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_Choice] <명왕성> :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현실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명왕성>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CPxVC9

<명왕성> :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현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의 글입니다.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

 

- 어느 자살한 초등학생 6학년의 일기 중 -

 

오프닝 이전에 어느 자살한 초등학생 6학년의 일기 내용이 뜨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수능 당일의 실제 모습들이 쿠키 영상으로 나온다. 현실이 영화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명왕성>의 ‘잔혹극’은 현재 한국의 입시제도 문제가 전제되어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화라는 근대식 교육의 산물이고,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이 구조로부터 자유를 제한 받는다. 억압의 내러티브는 기숙사물을 비롯한 대다수의 학원물이 따르는 공식이고 <명왕성>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외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미성숙한 존재들의 역학 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0)은 죽은 소년의 아버지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주체로 등장시키면서 학교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학교도 사회에 속한 다른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논리로 작동한다. 설원에서 토끼를 사냥하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에 바로 살인 미스터리로 넘어가는 <명왕성>의 경우, 내부의 사건을 조사하는 외부의 인물(형사)이 등장하면서 학교를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두 영화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역할을 조성하 배우가 연기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렇다면 살인 미스터리는 학교 공간이라는 내부의 논리에 따라 발생한 사건이고, 자연스럽게 영화의 내러티브는 주인공의 행동이 내부 논리의 근본을 건드려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 김준(이다윗 분)의 테러는 그가 시스템의 논리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패배 의식, 개인의 노력으로 탈주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준은 왜 탈주를 할 수 없는 것일까? 김준과 유진 테일러(성준 분)가 처음으로 의견 대립을 보이는 명왕성 씬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김준: 명왕성이 퇴출된 이유는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결정적으로 그 가설이 정당한 지를 생각해 봐야죠. 태양계로부터 거리가 멀다는 게 쫓겨난 이유인데, 그럼 가까워지면 복원된다는 건가요? 단지 모양이나 질량, 거리만 가지고 별의 지위를 판단하는 건 말이 안 돼요. 모든 별들은 인간처럼 태어나고 죽어요. 태양도 이미 노쇠한 항성이야. 영원한 건 없다고.

 

유진 테일러: 재미있어 네 얘기. 그런데 앞으로 태양은 50억년 더 살아 있을 걸? 네가 죽은 다음에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정 억울하면 그 때까지 살아남아서 이론을 바꿔. 어차피 이론이라는 것도 내가 죽으면 의미가 없는 거잖아.

 

김준: 우리가 죽든 말든 과학의 법칙은 따로 존재해.

명왕성이 태양계로부터 퇴출된 것이 외부적인 조건 때문이기에 부당하다는 김준의 주장은 의심할 바 없는 입시제도 비판이다. 그렇지만 유진은 논의의 방향을 현실성의 문제로 돌리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제도가 공고하게 버티는 한,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는 개인이 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현실과는 상관없이 가치는 존재한다는 김준의 원론적인 답은 공허하다. 결국 <명왕성>은 부당한 제도 속에서 여러 가지를 시도한 개인이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과정이다. 학교는 제도의 문제점을 폭로하기 위한 공간이고, 영화 속 인물들은 강력한 주제의식을 위한 도구로 제 역할을 다한다. 상징에 상징을 덧대어 끝내 폭주하는 영화의 결말도 기능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거대한 규모의 거짓말. 신수원 감독은 이 가짜 세계를 통해 오직 하나의 메시지만을 던진다. 입시제도의 피해자였던 학생들이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이 끔찍한 상황을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3년, <명왕성>이 개봉한지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메시지에 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