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좀 더 솔직해져 본다면 인디피크닉 2019 <잠시 쉬어가도 좋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6일(토)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강동완 감독, 김한라 감독, 임오정 감독
진행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성빈 님의 글입니다.
2018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잠시 쉬어가도 좋아>는 ‘독립(independent)’이라는 키워드 아래 뭉친 세 감독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청춘에 대한 관계 고찰 보고서다. 우리네 일상,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다양한 관계의 민낯을 개성 있게 드러낸 세 개의 단편은 짧은 준비 기간, 풍족하지 않은 재원, 수많은 변수들로 가득한 촬영 환경에서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감독은 그저 ‘영화를 찍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태도는 사뭇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영화를 만든다는 일념 하나로 꿋꿋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낸 강동완, 김한라, 임오정 감독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하 김동현): 안녕하세요. 오늘 GV 진행을 맡은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입니다. 영화를 만드신 세 분의 감독님들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편안히 관객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강동완 감독(이하 강동완): 안녕하세요. <돌아오는 길>을 연출한 강동완입니다.
김한라 감독(이하 김한라): 안녕하세요. <대풍감>을 연출한 김한라입니다.
임오정 감독(이하 임오정): 안녕하세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연출한 임오정입니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후 처음 선보이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상영입니다. 크레딧에서 보셨겠지만 이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가 제작·지원을 했어요.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오늘 감독님들께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간략하게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드릴게요. 서울독립영화제는 지난 2009년부터 독립영화 창작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재원이 풍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편을 각각 제작·지원하고 그것을 장편 옴니버스로 발전시켜서 배급과 개봉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프로젝트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결정이 늦어지면서 굉장히 짧은 기간 내에 작품을 완성시켜야 했어요. 시기적으로나 제작 예산이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감독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수락하셨으며 수락 이후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배신감을 느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강동완: 프로듀서를 맡은 다른 장편 영화를 작업하는 중에 연락을 받았었는데요, 제작비 지원을 처음 받아보는 거여서 연락을 받자마자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배신감이랄 것은 없고, 날씨를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날씨마저 좋았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못 쓰는 편인데 준비하는 기간이 짧아서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김한라: 저는 날씨에 배신감을 많이 느꼈습니다(웃음). 태풍이 와서 울릉도로 배가 못 들어갔기 때문에 포항에 며칠 묶여 있었던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임오정: 제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집에 앉아서 ‘계절이 흘러가고 있구나.’하며 감상하고 있을 때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김동현: 다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한데요, 사실 김한라 감독님께서는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상 영화를 만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 제안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을 하셨었어요(웃음). 어려운 여건이었음에도 수락해주셨던 감독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시나리오를 탈고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아무래도 감독님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민이 재료가 되어 시나리오에 투영되었을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오정: 프로젝트 제안을 받기 전에는 ‘나 좋은 아이템 있는데, 왜 기회가 없지.’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기회가 생기니까 머릿속이 백지가 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가장 편안하게 찍는 게 합리적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여자 두 명이 주인공인 이야기도 충분히 재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한라: 저는 촌스러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배우들이 울릉도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단순하게 접근했었던 것 같아요.
강동완: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오랜 시간 동안 있었지만 그동안 제작비 문제로 항상 배우 두 명만 나오는 영화를 찍어왔었어요. 여건만 된다면 이렇게 여러 가족 구성원들이 나오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김동현: 제가 알기론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감독님들께서 답변을 심플하게 해주시네요(웃음).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쭙고 관객분들에게 질문을 받겠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스탭을 빨리 구성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고민들을 가지고 배우분들을 캐스팅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한라: 배우들 같은 경우 그동안 독립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얼굴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희는 총 7명의 스탭으로 꾸려져서 서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고생했기 때문에 아직도 짠한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김동현: 스탭이 7명밖에 동원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인원도 그렇고 촬영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하기엔 장면마다 스케일이 굉장히 커 보여요. 어떻게 그런 장면을 만들 수 있었나요?
김한라: 섬(울릉도)이 반 이상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강동완: 저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늘 같이 작업하는 스탭들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부탁을 했어요. 이제껏 항상 소수 인원으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가장 많은 인력을 동원한 것이 작품입니다. 배우 캐스팅에 대해서 말씀 드리면, 권해효 선배님만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뵈었고 다른 배우들은 모두 다 연이 있던 분들이어서 그 중에 매치를 해보고 싶은 배우들을 위주로 캐스팅을 했습니다.
