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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침묵 속에 빛나는 표정 <문영>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은 2017. 1. 19.

침묵 속에 빛나는 표정  <문영>  인디토크 기


일시: 2017년 1월 12일(목) 오후 8시 20분 상영 후

참석: 김소연 감독, 정현 배우

진행: 이현주 감독 (<연애담>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개봉 전 여러 영화제에서 뜨거운 화제를 일으킨 <문영>이 장편으로 개봉하여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말을 하지 않는 소녀 ‘문영’(김태리 분)이 밝지만 아픔을 가진 ‘희수’(정현 분)를 만나 서로 의지하며 변화하는 따뜻한 이야기 속에, 서로 말없이 감정을 주고 받으며 원없이 빛나는 배우들의 호연이 빛을 발한다. <문영>의 개봉을 맞아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의 진행으로 김소연 감독, 정현 배우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현주 감독(이하 이): 한 관객으로, 이제 막 영화를 만든 동료 감독으로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 관객 분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문영>이 두 여성의 만남의 이야기인 동시에 두 여성이 각각 이별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영이 가족 등과 이별하고 스스로 서는 이야기와 희수가 자기의 고민으로부터 이별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상업영화하고는 다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느껴졌고 또 여성 감독과 여성 배우의 호흡이 미덕인 영화라고 생각이 돼서 재미있게 봤고 부러운 지점도 많았다. 상투적인 질문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는데,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김소연 감독(이하 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다. 사건보다 사건 안에서 중심이 되는 이 인물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떤 걸 말하고 싶은지, 말하지 못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해서 쓴 이야기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극복하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작은 상처를 큰 상처로 덮어버리는 미숙한 인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처음에는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 완성됐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을 확장해서 장편으로 만들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김: 희수에 대한 부분들이 좀 줄었고 문영에게 더 몰입할 수 있게끔 했다. 사실 원래의 시나리오와 가깝게 64분으로 개봉하게 된 거다. 64분이라는 온전한 시간으로 보여줄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무리를 못하고 1-2년을 보내다가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단편으로 영화제에 출품했다. 줄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니 줄여지더라. 내가 애초에 이 영화를 잘못 만든 건 아닐까 고민이 많았지만, 공부가 된 시간이었다. 


이: 독립영화는 예산 등 제약이 많은 대신 연기로 승부를 볼 때가 많은 것 같다. <문영>의 경우도 김태리 배우나 정현 배우 모두 연기에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연 배우가 말을 하지 않으면서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게 쉽지 않다. 말을 하지 못하면 리딩도 못하고 연습도 할 수 없다. 구체적인 것을 논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연기를 할까 싶었다. 정현 배우가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계속 한 것 같다. 두 배우는 호흡은 어떻게 맞췄는지?


김: 김태리 배우는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아니었고 이전 작품을 전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캐스팅을 했다. 대사가 없으니 리딩도 못했다. 사실 어떤 점으로 캐스팅을 확신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오디션을 본 다른 배우들도 리딩이나 전작으로 고려하기보다 배우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 사람이 어떤 서브 텍스트를 갖고 있을지, 문영에 어울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사실 김태리 배우가 문영과 접점이 많지 않았지만,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면에 무언가 있다는 게 느껴졌고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영화에서도 그 매력이 발산될 거란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정현 배우는 대학 다닐 때 단편 영화 작업에서 뵀는데, 우선 연기를 잘하신다.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연기, 캐릭터에 대해 나누는 대화 등을 통해 믿을 수 있는 배우라는 신뢰를 갖고 시작을 해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현 배우(이하 정): 김태리 배우와 딱히 연습을 하진 않았다. 대신 오랜 시간 눈맞춤 정도? 연습할 때보다 슛 들어갔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장난치고 친하게 지내다 슛 들어가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김: 촬영 들어가고 나선 지켜보기만 해도 됐다. 현장에서 배우 두 분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둘의 호흡이 중요했던 것 같다.


이: ‘사회적 편견’이라는 대사 안에 의미를 더 담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김: 1차적으로는 정말 여름에만 밖에서 맥주를 마신다는 게 편견이라는 이유였고, 대사를 하는 인물이 희수였기에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할 수 없어 나온 말 같기도 하다. 사실 찍고 나서 나중에 느낀 부분이다.


