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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그는 왜 살인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살인재능> 인디토크(GV)

by indiespace_은 2015. 8. 3.

그는 왜 살인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살인재능>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7월 30일(목) 오후 8

참석: 전재홍 감독, 김범준 배우

진행: 김종철 익스트림 무비 편집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지애 님의 글입니다.


영화 <풍산개>(2011) 이후 4년 만인 2015년, 정재홍 감독의 <살인재능>이 7월 30일 개봉했다. <살인재능>은 자신이 살인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이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날 인디스페이스에선 <살인재능>의 정재홍 감독과 주인공 민수 역을 맡았던 김범준 배우와 함께 <살인재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디토크(GV) 자리를 마련했다.



김종철 익스트림 무비 편집장(이하 진행):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인재능>의 전재홍 감독과 김범준 배우를 모시고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재홍 감독(이하 전): 안녕하세요. <살인재능>의 감독 전재홍입니다. 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좋은 질문 부탁드립니다.


김범준 배우(이하 김): 안녕하세요. <살인재능>에서 민수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범준입니다. 영화 재미있게 보셨길 바라고요, 많은 질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풍산개> 이후로 4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셨어요. 관련 기사들을 보고 나면 <살인재능>을 만들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영화계를 떠난다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살인재능>을 제작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전: 우선 <풍산개>가 끝난 다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그 일에 대해서, 그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영화를 같이 찍었던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내가 영화에 재능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에요. 그래서 영화를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성격상 제 일에 대해서 남들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에요. 큰 일이 있을 때 혼자서 해결하는 편이고요. 그래서 그런 일들이 발생할 당시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집에 있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TV를 켜도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았고요. 제가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건 홈쇼핑 채널이었어요. 근데 홈쇼핑이 진짜 외로운 사람에게 좋은 것 같아요. 외롭게 집에 앉아있을 때 유일하게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하루에 8~9시간 정도 본 것 같아요. 그 당시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마침 홈쇼핑에서 힘들 때는 여행을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한 배우들이랑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저는 여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범준이를 불러서 시나리오를 보여줬죠. 범준이가 시나리오를 보고 하겠다고 해서 본 영화를 찍을 수 있었죠. 


진행: 아까 상영 전에 잠깐 감독님이랑 얘기를 나눴는데요. 김범준 배우님도 방금 영화를 보셨잖아요. 오늘 처음 보신 건가요? 


김: 아뇨.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습니다.


진행: 다시 보니까 어떠신가요?


김: 처음에 볼 때는 전체적인 것들을 보게 되고, 두 번째 볼 때는 저 스스로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장면에서 왜 저렇게 했지?' 그런 생각도 들고요. 아쉬운 측면들도 보이고요.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저의 최선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 두 분의 관계가 좀 특별하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감독님의 전작이었던 <풍산개>, 그리고 이번 영화 <살인재능>까지 범준 배우님이 계속 출연하잖아요. 게다가 이번 영화는 주연이시고요. 일단 감독님에게 먼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두 분의 관계를 일종의 페르소나로 해석해도 될까요?


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나면 서로 닮지 않았는데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처음 범준이를 본 건 10년 전쯤인 것 같아요. 제가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이었고, 단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때 김범준 배우는 서울예대 재학 중이었고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학생 중에 한 명을 캐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찾아갔죠. 그런데 그 날 너무나 고맙게도 연출과 학생들한테 연기과 학생들이 오디션을 보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뒤에서 몰래 구경을 하고 있었죠. 그 때 김범준 배우는 오디션을 보는 게 아니었고 번호를 부르는 사람이었어요. “3번 나오세요, 4번 나오세요.”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연기했던 친구들보다 이 친구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친구를 <콜링 유>(2008)라는 영화에 캐스팅하게 되었죠. 그 때의 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진행: 이번 <살인재능>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을 하셨어요. 시나리오 쓰시면서 김범준 배우를 염두에 두어두신 건가요? 


