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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허대짜수짜님] 리뷰_극장 안에 나홀로, 그래도 1천만 관객 꿈꾼다

by Banglee 2008. 8. 26.
:: 출처 : 오마이 뉴스

극장 안엔 나홀로, 그래도 '1천만 관객' 꿈꾼다
[리뷰] <안녕?허대짜수짜님!>에 느끼는 아쉬움과 미안함
임승수 (reltih)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니 참으로 반가웠다. KTX·이랜드·기륭전자 투쟁을 통해 관심사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알콩달콩한 연애나 시원한 액션 만큼이나 중요한 비정규직 노동자 얘기가 영화에서 직접 다뤄진 적은 그 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영화 <안녕?허대짜수짜님!>을 만든 사람들은 노동 현장의 모습을 영상 다큐멘터리로 20년 동안 담아온 '노동자뉴스제작단'이다. 그들이 현장을 누비며 만들어 온 영상들이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원스> <우리학교> 등 저예산 영화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한 점도 기대를 더욱 높이게 했다. 내가 알기로 <원스>와 <우리학교>는 모두 예산이 1억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현대자동차노조에서 촬영장소 제공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까지 한 점은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한 요소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현대자동차에서 뼈를 묻어온 중년의 정규직 노동자 허대수씨다.


개봉 첫날, 영사기와 일대응 대면하는 횡재를 하다


극장 개봉일은 8월 22일 금요일이었다. 원래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1회를 보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아침에 빗방울이 엄청나게 몰아치는 관계로 낮 12시 30분에 하는 2회를 선택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 3관)에 도착해 7000원을 지불하고 표를 끊었다.


관객분들은 입장하라는 안내원의 목소리를 듣고 구입한 팝콘과 음료수를 챙겨 입구로 향했다. 1회 때 관객수가 궁금해서 안내원에게 물어봤더니 네 명이란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음…' 하는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냈다.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좌석에는 아무도 없다. 조금 있으면 들어오겠지 생각했지만 결국 혼자서 보게 되었다. 물론 영화관에 자주 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윽고 팝콘을 씹는 나, 그리고 열심히 돌아가는 영사기의 일대일 만남은 70분 남짓 계속 됐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이자 노조 간부인 허대수,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의 아버지인 허대수,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중년 노동자로서의 허대수라는 인물은 열심히 일해온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전형이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지만 현실적 한계를 느끼면서 외면하는 허대수. 하지만 그 비정규직이 자신의 사위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이야기는 전개되기 시작한다.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을 나서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이 감정들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서 그 원인을 찾아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정치적 고려'와 '외교적 수사'를 배제하고 나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영화에게 솔직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꼬인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보겠다.


개봉 첫날, 1회 관객은 네명-2회 관객은 나홀로


  
영화 <안녕? 허대짜수짜님!> 포스터
ⓒ 노동자뉴스제작단
안녕? 허대짜수짜님!

꼬인 실타래 중 한 가닥의 이름은 '아쉬움'이었다.


영화 한 편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자본과 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원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요건이 모두 갖춰지더라도 국내에서 소위 '뜬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의 우수성과 성과를 얘기하지만 대박이 터진 한두 편에 국한된 얘기일 뿐. 대부분 영화들이 소리소문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자본과 인력 및 전문성 모두에서 부족했고 이것은 영상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노동자뉴스제작단에게 미안할 정도로 아쉬웠다.


그래서 또 한 가닥의 이름은 '미안함'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아쉬움'이라는 가닥과 이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움'이 커질수록 '미안함'도 함께 커졌다.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영화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강력한 자본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휘발성 영화들을 제작한다. 현실과의 타협이든 초심에 대한 배반이든 간에 수많은 영화쟁이들은 자본의 힘에 이끌려 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절실한 비정규직 문제를 종자로 삼아 극영화를 만드는 시도를 했다. 이들에게 가지게 되는 말할 수 없는 부채감이 바로 '미안함'이다. 누가 20년간 노동자의 투쟁현장에서 복무해 온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진정성과 헌신성에 부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봐야 한다, 그래야 노동영화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풀어낸 감정은 바로 '희망'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만들어 낸 영화 <안녕?허대짜수짜님!>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폭력과 섹스 같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호주머니를 강탈해 가는 저질 영화가 판치는 영화판에 피어난 희망찬 새싹이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씨앗의 모습이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싹에 애정을 가지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볕을 쬐어 준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싹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다.


아마 영화관을 나면서 내가 얼굴에 지은 표정은 아쉬움·미안함·희망이 뒤섞인 표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배우라면 그런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아쉬움, 미안함, 희망의 세 가닥 중에 희망의 가닥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지 않겠나. 처음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새싹은 꾸준히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볕을 쬐어줘야 자랄 수 있다. 이번 주에는 <안녕?허대짜수짜님!>에게 물과 거름을 주는 날을 잡아보면 어떨까? 그래야 나중에 1000만이 보는 노동영화가 탄생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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