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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부유하다 침전하는 순간들 '인디피크닉 2017' <순환하는 밤> <무저갱> <우리아빠 환갑잔치> <앰부배깅> 인디토크

by indiespace_은 2017. 4. 28.

부유하다 침전하는 순간들

 인디피크닉 2017 <순환하는 밤> <무저갱> <우리아빠 환갑잔치> <앰부배깅>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8일(토) 오후 7 50분 상영 후

참석 <순환하는 밤> 백종관 감독 / <무저갱> 김지현 감독 /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연수 감독, 류선영 배우 / <앰부배깅> 한정재 감독

진행 허남웅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변덕스럽고 알 수 없는 세상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까만 밤을 닮았다. 혼돈의 연속인 무수한 밤이 지나면 치열하고 정신없던 소동의 순간들이 머리 위를 부유한다. 그리고 부유하던 순간들은 서서히 침전하며 이름 모를 기억이 된다. 봄기운이 만연하던 토요일의 오후 여섯시 무렵, 세상을 부유하던 다섯 편의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랑의 흔적이 지나가는 고독한 내면을 담은 <빈 방>, 이름 모를 군중들의 이미지와 고전 텍스트로 낯익은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순환하는 밤>, 당연시 되었던 힘의 우위에 대한 의문을 기묘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무저갱>, 경사스러웠어야 했던 아빠의 환갑잔치에서 벌어진 소동의 기억을 담은 <우리아빠 환갑잔치>, 처연하고 지친 모습으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앰부배깅>. 다섯 편의 순간들이 지나가고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허남웅 평론가(이하 허남웅):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순환하는 밤> 백종관 감독: 집회가 있으면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나간다. 언젠가부터 집회에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고 그 위에 참가한 분들의 이미지가 올라오곤 한다. 2015년에 마침 개인적인 다른 이유 때문에 한국 근현대사 집회 관련 사진들을 찾아놓은 게 있었다. 찾아둔 이미지들과 스크린 위의 이미지들이 겹쳐졌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반복되는 일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지 영화로 풀어보고 싶어서 작업하게 되었다.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연수 감독: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시끌벅적한, 소동이 일어나는 잔치에 ‘폴로베츠인의 춤’이라는 오페라(이고르 공) 곡이 나오는 걸 이미지로 삼았다.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서사들을 붙여나가면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무저갱> 김지현 감독: 인어라는 존재를 어릴 적부터 매력적이라 느꼈다. 인어가 현실에 나타난다면, 그리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작품이 출발했다.


<앰부배깅> 한정재 감독: 의사인 친구가 앰부배깅을 했던 경험과 할머니의 장례식장 앞에서 할머니 성함을 기억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합쳐보고자 했다.


허남웅: 류선영 배우는 <우리아빠 환갑잔치>에서 실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법한 연기를 보여줬다.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듣고 싶다.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선영 배우: 감독님의 디렉션이 사실적이었다. 감독님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왔기 때문에 따라갔던 것 같다.



관객: <순환하는 밤>에서 이미지가 처음에는 조금 밝았다가 중간엔 얼굴을 약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가 뒤로 갈수록 뭉개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순서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무저갱>에서 초반에 어부가 인어를 잡았을 때 어부의 눈코입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궁금하다.


<무저갱> 김지현 감독: 어부의 눈코입은 어시장에 인어를 팔러가기 전까지 생략되어 있다. 어부가 인어라는 존재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았다.


<순환하는 밤> 백종관 감독: 순서에 신경을 쓴 것이 맞다. 부분적으로 ‘햄릿’ 텍스트 등 다른 글들을 인용했는데 인용한 부분에 맞춰서 일부러 그렇게 배치를 했다.



관객: <우리아빠 환갑잔치>에 류선영 배우의 모습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선영 배우: 현실 반영된 부분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약간 목이 쉬어있다 정도? 그것 외에는 철저한 디렉션에 의한 연기였다.(웃음)


관객: <우리아빠 환갑잔치>에서 ‘선영’이 제적을 당한다. 그렇게 설정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연수 감독: 작품은 픽션이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스스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 자체는 우리 집 이야기다. 성질이 더럽지만 나름 동생을 챙겨주는 일곱 살 많은 언니와 살고 있다.(웃음) 언니가 이화여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을 다녔다.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같은 경우 시험에서 정해진 등수 안에 들지 못하면 유급을 당해서 다시 아래 학년과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설정이 유급이었는데 유급은 생소할 것 같아서 아예 과격하게 제적으로 바꿨다.



