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될 전쟁을 앞두고,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전쟁>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1월 23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백승우 감독, 박재동 화백
진행 정상민 아우라픽쳐스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11월 23일, 일주일 미뤄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시간,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전쟁>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진행을 맡은 아우라픽쳐스 정상민 대표와 박재동 화백, 백승우 감독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제작과 펀딩에 참여한 정지영 감독, 김민웅 교수, 조창희 전교조 위원장 등이 객석에서 함께해 주었다.
정상민 대표 (이하 진행) : 오늘은 수능날이라 여러 가지로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갖게 돼서 뜻깊다. 영화를 연출하게 된 의도가 궁금하다.
백승우 감독 (이하 백승우) : 저번 정권이 개인적으로는 극우정권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권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첫 번째가 세월호, 두 번째는 국정교과서 문제였다. 광화문 집회에 나갔는데 그곳에 독립영화 감독들이 많이 있었다. 현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아서 정지영 감독님께 국정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영화의 제작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을 했다. 2015년 당시에 국정교과서를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재동 화백, 명진 스님, 김민웅 교수 등 9명이 다음 스토리펀딩에 연재를 하는 방식으로 도와주셨고 이 과정에서 모인 2100만 원, 거기에 좀 보탠 약 3000만 원 정도로 만들었다.
진행 : 박재동 화백은 펀딩에 참여할 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박재동 화백(이하 박재동) : 할 때가 됐네 싶었다. 2015년은 굉장히 짜증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었는데, 영화를 만들 생각을 왜 못했지 생각을 했다.
진행 :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박재동 : 극장에서는 처음 봤다. 영화 자체는 두 번째 본다. 보고 난 뒤에 감독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다시 생각해볼 만한 일이고, 그런 일을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잘 정리해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감사하다.
진행 : 객석에 앉아계신 김민웅 교수님은 기획자로써 이번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김민웅 교수 (이하 김민웅) : 역사의 엄중성에 대해 재확인하는 기회였다. 일본의 역사인식이 점점 더 왜곡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경우엔 어떤 형태의 역사 지도를 그려가야하나 생각도 들었다. 그런 면에서 후속편이 만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역사의 그림을 어떻게 다시 그려가야할지 논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재동 : 남북한 문제도 그렇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앞으로 이야기해야 할 여지 또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행 :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촛불, 세월호, 강정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냐”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대답은 어떠신지?
백승우: 처음 이야기를 구성할 때 학생들이 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너무 TV 프로그램같은 느낌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역사학자들의 말은 안전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학자의 특성이기도 하다. 증거가 있고, 밝혀진, 팩트에 근거한 이야기만 하는 게 학자의 발언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구성으로 학자들의 이야기를 놓고, 교과서로 치면 심화, 응용을 하듯이 이후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하고자 했다.
김민웅 :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애초에 국정교과서의 의도가 말 잘듣는 노예를 만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항한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이 영화를 통해 해석하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재동 : 마찬가지로 세월호, 물대포 장면들이 나올 때, 국정화 교과서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장면으로 읽었다.
진행 : 그런 면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역사전쟁'이라는 말인데, 감독님에게 한마디로 역사전쟁은 무엇이었는지 설명을 부탁드린다.
백승우 : 역사전쟁은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계속돼온 것이고, 이것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지배자와 지배를 받는 사람 사이의 세계관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독일의 케이스를 인상적으로 봤다. 68세대의 등장 이후 3-40년간 기성세대와의 싸움을 거치면서 지금의 독일로 이어졌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누가 다수, 혹은 주류를 이룰것이냐, 그래서 누가 상식을 이룰 것이냐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 역사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판결받은 뒤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이후에도 전교조는 농성을 하고 있는데, 입시위주 교육 폐지, 대학평준화 도입 촉구, 이런 이야기들 또한 하고 있다. 전교조 조창희 위원장님은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조창희 위원장 : 촛불 역사교과서가 탄생한 것 같다. 해직되기 전에는 중·고등학교에서 역사수업을 했다. 수업하는 장면을 보니까 빨리 학교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교조의 여러 선생님들에게 영화를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영화에서 제기한 여러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영화 제작하느라 고생하셨다. 영화를 보며 최근 한국사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촛불, 광우병, 백남기 등 이런 사건들이 어떤 이에게는 별개로 다가왔을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한 가지의 큰 문제로 다가왔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기 전, 2015년 전교조에서 편집 일을 맡고 있었는데 칼럼으로 썼던 제목이 ‘박근혜의 역사 전쟁’이었다. 국정교과서 이야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였다. 이게 말이 되겠나, 진짜 실행되겠나 하는 생각이 대다수였다. 나부터도 그랬다. 하지만 이후로는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후의 흐름을 보면서 역사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깨어있는 지성, 깨어있는 교사가 필요하다. 더 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봤으면 좋겠다.
관객 : 역사 교수, 교사들은 넓은 의미로 동업자라고 불린다. 박재동 화백, 백승우 감독은 이 업계에 있지 않으신데, 업계를 넘어까지 문제의식을 확장해준 셈이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려진 진실이 빛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영화 제목을 보면서 516일이 지나고 역사전쟁이 끝나지 않았나 싶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됐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가 역사교육의 좋은 텍스트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승우 : 파리한국영화제에도 이 영화를 보냈다. 블록버스터 일색이라 기대는 안 했는데 많은 프랑스인들이 와서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을 넘어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진행 :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서 파병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다. 1992년 <하얀전쟁>을 만든 정지영 감독이 잘못을 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정지영 감독 (이하 정지영) : 다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나서 ‘역사관을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싸움 그 자체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선 영화를 만들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전 이야기를 했는데, <하얀전쟁>은 베트남전을 비판적으로 반성한 영화다. <하얀전쟁>을 일본에서 상영할 때 GV를 했다. 젊은 사람 한명이 “당신 영화를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느낀다. 당신은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에게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물론이다. 한국 국민, 정부는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베트남 국민과 역사를 위해서 사과한다는 의미만 담겨서는 안 된다. 자라나는 한국의 세대가 베트남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새기기 위해서도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통역된 다음에 극장 안이 매우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누가 박수를 쳤다. 극장 안 전체로 박수가 퍼졌다. 끊임없이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데, 엄격히 이야기해서 그것은 일본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관을 제대로 가지지 않으면 망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렇다.
백승우 : 영화를 만들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게 있다. 최소한 아시아에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하지 않았지’라는 의심이 들었다. 전혀 칭찬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같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박재동 : 촛불을 보면서 느낀 감동은 ‘우리가 이겼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영화 속 사례를 보면서 감동받았다. 시사만화를 하면서 그런 입장에서 그렸는데 공감도 많이 됐다.
백승우 :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에 등장한 학교가 어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일부러 서울은 안 갔고 경기도로 갔다. 간단하게 스케치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학교에서 이 정도로까지 토론을 하는줄은 몰랐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랑은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토론하는 장면을 보니 아이들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 영화에 담았다. 왜 2017년 11월에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사과할 게 아니라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이야기하고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국정교과서와 관련된 사건들을 기록한 영화를 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행 : 앞으로 어떤 계획들이 있으신지.
정지영 : 수능이 오늘 막 끝났고 그 아이들이 영화를 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싸웠다고 생각한 많은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강한 나라는 자긍심이 있는 나라다. 자긍심을 키워야 한다. 이런 영화를 통해 자긍심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승우 : 영화를 만들면서 깨달은 건, 인연이 닿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천안함 프로젝트> 끝나고 좀 말랑말랑한 걸 하고싶었는데 잘 안 됐다. 다음 작품 역시 인연이 닿는 작품으로 작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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