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고백 <글로리데이>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4월 4일(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최정열 감독
진행: 장건재 감독 (<한여름의 판타지아>, <잠 못 드는 밤>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글로리데이> 제목에 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향했다가, 결코 가볍게만 넘길 수 없는 묵직한 영화를 만났다. 답답한 마음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고 싶었다. 여러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4일 진행되었던 <글로리데이> 인디토크를 기록했다.
장건재 감독(이하 장): 먼저 묻고 싶은 건, 마지막에 ‘상우’는 누구를 보는 건가. 어떤 의미로 찍었는지 궁금하다.
최정열 감독(이하 최): 아마 다른 연출자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상우는 관객을 바라본다고 생각했고, 그 얼굴을 통해 다양한 질문과 생각이 들기를 바랐다. 어쩌면 좋았던 순간들이 모두 판타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는 장면을 찍게 되었다.
장: 오래된 프로젝트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처음 구상했고 지금의 이야기로 어떻게 발전됐는지 궁금하다.
최: 10년 전에 썼던 시나리오다. 그때는 영화 현장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당시 감정의 연장선에서 동료들과 함께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초고를 썼었고 제작은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하다가 잘 안 되면서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그때 대기업에서 하는 공모전을 알게 되었고, 한정된 예산으로 쓸 수 있는 시나리오를 찾았는데 그게 <글로리데이>였다. 10년이 지나 다시 시나리오를 봤는데, 20대 때 느꼈던 행복과 청춘의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30대가 본 20대의 모습에 집중해서 시나리오를 수정하게 되었다. 초고는 훨씬 소동극 같은 느낌이었다. 우당탕 신나게 놀다가 끝나는 영화였는데, 2013년, 2014년도에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 것 같다. 좀 어두운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
장: 입대를 앞둔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사건에 연루되는 이런 스토리 라인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최: 그건 20대 초반에 썼던 설정들이다. 20대에 할 수 있는 고민을 많이 녹여내려고 했다. 과거의 내가 가장 크게 고민한 건 군대, 학교, 전공이었다. 커서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다. 보편적인 캐릭터가 구축되면 관객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고 설득력과 개연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20대 때 했던 고민이 스토리로 들어왔고, 각 캐릭터에게 고민을 조금씩 나눴다.
장: 개봉 후에 여러 반응을 봤을 텐데 어떤 재미있는 반응, 아픈 반응이 있었나?
최: 영화가 답답하다. 극장에서 돈 내고 답답한 것을 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꽤 있다. 고구마를 너무 먹은 것 같다는 반응을 많이 봤다. 다음 영화는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가야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하게 된다. 사실 2014년의 감정이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어서 그런 것 같다. 당시 되게 답답했고, 무기력했고, 부끄러웠다. 이 감정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다.
장: 그렇다면 영화를 유심히 본 분들이 발견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
최: 페이스북에서 영화를 두 번 본 분의 글을 봤었다. 처음 봤을 때 영화가 너무 별로라서 화가 났는데, 두 번째 보니 안 보이던 지점들이 보였다고 하더라. 영화가 굉장한 장점을 가지고 있고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젊은 배우 네 명을 데리고 이 사람들의 상품성을 판매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글을 남겼다. 새벽에 그걸 보면서 많이 울었다. 감동적이었다.
장: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하셨고 인물을 어떻게 조합했는지 궁금하다.
