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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풍경의 인간, 인간의 풍경 '2018 POST BIFF' <대불+>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8. 4. 29.

 




풍경의 인간, 인간의 풍경  2018 POST BIFF <대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4월 20일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신 야오 후앙 감독

진행 및 통역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2017 대만 금마장영화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은 신 야오 후앙 감독의 영화 <대불+>(2017)는 조용하지만 시종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수작이었다. 영화는 흑백과 컬러의 세계, 스크린 안팎의 세계를 오가며 풍경 속 인간과 인간 속 풍경을 재치있지만 날카롭게 드러냈다. 영화가 마침내 마주하게 하는 어떤 내밀한 인간의 풍경은 이내 관객을 어떤 마법 같은 순간으로 안내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를 만든 다소 생소한 이름의 감독을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크레딧이 오른 뒤 한국외대 임대근 교수의 진행과 통역으로 한국을 방문한 신 야오 후앙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임대근 교수 (이하 진행): 먼저 <대불+>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신 야오 후앙 감독 (이하 신 야오 후앙):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서울에는 처음 방문했는데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20년가량 찍어왔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신 <대불+>는 제 첫 장편 극영화입니다. <대불+>는 제가 이전에 찍은 단편영화 <대불>(2014)를 기반으로 장편화한, 제게는 무척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진행: <대불+>는 작년 대만에서 상영을 했었고, 금마장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만 현지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반응에 대한 먼저 질문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 야오 후앙: 대만 관객분들은 대체적으로 호평을 많이 보내 주셨습니다.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 정도 영화는 대만에서 100-200만 대만 달러를 벌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현지에서 개봉 당시 2900만 대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습니다. 굉장히 의외의 사건이었고, 이런 결과를 통해 대만의 관객들도 이제는 다른 방식의 영화, 새로운 영화, 다르게 이야기하는 방식의 영화들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만 영화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큰 액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좋은 기록을 남긴 영화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흑백영화인데다가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인물들이 쓰는 언어도 대만어였기에 지금까지 관객들이 봐왔던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30년 동안 대만어를 사용하는 영화가 없기도 했고요. 이렇듯 새로운 방식의 영화였기 때문에 관객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 관객분들이 열렬히 좋아해 주신 것은 저로서도 의외였습니다.

 




관객: 초반까지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영화를 보던 도중에 극영화라는 것을 깨닫고 놀랐는데요, 20년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오다가 극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단편영화 <대불>과 장편영화 <대불+>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 야오 후앙: 저는 원래 영화 공부를 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기회가 생겨 찍기 시작했고, 다큐멘터리는 저에게 있어 사회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카메라로 무언가를 기록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도구라고 생각했죠. 환경, 생태의 문제를 비롯해 여타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록하고 소통해 왔습니다. 하지만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이후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사회운동의 도구라기보다는 내 내면을 드러내는 창작의 일환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사회 운동뿐만 아니라 창작의 시각에서 다큐멘터리를 대하게 되었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다른 방식으로, 다른 장소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을 시도하다 보니 제 안에서 꼭 다큐멘터리여야 하는가하는 물음이 생겨났습니다. 이후 실험영화나 극영화를 찍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대불><대불+>는 두 주인공이 사장의 블랙박스를 훔쳐보게 된다는 기본적인 얼개는 같습니다. 하지만 단편영화 <대불>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고 두 주인공이 사장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 영화의 결말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단편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 이상의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못했습니다. 단편을 하나의 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장편은 그 점을 쭉 끌고 나와 만들어낸 선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선들을 계속 만들어 내다보니 선들이 면이 되었고요. 이렇게 점, , 면의 개념으로 단편에서 장편화를 해 나간 것 같습니다. 장편에는 보다 다양한 인물들의 생활 양식, 공장 내부의 문제 등이 더해질 수 있었습니다. 체육관 법회 장면의 경우, 단편에서는 공장 내부에서 절을 하는 장면이 장편에서는 체육관에서 크게 법회를 여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는 등의 차이도 있습니다.

