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한줄 관람평
차아름 | 성실한 앨리스도 괴물이 되는 잔혹현실
김수빈 | 소박한 꿈조차 꿀 수 없는 성실한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추병진 | 위험한 생존법을 터득한, 비루한 세상의 앨리스
김가영 |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인간을 만든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소박한 꿈조차 꿀 수 없는 성실한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위로공단>과 같은 날 개봉했다. 두 영화 모두 한국 사회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로 분화한 듯 한 두 작품이 한 날에 개봉한 것은 신기한 우연의 일치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수남’은 <위로공단>의 인터뷰이 여성 중 한 명이 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특히 <위로공단>에 등장하는 한 여성노동자의 말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의 입장을 완벽히 대변하며 두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성실히 일한 사람한테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나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여성노동자 수남은 끊임없이 현실을 개척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불운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실성해버린다. 공장에서 청춘을 바친 여성들이 그랬듯 수남도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꿈꾼 적은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엘리트로 살아가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각종 자격증을 섭렵하며 시대가 요하는 일꾼이 되리라 마음먹었지만 사회에 나온 그녀는 곧 컴퓨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작은 회사에 들어간 그녀는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남편을 만나 안락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청각 장애가 있던 남편이 작업 중 사고로 손가락을 잃으며 불행이 시작된다. 가정의 생계를 떠맡은 그녀는 밤낮가리지 않고 일에 몰두하고, 좌절해있는 남편에게 쉼 없는 노동과 필수 불가결한 대출로 마련한 집을 선물하지만 새 집에서 남편은 자살을 시도한다. 결국 남편은 식물인간이 된다. 수남은 남편이 존엄사 권고를 받을 정도로 죽음과 가깝게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재개발 사업을 사수해 병원비를 마련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겠다는 꿈을 놓지 않는다.
남편과의 소박한 삶을 꿈꾸던 수남의 바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처한 현실은 점점 더 악화되어간다. 애초에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노동자가 된 그녀이다. 하나의 불운은 다른 불운을 야기하며 불운의 컨베이어벨트는 면밀하게도 돌아간다. 고등학생 수남은 자격증을 따는 데에 몰두하지만 컴퓨터 시대가 들어서며 모든 자격증들이 종이쪼가리가 된다. 집을 포기하고 모아온 돈을 쏟아 부어 남편의 보청기 삽입 수술을 돕지만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남편은 사고를 당하고 삶을 포기하는 데에 이른다. 선택의 기로에서 모든 것을 바쳐야만 겨우 한 단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그녀이기에, 그 선택의 결과가 불운으로만 이어지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애초에 그녀가 사회의 품 안에서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면 불운의 첫 스위치를 누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고문장면이나 폭행장면 등 몇몇은 꽤나 잔인하게 느껴지고, 수남의 선택이 극단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째 한군데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구석이 없다는 점은 그만큼 그녀가 살아내던 현실이 절망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쳇바퀴 속에 살던 그녀가 남편을 데리고 바다로 떠나는 결말에서야 수남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그 얼굴을 보고서야 영화 내내 부여잡고 있던 마음을 놓고 쓰라린 미소를 그녀에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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