이: 각본을 쓸 때 선택하는 모든 말들은 무의식적이라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편견이 키워드가 되지 않았을까. 또 다른 장면을 얘기하자면, 아버지가 뒤로 넘어갈 때 환상인 것 같았다. 클로즈업이고 목소리도 묘하게 들린다. 좀 더 리얼하게 하려면 다른 사건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구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가혹한 캐릭터다. 문영이 이렇게 된 건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큰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 극을 만들면서 문영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혼란과 충격의 역할을 맡는 건 아버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수와 잘 지내는 듯 보이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이 친구가 근본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처의 근본은 아버지일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이켜 볼 수 있을만한 상황을 위해 예상치 못한 충격이 필요했다.



이: 더 추가할 수 있다면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지?


김: 희수의 직업이나 여자친구와의 관계 등 그녀가 밝아 보여도 실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더 보여주고 싶다. 시나리오나 영화 안에서 표현되진 않았지만, 정현 배우와 논의를 많이 했다. 희수라는 캐릭터를 더 보여준다면 정서가 더 폭넓어졌을 것 같다


이: 문영한테 희수는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며 첫사랑 같기도 하다. 또 어떤 부분에선 사람이 아닌 공기 같기도 하다. 엔딩도 현실적이라기보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관객: 문영에게 희수가 충고 아닌 충고를 하며 관계가 시작된다. 희수는 항상 문영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담배만은 문영이 거절을 하고 덜 꺼진 담배를 끈다. 왜 담배는 배우지 않았을까? 


김: 담배를 끄는 장면에서 어떤 사람의 흔적이 남은 물체는 있고 사람은 없다는 쓸쓸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분위기와 정서를 전달하려는 장면이었다.


관객: 볼 때 마다 궁금했던 장면이 있다. 병원에서 문영이 가는 걸 아버지가 살짝 돌아본다. 이게 딸에 대한 약간의 애정일 수 있나?


김: 아버지의 캐릭터에게 그런 연민이 사실 있었다. 한 마디 정도는 전달하고 싶었을, 그렇지만 나 괜찮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사람인 거다. 영화 카피가 “사실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인데 이 영화에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투성이다.


이: 저도 이건 분명 감독의 의도라고 느꼈던 게, 그 장면에서 문영의 삶이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장면 다음 희수를 마주했을 때 상황은 동일하지만 처음과 인물이 바뀌고 앞으로 다른 삶을 살아 가겠구나 느꼈다.


김: 두 사람은 어찌되었든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이 부녀가 앞으로 어떡하려고 이러는 걸까 저도 궁금하다.(웃음) 정말로 문영이 아버지를 싫어한다면 병실을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관계 안에서 마음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걸 보여주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


관객: 인물에 대한 애정이 영화에 가득 묻어나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맨 처음 문영이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의 구절이 나오는데, 누구도 문영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 딱 한번 문영을 부른다. 그 시를 채택한 이유와 연관이 있는지? 영화 제목을 ‘문영’이라고 지은 이유도 궁금하다.


김: 맞게 봐 주신 것 같다. 내가 있기 위해선 너라는 사람이 필요한데, 문영에게 ‘나’는 있지만 ‘너’가 없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를 골랐다. 그리고 <문영>의 원래 제목은 ‘서브웨이 데이즈’(Subway days)였다. 의미를 폭넓게 가질 순 있지만, 영어라 어색한 감이 있었다. 러닝타임을 줄이고 나서 제목에 어떤 의미를 담기 보다는 문영과 문영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관객: 단편을 먼저 봤는데, 그때 문영과 희수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는 생각을 못했다. 장편을 보니 딱 눈에 띄는 장면이 희수가 문영에게 뽀뽀하는 장면이다. 저는 비중이 큰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단편으로 편집 할 때 그 장면을 뺀 이유가 궁금하다.


김: 저도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고 여겼다. 섹슈얼하거나 사랑이 베이스인 뽀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없어짐으로써 이야기가 좀 더 단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그 장면에서 문영의 집에선 문영의 비밀이 밝혀지고 희수의 집에선 희수의 비밀이 밝혀지는 게 대구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됐다. 사랑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정현 배우는 어떻게 연기를 하셨는지?


