정말 막막한 상황에서 나라도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으니까요.
강상우: 박근혜 정권도 물러났고 김문기 씨도 판결을 통해서 물러난 상황에서 지금 모습의 영화를 만들 때 제일 주안점을 두었던 건 어떤 걸까요? 비리 재단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주환: 악인의 역사가 제 영화에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들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보다는 그 상황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끈끈하게 연대하고 저항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역사를 기록할 때에 사건 속의 인물보다는 사건 자체만 기록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사건 속에서 인물이 더 부각되기를 바랐어요. 함께 했던 주인공들이요. 이제 학교가 정상화 되었다는 건 다 알고 있지만 인물들은 많이 잊혀졌거든요. 그래서 억척같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동원 감독님께서는 지금보다 더 거친, 편집이 덜 된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시고는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오기로 만든 다큐멘터리 같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는데요. 이걸 빨리 정리해서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끝까지 놓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그거예요.
강상우: 인물에 집중을 하면서 방향을 바꿔 나가셨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이 되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자 마자 바로 이 인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만 아니라 부총장 근황이 너무 궁금해서(웃음) 곧바로 검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박주환: 이 영화가 극 영화가 아니고 다큐멘터리다 보니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참 힘든데,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건 더 어렵거든요. 그런데 부총장이 참 빛나는 역할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다 보면 다들 그 분의 등장에 분노하거든요.(웃음) 정대화 교수님께 징계 내리려고 징계위원회에 앉아 계신 분들이 1993년도 김문기 씨의 이사장 시절에 부역했던 교수들이거든요. 그런데 그 분들을 당시에 다 자르지 못했어요. 20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부역하면서 학생들을 선두에서 탄압했어요. 제가 가장 화나는 부분은, 그들은 아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씁쓸하죠. 몇몇 분들은 정년퇴직을 하셨어요. 그런데 부총장을 비롯한 몇 분은 아직도 잘 계시죠.
강상우: 학생들 편에 서서 재단 쪽과 언쟁을 하셨던 정대화 선생님은 총장이 되셨더라고요. 이제는 사학 재단이 학교에 다시 돌아올 일은 없는 건가요?
박주환: 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그때도 아무도 김문기 씨가 돌아와서 총장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 했거든요. 저는 상지대만 아니라 사학 비리에 연관된 사람들이 정치계에 많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김문기 씨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언하지는 않아요. 세상 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지금도 김문기 씨가 제기한 소송이 진행 중이라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그래서 구성원들이 단결해서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투쟁 당시 10여개 대학이 같이 연대투쟁 했거든요.
강상우: 사실 회색 지대의 인물이 있을 수도 있고 학생들끼리 내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영화에서 학생들이 비리 재단을 상대로, 김문기 씨를 상대로 대치하는 장면도 좋았지만 제가 정말 좋았던 순간들은 학생들이 지난한 과정이더라도 계속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거였어요. 김문기 씨를 포함한 학교 측을 상대로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상대편은 전기를 내리고 천막을 찢으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무마하더라고요. 수업 거부 투쟁이 장기화되니까 학생 내부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규칙을 정하고, 투표하고, 그 결과에 승복을 하는 과정이 있어요. 영화의 주인공들에게는 고립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결과였지만, 앞서 보여주는 부총장과의 대화 아닌 대화와 너무나도 대비되었어요. 그런 순간들이 명쾌하거나 통쾌하지는 않더라도 민주적인 소통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주환: 투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해야 하니까요. 십 년 동안 투쟁의 방식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투쟁 자체를 반대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거든요. 저는 그걸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사회에 올라갈 지 말 지, 수업 거부를 할 지 말 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견이 갈렸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런데 학교 쪽에서는 그 상황을 자꾸 이용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관객: 안녕하세요. 저희 학교도 문제가 많거든요.(웃음) 저희 학교에서는 ‘미투’ 사건이 있었어요.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 하였으나 이에 대해 내려진 징계는 6개월의 휴직이었고 복직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요. 이 분이 돌아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방안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저도 영상물을 활용할 생각이 있는데, 영상 촬영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주환: 제일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은 본인의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전문적으로 카메라를 다뤄보지 않은 상태에서 호기심으로 찍었으니 두려움을 가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 평가하지 않으니까 마음 편히 촬영하시길 바라요. 그런데 지금 환경이 조금 다른 게, 요새는 아마 학생들이 카메라로 찍히는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것 같아요.