관객: <앰부배깅>의 디테일한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앰부배깅> 한정재 감독: 의사 역할을 한 신윤정 배우와 아무 이유 없이 병원에 가서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의사 분들이 얼마나 죽음에 담담한지, 그리고 얼마나 죽음에 피곤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과 부딪히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의 지점에서 죽음을 피곤해한 죄책감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억지로 쓰라고 할 때 빼고는 할머니의 이름을 적어보거나 불러본 적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모니터에 있는 이름을 보고 ‘할머니 장례식은 어디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할머니 생각을 했다.


관객: <순환하는 밤>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W.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단테의 ‘신곡’ 등 고전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무저갱> 제목의 ‘무저갱’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궁금하다. 분위기가 어두침침하고 기괴한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남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아닌가 생각했다. 두 색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무저갱> 김지현 감독: ‘무저갱’은 성경이 한국에 들어올 당시 번역된 단어로 알고 있다. 오래된 단어고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 직접적인 뜻은 ‘지옥’이다. <무저갱>은 크게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테마를 잡았다. 인어가 살아 숨 쉬는 바다 속 공간은 푸른색을, 잡혀서 뭍으로 올라와 수조 안에 갇힐 때부터는 붉은색을 많이 사용했다. 인어에게는 이 세계가 지옥과 다름없는, 죽음과 직결된 곳이기 때문에 붉은색으로 설정했다.


<순환하는 밤> 백종관 감독: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기억, 망각, 빛 등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빛은 신성과 연결된다. 다른 의미도 있다. 망자와 신성을 나타내지만 거기서 시선을 주고받는 것, 빛으로 은유되는 것들이 평소에 읽다가 메모해둔 부분들과 연결되었다. ‘아우스터리츠’는 기억, 망각에 대한 것이다. 특히 이미지와 텍스트를 섞어가며 문체도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썼다. ‘햄릿’의 경우 굉장히 정치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를 좀 다른 의미로 썼다. 있고 없고,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이미지의 유령성 등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서 쓰게 됐다.


관객: <무저갱>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으로, 생각 없이 행했던 일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실사 영화로 만든다면, 이와 비슷한 소재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저갱> 김지현 감독: 기본적으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서 받은 응보라기보다 우리가 살면서 너무나 당연시했던 개념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실사라면 절대로 이 소재를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도록, 거세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각자 인사와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앰부배깅> 한정재 감독: 영화 봐주셔서 감사하다. 단편영화를 하나 더 찍는데 잘 나올 수 있게 준비를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무저갱> 김지현 감독: 주말에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하다. 재미있게 보셨길 바라고 다음에 다른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은 바람이다.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선영 배우: 예전에 류선영 배우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다들 극중 인물의 성격이 실제 성격이냐고 물어봤다.(웃음) 물론 여동생이 있지만, 제적당한 적은 없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웃음) 감사하다.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연수 감독: 제 영화는 류선영 배우의 덕을 많이 봤다. 기상천외한,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실제처럼 연출할 수 있도록 많이 일조해줬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실제라고 오해를 하는 게 아닐까.(웃음)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선영 배우: 감독님조차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자꾸 저를 친언니처럼 무서워하더라.(웃음)


<우리아빠 환갑잔치> 류연수 감독: 사실이다.(웃음) 정말 멋있게 연기를 해줬는데 그게 멋있으면서도 무섭더라. 이제 곧 단편영화를 학교에서 하나 찍는데 그게 잘돼서 또 서울독립영화제에 갔으면 좋겠다.


<순환하는 밤> 백종관 감독: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다. 오늘 작품들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모두 봤는데 한 번 더 보아서 좋았다. 장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잘됐으면 좋겠다.



스크린 위에 그려진 혼돈과 소동의 순간들은 관객들의 머릿속에 침전하며 어떤 기억이 된다. 침전한 기억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이따금씩 꺼내어 보고 싶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서울독립영화제 이후 다시 만난 다섯 편의 작품들도 그런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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