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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Playing/정기상영 | 기획전

8월 인디포럼 월례비행 <프랑스 여자> 비평

by indiespace_은 2019. 9. 2.



인디포럼 월례비행 8월: 부재의 자리에 틈입한 것들 <프랑스 여자>


글: 정지혜 영화평론가



김희정의 영화에는 반복되는 테마가 있다. 크게 보자면 하나는 불분명한 기억일 테고 다른 하나는 죽은 자의 부재다. 많은 경우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과거 자신이 겪은 일을, 한때 마주쳤던 이를 어쩐 일인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흐릿해지고 희미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의 영화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고 때론 기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은 기억하는 주체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삭제한 공백에 가깝다. 이러한 기억 상태는 두 번째 테마인 죽은 자의 부재와 깊이 연관된다. 단편 <아버지의 초상>(1999)을 시작으로 아버지의 존재는 특히나 감독의 영화에 뿌리 깊이 자리한다. 첫 번째 장편 <열세 살, 수아>(2007)는 10대 소녀 수아(이세영)가 각별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자 그로써 비로소 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해가는 이야기다. 세 번째 장편 <설행_눈길을 걷다>(2015)는 부재의 자리에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세우고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들)와 대면하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룬다. 주인공과 부모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인물들은 절대적인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방황하고 침잠하지만 끝내 부재의 대상과 대면한다. 두 번째 장편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1)에서는 그 부재의 대상이 10대 시절 세상의 전부와도 같은 친구로 향한다. 오랜 시간 인물들은 죽은 친구의 부재를 둘러싸고 자기 기억을 덮어두거나 외면하거나 복기하려 한다.


네 번째 장편 <프랑스여자>(2019)의 미라(김호정)는 어떤가. 미라 또한 과거의 기억이 흐릿하고. 가물가물하며 더는 자신 곁에 없는 이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차례로 그들과 대면한다. 20여 년 전 배우가 되길 소망하며 프랑스로 향한 미라는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한국에서 미라를 기다리는 건 젊은 날을 함께했던 옛 친구들. 몇 해 전 자살한 해란(류아벨)만이 그 자리에 없다. 미라를 포함한 친구들은 해란의 죽음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심정적으로 일정 정도 이상 연관된 듯하다. <프랑스여자>는 희미한 기억과 해란의 부재를 불러낼 때 인물들의 과거를 현재의 인물 앞으로 직접적으로 가져오는 방식을 취한다. 이를테면 미라가 친구들과 머물던 술집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시공간이었던 술집이 과거의 시공간으로 바뀌어 있는 식이다. 마치 미라가 길을 잘못 들어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이거나 극 중 극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허물어뜨리며 기억을 소환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잠에서 깨는 미라의 얼굴을 볼 때면 앞선 이상한 미로는 미라의 꿈이거나 잠재해 있던 미라의 기억이 된다. 기억, 부재의 테마를 구체화할 때면 김희정은 잠과 꿈의 형식을 택하거나 좀 더 극적으로는 환상과 상상의 신을 삽입(<열세 살, 수아>에서 수아의 환상 속 인물 윤설아(김윤아)를 만날 때의 장면을 떠올려 보자.)하거나 환시(<설행_눈길을 걷다>의 정우(김태훈)는 제 손바닥의 상처가 징그러운 벌레로 보인다.)를 경험하게 한다.


미라가 마주하는 부재는 김희정의 전작의 인물들의 그것보다 좀 더 중층적인 이유들로 얽혀있는 거 같다. 미라는 과거 자신의 행동이 혹여나 해란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해란의 존재는 그보다 더 크게 미라에게 다가와 어른댄다. 해란은 미라의 악몽에 등장해 미라의 불안감과 신경쇠약에 가까운 상태를 더욱 증폭하는 존재로 출몰한다. <프랑스여자> 속 인물들이 언급하는 연극 <하녀들>, <배신>의 한 장면이, 그 연극의 배우로 출연한 해란이 미라의 꿈에 틈입해 미라를 흔들어 깨우는 것만 같다. 과거의 인물 해란이거나 현실 아닌 연극 속 주인공이 현재의 미라를, 연극 바깥의 현실의 미라를 각성하게 한다. 미라를 제외한 <프랑스여자>의 인물들 대부분이 배우이거나 연출가이고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예술, 특히 극과 현실의 경계에 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프랑스여자>의 이러한 연출이 다분히 의도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처럼 흐릿했던 과거 기억이 삽시간에 현실을 압도할 때 그것은 일면 병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미라는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낀 듯 보이며 그 불안을 타계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전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이 아시아 여성이기 때문에 사랑한 거 같다는 미라의 말에는 남편을 향한 배신감과 더불어 과도한 불안이 반영된 자기 해석과 확신이 반영돼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미라는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 현장에 있었던 피해자이자 끔찍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생존자이다. 미라가 보여주는 일련의 무기력과 날 선 긴장 상태와 육체적 고통의 호소는 정신적 외상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이번에도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미라를 어린아이처럼 울게 만든다. 이 복합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미라의 불분명한 기억과 아픔을 끝내 어루만져주는 건 무엇인가. 어둑한 붕괴의 현장에서 미라를 어루만지는 손길, 다정한 목소리다. 그것은 다시 한 번 아주 먼 과거에서 온 것들이며 죽음의 순간에 다른 방식으로 돌아오는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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