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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비치하트애솔> 인디토크(GV)

by 도란도란도란 2015. 2. 4.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비치하트애솔> 인디토크(GV)

영화: 비치하트애솔_ 감독 이난

일시: 2015년 1월 31

참석: 이난 감독, 배우 한근섭

진행: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2010<평범한 날들>로 관객들에게 숙제를 안겨 주었던 이난 감독이 신작 <비치하트애솔>로 돌아왔다. 이것은 아픈 청춘들을 위한 영화인가,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왕가위 감성의 복귀인가, 그도 아니라면 실험성을 앞세운 작가주의 영화인가. 이에 대해 이난 감독과 한근섭 배우가 입을 열었다.

 

 

 

진행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비치하트애솔>은 어떤 영화인가?

 

감독 : 2002~2003년쯤에 ‘10만원 비디오 영화제라는 게 있었다. 그 쪽에서 10만원을 주겠으니 단편영화를 찍어 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비치애솔>이라는 340초 정도의 단편을 만들었다. 그 때도 (이번 작품과) 등장인물의 역할이 똑같다. 그런데 2008년쯤에 원본을 분실하게 됐다. 다시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 첫 영화를 끝내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가 진척이 잘 안 되던 시기에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영화로 다시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다. 기획 때에는 장편이 아니었다. ‘3~40분 분량이 나오지 않을까하며 준비했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하면서 길게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준비를 하고 펀딩21’에 장편을 하겠다는 예고를 한 뒤 새로운 배우들 만나 만든 영화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변하지 않는 이야기의 핵심은 2003년에도 스스로 나는 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내가 바랐던 사랑이 뭘까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하면서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보통 쟤는 인간이 아니야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랑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시작한 이야기다. 2003년쯤 찍었던 영화를 십년 후인 2013년에 다시 기획했는데 2014년에 영화를 찍고 2015년에 관객들과 만났다. 시간이 흐르는 점을 영화적으로 넣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이 지워진다는 소재가 덧붙여졌다.

 

진행 : 제목이 아주 명확하다. 보통 제목은 돌려서 말하곤 하는데, 굳이 명확하게 한 이유가 있을까?

 

감독 : 영화 만드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안 했는데, 개봉하려고 할 때 제목이 이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늦여름>이라는 제목도 생각했지만 다들 굉장히 싫어하더라.(웃음) 우여곡절 끝에 그대로 갔다.

 

진행 : 영화에 내러티브가 있기는 하지만 은유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있다. 한근섭 배우는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한근섭 :삥땅이라는 역할이었는데, 너무 좋게 그려져 있었다. 큰 틀이 있기보단 나만 보고 했다. 잘 하면 좋은 그림이 나오겠다 싶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이 배역은 꼭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하고 싶었지만 일부러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런 역할은 처음이라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진행 : 매력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다른 배역과 다르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역할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저 배우는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했다. 한근섭 배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감독 : 이번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다 처음 만났고, 주요 스텝들도 마찬가지다. 전작에 출연했던 사람들 고생을 많이 시켰더니 다 도망을 가버려서 새로운 사람들과 고생 좀 해봐야지 생각했다.(웃음) 한근섭 배우의 경우에도 인터넷에서 배우를 구하다가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만났다. 그런데 인터넷에 있는 사진과 너무 달랐다. 너무 착실한 사람이 나와 당황했다. 그런데 얘기를 좀 나눠보니 그렇지 않더라.(웃음) 거칠게 살았던 느낌이 있어서 꼭 이 친구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행 : 둘이 서로 호흡이 잘 맞았는가? 영화 끝나고도 교류가 이어지는지?

 

감독 : 나는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크다. 처음 만나서 서로 알아가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용수 배역의 대사는 배우에게 직접 부탁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원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근섭 배우의 경우에는 더 천진무구하고 발랄한 나쁜 사람이었으면 했는데, 약간 절제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직도 바라는 게 많다.

 

한근섭 : 너무 착하게 그려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죄송하다.

 

진행 : 듣기에는 영화를 위해 한근섭 배우가 스케이트보드 타는 것을 배웠다고 하던데?

