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꼭 되어야만 할까요? 〈어른도감〉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8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인선 감독
진행 이옥섭 감독 (〈메기〉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김인선 감독의 〈어른도감〉이 개봉한지 일 년이 지나 인디스페이스에서 돌잔치를 열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떠나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세 명의 인간들이 조우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위로가 되어주는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를까요. 사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일을 조금씩 버려가는 것이 아닐까요? 〈어른도감〉을 연출한 김인선 감독과 개봉을 앞둔 〈메기〉를 연출한 이옥섭 감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김인선 감독(이하 김인선): 〈어른도감〉을 연출한 김인선입니다.
이옥섭 감독(이하 이옥섭): 개봉한 지 딱 일 년이 지났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김인선: 작년 8월 23일에 개봉해서 이렇게 돌잔치를 하게 되어 기쁘고요. 벌써 일 년이나 됐다는 게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이옥섭: 처음 보신 분도 계시고, 재관람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어른도감〉을 세 번 정도 본 것 같은데요, 일 년 전에 봤을 때와 지금 봤을 때 느낀 점이 많이 달라졌어요. 일단 경언이가 저에게 다르게 느껴졌어요. 일 년 전에는 ‘내가 경언이보다는 어른이고 재민이에 가까우니까, 나는 어떤 어른일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그때 제가 어른이 아니었나봐요. 지금은 경언이한테 감정이입이 돼서 제 곁에 있었던 어른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제 곁에 세 분이 계셨는데 나이가 너무 들어서 노쇠한 할머니, 아프셔서 돌아가신 존경하던 선생님, 그리고 좋아했지만 연락을 안 하게 된 고모예요. 그 분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지네요.
김인선: 처음 만들었을 때 많이 받았던 질문이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냐는 것이었어요. 대답하기 참 어려웠거든요. 그때마다 이재인 배우님께 대신 이야기 좀 해달라고 했는데, 재인 배우님이 너무 현명하게 “책임감 있게 사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도 이옥섭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서 내 주변에 있었던 좋은 어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어른이 더 이상 세상에 안 계신 경우도 있고 멀어진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 희망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캐스팅이 정말 절묘했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한 비화가 있나요?
김인선: 이 영화를 2016년에 촬영했어요. 3년이 지나 가물가물한데요. 이재인 배우는 지금은 워낙에 잘 알려진 배우가 되어서 뿌듯한데, 그때는 귀여운 초등학생이었어요. 재인 배우를 보고 경언 역을 먼저 결정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재인 배우와 연기 합을 맞출 삼촌 역할을 고민을 했어요. 엄태구 배우님이 가지고 있는 거친 느낌이 어떻게 보면 이 영화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의외성이 있어서 오히려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캐스팅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엄태구 배우님은 〈밀정〉(2016)이라는 영화에서 하시모토 역할을 맡은 후 새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어요. 악역이나 강한 역할이 아닌, 좀 다른 역할이라는 점에서 재민 역할을 선택해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배우들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돌이켜봐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옥섭: 이 영화 촬영이 〈사바하〉(2019) 촬영 전이었죠?
김인선: 네. 그런데 영화 포스터 촬영 때는 이재인 배우가 〈사바하〉 촬영을 위해 삭발을 한 상태였어요. 마침 엄태구 배우도 배역 때문에 삭발을 한 상태여서 포스터 촬영을 할 때 둘 다 가발을 쓰고 했어요.(웃음)
관객: 재민 캐릭터를 보면 분명 나쁜 짓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어요. 왜 ‘제비’ 짓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김인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생긴 대로 살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재민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은 사람들에게 환심을 잘 얻어내고 어떤 사람이 힘들어할 때 본능적으로 잘 느끼고 위로해주는 거예요.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을 되는 대로 활용하면서 그때그때 살다 보니 안 좋은 방향으로 그런 재능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니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고 본인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고요. 자기가 갖고 있는 기질을 다른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현재 저의 모습도 그렇고. 저의 단점을 너무 잘 아는데도, 또 똑같은 단점을 일기장에 적고 있는 저를 발견하거든요. 사람이 정말 안 변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재민의 캐릭터도 그렇게 만들게 되었어요.
이옥섭: 재민을 너무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김인선: 영화를 만들 때는, 재민이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이 미워하고 보기 힘들어하면 영화가 성립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인물을 귀엽게 봐주려고 저 스스로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실제로 배우가 갖고 있는 이상한 진정성 같은 게 있어서, 많은 분들이 재민이라는 캐릭터를 좀 안쓰럽게 봐주신 것 같은데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경언이에게 가혹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재민에게 합당한 처벌을 줌으로써 정말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옥섭: 엔딩도 원래는 점희까지 세 사람이 같이 걸어가는 것을 생각하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금 이 결말을 찍게 되셨나요?
