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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Choice] <러시안 소설> : 영화와 소설, 그 경계의 어디쯤에서

by indiespace_은 2015. 3. 10.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러시안 소설>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FE07Ez





<러시안 소설> : 영화와 소설, 그 경계의 어디쯤에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지애 님의 글입니다.


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소설은 종이와 활자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 영화는 영상과 음성을 통해 서사를 풀어낸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영화가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말하며, 그와 반대의 견해를 가진 어떤 사람은 소설이 너무 밋밋하다고 말한다. 나는 <러시안 소설>을 보면서 그들이 만약 <러시안 소설>을 보게 된다면 이 작품을 어떻게 규정지을지 궁금해졌다. <러시안 소설>은 영화일까, 아니면 소설일까.



27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깨어난 ‘신효’(강신효 분)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있었다. 27년 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작품들이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신효는 자신의 소설이 과거에 쓴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고쳐 걸작을 탄생시킨 사람을 찾아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신효의 삶은 그의 소설과 닮았다. 두 가지 모두 온전히 신효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류인간’을 비롯한 그의 소설을 고쳐 세상에 내보낸 것은 ‘성환’(경성환 분)이었다. 성환은 기초적인 뼈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새로 썼다. 서사 구조를 바꾸거나 결말 자체를 다르게 쓴 경우도 있다. 즉, 신효의 소설이라고 정의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신효의 삶은 어떤가. 신효는 자신의 삶에 등장한 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누군가의 재능을 질투하거나 누군가의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27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일도,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후 성공한 작가로서 사는 것도 타자에 의해 발생한 것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신효의 소설과 삶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 역시 ‘길고, 복잡하고, 등장인물이 많은 러시안 소설’과 비슷하다. 삶에서 인간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 ‘넌 안 돼.’ 라는 타인의 말에 우리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러시안 소설>은 우리의 삶이 본디 ‘러시안 소설’임을 말해준다. 영화는 기승전결이 없이 복잡하기만 한, 쓸데없이 등장인물이 많은 서사로 삶을 채우는 것이 우리임을 자각하게 해준다. 


<러시안 소설>은 ‘소설’을 단순히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화에서 활자를 보게 되는 일을 드물다. 대부분 풍경, 등장인물, 그들의 목소리, 음악 등이 영화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효가 쓴 소설의 일부가 끊임없이 화면에 글자로 등장한다. 또한 그러한 글자들은 영화의 내용과 맞물린다. 영화를 보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온다.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일상적인 대화보다 문어체의 내레이션이 더 많이 들린다. 이 역시 본 영화가 소설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본 영화에는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올해 2월에 개봉하여 상영 중인 <조류인간>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러시안 소설>에 등장한 배우들이 <조류인간>에도 등장한다. <러시안 소설>에서 주인공 신효를 연기했던 강신효 배우는 <조류인간>에서 청년 사냥꾼 역으로 등장한다. 또한 <러시안 소설>에서 ‘정석’을 연기했던 김정석 배우는 <조류인간>에서도 똑같이 정석을 연기한다. 두 배우 외에도 <러시안 소설>에 등장한 많은 배우들을 <조류인간>에서 볼 수 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러시안 소설>에서 언급되는 ‘조류인간’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실제 영화 <조류인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러시안 소설>에서 신연식 감독은 후속작 <조류인간>에 대한 스포일러를 한 것이다. 두 영화를 함께 본다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러시안 소설>은 길고,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많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삶과 가까운 영화이다. 그렇기에 나는 <러시안 소설>을 소설과 영화, 그리고 삶의 경계 어디쯤에 있는 부정(不定)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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