 

 

관객: 비슷한 질문인데요, 단편영화 <대불>이 장편영화 <대불+>가 되며, ‘+’에서 파생되는 의미를 결말과 관련 지어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비롯해 단편이 장편으로 만들어지면서 더해진 의미들이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고, 단편을 장편으로 만든 이유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한 이유도 궁금하고요.

 

신 야오 후앙: <대불><대불+>의 제목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대불이라는 단어 자체는 늘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가 대불이라고 생각했어요. 장편영화의 제목을 무엇으로 붙일까 고민하던 시점에 아이폰 6’의 다음 버전인 아이폰 6+’가 출시된 것을 보았고 여기서 힌트를 얻어 대불+’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불이라는 불상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 첨가되어 있다는 의미가 있기에 대불‘+’가 붙여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단편영화를 찍은 이후에 이 작품을 장편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공부했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배우고 익혀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편영화를 찍을 만한 제작비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고요. 그런데 단편영화 <대불>이 금마장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당시 Chung Mong hong 감독이 제 영화를 굉장히 좋게 봐 주었습니다. 그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제작비 문제를 해결해 줄 테니 이 단편영화를 장편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제가 맡고 제작비는 그 감독이 속해있는 회사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단편영화라는 형식으로 이미 완결된 이야기를 왜 또다시 장편영화로 제작해야만 하는지 스스로 깊이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난 20년간 다큐멘터리를 찍어왔던 삶도 되돌아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영화를 찍으려고 했었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일련의 고민을 거치며 장편영화 시나리오는 완전히 새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단편영화 <대불>이 가지고 있었던 그 정신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장편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단편영화도 장편영화도 흑백으로 처리된 것은 공통적입니다. 영화 내에서 블랙박스 화면만 컬러로 처리된 것도 공통적입니다. 사실 단편영화를 제작할 당시 영화가 흑백으로 제작된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였습니다. 불상 제작 공장의 여러 도구와 기계들이 등장하고, 특히나 동으로 만들지 않은 불상을 동으로 제작된 불상처럼 보이도록 구현해야 했기에 흑백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하나의 창작 기법으로 사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주인공이 블랙박스를 훔쳐보는 장면 자체는 흑백이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블랙박스 화면은 컬러로 처리되는 방식인데, 그들이 보는 세상은 그들의 상상으로 완성되는 세계였기 때문에 그 화면만 컬러로 처리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흑백과 컬러를 통해서 현실과 상상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장편영화를 찍을 때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풍족해져서 영화 전체를 컬러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단편의 의도를 이어가기 위해 흑백과 컬러를 대비시켰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 여러 시각 매체가 등장합니다. 블랙박스, 도색잡지 등 여러 매체가 등장하고 관객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형식이 많은데요, 이러한 구도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화가 긴장감 있는 사건을 다루는데 사건 자체의 강렬함보다는 대체로 인물에 집중하는 등 전반적으로 색다르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많던데 영감을 어디서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신 야오 후앙: 제가 영화를 찍기 위해 불상 공장에 다녀보니 건물 3층 높이의 불상도 있었습니다. 특히 대만에는 거대한 불상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다가 문득 저 불상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이것이 발상의 시작이었습니다블랙박스에 대한 영감은, 제가 가벼운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던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블랙박스를 확인하던 중 누군가가 이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꺼내서 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하는 생각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블랙박스 자체가 보여주는 화면은 차의 외부인 대로변입니다. 그런데 블랙박스에서 녹음되는 소리는 자동차 내부의 소리죠. 이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화면과 소리의 결합, 나아가 화면은 우리가 늘 만나는 공공 공간을 기록하고 있는 데 반해 소리는 사적 공간인 차 안의 소리가 기록되는 상반되는 지점들이 이율배반적이고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볼 때 끊임없이 무언가를 훔쳐보는 것 같은 행위에 동참하게 됩니다. 두 주인공은 사장의 행위를 훔쳐보게 되고 관객들은 그들의 훔쳐보는 행위를 훔쳐보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살인 장면은 구체적으로 화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도 관객도 보지 못하죠. 사장이 여성 캐릭터를 폭행하고 있을 때 화면이 꺼지고, 우리는 보지 못했어도 여성 캐릭터가 불상 안에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본다는 것과 보지 못한다는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체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로 벌어지는 일들은 보지 못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어찌 보면 훔쳐보는 것이며, 실제가 아닌 기록된 무언가를 통해 접하게 되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관객분들이 영화를 즐기는 묘미가 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관객: 대만 친구가 <대불+>가 좋은 영화라고 추천해주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지 묻고 싶고, 이 영화의 성공으로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투자를 받기 수월해졌을 것 같은데 차기작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신 야오 후앙: 관객분들께 꼭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분들 저마다 각자의 다른 생각들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정해놓은 메시지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나 삶에 대한 자기만의 답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제 삶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저의 답변을 관객분들이 꼭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질문해주신 분에게도 질문해주신 분만의 삶의 답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의 결말 또한 열린 형태로 남겨둔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에 답하자면, 사실 저는 영화를 찍는 목적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큐멘터리건 극영화건, 삶 속에서 느끼는 불편들을 영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늘어나고,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더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하다 보면 오히려 제가 자유롭게 영화를 찍는 공간이 한편으로는 위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산보다는 그저 제가 찍고 싶은 영화를 찍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관객: 영화 속에 대사가 방백(내레이션)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대만어로 극본을 쓸 때의 문제는 없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신 야오 후앙: 영화 속의 사건은 대만의 중남부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대만의 중남부는 기본적으로 대만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기에 대사 또한 당연히 대만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대만의 중남부에서 태어났기에 대만어가 제게는 모어입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다.