김인선: 처음에 시나리오를 쓰면 엔딩까지 구상을 해놓고 써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 처음에 엔딩을 정하지 않고 써서 여러 번 바뀌게 되었어요. 최종 버전 직전의 엔딩이 점희, 재민, 경언 셋이 한 번에 만나게 되는 엔딩이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내려고 너무 봉합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엔딩도 다른 느낌이었겠다, 단순히 봉합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확실히 엔딩을 정해놓고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관객: 마지막 부분에서 재민과 경언이 갈등을 빚는데, 재민이 경언이가 점희한테 말을 했다고 착각을 해서 갈등이 시작된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그 둘의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언의 입장에서는 집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삼촌이 와서 화를 낸 게 되니까요. 이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인선: 지금 이 질문은 처음 받는 질문이에요. 제가 생각을 안 해봤던 부분이어서 신선해요.
이옥섭: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 ‘어른의 삶이란 오해를 견디는 것이다’라는 말이 저에게는 되게 박혔었거든요. 오해가 언젠가는 풀릴 수도 있고 안 풀릴 수도 있고. 세상이 그래서 영화에서도 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요.
김인선: 그 전부터 저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팔순 잔치가 끝난 뒤 경언이가 마음이 굉장히 흔들리고 약해져 있고, 그걸 재민이 알게 돼서 같이 별 보러 가고 했을 때 사실 재민은 직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가 하고 있는 행각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을 했을 테고, 사실 재민은 이게 잘 안 될 거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재민의 전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쁜 짓을 끝까지는 못하는 사람이어서 매번 실패하고 계속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 오해를 풀려는 생각을 아예 못했던 이유는, 재민도 이게 경언 때문만은 아니고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싶어요.
이옥섭: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강아지는 항상 제가 근처에 있어야 베란다 밖을 보고 있어요. 어느 날 강아지가 베란다에서 밖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바람에 안방 문이 닫히면서 베란다 문이 확 닫힌 거예요. 그 순간 강아지가 왜 문을 닫냐는 듯이, 화가 난 듯이 저에게 와서 액션을 취했는데, 제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바람이 그런 건데. 강아지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건 평생 풀 수 없는 오해인 거잖아요. 마치 이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와 풀 수 없는 오해가 생겨도, 어떤 것은 평생 설명할 수가 없구나.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위안이 돼요.
관객: 작품이 나온 지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이 작품을 돌아봤을 때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바꾸고 싶은 아쉬운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인선: 영화가 개봉을 하고, 상영이 종료가 되고 나서 이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다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모든 것을 〈어른도감〉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아쉬운 것, 좋은 것, 이런 것들이 너무 뒤섞여 있어서요. 거기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돌잔치를 한다고 해서 기분이 되게 이상했거든요. 아까 옥섭 감독님이 저한테 비슷한 질문을 했어요.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다시 쓰거나 한다면 경언이와 재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언이와 재민, 그리고 점희 세 사람의 이야기로 끌고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또 이 영화를 만들 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두 사람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던 게 그 당시 저의 마음이었으니까요. 제가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생각조차 없었겠죠. 〈어른도감〉의 특정 장면이 좋다기보다는 저한테는 하나하나 너무 많은 스토리들이 있어서 다 좋고 또 다 아쉬워요. 딱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가 저한테 있어서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준 것 같아서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옥섭: 경언이가 참을 인(忍)을 손에 써서 계속 삼키잖아요. 저는 그 장면이 되게 좋은데 그 장면을 쓰게 된 감독님의 배경이 있나요?
김인선: 제가 어릴 때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어서 시험기간이나 신경이 쓰이는 새학기 때에는 항상 배가 아파서 학교를 못 갈 것 같다고 배를 부여잡고 있었거든요. 그러면 엄마가 손바닥에 참을 인 세 번을 쓰면 견딜 수 있다고 하면서 학교를 절대 결석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되게 재미있게 느꼈던 건 이재인 배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영화 후반에 삼촌도 자기 손바닥에 참을 인을 써서 먹잖아요. 근데 그게 경언이한테 배워서 한 게 아니라 경언의 아버지한테 어릴 때 배운 경험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요. 그래서 경언이가 참을 인을 쓰는 걸 보고 더 싫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런 생각을 못해봐서 정말 깜짝 놀랐죠.