 

한근섭 : 감독이 시나리오와 스케이트보드를 건네주었다. 반포에서 직접 스케이트보드 동아리 분들에게 배웠다. 시나리오를 받고 영화에 들어가기까지 기간이 2주 정도밖에 안 됐다. 부랴부랴 배웠다. 처음에 나는 배우이고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운다고 하니까 (동아리 사람들이) 안 믿더라. 극중에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나에게 가르쳐줬던 분들이다.

 

감독 : 촬영할 때 삥땅이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기술을 설명하는데,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잘 타는 사람들이어서 민망했었다.(웃음)

 






진행 : 작품 들어가기 전에 삥땅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한근섭 : 사실 나도 들어가기 전에 여러 가지를 많이 본다. 그런데 보다보니 자꾸 따라하게 되고, 결국 어느 역할과 비슷해지더라. 언제부턴가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 하자고 생각했다. 삥땅 역할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좀 아쉽다. 처음에 보고 자신 있었다. 이름부터가 삥땅이어서 좋았다. 얼굴도 역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부분은 하면서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누었다는 것이다.

 

진행 : 여배우가 힘든 역할을 맡았다. 노출 수위도 높아서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감독 : 모든 여배우들에게 너무 힘든 일일 것 같다. 게다가 당하는 느낌으로, 피해자인 동시에 노출까지 있다. 사랑의 과정이지만 굉장히 힘들어 했었다. 시나리오로 출발한 영화가 아니라 12장짜리 트리트먼트를 가지고 주연배우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캐릭터를 그 때부터 만들어가자는 점이 있었다. 노출은 시나리오가 끝나고 그림 콘티가 나올 때까지 어느 정도 수위가 될지 몰랐다. 그렇지만 몸을 파는 여자니까 노출을 피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설득을 했다. 현장에서 굉장히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 부분에 수긍을 해주었다. 일정이 빡빡했는데, 거의 가방에 넣고 다닌 소주로 버텼던 것 같다. 노출이라는 것이 소비되는 역할이 되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 자신에게도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게 이야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그래도 그걸 끝까지 지키고 갔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고맙고 놀랍게 생각한다. 진이와 정남이라는 캐릭터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만들어 갔으면 했다. 배우한테 기댔던 부분이 많았다.

 

진행 : 필모그래피를 보면 2003년 쯤 단편을 만들었었다. 독립영화에 있어서 뛰어난 연출이었는데 그 다음부터 감독 경력에 공백이 있다. 그러다가 장편 영화 <평범한 날들>로 복귀하게 됐는데,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감독 : 2003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웃음) 그러고 보니 영화로 밥벌어먹다가는 앞날이 안 보여서 사진을 꽤 오래 찍었는데, 사진으로 돈 버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음에도 자연스레 돈벌이로 쓰이게 되었다. 8년 정도 찍다가 도저히 못 참겠더라. 고등학교 때 빔 벤더스 영화를 보고 영화감동을 꿈꿨었는데, 그 때 우연히 빔 벤더스 감독의 내한으로 사진 찍는 일을 하게 됐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당신 때문에 영화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마쳤는데 남은 인생이 얼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30년 활동을 하고 살지 않을까 싶었는데, 더 안하면 영영 영화를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 때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리고(웃음) 집사람에게 3년만 영화를 하겠다며 설득했다. 2010년에 첫 영화를 찍었고, 이번 영화를 2014년에 찍었으니 마지막 영화가 됐다. 지금도 계속 설득 중이다.

 

관객 : 소품들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 여쭙고자 한다. 뮤지션을 꿈꾸는 삥땅이 택한 악기가 왜 우쿨렐레인가? 여배우가 신발을 신었다 안 신었다 하는데, 신발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또 가끔 잠자리 테 안경을 쓰는데 이를 통해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가?

