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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재꽃>: 지치지 않기를 빈다

by indiespace_은 2017. 7. 15.




 <재꽃한줄 관람평


송희원 | 천천히 위로한다

이현재 | 지치지 않기를 빈다

박영농 | 재(again)꽃

이지윤 | 바스러지며 피어나는 꽃처럼

김은정 | 가슴 찡한 거짓말






 <재꽃> 리뷰: 지치지 않기를 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에 나온 모든 소녀는 늘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그들의 이동은 그들의 삶을 위치하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어딘가에 있었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동물의 움직임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 단순함은 아주 간결한 상황에서 나온다.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움직인다. 이것은 어떤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비유가 아니다. 죽음은 그들과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으며, 잘 곳 또한 없다. <들꽃>(2014)의 ‘은수’와 ‘수향’, ‘하담’은 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여기에는 그들의 과거나 미래가 들어갈 만한 틈이나 여유가 없다. 당연히 타인이 들어설 자리는 더더욱 없다. 그들이 뭉쳐있다면, 그것은 추워 죽지 않기 위해 뭉쳐있는 상황에 가까웠다. 그들은 재난에 한 가운데서 재난의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기 위해 이동한다.

그들이 움직이는 시간은 주로 밤이다. 밤이라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빛이 부재하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사체를 식별하기 어렵고 살아남으려는 자들은 이를 이용해 이동을 지속한다. 그나마 함께 움직일만한 무리가 있던 <들꽃>과 달리 하담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스틸 플라워>(2015)에 낮의 시간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 낮의 시간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공동의 생활에서 내쳐진 그녀는, 밤을 자신만의 독무대처럼 이용한다. 영화는 80여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무려 5분이라는 긴 시간을 온전히 그녀가 춤을 추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존재는 오직 카메라 밖에 없다. 하담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데, 그건 자신 옆에 있는 존재가 카메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담은 자신이 속한 세계 밖의 존재들과 소통한다.




<재꽃>에 이르면 영화를 이루던 중요한 두 가지 축이 사라진 채 시작된다. 하담은 더 이상 길 위에서 살지 않는다. 그리고 낮의 시간에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을 하며 공동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다만, 그녀는 종종 ‘집’을 향하여 달린다. 달리는 모습은 흡사 <들꽃>과 <스틸 플라워>에서 위험을 피해 달아나던 하담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해별’이 온다. 하담은 달리던 와중에 해별을 만난다. 이건 우연 같지 않은데, 하담이 도망치던 대상이 그녀의 과거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거는 갑자기 하담 앞에 던져지듯 놓이는 것이다. 해별과 하담이 만나는 장면이 사뭇 감동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와 지속되던 운동을 일순간에 끊어버리는 또 다른 소녀. 그리고 하담이 달리기를 멈추면 다시 밤이 찾아온다.

이러한 점에서 <재꽃>은 낮에게 잠시 자리를 내주었던 밤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 귀환하는 영화이다. 해별이 도착한 후, 선해보였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지나왔던 과거를 마주한다. (해별이 아버지라 믿고 있는) ‘명호’는 지난 날 갚지 못한 부채를 갚을 기회를 갖자 섣부르게 흥분한다. ‘철기’와 ‘진경’은 온전한 1인분의 삶을 소화해내지 못했던 과거에 시달린다. 하담은 자신이 도망치던 대상을 마주하지만 미숙한 처신으로 난장의 원인을 제공한다. 다만 하담만이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하담은 밤을 겪어본 자로서 밤의 귀환을 환대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선의가 가득한 세계에 밤이 찾아올 때 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하담이 유일한 것이다.




‘꽃 3부작’은 밤이라는 시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밤은 마을이라는 작은 공간을 분리하고 변화를 가하며 영화를 이끌어가는 모종의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밤이 지나가면 명호의 집 앞에는 마당이 가꾸어지고 있고 해별의 방을 대신할 텐트가 놓여진다. 그리고 밤 안으로 들어가면 하담이 해별을 찾아 도로 위를 뛰고 있고 하담이 탭슈즈를 해별에게 신겨준다. 영화를 보고나서 마음속에 남는 이미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하담이 해별에게 탭슈즈를 신겨주는 밤 풍경 위로 쏟아지는 불씨들이다. 분명 어딘가 불타고 있음에도 이상한 따듯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마침내 마주한 하담의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 무표정으로 하담은 재난이 휩쓸고 간 마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마을을 떠날 때 영화는 주저하지 않고 블랙아웃 된다. 주변에 아무도 없던 하담 옆에 해별이 생겼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카메라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다.


‘꽃 3부작’에 윤리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나눌 대상이 생겼을 때, 즉 인물의 성장이 확인되는 순간 카메라는 단호하게 눈을 감는다. 어딘가 불타고 있을 화제의 현장에서 온 불씨를 바라보기. 그리고 단호한 태도로 고통에 동참하기. 밤이 찾아오면 카메라는 다시 켜질 것이다. 그러나 <재꽃>의 두 소녀가 해가 뜬 낮에 길을 떠나는 것을 단호히 붙잡지 않는다. 밤이 지나간 자리를 보며 하담은 무엇을 보았을까? 카메라나 하담이나 부디 지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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