임오정: 이우정 배우님은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유명한 감독님이신데 연기도 굉장히 잘하셔서 캐스팅을 하게 되었어요. 스탭들의 경우 촬영감독도 그렇고 다들 비슷한 동네에 살면서 “영화 찍기만 해,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얘기했던 친구들이에요. 그 외에는 제가 스탭을 구할 방도가 없어서 지금까지 영화작업 하면서 쌓아뒀던 쿠폰들, 같이 술 마시면서 약속했었던 쿠폰들을 사용했어요(웃음).
김동현: 감독님 평소에 좋은 관계들을 잘 쌓아두셨네요. 보통 독립영화는 이렇게 서로 두레처럼 돕고 도우면서 진행되는 것 같아요. 제가 예산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제작비용으로 딱 천만 원씩 지급했고요, 후반작업과 배급·마케팅은 서울독립영화제가 맡는 식으로 프로세스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프로덕션 그리고 캐스팅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요, 이제 영화에 대한 질문을 관객분들로부터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감독님 세 분께 각각 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돌아오는 길>에서 가족들의 감정이 가장 격앙되어 있을 때 갑자기 텐트에서 불이 나잖아요. 보통 불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마치 물의 이미지처럼 가족들 간의 갈등을 잠재우는 데 쓰이더라고요. 강동완 감독님께서 어떤 의도로 연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대풍감>에서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오는데, 김한라 감독님께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고 이 대사를 쓰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에서 저는 두 인물 중 영신이라는 캐릭터에 더 관심이 갔는데요, 영신이 집을 떠나는 것은 너무 갑작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우희는 강아지에 자신을 빗대어서 자기 심리를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신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그런 비유가 따로 없잖아요. 영신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제가 미처 캐치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임오정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강동완: 텐트에 불을 낸 것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지금은 굉장히 사이가 좋아졌지만, 제가 어머니와 그리 친하지 않았을 때 둘이서 해외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영화에서처럼 텐트를 치고 지냈었는데, 외부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머니와 제가 합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렇게 외부에 공동의 문제가 생길 때 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나서는 상황을 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저도 과거에 실수로 불을 내서 제 자켓을 벗어서 끈 적이 있거든요. 친구들이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나중에 핸드폰 액정 안에 담긴 제 모습을 보니까 너무 급박한 상황인데도 웃기더라고요(웃음). 두 상황 모두 영화에 가져오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결국 제 경험들을 녹여낸 장면인 것 같아요.
김한라: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주인공 프란시스가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하는지 고민하던 순간에 결국 다른 것을 선택해도 내 삶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잖아요? 저는 학부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때쯤이면 다들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이 애매한 걸까? 근데 내가 이걸 그만두면 다른 걸 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요. 아마 대부분의 20대 친구들이 그런 고민을 할 거예요. 지금 이 곳에도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그런 친구들은 보통 주위에서 부러워해요. ‘너는 하고 싶은 걸 하잖아’하면서요. 이런 인물들을 영화에 가져오고 싶었어요.
임오정: 우희가 강아지를 보고 얘기하는 장면이 길게 있지만 그 전에 영신이도 강아지를 보자마자 자신을 투영하는 말을 하거든요. 그 강아지를 방치한 보호자, 이를테면 자신의 남편 같은 그런 사람을 욕하는 것이 영신의 캐릭터이고, 그 강아지 자체를 자신으로 보는 것이 우희의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게 두 인물의 차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관객: 예산이 많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대풍감>은 항공 촬영장면을 비롯해서 화면이 굉장히 멋있어요.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 촬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영화가 확실하게 끝을 맺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감독님께서 어떤 의도로 결론을 내리신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에서 중간에 달리기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두 인물이 트랙을 반대로 뛰는데 이것이 연출된 것인지, 그리고 처음에 우희의 방이 지저분했다가 나중에 깨끗해지는데 이것이 의도된 장면인지 궁금합니다.
김한라: 드론을 가져오신 촬영감독님 밑에 촬영팀 겸 조명팀이 단 두 명밖에 없었어요. 두 분이서 다 한 거죠. 저도 스탭이 부족해서 제가 슬레이트 치고 레코드 버튼 누르고 모니터에 달려가 앉아서 디렉팅했거든요. 사실 섬이 한 게 반이지만 그럼에도 오버롤 해서 뛰려고 했어요. 풍경이 주는 압도적인 그림도 있지만, 청춘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그때는 잘 모르잖아요. 멀리 떨어져서 보면, 타자화해서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데 말이에요. 그런 속성을 울릉도라는 섬과 연관 지어서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했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 부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서울로 돌아가도 똑같은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친구들이잖아요. 술 먹고 맨날 토론해 봐도 어차피 내일이 되면 또 힘들고. 그래도 이 친구들이 여행을 통해서 마음에 하나라도 담고 갈 수 있는 기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대풍감이라는 풍경 하나만 마음에 남더라도요.