강상우: 아까 감독님께서 한 달 동안 숙식하면서 학생들과 친해졌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 나네요.
박주환: 맞아요. 그런 과정이 없으면 당연히 카메라를 허락하지 않아요. 그리고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러 오거든요. 그런 소중한 사람과 관계를 잘 쌓으시면 힘이 덜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학교에서 상영회를 해주시면 제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강상우: 〈주님의 학교〉에 이어서 〈졸업〉이 또 다른 학교의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런 바람 또한 가지고 계셨나요?
박주환: 영화를 만들면서는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요. 어제 있었던 GV에서 영화를 만들고 나서 남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영화에 나오는 후배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기도 해요. 학교는 좋아졌는데 우리에게 남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면 솔직히 저도 답변하기 어려워요. 저는 투쟁의 과정을 기록해서 감독이라도 됐는데 그 친구들은 그냥 직장 다니면서 일상을 살거든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에 제 영화를 보신 관객분이 SNS에 남긴 감상평을 보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 조금이라도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는 말씀이 적혀 있었어요. 요즘은 그거 하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 영화와 우리가 함께 했던 활동이 저항에 앞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영화 속 1인 시위를 하기 전날에 너무 떨려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니까요. 여기 나오는 친구들도 그런 과정을 다 겪었던 친구들이거든요. 처음부터 투사는 아니었어요.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가 이러한 상황에 분노해서 활동을 시작했던 사람예요. 제가 마지막에 이 친구들의 일상의 모습을 넣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고요. 여러분들도 삶 속에서 저항하고 싶은 게 있어서 용기를 낸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별 거 아닐 거예요. 1인 시위하면서 피켓 들고 서 있는데 제 걱정과는 달리 아무도 신경 안 쓰더라고요.(웃음) 시작은 두렵지만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강상우: 저는 영화 초반에 이승현 씨가 1인 시위하면서 다른 분이 관심을 가지니까 물과 선크림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장면도 되게 좋았어요. 이승현 씨가 처음에 울부짖는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하는데요. 동덕여대 학생들이 법원 앞에서 이승현 씨와 같은 상황에 처해 울부짖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을 때 앞에서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짠했고 이런 게 연대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상지대로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주환: 저도 제 영화에서 그 장면과 대사를 제일 좋아해요. 승현이가 ‘다시 시작해요.’라고 말하거든요. 1년 전에 그 현장에서 승현이가 울부짖고 떼쓸 때 교수님이 승현이를 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승현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면 돼.’ 1년 전 같은 자리, 같은 현장에서 승현이는 잡혀가서 3일 동안 구류됐고 벌금 50만원 정도를 냈을 거예요. 1년 후 똑같은 상황에서 떼쓰고 울어봐야 남는 게 없다는 걸 본인이 잘 알았겠죠. 그런 상황에서 승현이가 경찰과 학생 사이에서 바리게이트 역할을 했던 거죠. 승현이의 다시 시작하자는 그 말은 영화 외적으로도 살면서 힘들 때마다 자꾸 떠오르거든요.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한 마디 말로 다시 시작했어요. 승현이도 직장 생활하면서 짜증나고 힘든 순간에 제 영화를 찾아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영화를 보면 이렇게 힘든 일도 견뎠으니 다 해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요. 승현이에게는 이 영화가 그런 목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 속에서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인물들을 보면서 상지대 학생은 아니지만 정의롭게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존경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영화에 김문기 전 총장이 자서전을 출간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고요. 그리고 사인회 현장에 오신 분들이 어디서 오신 건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웃음)
박주환: 김문기 씨가 강릉과 원주 지역의 엄청난 유지세요. 건설회사도 많이 운영하시고. 그리고 원주에서 상지대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중학교도 운영하고요. 김문기 씨가 가구회사를 만들고 1960년도부터 1970년도에 큰 돈을 벌었어요. 자서전에는 자기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살았으며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학생들도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고요. 본받을 점이 있다면, 정말 성실하세요. 다른 의미로 엄청 성실하셔서 93년에 학교에서 쫓겨난 이후로 소송도 계속 하고 정치 활동도 많이 했고요. 20년 동안 포기를 하지 않으셨던 거예요.(웃음) 연세가 거의 90세 가까운데도 엄청 정정하신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신대요.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셔서 어르신의 목소리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졸업식 씬에서 종완이랑 준성이랑 항의할 때 나오는 목소리가 김문기 씨 목소리예요. 그분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어떤 집착이나 성실함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강상우: 김문기 씨를 본받아서 10년동안 참아가면서 영화를 완성을 하신 건가요?
