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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Playing/정기상영 | 기획전

10월 인디포럼 월례비행 <밤빛> 비평

by indiespace_은 2019. 10. 31.



인디포럼 월례비행 10월: 비가시성의 옹호 <밤빛>


글: 송효정 영화평론가



무성 흑백영화를 본 듯 감각의 착오가 일어난다. <밤빛>이 경험케 하는 세계는 그렇게 정적이며 동요 없이 무상하다. 


스타일만이 아니다. <밤빛>은 여러 모로 동시대성과 거리가 멀다. 주인공인 사내의 탈세속적 라이프 스타일, 요즘 영화와 전혀 다른 느린 템포, 대화나 사건이 거의 없는 밋밋한 전개, 영화 타이틀의 디자인과 배호의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특정 시대의 감각에서 동떨어져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인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밤빛>은 묵직한 자연 앞에 왜소한 인간사를 배치하는데 그 거대함과 보잘것없음의 대조 속에서 역설적으로 명멸하는 인간의 삶의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약초방 사내가 있다. 가게는 일정 기간만 열 뿐 대부분의 삶을 산에서 홀로 보낸다. 사내는 피부색이 다른 아들을 처음으로 만나 산 속에서 2박 3일을 보낸다. 애잔한 만남이 있고 과묵한 마음이 조응한다. 계절은 바뀌고 눈은 나리며 그렇게 산의 시간은 흘러간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사를 품고 거대한 자연이 그렇게 거기 있다는 것. 달리 영화를 묘사할 다른 언어를 찾기 어렵다. <밤빛>을 설정의 언어로 설명하면 앙상해져버리고 만다. 아무리 상영과 관람의 형태가 첨단화되어도 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있는데 <밤빛>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고요하나 충만한 정서와 정적인 리듬을 가급적이면 암전된 극장에서 경험하기를 권한다. 산에 거주하는 사내의 일상을 보여주는 전반부는 대사 없이 움직임과 표정을 따라가는 무성영화 같고, 후반부에서 단독자 인간의 생사소멸이 거대한 자연 속에 놓인 숭고한 장면들은 어두운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보아야만 제 맛을 느낄 것이다.





사내는 아마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만나 2박 3일을 보내는데 그들이 보내는 오두막엔 전기도 가스도 들어오지 않는다. 첩첩 산골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밥을 해먹는 일과 산에 오르는 일이 전부다. 이러한 일상적이며 사소한 장면들이 쌓이며 영화의 서정적 깊이를 구축해 간다. 여기에는 말수 적은 두 남자가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투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일조하고 있다. 사내가 밥을 차리는 장면이나 아들이 사내의 약을 사주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영화가 인물의 감정이나 관계성을 문이나 거울과 같은 프레임을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제목이 별빛이 아니라 밤빛이라는 것은 이 작품이 보이지 않는, 하지만 보이는 것들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경의를 보내는 작품임을 짐작케 한다. 암흑물질이라는 것이 있다. 빛을 내지도 빛을 반사하지도 않는 이 물질이 있기에 우리는 반짝이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밤이란 빛이 없는 시간이기에 ‘밤빛’이란 모순어법이지만 역설을 통해 반짝임과 서정을 담은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는 밤빛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어두운 밤에 홀로 있는 것이 무서운 남자는 집안에 야광 별들을 보여주는데, 집에 놀러온 아들이 그 별을 바라보는 장면은 두 부자가 서로의 외로움을 말없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된다. 운명이라 하든 예감이라 하든 보이지 않는 자연의 부름에 몸을 맡긴 사내를 따라 우리도 이윽고 산의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밤빛은 그렇게 우리에게 쏟아져 내린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영화를 두고 부재와 없음이 아니라 풍부한 긍정과 영화적 운동으로 가득한 영화라하였다. <밤빛>은 어둠, 심연,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방향, 인간과 자연의 고유한 품성이 지닌 풍부한 아름다움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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