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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사라진 풍경의 기억들 '필름 투게더 - 탁주조합'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5. 11. 22.

사라진 풍경의 기억들  [필름 투게더] 탁주조합 <범전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5년 11월 15일(일) 오후 5시 30분

참석: 오민욱 감독

진행: 박경태 감독 (<거미의 땅>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부산의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로 구성된 ‘탁주조합’은 지금까지 여러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오민욱 감독이 연출한 <범전>은 이제 부산에서 사라진 범전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담아낸 범전동의 모습은 때로는 신비스럽게, 때로는 스산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사롭지 않은 쇼트들로 이루어진 이 다큐멘터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박경태 감독(이하 박): 저번에 인디포럼에서 보고난 이후로 영화가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소리의 레벨이나 챕터2에서부터 쇼트들이 변한 것 같아요.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수정하신건가요? 


오민욱 감독(이하 오): 편집과 믹싱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믹싱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2장에서는 미세한 부분들은 바뀌고 큰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았어요. 작품이 만들어지면 관객 분들은 이렇게 극장에서 보게 되지만, 저는 상영 환경에서 테스트를 해볼 수 없어서 소리와 영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전달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영화제를 갈 때마다 직접 보면서 테스트를 해보고, 리듬을 바꿔야 하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메모를 해서 부산에 돌아가면 수정을 해요.


박: 이번 기획전 [필름 투게더]는 독립영화 제작 집단에 대한 기획전이잖아요? 저는 ‘탁주조합’에 대해서 관심이 가던데, 이름도 특이한 탁주조합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오: 탁주조합의 일원이자 <할매> 연작을 만든 김지곤 감독과 저는 학과 선후배 사이에요. 스무 살 때 만나서 자주 술 마시고, 크리스마스 이브 때 할 것 없어서 자취방에서 같이 영화 보는 그런 사이였죠. 전공이 영화도 아닌 신문방송학이어서 영화를 만들게 될 줄은 몰랐어요. 군대를 갔다 와서 김지곤 감독이 단편을 만들게 되었고 거기에 제가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할매>까지 같이 찍게 되었어요. 탁주조합에는 저 말고도 서너 명 정도가 더 있는데, 한 명은 영화를 만들다가 지금은 통영의 특산물인 몽돌빵을 만들고 있고, 또 한 명은 KBS에서 정규 직원으로 일하고, 롯데시네마에서 영사기사를 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렇게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박: 그럼 이 단체는 프로덕션 개념으로 만드신 건가요? 아니면 영화제작집단의 느슨한 형태일까요?


오: 느슨한 형태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원래 제작사 개념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영화를 더 해보려고 하니까 사업자 등록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름은 뭐로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때 마침 <할매> 연작을 만들고 있어서 할머니들과 촬영하다가 매일 막걸리를 먹어가지고 “그냥 탁주조합 할까?” 라는 말이 나왔어요.


박: 그러고 보니 박배일 감독님이 탁주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죠, 부산에서?


오: 박배일 감독님도 저희 학교 세 학번 위 선배님인데, 생탁 관련 작품을 진행하고 계시다고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박: 이 작품의 연출의도를 읽어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형식이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연출의도에 등장하는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오: 저는 기지촌 주변에서 작업을 해온 것이 아니라, 이전 작품을 하다가 문득 기지촌에 가보게 된 거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곳은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낡은 풍경처럼 보였어요. 영어로 쓰인 간판들이나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가옥 구조들이 있어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죠. 골목을 따라 들어가 보니 미군기지 게이트가 있어서 ‘여기가 거기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맨 처음 촬영할 때에는 풍경 위주로 찍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계속 찍어나가다 보니까 이곳에 쭉 거주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인물들이 나오고 풍경도 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박: 그러니까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증언하고 목도했던 주민들이란 말씀이죠?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인물을 찍는 방식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전 작품 <재>(2013) 같은 경우는 인물이 프레임의 중심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공간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계속 디졸브하면서 평면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반면에 이 영화의 경우는 인물이 나오고, 굉장히 큰 원경이 나오고, 카메라의 눈으로만 감각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빛 같은 요소들도 나와요.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공간을 보려는 시선도 느껴진 것 같고요. 전작과 비교해서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오: 가장 중요한 것은 풍경을 기준으로 한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인물들이 자꾸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하지만 그분들의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는 큰 기준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어요. 인물의 이미지 자체만 보여주어도 그들이 풍경 안에 놓여있다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촬영을 진행하다가 중간 중간에 이분들이 말씀을 하셔서 ‘그럼 이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준비해서 가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물어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모든 것이 종결된 지점에 있기 때문에, 내가 영화를 찍는다는 우위에 서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추어내고 억지로 물어보는 것은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도 그냥 우리와 같은 소수이자 힘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관객: 이 작품을 보면서 정재훈 감독님의 <호수길>(2009)이 떠올랐습니다. 영화의 구성은 조금 다르지만 이 두 작품은 사라져가는 특정 공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두 작품은 매 장면들의 호흡이 상당히 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혹시 감독님께서는 장면을 길게 찍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 이것이 영화이기 때문에 ‘길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주 길게 만들어진 쇼트들은 사실 우리가 실제로 골목을 돌아다니거나 잠깐 서 있는 시간보다는 짧아요. 하지만 이것이 영화를 보는 문제이기 때문에 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제가 보여주려고 하는 프레임 안에서만 보기 때문에 길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상대적으로 길게 설정이 된 쇼트 같은 경우는 일단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 사라진 공간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서도 갈수가 없죠. 저 같은 경우에는 카메라를 세우고 뒤에서 보면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도 많이 보게 되거든요. 주로 카메라가 거의 정지한 상태에서 찍기 때문에, 저는 카메라를 세워두고 여기를 봤다가 저기도 봤다가 합니다. 이때 카메라 밖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이 쇼트들을 길게 찍다보면 그곳에서 지속되는 소리들이 변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우리가 그곳에 가볼 수는 없지만 실제로 가본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인디포럼에서 상영할 때와 비교해서 수정된 부분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오프닝과 엔딩을 바꾼 것은 큰 변화이지 않습니까? 어떤 이유로 바꾸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 붉은 색으로 시작해서 붉은 색으로 끝나는 것은 동일하지만, 인트로에서 등장하는 대상은 달라졌어요. 종려나무는 보통 승리를 의미하죠. 기지촌 주변에 종려나무들이 군데군데 많이 있었는데, 문득 그곳에 위치한 집들은 모두 헐어버렸는데 종려나무는 왜 그대로 남겼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공원의 목적 자체가 그 공간의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것인데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원을 개장할 때 여러 유명 인사들이 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걸 들으면서 이곳에 끝까지 남아있던 분들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고 정작 그분들이 정치적인 역할을 한 이유만으로 그 공간의 승자처럼 보였거든요. 저는 이러한 점을 대비시키고 싶었습니다. 



오민욱 감독은 자신이 찍는 인물, 공간, 대상에 대한 원칙을 어기지 않는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끝나면 거기서 멈추지만, 영화 속에 기록한 우리의 삶과 흔적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풍경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곳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민과 함께, <범전>은 이미 사라져버린 공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사라진 풍경의 기억을 담은 <범전>이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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