최: 좋은 배우를 만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20대를 훌쩍 넘겼기 때문에 20대의 감정이나 생각을 멀리서 바라봐서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많은 배우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다짐했다. 그 안에서 같은 목적을 가질 수 있는 배우, 혹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자고 했다. 오디션을 많이 했고, 모든 배우가 오디션을 통해서 캐스팅된 분들이다.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조연배우 분들도 정말 대단한 분들이어서 작은 역할을 드렸을 때 걱정을 많이 했었다. 흔쾌히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장: 영화의 초반부에 두 형사가 전화한다. 한 명은 CCTV 확인을 위해 교통과에 전화하고, 나머지 한 명은 족발을 시키려고 전화한다. 근데 이 장면은 어딘가 이상한데, 영화의 진행 방식을 좀 다르게 끌고 간다.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최: 백 형사는 이미 명령에만 움직이는 어른이 된 것 같은데, 최 형사는 유일하게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형사다. 최 형사도 지금은 이러지만 앞으로는 백 형사가 될 거라고 암시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도 최 형사에서 백 형사 쪽으로 흐르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인물과 오 팀장의 지시로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족발을 시키는 백 형사가 한 공간에 한 호흡으로 보이면 굉장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장면이다.
관객: 장건재 감독님은 최정열 감독님에게 스승님과 같은 존재라는 걸 이번 인디토크에서 알게 됐는데, 혹시 ‘불꽃놀이’를 비롯하여 영향을 받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최: 장건재 감독님은 저에게 항상 영감을 주는 분이다. 근데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면을 보면서 <글로리데이>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불꽃놀이는 항상 짧고 아쉬움을 남긴다. 불꽃놀이를 보면서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마치 불꽃놀이 같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간직한 청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름다움을 아직 갖지도 못한 채 꺾여버리고 끝나는 이야기다. 그때의 안타까움, 어른으로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관한 영화다.
관객: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어른 중에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바가 있다면 누가 나쁜 사람인지 궁금하다.
최: 선과 악이 명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물론 지금 나쁜 모습으로 보이지만, 이런 것들을 과연 단순히 어른에게 화살을 돌리고 어른만 욕해야 하는 상황은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스템 속에서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영화를 통해 던져지기를 바랐다.
관객: 용비만 상우의 장례식장에 온다. 세 명의 친구가 같이 오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긴 했다. 그러면 나머지 친구도 각각 장례식장에 올 것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최: 잘 모르겠지만, 못 갔을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행복했던 친구들이 아니었다. 하고 싶지 않은 야구와 재수를 하게 되었듯, 어른들이 생각하는, 사회에 연착륙하는 방법을 이미 강요당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한 반항이 여행이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하면서 더 큰 부모의 압박이 가해졌을 거다. 죄책감도 있겠지만, 부모들이 절대 보내주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다.
관객: 많이 공감하면서 봤다. 감독님은 살아가는 청춘에게 어떻게 고하고 싶은지. 이 영화를 통해서 청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최: 청춘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지 않나. ‘너희 때는 원래 그런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지’ 이런 말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 무엇을 하고자 해도, 그 선택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누구도 진실을 궁금해 하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선택이 강제된다. 진실이 아닌 사실을 만들기 위해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청춘에게 이런 상황을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아니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어른이 모이고 모여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고백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다음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음 날은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많은 비극과 적은 희망이 공존하는 영화인 것 같다.
인디토크에서 감독은 시종일관 자신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고백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자신의 수치를 고백하는 멋진 어른은 나오지 않는다. 잘못을 반성하는 어른이 영화에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영화의 방향은 달라졌을 거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그러면 지금의 파국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선 이상적인 인물을 제시하지 않는다. 출구도 없다. 어쩐지 현실과 똑 닮아있다. <글로리데이>의 단점은 희망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로써 부끄러움을 아는 이가 많아진다면 영화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_Review] <스틸 플라워> : 희망으로 점철된 강철의 꽃 (0) | 2016.04.16 |
---|---|
[인디즈] 서로에게 더 가까이 관심 갖는 사람들이 모인 시간 <수색역> 인디토크(GV) 기록 (0) | 2016.04.14 |
[인디즈_Review] <수색역> : 미숙한 소년들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지랴 (0) | 2016.04.07 |
[인디즈_Choice] <만신> : 영화가 삶을 구성하는 방식 (0) | 2016.04.05 |
[인디즈_Review] <글로리데이> : 부끄러운 이 시대의 초상 (0) | 2016.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