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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중국독립영화특별전" 중국독립영화의 오늘

by Banglee 2009.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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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探究]<40> 인디스페이스의 '중국독립영화특별전'을 맞아


중국 독립영화의 오늘

천 안문의 6월이 피로 물들었던 1989년, 더벅머리 신예 감독 하나가 중국 영화계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중국 영화계에서는 불려서는 안 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장위안(張元). 스물여섯의 앳된 나이에 막 베이징영화대학을 졸업한 그는 모종의 기원과도 같은 제목 <엄마(媽媽)>를 들고 나타났다. 중국 최초의 '독립영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영화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금기시하는 장애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때문에 당국에 의해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던 것이다.


그 러나 1991년 이 영화는 낭트삼대륙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후 스위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 에딘버러영화제 등에서 거듭 상을 받으면서 장위안도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다. 장위안 자신은 비록 1998년 당국으로부터 '해금령'을 통해 <북경녀석들>, <동궁서궁> 등에서와 같이 치열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한걸음 물러나는 체제 내 감독으로 '전향'했지만, 그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중국 영화는 드디어 "오늘, 여기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수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교조적인 영화로부터 벗어난 중국 영화는 이른바 '5세대'라는 작가주의에 의해 화려한 색채와 사운드에 물들어 있었다. 장이머우와 천카이거 등으로 대표되는 '5세대'는 주로 역사에 대한 회고를 통해 현실을 은유적으로 기호화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그들의 노고는 향토적인 공간 속에서 집단 계몽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그들을 통해 중국 영화는 '작가'를 재발견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중국을 은유와 알레고리의 색을 덧입혀 서양에 '팔아넘기고' 있었다.

그 런 상황에서 장위안의 뒤를 잇는 일군의 젊은 감독들은 대부분 1989년 6월의 베이징을 직접 목도한 이들이었다. 왕샤오솨이(王小帥), 허이(何一), 왕숴(王朔), 장원(姜文) 등이 잇달아 카메라를 들고 현실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중국 영화의 리얼리즘 전통은 사뭇 프레임 안에서 미장센을 구축해 갔다.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고뇌와 사랑, 그리고 '사회주의'가 공론화를 꺼리던 돈, 섹스, 마약 등의 문제를 직접 들고 나섰다.


독 립영화는 보통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전제로 한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영화들이 자본에 예속되어 건강한 영화 정신을 잃어버릴 때, 독립영화는 빛을 발한다. 돈이 없는 영화, 독립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영화이고, 젊은이들의 새로운 실험을 통해 영화의 발걸음을 앞서 나가게 하는 힘을 창출한다.

그 러나 중국의 독립영화는 '자본'도 문제지만, 여전히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큰 화두다. 무엇보다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했다. 지배 권력구조를 통해 영화의 제작에서 상영에 이르기까지 줄곧 '허가'의 도장을 받아야만 하는 체제 속에서 예술 창작의 정신은 자기검열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말 것이다. '자격정지'라는 체재 내부의 도전에 맞서서 이들이 얻고자 한 것은 결국 짓눌리지 않은 젊은 정신이었으리라.

그 리하여 중국의 '독립영화'는 '지하영화(地下電影)'로 호명된다. 국가권력 못지않게 영화계 내부 권력을 축적해 가고 있던 선배들, '5세대'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한 일이었다. 장위안을 필두로 등장한 감독들을 많은 이들이 '6세대'라 불렀지만, 그 명명은 '5세대의 아들'이라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중국 독립영화의 아이콘 지아장커(賈樟柯)에 이르러 단호히 부정된다.

이 런 방식으로 중국 독립영화는 힘센 이데올로기를 발산하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신들의 선배 세대로부터의 독립, 나아가 '세대'라는 이름으로 중국 영화사를 재단하려는 관습으로부터의 독립, 더불어 관습화 된 텍스트로부터의 독립, 일부 타협적 모습을 보인 동료들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해 왔다.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여전히 '5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 내부에서의 '거부'를 발판으로 서양에서 호명되고 '승인'된 뒤 다시 내부로 귀환하여 '승인'되는 '거부'와 '승인'이라는 순환의 정치학을 거치면서 스스로 권력이 되어가고 있지만, 20년 전에 시작된 중국 독립영화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젊은 감독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여전히 몇 가지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이다. 적절히 혹은 완전히 타협하거나, 해외로 도피하거나, 비밀리에 지하로 숨어드는 방식이다. 별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정부와 당의 절대적인 후원 속에서 주류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주선율 영화'와 역시 시장과 권력의 지지 속에서 막대한 물량 공세를 퍼붓는 '다피엔(大片: 블록버스터)'이 서로를 학습하면서 기이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는 중국 영화의 판도 속에서 독립영화의 존재는 양적으로는 여전히 미미하다.

그 러나 이들은 여전히 젊은 정신으로 도전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독립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지아장커 이후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멘터리적 기법의 활용은 중국 독립영화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주류 영화들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중국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세밀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베 이징영화대학의 장시안민(張獻民) 교수는 최근의 중국 독립영화를 두고 "스타일이 자유로워지면서 중국 독립영화는 작가의 심리를 직접 반영하게 됐고, 작가의 심리는 정확하게 사회 구조에 대응했다. 그것은 사회구조의 내면화일 뿐 아니라, 사회구조와 대중 심리의 대응 관계를 통해 집단적 잠재의식을 투시하고 있다"고 평한다.

한 국의 영화제들은 꽤 오래 전부터 중국 독립영화에 대해 애정을 쏟았고, 그 덕에 한국 관객들도 생소한 중국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많은 영화들이 젊은 중국 감독들의 새로운 실험들을 알려주었다.

천안문의 함성이 멈춘 지 꼭 20년이 되는 올해 6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중국독립영화특별전"을 야심차게 기획했다. 6월 18일부터 7월 2일까지 24편의 중국 독립영화가 상영된다. 이만하면 풍성한 잔치다. 중국 독립영화의 초기 멤버 장밍(章明) 의 <개 같은 사랑>, <신부>, <무산의 봄> 등과 중국 퀴어 영화의 대표 주자 추이쯔언(崔子恩)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을 가진 남자>, <우리는 공산주의...이다> 등이 상영된다. 장밍과 신예 감독 웨이아팅(魏阿挺), 베이징영화대학의 장시안민 교수는 영화제 일정에 맞춰 직접 한국을 찾아 관객들과 만남을 가질 계획이다.

중 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영화들의 여행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당분간 한국의 상영관에서도 이만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생각이 미치면, 씁쓸한 분노가 일어난다. 그러니 이 좋은 잔치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중국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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