전: 처음부터 범준이를 염두에 두어두고 쓰긴 했어요. 이 친구랑 저랑 10년 정도 됐고 8편 정도의 작품을 같이 했어요. 그런데도 주연을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충분히 주연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으니까요. 많은 투자자들이 신인 배우를 기피해요.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내 돈으로 찍는 영화에 내가 믿는 배우를 주연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제가 하자고 하니까 머뭇거리더라고요. 더 좋은 배우를 쓸 수 있는데 이걸 자기한테 왜 제안 하냐고요. 그래서 제가 이 친구한테 바보라고 했어요. 주연을 줬을 때 잡는 것이 배우라고 얘기해줬고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이번 영화에 주연으로 함께 하게 됐죠. 


진행: 신뢰감이 굉장히 두터우신가봐요. 배우 분은 주연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민수라는 인물이 특이한 인물이잖아요. 그런 인물을 제안 받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김: 시나리오가 나와서 저한테 보여주셨을 때, 이 작품은 감독님이 이름 있는 배우를 캐스팅해서 투자를 받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유는 감독님이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제가 옆에서 다 지켜봤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이 영화의 주연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죠. 하지만 제가 하는 것보다 유명한 배우랑 영화를 촬영하는 게 감독님에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제가 너무 욕심이 없다면서 저를 쓸 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때는 정말 감사했어요. 사실 단편영화에서도 주연을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물론 촬영하면서 영화와 관련해서 충돌은 있었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촬영하는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진행: 극 중에서 민수라는 캐릭터가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남자에요. 8년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도 평사원으로만 있었고요. 저는 감독님이 생각하신 민수라는 캐릭터와 배우 분이 시나리오를 통해서 생각한 민수라는 캐릭터가 조금 다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떠셨나요?


전: 우선 민수라는 캐릭터는 그 당시의 제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솔직하게 만든 인물이에요. 저뿐만이 아니라 제 또래의 분들이라면 한 번쯤 느껴본 감정들을 민수가 담고 있을 거예요. 저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결혼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현실의 아파트 가격이나 결혼 비용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이러한 부분들을 고민해왔어요. 영화감독은 결코 화려한 직업이 아니더라고요. 언제 백수가 될지 모르고, 실제로 영화를 찍고 있지 않을 때는 반 백수나 다름이 없죠. 그리고 항상 누군가가 불러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갑이 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언젠가 제가 투자를 더 이상 못 받는 시기가 오면 그 때부턴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는 거죠. 이런 고민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만든 영화가 <살인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얼마 전에 기자 분께서 저한테 말씀하시더라고요. 왜 초반에 민수를 더 어눌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연기하지 않았느냐고요. 사실 표면적으로만 놓고 보면 민수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어수룩하고 부족하게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청년 실업자 대부분이 어수룩하고 부족해서 그러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감독님도 민수는 평범한 사람이지 바보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극적인 연기가 사람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영화 내용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진행: <살인재능>은 이야기의 중심에 돈이 있어요. 모든 사건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거고요. 영화에 도입부를 보면 민수가 돈을 잔뜩 깔아놓고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민수가 남긴 거액의 돈을 수진이 품에 앉은 장면이 나오고요. 이 영화에서 감독님이 말하고 싶은 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 돈은 거스를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이 많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엔딩부분은 홈쇼핑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홈쇼핑을 보면 생명보험 광고가 있어요. 모든 광고가 그렇지는 않지만 몇몇 광고를 보면 가족이 죽어서 슬퍼하고 있다가 통장을 보고 기뻐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끔찍했어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돈이 무기력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광고를 보면 내가 죽더라도 가족은 부양해야해,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이라는 게 내가 죽어도 나와 연관이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돈에 대한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런 장면들을 넣게 되었죠.