임오정: 먼저 트랙 연출을 알아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영화상으로 표현이 잘 안된 것 같아서 아쉬웠던 장면이었거든요. 두 인물이 정 반대의 방향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걸 보여줌으로써 과거에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엇갈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주부에다 손끝이 야무진 영신이가 돌아가고 나서야 영신의 손길이 닿았던 우희의 집 곳곳이 깨끗해졌다는 것을 알잖아요. 결국 영신이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희 자신이 스스로 고립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고 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김동현: 영신이와 우희가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굉장히 재밌는 호흡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 두 사람은 1년 만에 만나는 관계로 설정되어있어요. 그렇다 보면 둘이 애매하고 서먹한 사이가 될 수도 있는데 감독님께선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게 되셨나요?
임오정: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설정이지만, 두 사람은 지방 출신이고 고등학교 때 친했다가 한 명은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명절이나 인생의 큰 경조사가 있을 때만 만나거나 안부를 묻게 돼요. 저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만나면 사실 옛날 얘기밖에 할 게 없어요. 과거 얘기만 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면서 거리감이 생기는 거예요. 결국 ‘친구들이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이죠. 하지만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는 존재가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김동현: 빛나고 순수했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는 거리가 생기더라도 바로 또 밀착될 수 있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럼 또 이어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볼게요.
관객: <돌아오는 길>에서 가족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펑크족 부부 가족이 등장하는데요, 어떻게 설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동완: 질문 감사합니다. 저에게 실제로 펑크족 부부인 친구가 있는데요, 그들의 SNS를 보면서 되게 멋있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정말 전형적인 엄마, 아빠로서의 말과 생각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차 싶었어요. 겉모습만 보고 저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거죠. 기성세대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 부모님 같은 경우 아직 외향적인 것만 보고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데 나중에 저희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고 선입견이 깨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 어떻게 보면 지금 세대가 바뀜과 동시에 가족에 대한 형태와 개념이 바뀌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펑크족 부부 가족을 영화에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김동현: 강동완 감독님께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워낙 제한된 공간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는데 처음에 나오는 인상적인 전봇대 신을 비롯해서 지형지물을 굉장히 잘 활용하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강동완: 앵글이나 공간 활용 같은 경우는 촬영 감독님과 얘길 많이 하는 편인데요, 촬영 감독님이 공간을 관찰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림으로 된 콘티는 따로 없어서 현장에 가서 직접 이 장면은 이렇게 찍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나눴죠. 그때 현장 가운데 전봇대가 있었는데 카메라를 가져다 놓으니까 전봇대가 정중앙을 가로질러서 가족들이 경계를 왔다 갔다 거리는 게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또 캠핑장 네온사인 같은 경우는 굉장히 경망스럽게 반짝거리잖아요? 인물들이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위에 경망스러운 빛이 비추니까 그 모습이 되게 웃기는 거예요. 아이러니하게 재미를 준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김동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김한라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김한라 감독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십 대 청춘들, 특별히 성별은 남성이잖아요. 캐릭터를 보면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어요. 그렇게 극단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설정하신 이유, 그리고 평상시에 감독님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남성들을 어떻게 관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한라: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기 문제로 되게 고민하는 친구 셋인데, 하나는 연애, 하나는 가족, 하나는 재능인 거죠. 세 친구가 당장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는데, 주위 환경(울릉도)이 너무 예쁘니까 거기서 자기 처지들을 한탄하며 얘기하는데도 그게 하나도 안 먹히는 이상한 그림을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 20대를 같이 보냈던 남자인 친구들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을 계속 관찰해봤는데, 결국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 채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자기 얘기를 끝없이 토로하는 거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김동현: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너무 짧은 기간에 진행되다 보니 충분하지 못했던 부분을 조금 수정 후 더운 계절에 새로운 버전으로 개봉을 하게 될 텐데요, 그때 또 새로운 영화 만나듯 극장에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인디피크닉은 여러 지역에 상영을 다니는 프로그램인 만큼, 내일까지 서울 관객분들을 만나고 앞으로 각 지역에서 새로운 관객분들을 만나면서 또 즐거운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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