이옥섭: 영화 속 경언이는 중1이잖아요. 지금은 고등학생인 건가요?
김인선: 경언이는 지금 고1이 됐겠네요.
이옥섭: 어떻게 지내고 있을 까요. 경언이는.
김인선: 경언이는 잘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이옥섭: 소설가들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소설 그 이후의 시간까지 생각하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그 영화 속에 있는 인물로 남아있는데.
김인선: 되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 질문이. 저는 경언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덜 불안하게 안정적인 상태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첫 장면부터 어린 소녀가 상을 당하고, 낯선 남자가 삼촌이라고 하니, 가족도 없는 어린 소녀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너무 조마조마하게 보게 됐어요. 아직 약하고 어린 소녀들은 영화나 현실에서 폭력의 대상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영화가 전개되자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역설적이게도 소녀가 정말 어른처럼, 혹은 어른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차일드후드, 보이후드, 어덜트후드도 있는데 걸후드라는 말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립영화에서 연기 잘하고 베테랑 급인 배우들이 조그만 역할로 툭툭 나와서 그것도 너무 놀랐어요. 김새벽 배우가 연기했던 후견인 검토하는 사람처럼, 어른으로서 그런 기능인들만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나오는데, 약사도 기능인으로서는 어른 같지만 감정이나 생활 면에서는 잘 추스리지 못하는 아이 같은 모습이잖아요. 그 사이에서 소녀가 나름 자기 중심을 잡아가려고 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스마트폰으로 굉장히 스마트하게 아저씨를 추적해내는 장면들도 재미있었고요. 처음에는 정말 삼촌일까 의심을 품고 조마조마하며 봤거든요. 예상했던 것들을 이 영화는 다 벗어나서 너무 좋았습니다.
김인선: 너무 감사합니다. 소감을 이렇게 말씀해주신 게 지금 저한테 힘이 많이 되네요. 지금 말씀하신 것 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게, 우리가 직업인으로서 살아갈 때는 시스템이 있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일종의 역할놀이를 하는데, 가정에 왔을 때, 혹은 사적인 영역에서는 그런 시스템이라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어떤 것들도 되게 많고요. 직업인으로서의 기능적인 모습을 그렇게 해석해서 얘기해주셔서 지금 되게 신선하고 감사합니다.
이옥섭: 그리고 〈어른도감〉 전에 감독님이 찍으셨던 단편 〈수요기도회〉(2016)도 배우 분들이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시거든요. 〈아빠의 맛〉(2014)도 그렇고요. 오늘 이 영화를 재밌게 보셨으면 전작들도 한번 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인물들이 나왔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거든요. 그런데 김인선 감독님은 〈수요기도회〉나 〈어른도감〉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씬을 너무 잘 찍으세요. 감독님은 어떻게 그런 씬들을 잘 찍어내시는지 궁금해요.
김인선: 오히려 이 영화를 찍을 때는 경언이 혼자만 있는 모습을 찍을 때 더 어렵다고 느낀 것 같아요. 저는 한 인물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요. 평소에도 누구와 깊게 관계 맺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화면 안에서 한 인물의 내면을 보여줘야 할 때 그것을 굉장히 집중해서 응시해야 하는데 그게 저한테는 되게 어렵게 느껴지고,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하나의 쇼처럼 느껴져서 인물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 자체로 화면 안이 채워지는 게 재밌더라고요. 좋은 배우 분들은 본인이 해야될 것들을 찾아서 하시는데, 또 운이 좋게도 너무 좋은 배우 분들이랑 할 수 있었고 그 분들이 화면을 잘 채워서 재미있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활력 있게 찍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더 즐겁다고 느껴서 많은 분들이 나올 때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이옥섭: 경언이 혼자 있을 때 찍을 때가 더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그걸 헤쳐나가는 감독님의 선택이나 방법은 뭐였어요?
김인선: 찍을 때 되게 어렵게 느껴졌는데 그 이후에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좀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최근에 인물을 잘 다루는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프레임에 어떤 인물이 있을 때 굉장히 집중하게 되고 그 인물들이 아주 위엄있게 느껴지는 경험들을 했어요. 어떻게 찍어야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저도 그렇게 인물을 잘 찍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어떻게 찍으시나요?
이옥섭: 찍으면 찍을수록 더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까 즐겼다고 하셔서 너무 부럽다고 느꼈어요. 저는 무서워하는데. 저는 언제 즐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할 뿐이에요. 그런데 영화는 절대 찍는다고 쉬워지지가 않고 나아지지가 않아서 그게 매력이면서도 무서운 것 같아요.