진행: 영화를 보면 돈뿐 만이 아니라 중독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져요. 민수라는 인물이 첫 살인을 할 당시에는 굉장히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 이후에는 살인을 통해 굉장한 쾌락을 느끼잖아요. 살인에 중독이 되고 그로 인해 계속 살인이 벌어지게 되고요. 이 영화에서 중독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전: 모든 사람에게 중독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피는 게 담배이고,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중독은 거스를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거짓말도 중독이 된다고 생각해요. 안 들키게 되면 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러한 저의 생각이 민수라는 인물을 만드는데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요. 살인도 안 들키게 되면 또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거짓말, 중독, 살인 등이 반영되어서 만들어진 영화가 <살인재능>이라 할 수 있죠. 



진행: 민수라는 인물은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을의 위치에요. 누군가에게 고용을 당해야하고 취직하기 위해서 선배에게 부탁을 하러 다녀야하고요. 민수는 항상 을의 입장에서 고난을 겪고 있다가 살인을 통해서 갑의 위치가 돼요. 물리적인 힘에 의해 자기에게 굴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을 통해 쾌락을 얻고요. 그런 인물을 연기 하실 때 배우 분께서 특별히 어려웠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김: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솔직히 이성적으로만 본다면 민수를 이해하기 쉽지 않죠. 살인을 통해서 쾌락을 얻는다는 게 정상적인 범주에서 용인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 사람이 미치는 부분이 각자 다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민수라면 살인을 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어느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나온 대사 중에 “사람이 폭력을 행하는 이유는 쾌락을 얻기 위해서이다”라는 게 있었어요. 살인도 폭력과 같은 맥락이잖아요. 이런 것과 연결해서 생각하니까 어느 정도 민수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은 많죠. 대사 하나, 장면 하나 쉬웠던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를 보면 민수가 살인을 할 때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목을 조르잖아요. 왜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전: 목을 조르는 행위가 굉장히 본능적이라고 생각해요. 짐승들을 보더라도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의 목을 물고요. 민수라는 인물 자체가 살인을 통해 굉장히 본능적으로 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일부러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목을 조르는 행위만 하도록 설정했죠.


진행: 연기를 하면서는 어떠셨나요?


김: 도구를 사용해서 살인을 하는 것과 손으로 목을 졸라 살인을 하는 건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목을 조르며 천천히 죽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은 전자와 다르겠죠. 영화를 보시면 조직폭력배를 죽이는 상황에서 민수가 처음으로 칼을 사용하잖아요. 사실 민수가 피를 처음으로 본 게 바로 그 상황이거든요. 그러면서 감정이 굉장히 격해져요. 그 때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내가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은데 내 손에 피가 묻었기 때문에 짜증나고 화가 나는 감정을 느꼈어요.  

 

관객: 일반적인 살인 영화보다 <살인재능>이 덜 잔인하다고 느꼈어요. 잔인하게 연출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고요. 감독님께서 사람들이 민수라는 인물에게 공감하길 원해서 그렇게 연출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전: 전형적인 사이코물을 찍고 싶지 않았어요. 사이코 킬러, 정신병을 다룬 영화는 많잖아요. 주인공이 살인 때문에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지 자르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행위보다는 행위에 대한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찍을 때 관객들에게 어마어마한 피의 양을 보여주기 보다는 살인을 한 이유에 대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본 영화에서 살인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오면 사람들이 민수라는 인물에게 공감하기보다는 그래픽으로만 영화를 이해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잔인한 장면들을 넣지 않았죠.


관객: 영화를 보면 후각적인 요소도 중요하게 나와요. 민수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난다는 대사도 있고요. 그런데 분명히 민수는 목을 졸랐기에 피를 보지 않았잖아요. 의도적으로 그런 대사를 넣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전: 의도적으로 그런 대사를 넣었죠. 민수가 피를 보지 않았지만 살인을 했기 때문에 민수에게서 그 살인의 냄새가 나죠. 광적인 살인을 하는 민수에게서 살인의 모습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주인공 민수가 왜 살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살인재능>은 살인이 가진 잔인함, 그 잔인함을 부각시키는 연출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 주인공을 살해 현장으로 몰아간 사회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재능>은 여름의 더위를 날려줄 뿐만 아니라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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