박주환: 예, 맞습니다.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네요.
관객: 감독님께서 원래는 영화를 만들려고 찍은 영상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영화를 완성한 지금감독님은 어떻게 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계속 영화를 만들고 계신 건지 아니면 다른 직업이 있는 건지 궁금해요.
박주환: 영화 후반부에 세 친구의 일상을 담아서 그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 대충은 아실 텐데요. 저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제가 무얼 하고 살고 돈을 버는 지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원주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드는 수업도 하고요. 다큐멘터리가 아니지만 홍보 영상도 만들고 있고, 사진 찍는 일도 해요. 오늘도 사진을 찍다 왔는데, 웨딩 사진 전문이니 혹시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문의 주시고요.(웃음) 그리고 탄광 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사진 작업도 하고 있어요. 틈틈이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고 있고요. 〈졸업〉 같은 경우는 투쟁의 영화보다는 청년들의 영화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기성 세대, 기성 제도에 저항하는 청년들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졸업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나는데, 지금 만드는 영화는 졸업식으로부터 시작해요. 친구가 졸업 후 취업을 하지 않고 창업을 하려는 모습을 찍고 있는데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네요. 이것도 4-5년은 찍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단 그냥 찍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를 만들어서 개봉을 한다는 게 정말 행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독립영화는 관객들과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요. 매미는 십 년 동안 땅 속에서 유충으로 있다가 밖으로 나와 이 주 울고 사라지는데요. 저도 그런 감독으로 남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강상우: 이 주는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웃음)
박주환: 그럼 두 달 정도 울다가 사라지는 사람이 되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어서 세상에 보여주려는 욕망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제 삶을 너무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웃음) 그래서 저는 무얼 하고 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요. 일주일 뒤에, 짧으면 하루 뒤에 제가 무엇을 할 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고 하는 거죠.
강상우: 아까 전엔 사회복지공무원이 되려고 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박주환: 사회복지 쪽으로 취업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저랑 같이 공부하고 준비했던 친구들은 이미 진급해서 과장이 되었어요.(웃음)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조금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제 성향 상 이렇게 사는 삶도 나름대로 살만 하거든요. 앞으로 이런 삶을 지속하기 어렵다면 취업을 할 지 아니면 카페를 차릴 지 고민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사학을 몰수해서 국유화한다면 해결될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박주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학을 어떻게 봐야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어떤 대학 교수님에게 표창장 관련 이슈가 있을 때 제가 주목했던 건 그 분이 20년 넘게 총장을 하셨다는 부분이었어요. 어떤 대학은 한 사람이 40년동안 총장을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사학들은 대학을 사유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할 때가 많아요. 사학을 정치적으로 비호하는 세력이 있어서 생겨난 문제일 수도 있고요. 2005년도에 노무현 대통령이 사립학교법을 개정했으나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건 우리나라의 대학의 85%는 사학이고, 그 중 대다수가 종교재단이다 보니 종교와의 싸움까지 되어 버리는 거예요. 자본가가 사학을 운영하는 것을 포함해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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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우: 영화의 마지막에 ‘나는 이제 미련없이 학교를 떠난다’고 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미련이 남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드네요.
박주환: 금요일에도 원주에서 시사회를 하는데 대학 선배 한 분이 고생했다면서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또 고생해달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웃음) 저는 솔직히 상지대도 떠나고 싶고 이 영화에서도 빨리 떠나고 싶거든요.
