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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람이 산다

by indiespace_은 2017. 9. 8.





 <그럼에도 불구하고한줄 관람평


이지윤 | 누군가의 소박한 일상으로 개발의 민낯을 이야기하다

박범수 | 잊혀져 가던 사람들, 카메라 너머의 기록과 역사를 응시하다

조휴연 | 아직 사람이 산다

이가영 | 흘러가는 강물 속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일

김신 | 사주팔자보다 강렬하게 밀려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풍랑. 소멸의 예감 앞에 선 절박한 침묵과 움직임이 빚어낸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

남선우 | 보지 않았던 것들을 비로소 바라볼 때의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 아직 사람이 산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할머니가 경고장을 들고 눈앞에서 흔들어대도, 시장은 도개교 개통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과 악수하기 바쁘다. 자꾸 경호원들 사이로 피해 다니며 숨는다. “저 다리 올라가는 거 봐야 되는데” 서병수 부산시장은 배남식 할머니의 외침을 짐짓 외면하며 말한다. ‘다리 올라가는 거’를 다 보고 나서 시장은 바쁘게 점집을 지나쳐 사라진다. 부산 중구와 영도구 사이에는 오래된 도개교가 있다. ‘영도대교’라 불리는 이 다리는 1931년 착공해 1934년 준공되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 및 수송로 역할을 했다. ‘한국 최초의 연륙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영도대교는 2013년 도개 기능을 복원해 새롭게 개통되었다. 





부산과 영도를 잇는 다리가 생긴 그 때부터, 일제가 패망한 뒤 한국전쟁이 한반도 전체를 고통스럽게 할 때,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을 때, 영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제주에서 올라온 사람, 전쟁을 피해 위에서 내려온 사람, 원래 영도에 살던 사람들. 가족과 떨어져서, 혹은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할,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던 부산 사람들은 영도대교 밑으로 갔다. ‘점바치 골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자기 인생이 언제쯤 풀릴지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다. 묻고 대답하며, 위로해주고 위로받으며 영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오늘 영도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겐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들과 낡은 골목만 보인다. 이 사람들은 건물을 새로 올리고 길을 닦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 영도를 구경할 곳으로 만드는 게 활성화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점바치 골목에 두 개만 남은 점집도 이들에게는 눈엣가시다. 강해춘 할머니의 바닷가 일터는 지저분해 보일 뿐이다. 활성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영도는 갈아엎어야 할 낡은 섬이다. 그렇게 용접공 권민기 씨의 일터가 사라졌고, 강아지 할머니 방에는 ‘이사 가는 날’이 적힌 달력만 남았다. 해녀 할머니의 공간은 굴삭기가 헤집었다. 배남식 할머니의 점집 또한 결국 사라졌고 그 자리엔 운세 자판기가 남았다. ‘활성화’가 지나간 자리를 카메라가 비춘다. 영도를 만들어 온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까지 활성화의 일환이었나, 그렇게 생각될 정도였다. 새 영도대교 앞엔 사라진 점바치 거리 대신 ‘유라리 광장’이라 새겨진 비석을 바라보는, 운세 자판기 앞을 무심히 지나치는, 영도대교가 도개하는 장면을 구경하는 관광객들뿐이다.





하지만 영도에는 아직 사람이 산다. 배남식 할머니는 운세 자판기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노상으로 점을 본다. 용접공이었던 권민기 씨는 환경미화원으로 먹고살며 바닷가에 나가 때때로 색소폰을 분다. 강아지 할머니와 해녀인 강해춘 할머니의 경우 어디로 갔는지 영화 안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삶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바뀐 영도처럼 ‘활성화’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앞서 언급한대로 시장은 계속되어야 할 영도 사람들의 삶보다는 ‘다리 올라가는 거’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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