관객: 재민이 경언에게 “엄마보러 갈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데 그게 어떤 의도인지 궁금하고, 마지막에 엄마에게 인도해주는 것이 재민이가 생각한 최선의 책임이었는지, 그것 또한 무책임인지 궁금합니다.
김인선: 재민은 경언이가 아이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애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주소도 알아보고 엄마에게 보낼 계획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엄마에게 데려다주는 게 재민에게는 최선이었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그래서 그때 재민이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저희가 견인하면서 찍거나 할 수가 없어서 배우가 직접 운전을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엄태구 배우가 뒤를 쳐다보는데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시는 거예요. 그 앞이 내리막 코너였거든요. 그때 저랑 카메라 감독님이랑 셋이 타고 있었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앞에 봐요!”라고 소리질렀는데도 배우님이 너무 몰입하셔서 계속 뒤를 보시면서 갔어요. 그때 정말 진심으로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재민의 진심이었겠다, 배우가 연기한 그 마음이 재민의 마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무책임한 사람을 왜 끝까지 감싸주는 거냐는 분도 계셨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은 재민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이옥섭: 그 배우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을 것 같아요. 소리는 쳤지만.(웃음)
김인선: 매순간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하시는데, 아주 진심으로 연기를 하셔서 미안한 적도 많았고, 새로운 지점들도 많았어요. 시나리오 쓸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만이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서 저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관객: 감독님께서 여자 캐릭터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소설이든 영화든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잖아요. 가상의 인물을 대하는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캐릭터를 다룰 때 그 캐릭터를 보는 감상자한테 감정을 전달하려면 굉장히 가혹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야 할 수도 있잖아요.
김인선: 영화를 준비할 때 제가 경언이에 대해서 너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중학교 3학년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취재의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 밝고 장래희망이 분명하더라고요. 장래희망을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버스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좀 황당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아이들이 많은데, 왜 경언이한테 이렇게 가혹한 상황을 주려고 하는 건지 나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들면서 캐릭터에게 연민의 마음이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저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왜 경언이가 이런 가혹한 상황에 처해야 할까. 하지만 사실 경언이보다 더 가혹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도 많이 있고, 아까 관객 분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영화 초반에 조마조마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는 건 그런 범죄가 너무 많기 때문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만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방향을 정했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경언이가 더 힘들어지거나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요. 제가 그려내고자 했던 인물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려는 아이였어요. 그런 캐릭터에게 마음이 많이 가요.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조금 가혹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은, 그래도 이 아이한테 뭔가 조금 더 해소할 수 있는, 혹은 좀 더 직접적인 희망을 영화 안에서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지금도 너무 어렵거든요. 이 인물을 너무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도 사실 좋지 않고요. 또 한편으로는 시나리오를 너무 착하게 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또 인물의 파워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 다뤄야 할 지, 어디까지 배경을 만들어줘야 할 지, 이런 것들은 정말 어려운 지점인 것 같고, 저도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이옥섭: 영화를 만들면서 캐릭터를 만들 때 저도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그린 인물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내 영화를 보고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지만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참 어렵고,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위축될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김인선: 이 영화를 보게 될 분들이 어떤 분들일까, 이렇게 특정한 그룹을 상정하고 만들지 않잖아요.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게 될 수도 있고, 같은 것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요.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기준을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항상 흔들려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옥섭: 오늘 뭔가 되게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오늘의 대화는… 좀 이상해요. 그쵸?(웃음)
김인선: 돌잔치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웃음) 사실 좀 두려운 마음도 있었거든요. 이 영화를 마주하는 게 두렵기도 하고요. 요즘에 좀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뭔가 큰 위안 같은 것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함께 해주신 관객 분들과 진행해주신 옥섭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이 너무 크네요.
이옥섭: 영화가 좋아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든 후에는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지잖아요. 이 영화가 너무 미울 때도 있고, 누군가는 안 봤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좋은 얘기를 해주시면 또 사르르 감정이 풀리기도 하고요. 되게 롤러코스터 같은데요. 관객분들은 오늘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바처럼 좋은 기분을 가지고 집에 가셨으면 좋겠어요. 또 영화 후기를 써주시면 어떻게든 찾아서 보니까, 집에 가시면서 후기 작성해주시면 영화를 만드는 데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남겨주시면 꼭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이죠. 저는 오늘 참 좋은 시간이었는데, 다들 좋은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김인선: 그리고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인 〈메기〉도 9월 26일에 개봉한답니다. 지금 너무 좋은 독립영화들이 많아서 충만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요. 극장에서 〈메기〉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옥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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