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여름〉 한줄 관람평
이성현 | 서사의 과감한 생략법 위에서 돋보이는 색채 연출
송은지 | 2019년의 여름 이야기를 듣고싶다
최승현 | 사랑과 무너짐, 그 여름의 파편들
성혜미 | 우리는 혐오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성빈 | 어리숙함의 이야기
〈검은 여름〉 리뷰: 우리는 혐오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성혜미 님의 글입니다.
여름을 생각하면 우리는 단연 싱그러움, 생명력을 대표 이미지로 꼽는다. 그러나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던 이원영 감독의 여름은 ‘검은’ 여름이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어떤 논리적 설명도 필요 없이’ 서로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평범한 사랑은 결국 비극이 되어 다가왔던 그 해 여름을 그린 영화 〈검은 여름〉은 동성애를 옳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연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검은 여름〉은 지현이 남기고 간 메모들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두 사람의 감정을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기 때문에 지현 역시 이 사랑의 출발점과 종착지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러한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영화 내내 푸르고 어두운 장면들이다. 지현의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각각의 장면들은 곧 흑백이라도 될 것 마냥 채도가 빠져있으며, 반대로 지현과 건우가 그들의 감정을 확인하고 깊은 사랑을 할수록 높은 채도로 구성된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뒤에 한없이 내리는 장마처럼 우중충한 기운이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멈추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 젖어 사라지는, 아니 타인에 의해 지워지는, 누군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러나 인권 영화와 인권에 대한 영화는 엄연히 다르듯, 동성애 영화와 동성애를 다룬 영화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검은 여름〉은 ‘동성애를 다룬 영화’에 가깝다고 조심스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직원(조교)으로 일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지현은 다음 영화를 준비하며 만난 배우 건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함께 작업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관계가 대학 커뮤니티에서 논란으로 떠오르게 되면서 결국 지현은 스스로 성범죄의 가해자이길 자처한다. 끝내 극단적 선택에 다다르는 지현의 안타까운 행보의 과정에서 우리는 불편한 지점들을 엿볼 수 있다.
먼저, “남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남자”였던 ‘바람개비’와 같은 사랑에 왜 여성이 도구적으로 이용되어야 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논리적 설명이 필요치 않은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영화는 내내 이성을 등장시킨다. 더불어 불법 촬영 동영상을 통해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당하며 대학 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지현과 건우에게 주어지는 정신 내지는 육체적 폭력은 ‘그럴 것 같은’ 이미지들의 나열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혹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이들만의 감정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만연한 관습 때문이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차별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등한 사랑을 주지하면서도 지현과 건우의 사랑을 갈라놓는 것은 사회적인 편견들 때문이라고 외치는 영화적 시선은 물론 필요하지만, 꽤 난감하다.
지현과 건우의 여름은 이내 누구의 계절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적 좌절이 되어 녹아내렸다. 두 사람에게서 ‘검은 여름’이란 이미지를 제외한다면 대략 이렇다. 사려 깊은 사람,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 있는 사람. 그들은 이러한 성정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틀 안에서 잘 어울리던 지현과 건우는 사회적 편견을 입고 한 순간 혐오의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존경과 선망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증오와 분노는 타인에 대한 오해를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지금, 혐오 사회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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