강상우: 개봉 주인데 정말 솔직하시네요.(웃음)
박주환: 〈졸업〉이라는 영화를 세상에 내보내고 이 영화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기는 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계속 맴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영화 〈졸업〉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아쉽죠.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첫 상영 후에 GV를 했을 때 영화과 다니는 학생 한 분이 ‘저렇게 촬영을 하고 저렇게 편집을 해도 영화가 된다는 게 놀랍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웃음)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답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 심사평에서도 ‘아마추어적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다듬지 않은 영화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라고 해주셨어요.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이 많이 되는 평이었어요. 영화를 더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졸업〉을 빨리 떠나고 싶기도 해요. 떠나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제 일생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아니면 다시 찍을 수 없는 작품, 그리고 제일 많은 사람들이 아껴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영화에 나왔던 주인공들을 비롯해서 이 영화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정말 남다를 테니까요. 그렇게 제 영화를 좋아해주고 끝까지 기억해주는 사람이 몇 있다는 것 자체로도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강상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감독님을 많이 궁금해할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참여하시는 GV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박주환: 제가 필요한 자리면 가려고 하고, GV를 좋아하기도 해요. 어제도 〈B급 며느리〉(2017)를 만드신 선호빈 감독님과 1시간 10분 동안 만담하다 왔어요. 관객 다섯 분이 오셨는데 질문이 안 나왔어요.(웃음) GV를 하는 게 재미있고 좋지만 이 감정에 너무 빠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저의 일상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저에겐 하나의 이벤트 같은 거고, 계속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으니까요. 작품 하나 만들었다고 계속 감독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감독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다음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 하나는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다음에 또 고민해보려고요.
강상우: 애초에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카메라를 들었고 십 년의 제작기간 동안 많은 게 바뀌었는데요. 2013년도부터는 영화로써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편집을 하기 시작하셨고 후반으로 갈수록 촬영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주요인물들의 후일담과 같은 인터뷰를 사이사이에 배치했는데, 이러한 인터뷰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박주환: 영화를 보면 촬영이 늘고 있는 게 보여요.(웃음) 그리고 카메라의 변천사를 알 수 있기도 한 작품입니다. 제가 인터뷰나 내레이션이 많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최대한 지양하려고 했는데 애초에 영화를 계획하지 않아서 생긴 빈 공간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만들다보니 이 친구들은 학교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는 친구들이라는 걸 느꼈어요. 승현이가 이 작품 시사회에 참석하고 뒤풀이도 갔다가 거의 일주일을 고생했어요. 이제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인데 영화를 보면 그 때의 상황과 당시의 열정 같은 게 자꾸 떠오른대요. 그 감정들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가려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만들 때도 제가 질문을 하면 다들 정확히 답변을 못 하는 거예요. 왜 그런지 고민하다가 승룡이의 인터뷰를 듣고 알았어요. 승룡이가 자기는 학교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승리한 투쟁이라 해도 그때의 기억들에 취해 살면 힘든 부분이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이 10년이 판타지 같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적인 요소를 넣기도 했고요. 제가 감독이지만 이 영화를 제가 만든 영화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정리했던 영화 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서 내가 찍어 놓은 걸로 영화 작업을 할 건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어요. 영화 속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필요했던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정리가 됐던 것도 있고요.
강상우: 감독님께서 ‘빈 공간’이라고 표현하셨던 건 당시 투쟁 현장에서 카메라로 담기지 못했던 당사자들의 마음이고, 인터뷰는 이 공간을 본인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과정으로 보면 될까요?
박주환: 역시 잘 아시네요. 그 당시에 저는 촬영만 했지 이런 지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요. 인터뷰를 다시 하면서 친구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서 제가 편집본을 보여줬어요. 친구들도 보면서 회상에 빠지더라고요. 그 모습도 촬영은 했으나 어색해 보여서 넣지는 않았어요.