 

감독 : 삥땅이 하고 싶은 직업은 디제이였다. 원래는 디제이 믹서기를 사러 가는 게 시나리오의 내용이었는데, 요즘은 디제이 믹서기를 악기 상가에서 안 팔더라. 어딘가에서 팔면 구매하는 과정이 보였으면 했다. 내가 설정했던 시대는 처음 스케이트보드, 힙합, 테크노 하우스 힙합 등의 열풍이 불던 90년대였다. 그리고 배경은 이태원이다. 그런 생각들이 있었는데, 그런 건 사라지고 웬 우쿨렐레를 그렇게 많이 파는지(웃음) 그게 유행이라더라. 현실적인 이유로 바뀌게 되었다. 또 겉모습과 다른 것을 원해서 디제이를 할 것 같은 친구가 원한다는 음악이 좀 더 어쿠스틱 하다는 언밸런스 때문에 우쿨렐레로 잡았다. 여배우의 잠자리 테 안경은 실제 그 배우의 안경이다. 여배우가 꽃 배달을 하러 가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이 극명하게 달랐으면 했다. 그걸 썼을 때가 굉장히 다르게 보이더라. 다른 안경은 압축을 많이 해서 시각적 차이가 없는데, 잠자리 테 안경은 압축을 안 한 옛날 안경이라 많이 다른 느낌을 줬다. 맨발의 경우에는 나의 환상이다. 나는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맨발의 순간들, 이런 건 일종의 실재하는 순간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맨발이란 결국엔 아무도 없는 상태다. 그것 때문에 남자가 맨발과 비슷한 상황이 되기도 하는 그런 장치다.

 






관객 : 감독과 배우에 각각 질문하겠다. 영화를 보며 90년대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왕가위 감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아까 90년대로 설정했다고 해서 이해했다. 90년대 이고, 그렇게 연출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한근섭 배우의 경우 역할 제안을 받았을 때는 자신이 있었는데, 촬영한 다음에는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처음에 어떤 식으로 생각했기에 자신이 있었고, 그게 실제와 어떻게 맞지 않아서 후회가 남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 ‘90년대 같았으면 좋겠어가 아니었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직접 90년대를 살았기 때문에 모두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겪었던 청춘에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정서가 있었다. 그래서 특히 신경을 많이 썼던 게 촬영에 있어서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색감이 약간 90년대 같았으면 했다. 필름으로 못 찍었지만 그 때 당시에 필름이 주는 느낌이길 바랐다. 지금 장소에서 최대한 그때의 느낌을 찾을 수 있도록 소품 등을 많이 모아서 찍고자 했다. 내가 갖고 있던 기억들을 다시 만들어보는 형태의 것이었다.

 

한근섭 : 일단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삥땅이 살았던 삶 자체가 실제 어렸을 때 많이 겪어본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울어가는 집에 살면서 하루 용돈 벌어 하루 살았다. 그래서 굉장히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다 보니 너무 자신했던 것 같다. 현실로 부딪히니 이게 맞나 싶었다.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게 실수였고, 잘 하려고 했던 것도 실수였다.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너무 생각을 많이 하니까 꼬이더라. 그러다보니 일단 고민을 많이 하되 현장에 가서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열어 놓고 하려고 한다.

 

진행 :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부탁한다.

 

감독 : 영화를 시작할 때 개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기억을 해석하고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게 내가 90년대에 배우고 바라봤던 영화의 느낌이다. 그런 정서들이 이 영화 안에 들어있으면 좋겠다는 딱 두 가지가 있었다. 그걸 지켜보려 했던 영화인데, 개봉하게 되어 기쁘다. 상황이 좋지 않아 작은 극장에서 상영하게 되는데, 그래도 굉장히 행복하다. 사랑하는 인디스페이스극장에서 하게 되었다. 나는 전 영화보다 이번 영화가 나의 영화, 나라는 사람에 더 가깝게 갔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좀 더 나에게 가깝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한근섭 : 영화가 개봉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이런 질문들을 받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지인에게나 들었지 공개된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게끔 기회를 갖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러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는데, 다른 배우들이 못 온 게 아쉽다. 오늘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영화와는 다르게 감독은 구체적인 내용과 직접적인 언어로 답을 이어갔다. 무엇보다도 영화라는 예술 매체가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 어떤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한 지를 감독과 배우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란 무엇인가? 각자의 몫으로 남는 이 질문에 대해 기억을 해석해서 기록하는 것이라고 답한 이난 감독, 그의 세 번째 기록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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