내레이션은 제가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부터 많이 썼던 기법이고, 그 기법을 극영화에까지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내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상업 영화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방식이지만, 저는 내레이션을 읊조리는 방식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당신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각성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의 장면들을 보며 관객에게 줄곧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상황을 상기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기 몇 분 전에 내레이션이 끝나고 화면이 점차 검어지는 시점이 있습니다. 완전히 검은 화면이 되었을 때, 그 검은 공간은 영화관 자체와 동일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관객들은 그 마지막 몇 분 동안 영화관에서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 체험은 곧 불상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삶 속의 어떤 과정들을 마주하게 되는 체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을 보며 방관자 혹은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와 비슷한 경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거리로 나가 함께 걸어가게 되면 나 또한 그 거리 속 인물로 입장이 변하게 되고, 내 삶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방관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는 것인데, 이런 식의 차이와 결합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자기만의 색이 뚜렷한 영화를 만든다는 두려움은 없는지, 또 그 두려움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떨쳐내는지 궁금합니다.

 

신 야오 후앙: 말씀드렸듯이 저는 영화를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 장편영화를 찍어본 경험도 없습니다. 그런 제게 장편영화를 찍을 기회가 생기고 제작비를 투자 받는 순간부터 스트레스와 압박과 두려움은 줄곧 저와 함께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제가 절벽에 서 있다는 느낌을 일부러 상기시켰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곳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고 곱씹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내몰았던 것 같고, 그런 압박과 스트레스들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나리오가 완성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영화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자기 확신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양극단의 생각을 오가는 사람인 것 같고, 이번 영화를 찍으며 정신적 압박이 정말 많았지만, 일단 영화를 완성 시키고 나서는 모두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진행: 대화에 통역이 오가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요, 이전에 비슷한 질문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여쭤보고 대화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신 야오 후앙: 정확하게 어떤 영화가 될 것이라고 지금 당장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구상 중인 이야기는 제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마흔 살이 조금 넘었는데요, 다음 작품은 비슷한 나이의 샐러리맨의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회사 내에서 아주 높은 지위도, 낮은 지위도 아니고 집 안에서도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아주 낮은 위치에 있지도 않은, 사회 속에서도 어느 한 군데에 정확하게 속해있지 않은 중간층에 위치한 인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상 10년 정도가 지나면 회사에서 은퇴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기도 하죠. 이런 인물을 바탕으로 다음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젊은 직원들에게 치이고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아버지, 또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중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인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영화를 촬영할 수 있을 것이고 내후년에는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 스스로를 절벽으로 내몰기 위해서입니다.(웃음)

 





말과 말은 통역을 거쳐 오갔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언어로는 건너 다닐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신 야오 후앙 감독과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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