강상우: 뜬금없지만 이승현 씨는 체육 전공인데, 다른 분들도 다들 체육 전공이었나요?(웃음)
박주환: 아니요. 한 번은 촬영하는데 저를 갑자기 둘러싸고 뭐라고 하는 거예요. 무서워서 명식이에게 도와 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그때 명식이가 급히 오는데 제가 봐도 조금 무서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총학생회장의 모습이 아니긴 하더라고요.(웃음) 감독님께서도 그런 맥락으로 물어보신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 계속 노출된 이유는, 정말 물리적인 충돌이 많았어요. 2011년에는 경찰이 둘러싸서 앰프 등 촬영 물품을 다 빼앗았어요. 다들 당황할 때 제가 화를 내면서 다시 장비를 가져왔는데, 일주일 있다가 승현이가 총학생회 선거에 나가라고 제안하더라고요.(웃음) 반대진영에서 정말 별의별 일을 다 했어요. 그걸 견딜 수 있을 만한 친구를 찾아야 한 거죠. 그래서인지 그런 이미지의 친구들이 총학생회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짓밟더라고요. 처음에는 카메라를 되게 많이 빼앗겼는데, 제가 난리를 치니까 그 사람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졸업식 장면에서 준성이가 ‘좋게 이야기할 때는 들어주지도 않고 꼭 이렇게 해야 듣냐’고 하듯, 알게 모르게 더 거센 모습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강상우: 주인공들이 대치하는 순간들을 보면서 대화 하나하나에서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직원이 담배를 바닥에 버리는데 주우라고 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거든요.
박주환: 이건 내가 잘못했다면서 바로 주우셨죠.(웃음) 편집을 하면서 승현이의 1인 시위 장면, 교직원 분이 담배 줍는 장면, 그리고 종완이가 김문기 전 총장 출판기념회를 찾아가는 장면이 너무 웃겼어요.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영화인데 순간순간 풀어주는 장면이 있어서 고맙기도 해요.
강상우: 출판기념회에서 졸업생 분께서 지나가시면서 김문기 씨에게 항의를 하는데, 예기치 않은 연대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박주환: 맞아요.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아는 선배인데, 그 현장에 계실 줄은 몰랐거든요. 갑자기 나타나셔서 소란을 피우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촬영을 하면서도 통쾌했어요.
강상우: 영화 속 주인공들이 열심히 싸우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이 나오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다음에 각자의 일상들을 한 명씩 보여주는데, 저는 외로워 보인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박주환: 한 번은 명식이의 일상을 하루 종일 쫓아다녔는데 영업 일을 하다 보니까 밥을 거의 혼자 먹는대요. 총학생회를 할 때는 20명, 30명이 같이 활동했는데 지금은 혼자 있으니 외롭다고 했어요. 저와 친구들이 학교를 다녔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해요.
강상우: 학교에서는 명확한 적이 있는데, 사회에 나오면 적이 누구인지, 어떤 형태인지 교묘해지는 구조에서 각자의 전투를 하게 되는 게 오히려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주환: 저도 상지대의 현실을 보면서 느낀 건데, 절대악이 없어졌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더라고요. 촛불집회 이후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게 나아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상지대 또한 다른 문제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고요.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바꿔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감독님 말씀대로 전선이 안 보이는 거예요. 각자의 삶이 점점 힘들고 피폐해지고 있는데, 전선이 보이지 않으니까 점점 더 움츠러드는 지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고민들을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상우: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감독님께서 워낙 말씀을 잘 하셔서 진행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앞으로 많은 학교에서 상영 요청이 들어오고, 많은 관객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아직도 투쟁을 진행 중인 학교도 있으니까 영화를 통해서 연대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으로 감독님 한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주환: 개봉을 하면서 독립영화의 현실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질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영화 장르가 꼭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앞으로 감독으로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같이 홍보를 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SNS에 감상평도 올려주시고 주변에 많은 홍보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강상우: 오늘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해주신 감독님께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늘 두려운 고민을 안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묘하고 폭력적인 반대 진영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소통하고 투쟁하며, 상지대 정상화를 넘어서 타 학교와도 연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민주적이고도 열정적이었던 청춘들의 모습이 담긴 〈졸업〉이 각자의 전선에서 분투하고 있을 관객들에게 자그마한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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