정: 희수를 연기할 때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지 않았을까. 그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날 하게 된 게 아닐까.(웃음) 희수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많은 일들을 겪었기에 긍정적인 척 해도 내가 최악이라는 생각을 한 켠에 두고 지우지 못한다. 그렇지만 계속 찾아오는 문영을 보며 ‘이런 나인데도?’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굉장히 솔직해질 수 있던 게 아닐까. 마침 라면도 먹었고.(웃음)



관객: 물가에서 놀 때 갑자기 오백원이 나오는데 배우님의 애드리브인지 궁금하다. 또 희수는 문영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정: 제 애드리브가 맞다. 문영을 웃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영이 캠코더로 촬영한 노는 장면들은 거의 다 애드리브이다. 장소 문제로 콘티를 바꾸던 중에 김태리 배우와 정말 놀면서 찍었다. 감독님도 촬영 끝나고 나서야 봤다.(웃음)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둘이서 노는 시간이 많은데, 문영이 하다못해 “아야”라고 라도 하지 않았을까.(웃음)


김: 실제로 두 분이서 찍은 동영상에 두 번의 웃음소리가 들어있어서 지워야 했다.(웃음)


이: 희수 캐릭터가 굉장히 재밌는데, 그 매력은 정현 배우로부터 나온 것 같다. 배우들이 굉장히 자유롭고 몸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말없이 표정만으로만 연기를 한다고 하면 보통 되게 과하게 표현하려 하는데, 말을 하지 않는 문영이나 그걸 받는 희수, 둘 모두 그렇지 않았다.


관객: 마지막 장면에서 문영이 “언니”라고 했을 때 희수가 웃는다. 왜 웃었을까?


정: 아마 놀라지 않았을까. 오, 목소리!(웃음) 그래, 그렇게 살아야지, 라는 생각도 들었을 거다. 문영이 한 발자국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에 내가 도움이 됐다는 생각과 함께 장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거고. 


이: 문영의 몸에서 나는 소리들이 다 지워져 있다가 가방을 끌고 갈 때 갑자기 호흡이 들린다. 감독이 의도한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엔딩의 목소리도 더 크게 들렸다. 실제 사운드라기보단 외재적 사운드 같았다. 의도한 게 있는지?


김: 아버지가 떨어진 이후에 가방을 끌고 갈 때 호흡을 의도적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게 맞다. 이 장면을 찍을 때 김태리 배우에게 당황한 감정을 많이 감춰 달라고 얘기했다. 이 상황에서도 증오를 느낄 뿐 혼란임을 지금 인지하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본인이 감추려고 해도 비집고 나온 표정이 있었다. 거기에 감추지 못한 호흡으로 문영의 감정과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엔딩은 아마 문영이 말하는 순간을 저 역시도 기다렸기 때문에 소리가 커졌던 것 같다.


이: 예전 한 인터뷰에서 새해에 주목할 만한 여성 감독과 여성 이야기, 다르게 볼 수 있는 독립영화들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빨리 그런 영화를 만나 너무 반갑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인디토크에 함께했다. 앞으로도 많은 관객이 보러 와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힘찬 자신감으로 마지막 한 말씀 부탁 드린다. 


김: 힘찬 자신감이 없었는데, 덕분에 얻고 갈 것 같다. 감사하다.


정: 날도 추운데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감개무량하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감독의 말처럼 <문영>엔 말하고 싶은 사람투성이다. 말을 하지 않으며 현실을 버텨 나가는 문영도, 한 켠에 자기 혐오를 계속 묻어두는 희수도, 문영을 쳐다보지 못하는 아버지도 모두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 입을 다문다. 사실 누구나 하나쯤 발화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 그 마음마저 열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문영>에서 그 순간은 말이 아닌 표정으로 표현된다. 침묵과 말들 사이에 오가는 아픔과 그것을 보듬는 표정, 눈빛, 몸짓이 유독 빛이 난다.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한 뼘 성장하는 <문영>처럼 관객들도 새해를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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